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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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읽기는 극히 제한적이다. 비록 대학시절 문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문학보다는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철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읽은 편이지만, 문학은 근대까지의 영미문학과 간헐적으로 읽은 한국문학이 문학읽기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내가 쓴 대부분의 책들은 철학과 관련된 책이다. 지금도 서점에 들르면 십중팔구는 사회과학서적이거나 철학서적을 구입하고, 문학책 구입은 가뭄에 콩나듯 한다.

그런 나에게 이현우의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교유서가, 2020)은 일종의 자극제이다. 이현우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는데, 러시아문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독서는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여기 저기 지면에 쓴 서평모음집이다. 3~4쪽의 짤막한 서평으로 책 한 권을 이루었으니, 책에서 다룬 문학작품이 가히 오거서(五車書)에 값한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설렁설렁 읽고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추억이 되살아나고, 어떤 부분에서는 무지를 절감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로쟈는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데, 그 이전의 서평전문가를 꼽으라면 당연 소설가 장정일이다. 소설가 장정일은 거의 매년 한 권씩의 서평집을 낸 적이 있다. 장정일과 로쟈의 다른 점이 있다면 직업적 소설가의 글쓰기와 학자의 글쓰기의 차이이다. 로쟈는 문학 전공자답게 문학사적 흐름과 번역의 문제, 다른 작품과의 연계 문제를 염두에 두고 짧지만 맛깔스럽게 핵심을 파고든다.

저자는 이 책 이전에도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오월의 봄, 2012)아주 사적인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13), 로쟈의 러시아문학강의 19세기(현암사, 2014), 로쟈의 러시아문학강의 20세기(현암사, 2017), 책에 빠져 죽지 않기(교유서가, 2018) 등 다양한 서평집을 썼다. 이 정도면 서평으로 일가를 이룬 셈이다. 최근에는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추수밭, 2020)까지 썼으니 동서양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에도 그의 촉수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이런 성실함을 좋아한다. 한때 찬란하게 반짝 빛나는 글쓰기보다는 광채는 비록 조금 떨어질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빛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태디셀러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책은 책의 품질에 비해 판매에서는 저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나보다 심한 독서광이고, 정리광이다. 나는 저자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특히 체계적으로 소개되는 서평으로 인해, 방황하지 않고 다음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선사받는다. 내 책 구입목록의 선구자로서 그의 글쓰기가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은 책을 읽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교정차 다시 읽으니 지난 한 세월이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간다. 인생의 그 시간을 그 책들을 읽고 이런 글들을 쓰면서 보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고로 이 책은 나의 존재 증명이면서 한편으로는 부재 증명(알리바이)이다. 내가 거기에 없었다면 그건 이 글들 때문이었다. 아마도 사십 년 전쯤 문학에 처음 눈을 뜨고 책의 세계로 뛰어들던 무렵에 느꼈던 경탄과 흥분을 나는 아직 잃지 않고 있다. 비록 이 책에 적은 문장들이 그런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어느 땐가 이런 책을 내가 발견했다면 매우 기뻐하며 흥미롭게 읽었을 것이다. 이제 막 그런 독자의 길로 들어선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친다.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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