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무지개
최인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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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불안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미래 사회를 그린 소설이나 영화들을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니 안타깝게도 그 작품들 속 미래 사회는 매우 암울하기만 하다. 세계는 거듭 발전을 해왔고, 앞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해 갈 것임에 틀림없음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머나먼 미래에는 왜 '희망'이란 것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바로 이 소설에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설 속 사회의 가장 큰 축은 'SS 울트라'라는 대기업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아마 그 기업을 떠올렸겠지. SS를 비롯한 몇개의 대기업은 에너지 돔이란 거대한 집합 거주지구를 구축하여 모든 생활을 그 안에서 영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모든 것을 책임진다. 하지만, 그 거대한 괴물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인공의 거대한 자본 속에 인간들을 가두고 주인공들은 소비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소비되고 만다. (그들에게 허용된 삶의 방식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그들 자신도, 삶도 부정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삶이 없는 삶, 이를테면 캄캄한 삶, 삶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삶을 버려야만, 그들 스스로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비로소 아슬아슬 생존이라는 밧줄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이런 사회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네명의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다. ss울트라마켓 계산원인 지연(지니), 서울클라우드 익스프레스에서 비정규직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재선(제임스), 재선의 보조로 그날 하루만 하산까지 화물을 배달해야하는 의문의 여인 혹은 사내 안영희(멜라니), 간호사 아이리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하지만 소비되고 소비되는 생존이란 공통점을 지닌 이 네 인물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들의 복잡하고 아픈 관계들이 드러난다. 이런 점은 살짝 추리소설적 요소가 드러나기도 하여 가독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찌하여 미래를 이야기하는 여타 소설이나 영화들은 미래를 전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그려놓는가? 답은 간단다하. 미래를 예측하는 척도는 과거, 그리고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매우 씁쓸하게도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이 시점이 너무도 암울하기에 이런 시점에서 예측해보는 미래 역시 한없이 암울하기만 한 것이다.

 

  이 책의 띠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괴물같은 세계, 2105년의 대한민국. 생생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다." 이 문구 중 괴물같은 세계, 생생한 디스토피아를 그린다는 확실한 사실이지만 '2105년의 대한민국'이란 문구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2105년, 지금으로부터 90년후의 대한민국이라니! 작가는 실로 엄청난 뻥쟁이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절실히, 그리고 매우 씁쓸하고도 아프게 깨달았으리라,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얘기하고 있단 것을.

 

 이육사 시인은 절정이란 시 말미에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노래했다. 최인석 작가 또한 이 소설의 제목을 여기서 따왔다. 책의 제목은 책의 주제와 직결된다. 책 속 미래(...라고 쓰고 현재라고 읽어야 하리라.)는 춥디 추운 '겨울'이고 '강철'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비참함 속에서 무지개(희망 혹은 바꿔나가려는 의지)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아마 2105년까지 살긴 힘들 것이다. 때문에 실제로 이 소설속과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시절의 후손들이 이 책을 읽고 비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유토피아의 그때 이 소설은 그저 '허구'로만 남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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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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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어쩌면 생일이란 게 좀 위험한 건지도 모르지요. 크리스마스처럼 말입니다. 미국 어디를 가나 나무에는 장식이 걸려 있고, 문에는 화환이 걸려 있고, 증기 파이프에는 목을 맨 시체들이 걸려 있고.

 

나는 일년 중 두번쯤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 온다. 연말연시에 한번, 그리고 생일에 한번. 매년 찾아오는 숫자 바꿈일 뿐인 그 날들이 다가오면 새삼 왜 사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의 원초적인 질문들이 나를 압박하곤 한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답찾기를 유예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로 그 압박과 우울을 몰아내곤 한다. 아니 정확히는 은폐하곤 한다.

 

 

여기 자신의 생일날 시속 130킬로미터로 달리는 급행 열차에 몸을 던지려하는 백인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낸 흑인 목사가 있다. '흑'은 '백'을 구해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좁은 방 한칸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 앉아 '흑'과 '백'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 '삶의 의미', '신의 존재'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토론한다. '흑'은 어떻게든 '백'이 살아갈 의지를 갖게 하려 애를 쓴다. 하지만 '백'은 쉽게 설득 당하지 않는다.

 

 

'백'의 직업은 교수이다. 즉, 온갖 지식을 습득한 지성인이다. 그는 짧지 않은 인생 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터득한 지식의 끝에 결국 이세상 그 무엇도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여, 그런 삶을 '끝'내려 선셋리미티드에 몸을 던진 것이다. '백'의 이야길 들어보자.

 

p.53

백 : 행복이라고요?

흑 : 그래, 행복한 게 뭐가 문제요?

백 : 인간의 조건과 정반대니까요.

 

p.108

백 : 더 어두운 그림이 늘 정확한 그림이지요. 세계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유혈과 탐욕과 어리석음의 대하소설을 읽는 겁니다. 그 의미는 아주 분명하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거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해요.

