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 후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비를 홀딱 다 맞고 새벽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 아침 뉴스를 켜니 대정부 질의 중 박근혜 관련한 패러디가 집중 성토되고 있는걸 봤다. 그래서 컴퓨터까지 켜서 바쁜 아침에 대체 뭔일인지 확인을 했다.

한 네티즌이 영화 <해피 엔드> 포스터를 패러디하여 남자 배우 얼굴엔 '조선/동아'라고 붙이고, 여자 배우 얼굴엔 박근혜의 얼굴을 붙인 이미지를 청와대 참여마당인가 어딘가 게시판에 올렸다고 한다. 거기다 게시판 관리자는 베스트 게시물 코너에 이 게시물을 링크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한나라당에서는 '여성의 성적 수치심' '인권유린' '정권의 야당 탄압' '정권의 야당 대표 죽이기'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래서 아침에 회사 동료 S에게 "이게 이렇게까지 공격할 사안인가? '여성의 성적 수치심'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수위를 넘어선 '성적 수치심 유발 이미지'까지는 아닌 것 같다. 더더군다나, 이게 무슨 인권유린이고 야당 대표 죽이기일까? 또, 베스트 코너에 이걸 링크시킨 게시판 담당자나 좀더 높은 위치의 책임자 문책 정도면 되지, 청와대 홍보 수석을 경질하고, 대통령이 사과까지 할 사안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분명 여성의 성적 수치심이 느껴질만한 사안은 맞다."고 했다. 그래서 길게 논쟁을 했는데.... '많은 남성들이 이런 기본적인 여성에 대한 성적 수치심에 대한 조심성과 의식이 없음'을 그녀는 비판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패러디물이 '음란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박근혜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다. 박근혜(한나라당)과 조선/동아와의 부적절한 짝짝꿍 관계를 조롱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패러디 표현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걸 게시판 관리자가 베스트 코너에 올린 것이 잘못이지, 삭제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를 성적인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박정희를 끝까지 안고 가야하는 정치인 박근혜로 비판한 것이다. 단지, 침대에 엎드려 있는 여배우 얼굴에 박근혜 얼굴을 합성했다고 성적 수치심 비판을 가하는 것은 조금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도 정치인과 언론, 정치인과 재계쪽의 유착에 대해서는 신문의 만평이나 패러디에 이렇게 침대 위에서의 부적절한 관계로 표현한 예가 많다. 남자 정치인이나 인사는 되고 여성이라서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볼 수는 있으나 명쾌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고 본다.

좋다. 그건 나의 여성에 대한 의식이 저급하다고 치자. 아니, 그건 별도로 '표현의 자유'와 '여성 인권 존중'이라는 문제로 분리해서 더 얘기해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게 홍보수석을 짜르고, 대통령이 사과하고, 대정부 질의 시간에 총리가 공격받고, 파렴치한 정부와 청와대로 비판받을 사안인가?

나도 사소한 것 하나도 정당히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는 풍토가 조성되는 작금의 분위기에 찬성한다. 하지만 이건 정말 침소봉대다. 조선/동아와 한나라당은 이번 친일진상규명법에 박정희가 조사 대상에 들어가는 조건과 맞물려 아예.. '딱 걸렸어'로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다. 청와대와 정부를 넘어 이젠 여당까지 공격을 하고 있다.

뻔하다. 그들이 정말로 여성의 인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할까? 난 많은 여성분들이 이번 사태를 이렇게 한나라당/조선/동아와 함께 청와대와 여당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하고 솔직히 바란다. 여성 인권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비판을 한다면 "호주제철폐와 여성관련 정책에서 시대착오적인 수구적인 주장만 늘어놓는 한나라당/조선/동아 너희는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고 그놈들까지 싸잡아서라도 비판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단지 바랄 뿐이다.(물론 한나라당/조선/동아에 우호적인 분들께서 그러하시기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너흰 여성인권을 말할 자격 없어"라고.

 

아래는 글 주변 없는 내가 이렇게 장황설을 늘어놓는 것 보다는, 이 기사를 통해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퍼왔다. 딱 내 마음이다.


 

한나라여, 인터넷을 그렇게 모르는가
[오마이뉴스 2004-07-15 09:10]
<[오마이뉴스 고태진 기자]
▲ 한나라당 당원들이 당 홈페이지와는 별도로 운영하는 '좋은나라닷컴'(www.okjoeunnara.com)에 지난 6월 25일 올라와 있는 패러디물. 제목은 '놈현의 혓바닥'이고 올린이는 '슬픈세상'으로 되어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렸다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를 소재로한 패러디물 때문에 국회 대정부 질의장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강력한 항의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은 "박 의원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홍보수석의 파면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어 쉽사리 물러설 태세가 아닌 듯 하다. 물론 이 일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잘 볼 수 있게 게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적절하였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근혜 의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도 타당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의 범주를 벗어났다고도 볼 수는 없다. 이 정도의 패러디물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넘치고 넘친다. 국정 현안도 아닌 이 정도의 지엽적인 사안을 가지고 국회의 대정부 질의장에서 난리를 친다는 자체는 단지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 정도의 패러디물은 사이버 공간에서 넘치고 넘친다

