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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타락 - 창세기 1-3장의 신학적 주석 디트리히 본회퍼 대표작 5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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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본회퍼를 처음 접한 것은 일전에 도서관에서 그의 <창조와 타락>을 빌려보고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판됐던 창조와 타락이었는데 본회퍼가 서두애서 창조에 관해 말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성경이 처음에 이 태초를 말함으로 독자를 화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는 것이다. 거센 물결이 인간을 덮치듯이 말이다. 


그 때 다 읽지 못한 <창조와 타락>을 복있는 사람 출판사의 역간을 통해 다시 접해본다. 둘 다 양장이지만 이번에 출판된 것이 더 아담하고 디자인도 세련됐다. 


창조와 타락이라는 주제는 늘 나를 사로잡는다.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성경에 대해 말해준다고 할 때도 나는 늘 창세기 1장에서 4장을 반복했던 것 같고 그 안에서 헤맸다.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고 또 혹자에게는 다 아는 이야기일텐데, 막상 창조와 타락의 심층에 접근하면 스스로의 무지를 토로할 수 밖에 없다. 쉬운 이야기같지만 실은 어렵다. 


본회퍼의 책을 일별하면서 이전부터 스스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점검해볼 수 있었다. 그의 생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의 사색과 통찰에 감복한다.


선악, 토브와 라, 즐거운 것과 괴로운 것. 본회퍼는 선악의 개념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볼 것을 말해준다. 다만 악의 기원문제나 이유 등에 대한 사고를 지양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대목에서 본회퍼가 좋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같지만 한편에선 독자의 상상이나 이해를 제한한다는 느낌도 든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분열된 세계 속에 산다는 것, 인간 존재의 분열이나 불화를 내포한다는 그의 해석이 좋다. 범죄함으로 인간은 분열된 세계에서 독존하며 그 이후의 인간 행위란 것이 결국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인데 그것은 괴로움을 동반한다. 인간이 즐거움을 추구하고 생명을 추구하는 행위도 결국 이런 분열 극복의 결과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형적이고 불완전하다. 


부끄러움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분열, 세계 일반의 분열, 인간 자신의 분열을 알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타자를 더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타자를 병적으로 갈망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127쪽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하나님 및 하나님처럼sicut deus 된 인간과 격돌한다.........

sicut deus는 선과 악의 분열에 기대어 살아가는 창조주 인간을 가리킨다. 146쪽
이처럼 토브와 라로 분열된 상태는 아담과 하와의 관계 속에서 맨 먼저 나타난다. ..........그는 타자를 더는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에게 맞서는 존재로 대한다. 159-160쪽

아담과 그의 타락을 줄곧 예수라는 제2아담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본회퍼에게 창세기 1-3장은 창조론이면서 기독론이다. 


어떤 논의는 더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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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둘기
권정생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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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시 곁에 색종이로 오려넣은 다정한 삽화, 이번 동시집은 작가가 손수 꾸려만든 원본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여 더 뜻깊다. 시집을 펼쳐 읽노라니 시인의 그리움이 한마리 산비둘기처럼 날갯짓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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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바울 - 바울의 역사와 유산에 관한 소고
존 M. G. 바클레이 지음, 김도현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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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매할 때 바클레이가 그 유명한 윌리엄 바클레이인 줄 알고 구매했다. 다시 보니 존 바클레이다. 


일전에 톰 라이트의 <바울 논쟁>이라는 얇은 책을 읽고는 '바울에 대한 새 관점'에 관심을 가졌다. 이 책 또한 후반부에 바울에 대한 여러가지 논쟁들을 소개하며 샌더스나 톰라이트 등을 소략하게 언급한다.  


전체적으로 바울이라는 사람과 그의 사상에 대해 개관할 수 있게 돕는 입문용 책이다. 1부에선 바울에 관한 역사적 소개로 구성되어 있다.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중후반기를 거치며 바울이라는 인물이 여타의 '위명서'와 함께 어떻게 인식되고 형상화됐는지 또한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어 좋다. 예컨대, <바울과 테클라 행전>이랄지 <바울의 순교> 같은 문서들. 2부에서는 바울이 남긴 유산에 대해 말한다. 


