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꿈 기계의 꿈 북클럽 자본 시리즈 8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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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마르크스의 자본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낡은 혁명가의 호사가적 취미이거나, 역사적 고전의 음미를 통하여 교양을 넓히는 일이라면, 하루하루 살기 바쁜 우리에게는 낭비적 생활이 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보고, 현실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현재적 실천양식과 미래적 비전이 없다면 독서는 경제적 비용은 적게 들지 모르지만,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자면 커다란 낭비이다. 게다가 마르크스의 자본이 그리 쉽게 읽을 수 있는 저작도 아니니, 자신의 실존과 관련이 없는 서적이라면 고문에 가까운 일이리라.

하지만 4차산업 혁명 운운하며 인간의 자리를 기계가 빼앗을 것이고, 인간은 더욱 무용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협박삼아 더욱더 노오력을 해야한다는 경쟁적 언설에 넋을 잃은 자라면 이 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자본주의는 기계제 생산을 이윤창출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단계로 상정하여 고도의 노동착취를 성취해왔지만, 기계가 반드시 자본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자본은 기계를 반드시 원하지만, 기계에게 자본은 필수불가결하지 않다.

그러니 인터넷과 AI, 로봇과 공장, 그리고 자원을 제공하는 자연이 반드시 자본주의하에서만 작동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낭설이자 환타지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자본의 꿈과 기계의 꿈은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유물론적 상상을 조금만 더 현실화시키면 직장을 가지고 임금을 받는 방식의 노동방식이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전망은 결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는 노동시간의 강화와 연장을 통해 꿈꿔지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시간의 단축과 자유시간의 증대를 통해 새롭게 단련된 신인류(마르크스는 이를 당대의 언어로 프롤레타라이트라 표현했다.)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이는 자연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상상적 창의와 훈련, 새로운 생산과정을 통해서 지난한 시간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기계의 꿈이 자본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해방과 인간해방을 구상하는 인간의 꿈과 일치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내가 마르크스를, 자본을 다시 읽는 이유이다.


만약 기계가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계가 상품이기를 멈추고 자본(고정자본,불변자본)이기를 멈춘다고 해서 그 작동까지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기계는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을 크게 감축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었지요. 공장에서 축출되는 노동자는 길바닥에 나앉았고, 공장에 머문 노동자들은 노동일 연장과 노동강도 강화에 시달렸으니까요. 그러나 생산력 증대가 그 자체로 고통의 이유일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줄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노동해방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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