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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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9 어차피 섹시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어 있다. (봄, 사자의 서) 』

『 p.60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해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핵심은 바로 아름다움이며 세상은 이제 아름다운 것만이 윤리적인 것이 되었다. (왕들의 무덤) 』

 

오래 기다리던 천명관 작가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굉장히 기뻤지만, 한편으론 단편집이라서 아쉽기도 했다.
(나는 소설은 은유보단 플롯이라 생각해 장편을 훨씬 선호한다. 게다가 천명관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인지라 확실히 단편보단 장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에.....)

하지만 천명관 스타일이 어디 가겠는가?

곡절 많은 주인공들의 한 많은 인생 이야기를 참으로 가볍기 그지없게 재치 넘치는 그만의 문체로 풀어낸다.
역시 천명관은 희비극 소설의 정수이다.

 

사실 그의 문장들은 상당히 남성적이고 거칠어서 여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스타일이다.
나 또한 그런 마초적인 문장들은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천명관 작가의 문장들은 싫지가 않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내용은 한없이 비극적인데, 그를 이야기하는 문체는 참으로 희극적이어서 슬프되 슬프지 않고, 거칠되 거칠지 않아 거부감이 생기지 않기 때문인듯하다. 거부감은 커녕 그 문체가 너무도 중독적이어서 읽고 또 읽게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단편이어서 그런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처음엔 이게 뭔가 싶다가 읽다보면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오다가 막판엔 깔깔 웃을 수 밖에 없는 천명관식 재기발랄 나열식 만연체를 많이 접할 수 없어 그점만큼은 아쉬웠다. 8편 중 김유정의 동백꽃에 대한 오마주인 "동백꽃"과 "우이동의 봄" 제일 그 스타일에 가까웠고, 그래서 8편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도 바로 이 두편이었다.

8편의 단편 과 주인공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1. 봄, 사자의 서 - 노숙자인 실직 가장
2. 동백꽃 - 외사랑의 덫에 빠진 섬 처녀
3. 왕들의 무덤 - 한물 간 유부녀 중년 작가
4. 파충류의 밤 -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5.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육체 노동자
6. 전원 교향곡 - 귀농에 실패한 이혼남
7. 핑크 - 대리 운전 기사
8. 우이동의 봄 - 가난한 70대 노인과 고졸의 손자


다들 힘겹게 하루 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우리네 하층민들이며 소시민들이다.

 

『 p.110 고기는 질기고 소주는 쓰지만, 인생은 그마저도 달달하게 느껴질 만큼 쓰디 쓰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
『 p.125 이 바닥에서 돈 내면 사장님이고 개털이면 개새끼였다. 그런거였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

 

해피엔딩이라곤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답답해지기도 하고 울컥 화도 난다. 내 이야기 같아서 한숨도 나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왠일인지 마지막 이야기인 '우이동의 봄'까지 읽고 나선 미소가 지어지며 마음은 따뜻해지고 나도 모르게 "좋다."라고 뱉어내게 된다.

 

 

봄으로 시작해서 결국 봄으로 끝나는 이야기.

하지만 첫 이야기의 봄과 마지막 이야기의 봄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 이야기인 봄은 죽음과 절망의 계절인데, 마지막 이야기에서의 봄은 희망의 의미로 전환된다.

8편의 이야기의 구성과 순서가 왜 이러해야만 했는지 마지막 이야기인 '우이동의봄'까지 읽고 나면 자연스레 수긍을 하게 된다.

 

즉, 작가는 결코 아름답지도 즐겁지도 않은, 오히려 처절하고 절박하기만 한 우리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선, 누구나 인생은 매한가지이니 억울해하거나 슬퍼하지말고 한번 잘 버티며 즐기며 살아가 보자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p.182 얘야, 잊지 마라. 사는 건 누구나 매한가지란다. 그러니 딱히 억울해할 일도 없고 유난 떨 일도 없단다. (우이동의 봄) 』

 