유대인이면서도 비유대인의 사도로 불리운 사나이. 바울이라는 인물을 정위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출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편지들에서 보이는 체계화되지 않은 사상들 또한 바울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한국기독교가 루터나 칼빈의 사상에 근간을 두었다면, 그들이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바울을 읽고 이해했는지 고민해야할 것이다. 나아가 이신칭의나 예정론을 단순히 암기하듯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울읽기로 재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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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80
박시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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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슬픔, 망각, 망실, 밤, 겨울, 검은색, 눈, 추위.


박시하의 시집에는 이런 주제와 시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은 꽤나 담담해서 읽는 이들의 감정을 혼란하게 한다. 그것은 소리치고 찢어지고 피흘리거나 괴로워야하는데, 박시하의 그것은 무척 무덤덤하기에. 


슬픔은 느끼는 것만 아니라 어떤 사물처럼 가지고 다닌다.그것은 감각을 너머 소유되기도 한다. 시적 화자 자신의 감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객관화하는 되는 과정일까. 하지만 슬픔은 단순히 감정이나 어떤 모호한 사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당신)이나 저편을 열고 잇는 매개로 등장한다. 박시하의 슬픔은 단조롭되 단순하지 않다. 다양하게 말 건넨다. 슬픔은 또 다른 가능성일까. 아님 가능성의 조건일까.



밤의 공원에서




캄캄한 밤의 공원에서

유서를 썼다


기분이 좋았다

맹꽁이가 커다랗게 울고 있었다

두 남자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셔틀콕이 어둠 속을


밤의 흰 새처럼

잊어버린 새의 이름처럼 날아갔다


아이들이 텅 빈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편지를 보낸

나 없는 세계에서 왔다

나는 유서를 밤의 공원에

벤치 아래의 어둠 속에 묻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딘가로 떠났고

이 세계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긴 한숨 소리가 번져나갔고

나는 유서를 어디 묻었는지 잊어버렸다


그 밤의 공원도 잊었다

나를 잊었다


새의 이름을 잊듯이

보드카 레인



한 번의 아침마다

한 번의 죽음을 주세요


그토록 많은 비가 내린 후에

새로운 비가 내립니다


나무에게

눈의 시신에게

실패한 사랑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주세요


아침에 내리는 비는 

미래의 사랑

미지의 슬픔입니다


당신의 이마는

내 죽음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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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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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회·문화심리학적 각도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 다양하게 고찰한다. 인간의 사유체계와 구조형성에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 하는 언어인지학적 영향이 지대하다. 이러한 언어사용과 언어문화가 인간의 사유와 사상을 통제하고 방향지운다. 


다른 사유방식은 현대인 뿐 아니라 고대에서도 어떤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서양의 철학, 특히 그리스 철학은 사물이나 우주를 개별적 사물의 집합으로 이해했으며, 따라서 이들은 사물 자체에 대한 기원이나 특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물은 자연계 속에 속해있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다. 비록 사물이 다른 사물과 모종의 관계를 형성하지만, 사물은 대체할 수 없는 근본적 속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사물인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별적 사물의 특성에 따라 그리스인들은 분석적인 사고를 전개할 수 있었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사물을 범주화하고자 했다. 모든 사물은 특정한 속성으로 분류가능하다. 


동양, 특히 고대 중국인들은 이러한 개별적 사물을 인정하면서도 각각의 사물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더 주목했다. 그것은 완전히 독립적인 닫힌 특성들이 아니라 가변적이며 개방적이다. 사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 속에서 발전하고 순환한다. 오행의 관계는 이러한 동양인의 사고방식과 체계를 잘 보여 준다. 그렇기에 동양인들은 관계와 맥락을 더 중시하며 개인주의적 성향은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보인다. 대상 주체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늘 대상 주변의 상황이나 배경에 초점을 둔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어쩌면 더 눈치를 잘 본다. 


서구의 사고방식이나 역사는 선형적이고, 동양은 순환적이라는 비교는 식상하지만 여전히 유효해보인다. 


다만 저자와 저서 속 여러 학자들이 증거로 제시하는 설문조사나 간단한 비교실험들은 사뭇 도식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시아인은 이러하고 미국인은 이러구러하다는 단순 비교는 사유의 한 현상이거나 경향일 뿐, 그것이 근본적 차이 자체는 아니다. 더 심도깊은 논의는 종종 생략되기 일쑤다. 


같이 읽어볼 책으로는 송영배,  『동서 철학의 교섭과 동서양 사유 방식의 차이 

http://aladin.kr/p/dF8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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