 

 

p.132

백 : 나는 내 정신 상태가 어떤 염세적 세계관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게 세계 자체라고 생각해요. 진화의 결과, 지능을 가진 생명은 어쩔 수 없이 궁극적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무용성입니다.

 

 

 

'흑'의 직업은 교도소 목사이다. 그 또한 과거에 끔찍한 사건을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고, 또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갱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흑'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p.55

흑 : 중요한 건, 교수선생,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자신이 진짜로 행복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거 아니겠소? 뭐에 비교할 건데?

 

p.114

흑 : 하고 싶은 말은 변하지 않지. 하고 싶은 말은 늘 똑같아. 전에도 했던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늘 다시 말할 방법을 찾게 될 얘기지.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p.128

흑 : 어디 이렇게 한번 얘기해봅시다. 나는 세상이 선생이 허락하는 만큼만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 선생이 사는 세상이 어둡다 해도, 그게 복음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 놀라운 건 아니야.

 

p. 129

흑 : 그럼, 믿지, 교수 선생. 믿고말고. 나는 구하기만 하면 그게 나타난다고 생각해.

 

 

당신은 누구의 논리가 더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책을 읽어가며 누구의 답이 정답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결국 누구 한 사람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끊임없는 설전에 어떤 때는 '흑의 말에, 어떤 때는 '백'의 말에​ 깊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이 점이니까. 좁은 방안에서 오로지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이토록 긴장감 넘칠 수 있다니! 그렇다고 시종일관 깊고 무거운 이야기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무거운 대화들 속에는 잊을만하면 익살과 해학이 끼어든다. 마치 비극 속의 희극, 희극 속의 비극의 연속인 우리 삶처럼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흑'과 '백'의 은유적인 인물 구도이다. 작품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으나 그들의 대화를 미루어 봤을 때 '흑'과 '백'의 인생사는 어쩌면 '흑'이 '백' 보다 훨씬 굴곡 많고 어둠 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매카시는 '백'에게 '어둠'을, '흑'에게 '빛'을 부여하였다. 이 거장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고, 어쩌면 이 속에서 독자인 우리는 답을 찾게되는지도 모른다. '흑'과 '백'은, '빛'과 '어둠'은, '희망'과 '절망'은, 그리고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것을.

 

나는 사실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들을 (그러니까 인문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 같은) 잘 못 읽는 편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당했다!'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 '소설(이 작품은 희곡에 가깝지만)'을 읽으려 펼친 책인데, 이건 철학 서적이 아닌가! 그런데 책을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 장까지 나를 잡고 놔주질 않다니, 이런 또 한번 당하고 말았다. 아아, 이래서 이 작가가 살아있는 전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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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틀 스타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
배명훈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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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가마틀은 저녁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멍하니 바다 위로 떨어지는 해를 마음에 옮겨 담고 있었습니다. 하늘 폴더에서 마음 폴더로. 아날로그 지구의 하늘로부터 디지털 자아의 마음속으로.

 

 

나에게 물었다.

오늘 하룻동안 하늘을 본 적이 있던가?

대답은 NO.

 

무에 그리 여유가 없어 하늘 한번 바라보지 못했을까?

그 황홀한 푸르름을 마음에 담아 보는 여유조차 없었을까?

과연 여유가 없었던걸까?

 

아니, 아니다.

단지 '마음'이 없었던 거다.

 

나란 '사람'에게 없는 그 '마음'이란 것을 가마틀이라는 '로봇'은 가지고 있었다.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누가 로봇이고 누가 사람이란 말인가?

 

 

가마틀은 강력한 전투용 로봇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전장에 나갔을 때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휘할 그 순간이 왔음에 기뻐한다. 하지만 어떠한 문제로 인하여 전장을 일탈하게 되고, 하여 그는 쫓기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전투 로봇으로서의 운명은 다른 어떤 것으로 점점 바뀌어 간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푸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란 것을 갖게 된다.

 

p.97

"미래가 안 보일 정도로 비참한가요?"

"설마! 그런 건 아니래도. 하지만 음. 이렇게 정리해두자. 네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네 스스로 다시 정하게 될 거야. 그런 방식으로 달라질 거야."

 

 

혹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것을 탓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 아주 수도 없이 많다.

 

그 '운명'이란 것을 끝내 감내하겠다며 용기를 내어 본 적은 있는가?

아니, 그저 한탄만 하다 말았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가마틀'과 나(또는 당신)과의 중대한 차이이다.

 

우리는 가마틀에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운명'을 감내하며 '삶'을 즐기는 지혜를.