독자에게 책을 읽는 중엔 웃음을, 책을 읽고 난 후엔 큰 울림을 안기는 작가.
역시 천명관 작품은 좋다^^


덧) 한 인터뷰에서 보아하니 역시 "핑크"라는 소설은 작가가 장르로 써보자 작정하고 쓴 것이었다. 작가는 10년쯤 후에 문단에서는 은퇴를 하고 한국형 범죄소설을 쓰며 지내고 싶으시단다. 아무래도 문단안에 소속되어 있을 땐 제약이 많을테니...... 천명관의 범죄소설이라니 이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작가님 빨리 늙으시라 고사라도 지내고팠지만, 그럼 나도 같이 늙어간다는 슬픈 함정 ㅠㅠ


『 p.221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의 묘비명에 어떤 문구가 새겨지길 원하느냐"는 질문이었는데 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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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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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팬>

  수없이 밝혀 왔지만 나는 이사카코타로의 팬이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가? 1990년대 말이었던가? 한때(뭐 지금도 그러하긴 하지만) 일본 소설 열풍이 일던 때가 있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 대부분을 일본 소설이 차지하던 시절. 해서 나도 대체 얼마나 대단한건가...싶어 몇몇 작가의 소설을 몇권 읽어 보았는데 영 내 취향엔 맞지 않았었다. 첫인상이 그러했기에 선입견 비슷한게 생겨 그 후론 일본 소설엔 손이 가질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몇 년 후 이번엔 일본의 순수소설이 아닌 장르 소설들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고, 워낙 추리 수사물을 좋아하는지라 다시 일본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주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책을 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신치바'였다. 추리 같으면서도 아주 추리라 볼 수 없고, 단편들인데 아주 단편이라고도 볼 수 없는, 삽화만 보면 만화인가도 싶은 묘한 소설. 아주 재미있었고, 그래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사신 치바' 다음으로 읽은 책은 '골든 슬럼버'. 세상에나!!! 어쩌면 이렇게나 재미있는 소설이 다 있을까.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주옥 같았고, 앞에 깔렸던 모든 장면들이 합체가 되는 마지막 결말에선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고 다른 작품을 사서 읽고, 또 사서 읽고 하다보니 나는 어느새 이사카코타로의 팬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독서는 곧 휴식이며 오락이기에 '재밌는' 이야기가 좋고, 해서 나는 늘 소설만 읽는다.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스토리와 플롯과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이사카코타로는 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작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작가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한국어 밖엔 할 줄 모르는 까막눈인데 말이다. 때문에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도 모르는 책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수시로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에세이 번역 소식! 솔직히 생각도 못했었다. 일본에서만큼 한국에선 아주 대세인 작가는 아니기에.....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산문집 출간 소식에 실제로 방안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었다. 혼자 살기에 망정이지 누가 봤다면 분명 광년...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이사카코타로의 데뷔 10주년 기념 에세이집인 그것도 괜찮겠네(원제는 3652)를 읽게 된다.

 

<작가의 소설>

  에세이집에서 일단 제일 인상깊고 눈에 띄는 건 역시 자기 작품들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내가 에세이집을 간절히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여기 있었다.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혹은 어떤 계기로 그 작품들을 써내려 갔었을까....하는 것. 여기엔 치바(사신 치바)의 이야기도 있었고, 안도와 준야(마왕)의 이야기도 있었고, 나그네 비둘기(오듀본의 기도)의 이야기도 있었고, 보험조사관(칠드런)의 이야기 등 여러 작품들의 후일담이 존재한다. 이미 이 작품들을 다 읽고 그 작품들과 캐릭터들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흐뭇한 엄마 미소를 지으며 읽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재미있는 건 에세이집이 나올 걸 생각지 않고 에세이를 썼다가 나중에 한권으로 묶이는 과정에서 다시 작가가 후일담을 적어 놓았는데 그게 재미를 배가 시킨다. 참고로 나는 도라에몽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어쩌면 지금의 이사카코타로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인물일 테니까.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 보시라~ ㅋㅋ)

 

