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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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63 어제는

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예스터데이) 』

 

대학에 갓 입학했을즈음 20대에 들어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한 권 있었다.

양귀자의 "모순"

그동안 학교나 교과서 속에서 배워오던 세상과는 사뭇 달랐던 소설 속 현실이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충격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인간이란 논리와 이성과 윤리가 아닌 어쩌면 다들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은 데서 온 그 무엇이었다. 아마 '어른'이라는 세속적인 존재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양귀자의 '모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그때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 속을 관통하고 있는 삶의 '모순'들.

특히 남자와 여자, 같은 종족이지만 가깝고도 먼 그 존재들이 겪는 사랑이란 이름의 모순들.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그 내연남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남자.

소꿉친구로 같이 자라며 연인이 된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친구와 데이트를 해보라는 남자.

평생 독신으로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게 유부녀나 애인 있는 여자와만 즐기지만, 결국 스스로 금기를 깨고 사랑이란 덫에 걸려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남자.

아내와 직장 동료의 정사를 목격하나, 화 한번 내지 않고 전혀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떠나는 남자.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모두 이런 남자들과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얼핏 말도 안되고,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 '모순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그 모순들을 접하며 놀라지도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새 '어른'에서 '나이듦'으로 나아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09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예스터데이) 』

 

하지만 책 속 구절처럼 이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굴레일테니, 억울해하지 않기로 하자.

 

 

세월이 흐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이를 반복하고.

그럼 연습이 되고, 습관이 되고, 면역력이 생겨,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51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드라이브 마이 카) 』

 

 

『 p.166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 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독립기관) 』


『 p.169 생각건대 그 여자가 (아마도)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의미는 얼마간 다르겠지만, 도카이 의사 또한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의지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작용이었다. 제 삼자가 나중에야 뭘 좀 아는 척 왈가왈부하며 자못 슬프게 고개를 내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독립기관) 』

 

 

『 p.214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셰에라자드) 』

 

 

그렇지 않을 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상처 받고,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한다.

이런 것들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며,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일 테니까.

 

 

『 p.265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기노)』

 

 

 

모순, 상실, 상처, 공허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던 단어들이었다.

표지에서의 얼음달처럼 한없이 차갑기만 단어들.

 

 

 

그런데 또한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치유(힐링)라는 단어 또한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나만 잃어버리고, 상처 받고, 아픈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마 이런 점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 p.327 어느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여자 없는 남자들) 』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 한 편으로 첫인상이 굉장히 거칠고 낯설고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작가였다.

그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하루키 열풍이 인다 해도 그의 작품은 나에게 철저하게 관심밖에 있었다.

 

그러다 이제 그 견고했던 선입견을 어쩌면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오히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오마주는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잠자가 사랑할 수 있어서, 그래서 그로인해 또 상처 받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그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주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

 

 

『 p.308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사랑하는 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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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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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에 살고 있는 공무원인 '나'는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는 주식에만 관심을 쏟는 무료한 삶을 사는 남자다.

'나'의 부인은 이런 남편에 질려 급기야 바람을 피우게 되고, '나'는 아내의 외도 사실에 충격을 먹지만 해결점을 찾는 대신 현실로 부터 도피해버린다.

그러다 배가 난파하여 어딘지 종잡을 수 없는 곳에 표류하게 되고 거기서 고양이 톰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톰이 사는 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자 나라인데, '철국'과의 전쟁에 지게 되고 하여 '철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본격적인 지배 및 관리를 위해 철국의 병사들이 마을에 도착하고, 칸토라는 국왕은 철국의 병사에게 피습 당하여 마을은 위기, 즉 '밤'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전설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투명해진 '쿠파의 병사'가 돌아와 마을을 지켜주길 바라게 되는데......

 

사실 다른 사람들의 서평들 속 평이 썩 좋지 않아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처럼 어려운 것인가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오듀본의 기도나 마왕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과 여운이 있었다.

 

우화이기에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평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배와 피지배, 권력과 횡포, 희생과 담합.

사회적으로는 인간들 서로간의 관심과 이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노력.

 

내게 읽힌 이 책의 주제는 이런 것들이었다.

어찌 보면 이사카코타로 작품 전반에 녹아드는 주제들도 이것들이고, 그 점이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소설이 인상깊었던 건 소설속에서 다양한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겹쳐 보였다는 것이다.

 

톰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과 철국과의 관계는 마치 과거 조선과 중국(명나라, 청나라)의 관계를 보는 듯 하여 몹시 부끄러웠고,

철국이 톰의 마을을 이용하는 방법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보는듯 해서 화가 나기도 했고,

칸토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마을을 이끌어 가는 방식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이어져 오는 우리나라 정치 권력자들과 너무도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이건 아마 일본, 아니 전 세계가 똑같은 모양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서술자인 고양이 톰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니 자주 귓가에 고양이 울음 소리나 갸르릉 거리는 들리는 듯도 하고,

소설 속 상황에 따라 고양이들 특유의 보송보송한 털과, 보드라운 발바닥, 하지만 그 안에 감춰둔 날카로운 발톱, 까끌까끌한 혓바닥 등을 이용하는(?) 장면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라 나는 사실 자꾸만 미소 지어질때가 있었다.

