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센다이에 살고 있는 공무원인 '나'는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는 주식에만 관심을 쏟는 무료한 삶을 사는 남자다.

'나'의 부인은 이런 남편에 질려 급기야 바람을 피우게 되고, '나'는 아내의 외도 사실에 충격을 먹지만 해결점을 찾는 대신 현실로 부터 도피해버린다.

그러다 배가 난파하여 어딘지 종잡을 수 없는 곳에 표류하게 되고 거기서 고양이 톰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톰이 사는 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자 나라인데, '철국'과의 전쟁에 지게 되고 하여 '철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본격적인 지배 및 관리를 위해 철국의 병사들이 마을에 도착하고, 칸토라는 국왕은 철국의 병사에게 피습 당하여 마을은 위기, 즉 '밤'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전설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투명해진 '쿠파의 병사'가 돌아와 마을을 지켜주길 바라게 되는데......

 

사실 다른 사람들의 서평들 속 평이 썩 좋지 않아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처럼 어려운 것인가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오듀본의 기도나 마왕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과 여운이 있었다.

 

우화이기에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평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배와 피지배, 권력과 횡포, 희생과 담합.

사회적으로는 인간들 서로간의 관심과 이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노력.

 

내게 읽힌 이 책의 주제는 이런 것들이었다.

어찌 보면 이사카코타로 작품 전반에 녹아드는 주제들도 이것들이고, 그 점이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소설이 인상깊었던 건 소설속에서 다양한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겹쳐 보였다는 것이다.

 

톰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과 철국과의 관계는 마치 과거 조선과 중국(명나라, 청나라)의 관계를 보는 듯 하여 몹시 부끄러웠고,

철국이 톰의 마을을 이용하는 방법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보는듯 해서 화가 나기도 했고,

칸토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마을을 이끌어 가는 방식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이어져 오는 우리나라 정치 권력자들과 너무도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이건 아마 일본, 아니 전 세계가 똑같은 모양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서술자인 고양이 톰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니 자주 귓가에 고양이 울음 소리나 갸르릉 거리는 들리는 듯도 하고,

소설 속 상황에 따라 고양이들 특유의 보송보송한 털과, 보드라운 발바닥, 하지만 그 안에 감춰둔 날카로운 발톱, 까끌까끌한 혓바닥 등을 이용하는(?) 장면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라 나는 사실 자꾸만 미소 지어질때가 있었다.

아아, 역시 나는 동물들에게 한없이 약하다^^;;

 

다 읽어버리면 너무 아까워서 꼭 한 두권쯤은 읽지 않고 아껴둔 책이 남아 있어야 안심이 되는 유일한 작가.

항상 너무나 읽고 싶은 마음과 그래서 더더욱 아까워서 읽지 못하는 마음 사이의 역설적 내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유일한 작가.

 

나에겐 그런 작가가 바로 이사카코타로다.

 

하여 오랜 인내와 기다림과 아껴둠 끝에 읽은 밤의 나라 쿠파는,

아주 아주 식상한 말로 가뭄끝에 단비, 그 자체였다.

 

 

 

 

p.102 인간이란 위기에 처하면 주위의 누군가와 의논을 하고 싶어 하는 생물이니까. `의논을 하는 편이 좋을까?` 하는 것조차 의논하고 싶어지는 거 같아.

p.169 우리는 그들을 사냥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못하다.
그것은 옳은 파악 방식일까.
쥐들이 고양이보다 못하다고 대체 누가 정했나.

p.218 누구든 자기보다 작은 존재에 관해서는 의식이 흐려지기 마련인지도 몰라. 누구나 자기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p.448 옛날에 칸토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지.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비결을 아느냐고.
`바깥에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적을 준비하는 거다.`라고 그렇게 말했어.
그래 놓고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라고.
`걱정 마라. 내가 너희를 그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겠다.`라고 말이야. 그러면 모두가 자신을 의지하고 반항하는 인간은 줄어든다. 칸토는 그렇게 말했어.

p.525 무슨 엉뚱한 소리야. 나왔으면 돌아가야 맞는 거지.

p.530 포기하고 생각을 그만둔 시점에서 영원히 못 만나게 되는 거겠지. 조금이라도 관계를 회복시킬 생각이 있다면 이쪽에서 다가설 필요도 있는 걸까. 서로의 기울어진 선은 쭉 잡아당기다 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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