당장 한나라당의 홈페이지에 가보라. '젊은 한나라가 만드는 OK 좋은 나라. COM'이라는 곳을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표현의 자유에 관대한 나라이며, 한나라당이 또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정당임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노무현 대통령은 거지꼴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이상한 행색을 한 '무법자 노란 돼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예전에 박근혜 의원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같으면 남산에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했겠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 정도의 표현을 가지고 '국가원수 모독'을 들먹이지는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인들 그런 악의적인 패러디물을 보면 기분이 좋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인터넷의 첨단 유행인 '싸이질'에 열심이신 박근혜 의원이 그 정도 표현의 자유를 용납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일"이라고 비난한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의 차기 대표자리가 확실해서인지,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본회의장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썩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다. 흡사 무슨 음모가 있다는 듯이 이것을 가지고 대통령의 사과와 홍보수석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도 억지스런 정치 공세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이런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고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반시대적, 반여성적 작태를 자행한 청와대는 국민과 여성 앞에 석고대죄하라"는 거창한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여성 정치인에 대한 성적 모독'이라며 비난하고 나선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의 집단 행동도 과잉이라는 느낌이다.

일개 여성 국회의원은 마음대로 패러디해서도 안되고,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석고대죄라도 해야 되나? 대통령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한나라당내에서라도 여성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

여성의원 패러디가 대통령이 석고대죄할 일?

▲ 청와대 홈페이지에 주요하게 올라 문제가 되고 있는 박근혜 의원 패러디물.
알다시피 16대 국회 때 한나라당의 이경재 의원은 김희선 의원에 대해 "남의 집 안방에 누워 있으면 주물러 달라는 거 아니냐"는 여성 모독적 발언을 한 적이 있으며, 얼마 전에는 심재철 의원이 국회의 공적인 자리에서 서영석씨의 부인을 "아줌마"라고 지칭한 적도 있었다. 한나라당은 그때는 아무 말 없이 넘어갔었다.

이번 일을 보면 예전에 평범한 노동자였던 아이디 '피투성이'가 인터넷에 올렸던 '민주당 살생부' 파문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도 무슨 음모가 있다느니, 민주당 내 인사가 만들어 올렸다느니 별 억측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결과는 쑥스럽게도 평범한 철공소 노동자가 언론 기사를 참조해서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여, 아직도 인터넷을 그렇게 모르고, 네티즌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이번에 청와대에 올린 패러디 사진은 조금만 그래픽 프로그램을 안다면 누구나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또 족벌언론과의 유착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영화의 한 장면을 따와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다른 인터넷 홈페이지와는 달리 청와대라는 지위와 성격에 걸 맞는 게시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앞으로 홈페이지 관리를 좀 더 세심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나라당이나 박 의원도 지엽적인 문제를 물고 늘어져 정쟁거리를 만들어 낼 작정이 아니라면 홍보수석의 공식사과를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마무리짓는 것이 좋다. 민생 현안이 넘치고 넘치는데 의사당에서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가.

/고태진 기자 (ktjmms@kornet.net)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고태진 기자는 고정칼럼니스트 겸 편집자문위원 입니다. 경북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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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7-15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다.

비로그인 2004-07-15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이 포스터 보고 나는 아무리 패러디라고 봐주고 싶어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따. 이건 야당대표 죽이기 음모가 아니라 헐리웃의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의 일환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울 나라에 몇 남지 않은 훌륭한 여배우의 하나인 전도연을 반쪽짜리 배우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의 자생력을 죽이려는... 생각해봐라 앞으로 전도연이 성적 긴장이 배역의 바탕이 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겠는가? 나는 앞으로 전도연의 어깨만 봐도 박근혜 얼굴이 떠올라서 거북스러울 것 같다. 시바! 이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주말에 볼려고 했던 인어공주도 일단은 보류다.

starla 2004-07-1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공님 ㅠ.ㅠ 깨요 ㅠ.ㅠ ㅋㅎㅎ

nutmeg 2004-07-1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만나는 주공 님... *** 기질은 빛바래지 않았다고 하면 화내시려나 ㅠ.ㅠ

卓秀珍 탁수진 2004-08-08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약점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의 약점을 비꼬게 되면
다수는 약자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박근혜는 여자라는 약점(과연?)을 가지고 입성했는데,
저 패러디는 약자의 약점을 꼬집는 사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게 문젭니다.

여자는 실제로 사회적으로 약자이고
박근혜도 그것을 이용할만큼 영악한데다
노무현 아저씨가 만만하기까지 하니까
저런 헛소리를 해댈 수 있는거죠.

웃긴것은,
저런 스토리의 영화나 사진이 여성비하라면 전도연 입장은 어떻게 되는건지.
저 영화를 찍은 전도연은 스스로 여성비하에 동참한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