 

하여 기계나 로봇이 아닌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p.103 가마틀이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을 상상해봅니다. 운명이 세상 밖으로 스르르 새어나가게 만들고, 그렇게 펼쳐진 새로운 운명이 다시 자아를 죄어오는 일을 덤덤하게 하나하나 받아들여가는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인간이 만든 '로봇' 주제에 '인간'들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던 가마틀.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도 한번쯤 납치해 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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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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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과 재욱과 재훈 삼남매는 여름 휴가를 다녀오던 길에 어떤 칼국숫집에 들르고 난 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초능력이 생긴다. 그 초능력들이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니고, 재인은 다이아몬드처럼 강한 손톱이 자라고, 재욱은 눈에 빨간 점들이 나타나 위험을 감지할 수 있게 되고, 재훈은 엘리베이터를 제어할 수 있다. 삼매는 휴가에서 돌아와 재인은 대전에 재욱은 아랍의 한 사막에, 재훈은 미국 조지아의 염소 농장으로 떠나게 되고, 각자의 장소에서 의문의 택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초능력으로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흔히 이 시대에는 영웅이 없다고 한다. 광개토 대왕, 이순신 장군, 안중근 열사....같은 그런 난세의 영웅들 말이다. 하지만 우린 뉴스에서 혹은 우리 주변에서 아주 쉽게 앞서 말한 난세의 영웅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이름 모를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 열찻길에 발이 낀 아이를 구한 대학생,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어 친구를 구한 고등학생, 추운 날 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인에게 붕어빵을 건네는 아가씨 등. 이 소설은 바로 이런 다정하고 따뜻한 영웅들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주변을 조금만 둘러 보며 살아간다면, 아주 조그마한 친절함만 베풀 줄 안다면 우리는 누구나 재인, 재욱, 재훈과 같은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자신 또한 구원 받을 수 있다.

 

두세시간이면 완독할 수 있는 짧은 소설 한편이었다. 하지만 그 여운은 아주 긴 아주 예쁘고 다정하고 따뜻한 소설이었다.

 

덧) 책을 읽으며, 혹은 책을 읽고 난 후 이 작품의 북사운드트랙을 듣는다면 그 여운과 감동은 몇배가 될 것이다.

재인, 재욱, 재훈 Book sound track 'If you rescue me'

 

https://soundcloud.com/novella-3/if-you-rescu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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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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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63 어제는

 

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예스터데이) 』

 

 

 

 

대학에 갓 입학했을즈음 20대에 들어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한 권 있었다.

 

양귀자의 "모순"

 

그동안 학교나 교과서 속에서 배워오던 세상과는 사뭇 달랐던 소설 속 현실이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충격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인간이란 논리와 이성과 윤리가 아닌 어쩌면 다들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은 데서 온 그 무엇이었다. 아마 '어른'이라는 세속적인 존재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양귀자의 '모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그때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 속을 관통하고 있는 삶의 '모순'들.

 

특히 남자와 여자, 같은 종족이지만 가깝고도 먼 그 존재들이 겪는 사랑이란 이름의 모순들.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그 내연남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남자.

 

소꿉친구로 같이 자라며 연인이 된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친구와 데이트를 해보라는 남자.

 

평생 독신으로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게 유부녀나 애인 있는 여자와만 즐기지만, 결국 스스로 금기를 깨고 사랑이란 덫에 걸려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남자.

 

아내와 직장 동료의 정사를 목격하나, 화 한번 내지 않고 전혀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떠나는 남자.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모두 이런 남자들과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얼핏 말도 안되고,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 '모순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그 모순들을 접하며 놀라지도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새 '어른'에서 '나이듦'으로 나아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09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예스터데이) 』

 

 

 

 

하지만 책 속 구절처럼 이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굴레일테니, 억울해하지 않기로 하자.

 

 

 

 

 

 

세월이 흐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이를 반복하고.

 

그럼 연습이 되고, 습관이 되고, 면역력이 생겨,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51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드라이브 마이 카) 』

 

 

『 p.166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 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독립기관) 』


『 p.169 생각건대 그 여자가 (아마도)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의미는 얼마간 다르겠지만, 도카이 의사 또한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의지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작용이었다. 제 삼자가 나중에야 뭘 좀 아는 척 왈가왈부하며 자못 슬프게 고개를 내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독립기관) 』

 

 

『 p.214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셰에라자드) 』

 

 

그렇지 않을 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상처 받고,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한다.

 

이런 것들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며,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일 테니까.

 

 

『 p.265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기노)』

 

 

 

 

모순, 상실, 상처, 공허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던 단어들이었다.

 

표지에서의 얼음달처럼 한없이 차갑기만 단어들.

 

그런데 또한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치유(힐링)라는 단어 또한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나만 잃어버리고, 상처 받고, 아픈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마 이런 점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 p.327 어느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여자 없는 남자들) 』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 한 편으로 첫인상이 굉장히 거칠고 낯설고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작가였다.

 

그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하루키 열풍이 인다 해도 그의 작품은 나에게 철저하게 관심밖에 있었다.

 

 

그러다 이제 그 견고했던 선입견을 어쩌면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오히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오마주는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잠자가 사랑할 수 있어서, 그래서 그로인해 또 상처 받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그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주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

 

 

 

『 p.308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사랑하는 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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