아아, 역시 나는 동물들에게 한없이 약하다^^;;

 

다 읽어버리면 너무 아까워서 꼭 한 두권쯤은 읽지 않고 아껴둔 책이 남아 있어야 안심이 되는 유일한 작가.

항상 너무나 읽고 싶은 마음과 그래서 더더욱 아까워서 읽지 못하는 마음 사이의 역설적 내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유일한 작가.

 

나에겐 그런 작가가 바로 이사카코타로다.

 

하여 오랜 인내와 기다림과 아껴둠 끝에 읽은 밤의 나라 쿠파는,

아주 아주 식상한 말로 가뭄끝에 단비, 그 자체였다.

 

 

 

 

p.102 인간이란 위기에 처하면 주위의 누군가와 의논을 하고 싶어 하는 생물이니까. `의논을 하는 편이 좋을까?` 하는 것조차 의논하고 싶어지는 거 같아.

p.169 우리는 그들을 사냥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못하다.
그것은 옳은 파악 방식일까.
쥐들이 고양이보다 못하다고 대체 누가 정했나.

p.218 누구든 자기보다 작은 존재에 관해서는 의식이 흐려지기 마련인지도 몰라. 누구나 자기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p.448 옛날에 칸토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지.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비결을 아느냐고.
`바깥에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적을 준비하는 거다.`라고 그렇게 말했어.
그래 놓고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라고.
`걱정 마라. 내가 너희를 그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겠다.`라고 말이야. 그러면 모두가 자신을 의지하고 반항하는 인간은 줄어든다. 칸토는 그렇게 말했어.

p.525 무슨 엉뚱한 소리야. 나왔으면 돌아가야 맞는 거지.

p.530 포기하고 생각을 그만둔 시점에서 영원히 못 만나게 되는 거겠지. 조금이라도 관계를 회복시킬 생각이 있다면 이쪽에서 다가설 필요도 있는 걸까. 서로의 기울어진 선은 쭉 잡아당기다 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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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이
정승구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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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로 자라 사시 패스 후 대기업 들어가 자수성가한 '나'는 과거 아픔과 상처가 깊은 인물이다. 그 큰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기업 총수는 그를 기업 법무팀장으로 본사로 불러들인다. 그 총수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날 그 아들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는 신호 회장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받은지라 이를 돕게 되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고 부터 살인 사건 용의자로 쫓기게 된다. 즉 어떤 음모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또한 '나'는 쫓기는 와중에 민주라는 전직 기자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왕눈이라는 묘한 꼬마를 만나게 되고 사건은 점점 꼬여간다.

한편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없는, 세상과 벽을 둘러 군인들의 철저한 '보호' 또는 '감시'를 받는 고립된 한 어촌 마을에 사는 소년 바우는 무당인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지만 그 나이 또래 남자 아이가 다들 그렇듯 많은 꿈을 꾸고 절친인 갑수와 마을 안에서 나름 모험도 해가며 자란다.
그러다 마을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이야기는 '소년'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교차하다 중간즈음에 두 이야기가 합치되는 형식이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계속 쫓기는 과정이나 사건의 전말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 등은 마치 골든슬럼버를 떠올리기도 했다.
나는 워낙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굉장히 빠르고 재밌게 읽어 나갔다.

골든슬럼버와 크게 다른 점이라면 이 소설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자주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한다.

또한 작가가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책을 읽는 동안 한편의 스릴러 블럭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마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듯 싶다.
(개인적으론 책을 읽는 동안 감독의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배우를 '나'에 대입하며 책을 읽었다^^;;)




 

 

p.265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인생은 의미도 재미도 없을 것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여생에 대한 절박함도 사라질 것이다. 끝이 없는 인생에서는 새로움이 사라지고 권태가 우리를 고문할 것이다. 결말이 없으면 과정도, 의미도 없어진다. 그래서 인간에게 죽음은 어쩌면 영혼의 의무이고 축복일 것이다.

p.374 세상의 모든 새로운 출발과 시작은 위대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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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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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스릴러나 미스테리 범죄 소설은 좋아하지만, 호러엔 약하다.
그래서 거의 읽질 않는데 이 책은 입소문이 좋기도 하고, 익살스러운듯 섬뜩한 표지가 맘에 들어 끌렸었다.

목련 흉가에서 펼쳐지는 오밤중의 괴담 릴레이.

감기 때문에 골골거리는 와중에도 무서운 와중에 흥미롭고 궁금해서 자기전에(....ㅋㅋ;;) 한편 씩 읽어 나갔다.