<작가의 가족>

  작품 이야기만큼 많이 등장하는 얘기는 당연히 가족이다. 특히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참 유쾌하신 분이다. 예를 들어서 카라멜콘과땅콩 봉지에 그려진 양보다 훨씬 적게 땅콩이 들어 있어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한다거나, 길을 가다 언제 개를 마주할 지 모르니 주머니에 늘 개사료를 넣어 다딘다거나, 개의 건강의 척도는 코라며 코가 말라 있는 개를 보면 침을 발라 준다거나. 아버지 이야기를 읽을때마다 이건 혹시 유머집인가 싶을 정도로 웃겼다. 모두 전혀 꾸며내지 않은 실화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 작가의 소설 속 유쾌한 인물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가족은 작가의 아내이다. 이 산문집의 제목인 '그것도 괜찮겠네' 는 작가에게 아내가 해준 말이다. 작가가 오듀본의 기도라는 데뷔작을 책으로 냈을 때만 해도 그는 원래 전업 작가가 아니라 회사원이었다. 그것도 꽤 괜찮은 회사의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고 알고 있다. 인세로만 먹고 살기 힘드니 적어도 3년은 지켜봐야한다고 편집자도 권했다 한다. 그런데 어느날 퇴근 길에 글만 쓰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고 아내의 반응이 어떨까 걱정했다 한다. 안된다고...말한다거나, 혹은 내가 더 열심히 벌게...라고 하면 그냥 계속 회사를 다니려했다 한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소쿨한 한 마디 "그것도 괜찮겠네"였다고 한다. 그래서 부담없이 회사를 그만두고(회사 사장님 반응 또한 쏘 쿨~ㅋ)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한다. 작가의 작품들 속 캐릭터들의 쏘 쿨함은 아마 아내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일상>

  산문집을 읽으며 제일 반가웠던 점은 작가도 나처럼 방구석 귀신이라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박혀 지내는게 제일 좋다는 작가. 나도 이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나의 집인지라, 엄청난 동질감을 느끼며 반갑기 그지 없었다. 작가는 주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한다. 아참! 아이가 어렸을 적엔 육아도 담당했었고(아내는 직장 생활을 했기에). 그렇게 늘 똑같이 재미없는 일상을 하다보니 에세이로는 쓸 이야기가 없어 에세이 청탁을 받을 때마다 굉장히 어려웠다 한다. 해서 이렇게 책 한권으로 에세이들이 묶여 나오다니 감개무량하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의 이야기는 심심한 관계로 상상하여 쓰는 소설이 자신에게 더 맞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똑같이 심심한 일상을 사는 나에겐 어찌하여 소설을 쓰는 능력을 주시지 않는 건가.... 잠시 신께 투정도 해보았지만, 멋진 작가들이 써주는 재밌는 이야기들을 읽는 일상에 만족하기로 했다.

 

<작가의 집념>

  산문집 속에서 또 인상깊었던 것은 12지에 관한 에세이였다. 같은 신문사에서 매년 그 해 띠에 관한 에세이 청탁을 해오는 모양이던데 늘 쓸 거리가 없다는 얘기가 태반이다. 그래서 그 에세이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 사뭇 진지하고 힘겹기만 한데, 그 진지함에 웃음이 나고 만다. 원숭이....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이야기에서는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ㅋㅋㅋㅋ 그렇게 매년 힘들게 한편 한편 에세이를 썼음에도 작가는 꼭 12지를 다 채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 에세이집이 일본에서 나오던 시점을 기준으로 5개의 동물이 남았다 했으니 내년쯤이면 12지를 모두 채우는 것일텐데, 과연 결과가 어찌될지 상당히 궁금하다.

 

<작가의 취향>

  이 산문집 속에는 작가가 추천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과, 영화, 음악이 나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설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접할 수가 없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시마다소지' 같은 작가의 작품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꼭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작가처럼 음악을 반찬 삼아 맨밥을 먹는 데 도전도 해 볼 참이다. 어떤 음악이 반찬으로 제일 맛있을까?

 

<다시 작가의 팬>

  소설만 줄창 읽어대는 편독가가 읽은 몇 안되는 산문집. 물론 재밌었다. 원작은 존대어가 아닌 모양이던데, 번역본은 존대어여서 그런지 굉장히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졌고,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스노우캣은 그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던 작가의 사생활(?)을 조금이나마 공개적으로 훔쳐볼 수 있었고, 작가의 혈액형(B형이라 한다. 의외였다 나는 A형이나 O형일거라 짐작했건만....)이나 취향등을 파악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책이었다. 왠지 작가와 한결 친해진 것만 같은 착각도 들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일본어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들을 이제 원서로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아마 국내에 번역될 가능성 제로인 가이드 북을 꼭 읽어 보고 싶어서 말이다.

