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te 매거진의 오디오 북클럽.
(이제 4개쯤 들어보았나 보다) 여러 모로 재미있고 배울 지점들이 있다.
뉴욕타임즈 서평 팟캐스트 What we are reading에서 처음 듣고 알았던 파를 세갈(Parul Sehgal) 등
실제 비평가들이 참여한다. (파를 세갈은 미치코 카쿠타니가 뉴욕타임즈 떠나면서 남긴 공석을 채우게 된
모양이던데, 그러니까 그녀가 서평 팟캐스트 끝나기 몇 분 전 구석에 나타나 잡담이나 할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반하며 썼던 포스트: http://blog.aladin.co.kr/zauberberg/9389412)
(주소에 클릭하면 그 주소로 가게 하는, 링크가 링크이게 하는 법을
알면 그 때부터 그렇게 링크 하겠습니다. ; 지금 몰라서 주소 복사만).
그러니까 책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게 업인 사람들이 모여서
진지하게 토론한다. 와일드가 디스하는 그 진지함이 아니라 ("인생은 진지하게 접근하기엔 너무 소중한 주제" "자선은 오직 진지하게만 접근할 수 있는 지겨운 주제") 다들 자기 존재, 자기 정신과 함께 참여한다... 정도 의미에서. "아이디어의 교환" 이것이 일어난다. 오늘 하나 생각했던 건, 어쨌든 적어도 상대적으로, 이들에게 우리보다 더 사상의 자유가 있고 그건 다시 말해 '다양성' 이것이 이들에게 (우리보다 더) 존중되고 삶의 당연한 일부라는 것. 우리에겐, 우리 중 가장 리버럴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더라도, '정답주의' ㅎㅎㅎㅎ 같은 것 작동하지 않나. 하나의 답이 아니라면, 가장 맞는 답. 가장 우월한 답. 가장 인정받는(받을) 답.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나.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경합하는 다수의 의견. 이런 걸 거의 못 견디지 않나.
언어의 뉘앙스. 감수성의 종류와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
이런 것에 대한 세밀한 논의도 들을 수 있다. Fifty Shades of Gray 토론한 에피도 있던데
특히 이 에피 들으면서 실감했던 게 이 지점. 이 책이 의도한 바와 그것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지점.
이 책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성취하는 지점, 혹은 이 책의 절하에 (추가 절하에) 기여하는 지점.
이것들을 아주 그냥, 이잡듯이 얘기한다. 영어가 보유한 뉘앙스의 가능 영역, 그리고 상투어들이 살고 있는
저주 받은 땅... 이 한국어보다 광활하다, 는 생각도 했다. 이런 얘기하면 받게 되는 공격이, 한편 나는 진심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이게 영어를 오래 공부했고 읽은 사람이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고 ; 그리고
그 점 부정할 수 없다 해서 그것이 우리의 (한국어의) 열등함을 말하는 건 아닐 거라서. 가야할 길이 멀다... 까지만
말하는 거 아닌가. 아니 그것만 말하는 게 아니고, 해야할 일이 많다. 도 말하는구나. 이건 다시 말하면, 영어로 쓰는
이들보다 한국어로 쓰는 이들이 그 언어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할 가능성 훨씬 크다...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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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이 말은 술의 영향 없이 쓸 수 없는 말일 거 같다.
그러니 나는 맥주를 마셔야겠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사후 영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