아마 나는 앞으로 갑자기 물건이 사라지면 혹시 난쟁이들...? 이라 생각할 것이고,
즐거운 나의집을 부르는 중년 남성을 보면 소름이 오소소 돋을 것이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미녀를 마주친다면 줄행랑을 놓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여자 혼자 야밤에 읽어 내려갈만큼 많이 무섭진 않았다는 거...^^;

작가님 말대로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구석도 꽤 있다는 거^^

그런데 정우와 대호선배가 맡게 된 일은 과연 무엇일까??
밤의 이야기꾼들 시즌2를 기대해도 좋은것인가?
(제멋대로 기대하렵니다. 작가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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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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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는 책 소개에 나와 있는 줄거리 정도로 거의 없음)

 

혹시 밀양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주연 여배우의 열연이 돋보여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그 영화말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았지만 지금은 줄거리를 다 까먹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영화속 주인공은 딸을 잃는다.
범인은 이웃 남자였다.
당연히 주인공은 범인이 잡혀 감옥에 가게 되지만 그를 용서할 수 없었고, 딸이 살아 있을때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교에 빠져 마음을 평온을 찾고 그 남자를 용서했다고 생각해 면회를 간다.
그런데 그녀 앞에 나타난 범인은 그녀 자신보다도 더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역시 종교에 귀의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그에 그녀는 하나님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가족이 누군가로부터 살행당한 유가족.
그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없다.
그렇게 단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그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든 이겨내보려 했던 한 엄마의 이야기이다.

 

나카하라와 사요코 부부에겐 금지옥엽 마나미라는 딸과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의 딸이 집에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 당하고 만다.

범인은 전에도 살인을 저질러 무기수로 복역중이었으나 모범수로 판정 받아 가석방 상태에서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부부는 그가 당연히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과 또한 사형 판결이었다.

그로부터 11년 후 사요코가 살해당하고 나카하라는 11년 전 형사에게서 연락을 받게 된다.

나카하라는 이미 사요코와 이혼한지 5년이 흐른 상태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전부인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행보를 되짚으며 그녀 주변으로 얽힌 여러 사람들의 과거와 사건의 진질에 다가가게 된다.

 

아주 여러해 전 나는 한동안 히가시노게이고 추리 소설에 심취해 있던 때가 있었다.
아마 그 해에 읽은 책의 반 이상이 히가시노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요 근래에 책이 너무 쏟아져 나와 조금 식상함을 느끼며 띄엄 띄엄 읽다가 그마저도 읽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접한 공허한 십자가의 출간 소식.
사형제도가 소재라 하여 구미가 당겼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사회에 대한 냉소같은걸 자주 느꼈던 관계로 그는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히가시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 그는 독자에게 단순한 오락뿐 아니라 답이 정해지지 않은 메시지와 여운까지 전달한다.

 

그렇다. 히가시노게이고는 사형제도 존폐에 대해 답을 제시하진 않았다.

다만 독자들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수많은 의문과 근거들을 제시하였을 뿐.

 

사실 나는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인권이니 뭐니 하며, 혹은 오판의 가능성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유영철 같은 인간을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법에서 사형 판결을 받는 사람은 사실 유영철급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쓰레기들은 처리를 해야 맞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사요코 말대로 유족들, 그 유족들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물론 사형이 답은 아닐 수 있다, 범인을 사형 시킨다고 해서 유족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요코 말대로 그들을 단죄하는 건 그들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통과점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점을 생각하면 역시 우리나라 법은 물러 터졌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래도 일본은 우리보단 법이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 군 폭력 문제며, 묻지마 범죄며 끔찍한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그런데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또는 술에 취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었단 이유로 살인죄가 아니라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대체 법이란 것이 왜 있나 싶을 정도로 욕이...나왔었다.

그들을 전부 사형에 처해야한단 얘기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나라 법은 유영철급은 되어야 사형 판결이 난다.

그나마도 사형 집행은 되고 있지 않지만.

 

다만 법이 좀 더 제 역할을 다 하여, 단죄의 역할 보다 범죄의 예방을 해주길 바란다는 말이다.

 

역시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작품이다.

하여 잘 하지 않는, 게다가 히가시노게이고 작품을 읽고는 처음 해보는 밑줄긋기를 이렇게 잔뜩이나 하게 되었다.

 

 

 



p. 124 그리고 아마 사형 판결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한 여자를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 이 정도의 `가벼운 죄`로는 사형을 받지 않는다. 그것이 이 나라의 법이다.

p.189 종신형에서 범인은 살아 있다. 이 세살 어딘가에서 매일 밥을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어쩌면 취미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상상하는 것은 유족에게 죽을만큼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190 흔히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곳을 지났다고 해서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 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p.213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ㅡ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p.312 하지만 누구 한 사람 태어나는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p.312 내 생명이니까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생명은 당신 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이미 돌아가셨다고 해도 부모님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지요. 아니, 이제 내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슬플테니까요.

p.406 사람을 죽인 자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고,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p.440 형벌은 원래 모순 투성이지요.

p.441 인간이 완벽한 심판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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