 

<팬이 작가에게>

  『 p.73 작품의 의미라든가 의의, 반전이나 트릭, 시험에 나올 '작가가 하고픈 말'과는 상관없이 재밌게 읽으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멋진 음악은 멋지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와우, 이거 좋은데'하면서 웃음 짓고 싶어서, 저를 채근하는 외침이 듣고 싶어서 책을 사러 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도 크게 소리치고 싶습니다.(하지만 머릿속에서 진작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의 외침은 별로 멋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압니다.) 』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는 나의 독서관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작가의 책속에서 자주 느끼기에 나는 작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미 당신의 외침은 충분히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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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생활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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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말이 다가오며 축축 처지는 나를 위해 힐링과 유쾌함이 필요한 시기.

해서 아껴두었던 이제 몇 편 남지 않은 이사카코타로 책을 폈다.

(예정된 신간 출간 소식이 속속 들리는지라 그만 아껴 읽어도 되겠다 싶어서.)

 

이 책의 역자인 오유리씨는 역자 후기에서 자신을 이사카 빠(!)라고 지칭했던데, 나 역시 오유리씨 못지 않은 이사카 빠(!)이다.

이사카코타로가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여타 다른 이사카 빠들이 그렇듯 나 역시 개성 강한 인물, 치밀한 복선과 플롯, 쿨내나는 대사, 유쾌한 사건 전개, 따뜻한 결말, 여운있는 메시지 등이라 식상하게 말하겠다.

식상해도 그게 사실이니까.

 

 

2011년 일본에서 대지진이 났을때, 굉장한 피해를 입었던 곳 중 하나가 센다이시였다.

이사카코타로는 센다이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 대부분의 배경이 또한 센다이이다.

때문에 그 큰 재해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았고(물론 작가가 직접 겪기도), 작가라는 직업이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졌다 한다.

그러다 문득 그럼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재미있는" 글을 써보자, 그게 작가의 본분이 아닐까 깨달았다 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가솔린 생활"이다.

 

 

모치즈키가의 장남인 요시오와 차남인 도루는 쇼핑하고 돌아오는 길에 센다이의 유명인사인 여배우 아라키미도리를 우연히 차에 태우게된다. 그런데 다음날 그 아라키미도리가 터널사고로(영국 다이애나 비 사고와 매우 흡사한 사건) 죽고 만다. 사고 전날 아라키미도리를 태웠다는 이유로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사카코타로 소설 속 여느 주인공들처럼 오지랖을 200% 발휘하는 주인공(이 소설에선 초등학생인 도루) 덕에 사건은 점점 복잡해져만간다.

 

 

 

 

 

  이사카코타로의 소설 속 인물들은 워낙 개성이 강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없는데(그렇다고 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영웅도 아니다.) 이 소설의 경우는 서술자가 다름아닌 초록색 경차로, 마쯔다사에서 나온 데미오라는 차종이다.(여기에도 얽힌 사연이 있는데, 처음에 편집자가 후에 혹시 자동차 회사에서 책을 읽고 차 한대 내어 줄지 모르니 비싼 외제차로 하자는 걸 이사카코타로는 초등학생까지 술술 재미있게 읽으려면 친근한 국산차가 좋을것이라며 데미오를 골랐다한다.) 이는 얼마전에 출간된 "밤의나라쿠파"의 서술자였던 "톰"과 비슷하지만, 톰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의 대화나 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던 반면 데미오는 무생물이기에 상당한 제약을 갖고 있다. 즉, 이 소설은 오로지 차들끼리의 대화와(배기가스가 닿는 범위내에선 모든 차들은 그들끼리 대화가 가능하다.) 차안에서 주고받는 사람들의 대화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때문에 한창 사건이 전개되나......싶을때 종종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버려 데미오 못지 않게 독자들은 궁금증에 휩싸이게 되고, 안달이 나게 된다. 상당한 두께임에도 책장이 빠른 속도로 넘어가게 되는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역시 인물들 얘기를 안할 수 없겠다. 여타 이사카코타로 소설들이 다 그렇듯 모든 인물들이 개성이 강해 누구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없지만, 내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물은 역시 '도루'였다. 초등학생 답지 않은 방대한 상식을 자랑하며 어린애다운 귀염성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그래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본인 스스로 당당하게 밝히는, 데미오와 함께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며 사건의 탐정 역할을 하는 도루. 전혀 귀염성이 없는 면이 참으로 귀여웠다고 하면 모순이려나? ^^; 그외, 이름처럼 착한 사람 요시오, 쿨내가 심한 나머지 위기 상황에서도 유머를 던지는 이쿠코, 모치즈키가의 옆집에 사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인 호소미, 호소미의 오래된 자가용 자파(개인적으론 자파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참 수다스러운것이...ㅋㅋ;) 다들 말도 안되게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아기자기한 조화를 이루어가며 사건 또한 흥미진진해진다.

 

 

 

  이사카코타로의 스타일은 참 시덥잖아 보이는 사소한 떡밥(작은 소품 하나, 그냥 스치듯 던져놓는 대사 하나 등)을 잔뜩 뿌려놓은 후에 막판에 한방에 모든 것을 거둬들이는 식이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런 떡밥은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고, 또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떡밥이 조금은 노골적인(?) 경향도 있었기에 이사카코타로의 작품들에 이미 익숙해저버린 독자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건 전개와 반전을 중간쯤에 접어들면 금새 눈치채게 될지도 모른다.(맞다. 내가 그랬다;;) 때문에 약간은 밍밍함 같은 것도 느껴져 아쉬움도 있었는데, 그런 아쉬움의 반쯤을 훅 날려버린 것은 깜찍하기 짝이 없는 에필로그였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나의 안면 근육이 살짝 아팠으면 좋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책을 읽으면서 때때로 미소가 지어지며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안면 근육이 살짝 당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곤 한다. "좋다." 나는 이런 소설이 좋다. 그래서 이사카코타로가 좋다^^

 

 

 

덧 또는 팁) 독서할 때 음악을 들으며 독서하는 스타일이라면, 프랭크자파의 음악을 BGM 삼아 독서하면 좋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가 누군지 궁금해지며 그의 음악이 듣고 싶어질테니까.

 

 

 

 

 

 

 

p.24 호소미씨는 아침 조례 시간에 자주 아이들에게 말하는 모양이야. `잘 들어라. 인간들이 하는 짓 중 구십구 퍼센트는 실패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망설이거나 창피해할 필요는 없다. 실패하는 게 보통이니까 밀이다.`라고 말이야.

p.64 인간은 혹시나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뭐든 보유하려고 하지. 그러니 쓸데없는 것들이 죽을 때까지 쌓여 있단 말이야.

p.290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고 덩치가 작다고 해서 아이가 어른보다 어리석다고는 볼 수 없다. 때 묻지 않은 직감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어른들은 깜빡하는 거다."라고 프랭크 자파가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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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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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오래된 책에는 내용뿐 아니라 책 자체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래도 누구나 추억이 깃든 책 한권쯤은 있을 것이다.

 

애틋한 첫사랑과 관련이 있거나, 부모님에게서 받은 물려 받았다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한 책이었다거나......

이는 모두 책에 얽힌 사연이들이지만 결국 또한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일 터이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란 책은 이렇게 책에 관한 신비롭고 애틋하고, 때론 슬프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 인연에 관한 따스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나'는 책을 너무도 읽고 싶어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 어떠한 사건의 트라우마로 책을 읽지 못하는 희귀병(?)이 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외할머니댁에서 회사일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 손에서 자란다. 그런데 할머니가 1년 전에 돌아가시게 되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유품인 책들을 정리하다 나쓰메소세키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마음'이란 책을 발견하고 '나'는 자신의 고등학교 모교 근처에 있던 '비블리아 고서당'이란 곳에 방문하여 그 곳의 사장인 안경 미녀 '시오리코'를 만나 감정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할머니의 놀라운 과거 추억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시오리코'를 대신하여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여러 책에 관한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총 4편의 책과 그 책에 관한 사연이 등장하는데 간략하게 요약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쓰메 소세키 『소세키 전집 신서판』(이와나미쇼텐)>, 돈가스덮밥집을 운영했던 보살님을 닮은 '나'의 할머니의 충격적이지만 애틋하고 슬픈 사연.

<고야마 기요시 『이삭줍기 성 안데르센』(신초문고)>, 책 한권이 만들어낸 어느 노숙자와 여고생의 따뜻한 인연의 사연.

<비노그라도프, 쿠즈민 『논리학 입문』(아오키문고)>,고서당에 아끼는 책을 팔려는 남편과 이를 말리는 아내의 아름다운 사연.

<다자이 오사무 『만년』(마나고야쇼보)>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비블리아 고서당의 점장 시오리코와 '나'의 여운있는 사연.

 

 

 

『 p.237 자신을 가지고 살아가자.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 죄인이니. 』

 

 

이런 사연들이 각각의 책 속 내용과 적게 또는 많게 관련을 맺으며 미스테리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여타 추리 소설들과는 다르게 자극적인 사건도 악인도 없다. 한결같이 평범하고,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따스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때문에 책을 읽는 중에 때때로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를 짓게 되는 책이었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는 책 자체를 몹시 사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또한 책에 대한 '로망(환상이라 해도 좋겠다.)'이 대단한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책에 대한 로망의 집약체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는 작중 인물의 대사를 통해 직접 드러나기도 한다.

 

 

p.159 그 이야기는 작가의 꿈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니 작가도 꿈이라는 걸 알고 썼더라고요. 그게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나도 모르게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이 얼마나 솔직하지만 그래서 깜찍한 이야기인가, 나또한 이런 이야기가 좋다.

 

 

나역시 책을 무척 좋아한다. 읽는 것도 그저 보는 것도.

그런데 책이 주는 또다른 즐거움을 이 책을 통해 찾았다.

바로 책 자체가 갖는 사연을 듣는 재미.

 

역시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들 중 가장 아름다운 물건이다.

 

오늘은 잠들기 전에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쓰다듬으며 한마디 건네야겠다.

 

"내게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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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리하라이치라는 작가를, 그의 서술 트릭을 찬양하는 걸 보았다.
처음 알게 된 작가였고, 제대로 된 서술 트릭도 접해보지 못했던 터라 굉장히 궁금했었다.
게다가 배경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공동 주택이라기에 더욱 끌렸다.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 한편의 장편에 가까운 소설이다.
어떻게든 거의 모든 단편들이 적게 또는 많게 전부 연결이 되어 있다.(나는 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구성의 단편집은 매력있다.)

줄거리는 표지나 출판사 제공 정보에도 나오듯 공동주택에서 현대인들이 겪게 되는 여러가지 문제들.
층간소음, 살인, 시체유기, 스토커, 고독사, 치매, 보이스피싱, 연금부정수령등.

사회파...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참 잘 쓰여진 "세태소설"로 보였다.
형식은 물론 추리 소설이지만 공동주택 주민들의 굉장히 현실적인 묘사(특히 노인 문제)가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 행태들을 작가는 참 잘도 미스터리라는 형식에, 화려한 서술 트릭으로 녹여냈다.

트릭을 맞춰 보겠다고 정말 집중해서 읽고 아 이번 트릭은 이거구나! 맞춰 보기도 했는데 그 희열감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또다른 트릭과 반전으로 뒤통수를 후려 갈겨 주신다.
서술 트릭이라는게 오로지 글로 독자들을 속이고 희롱하는 거라고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어디에도 거짓으로 독자를 속이는 부분은 없다.
충분한 힌트를 주어 독자들이 추리 할 수 있게 해 결코 불친절하진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희롱당하고 뒤통수를 얻어 맞고 말았다.
그러나 굉장히 즐거운 희롱과 뒤통수 가격있다.
아아, 이래서 이 작가가 서술 트릭의 대가로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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