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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올해 장자를 나름대로 공부하며 장자 관련 서적들을 일별했다. 일단 중국에선 사계의 대가인 진고응 주석의 '장자금주금역'이 가장 보편적인 것 같다. 그러나 문헌학적 각도에서 진고응의 장자 텍스트 취사는 많은 헛점을 내포하고 있다. 장자의 여러 이본을 비교하려는 독자들은 진고응이 편찬한 장자텍스트를  잘 선별해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나는 장자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곽경번집석의 '장자집석'을 많이 참고 했다. 장자철학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진고응의 노장신론이나 류소감의 장자철학이 자못 상세하다. 

























진고응에 앞서 대륙에선 관봉의 장자 연구가 주목할만하다. 


중화서국의 장자주소와 상해고적출판사의 장자집주도 많이 읽힌다.



대만 학자 왕숙민의 '장자교전'이라는 책도 좋다. 진고응의 풀이와 비교하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왕부지의 장자해, 왕선겸의 장자집해 등도 참고하기 좋다. 



일본의 복영광사(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 내편 풀이도 나쁘지 않다. 복영광사는 내편에 대한 번역 후에 그 요지를 다시 개략적으로 풀어내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우리말 번역에는 현암사의 안동림 역과 전통문화연구회의 '장자 역주', 이강수 역의 장자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세간에선 강신주의 철학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그의 장자 관련 저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 밖에 카린 라이가 여러 공저자와 함께 묶은 연구서를 훑어보았는데 영어가 서툴러 잘 잡히지 않았다. 장자 텍스트에 보이는 기술이나 장인의 의미에 대한 유의미한 소논문들이 많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장자 연구서는 양생의 관점에서 장자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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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론 디트리히 본회퍼 대표작 4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정현숙 옮김 / 복있는사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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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론(christology) 논함에 있어 난점은 분을 어떻게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기인한다. 즉, 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통합될 있으며, 인격 안에 이러한 본성이 어떻게동시적일 있는지 등에 대한 물음으로 교회는 지난한 논쟁을 끌어왔다.

 

  본회퍼는 교회사의 여러가지 그리스도론과 이단설을 점검하면서 이제껏 어떻게-물음으로 발전했던 그리스도론을 누구-물음으로 재이해한다. 그러나 본회퍼가 제시한 누구-물음 분명 어떻게-물음 고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물음일 것이다.

 

  ‘누구-물음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신앙의 기초 위에 발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으로 교회 안에서의 신앙 고백과 분리될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 존재의 어떻게라는 물음에만 방점을 찍고 골몰할 정작 분이 누구신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신앙의 물음들은 가려지고 만다. 본회퍼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이해'를 성도의 실제적 '고백'으로 끌어올리는 셈이다.  

 

  이러한 두가지 그리스도론 구도는 본문에서 부정적 그리스도론과 긍정적 그리스도론으로 대별되어 전개된다. 본회퍼가 정말 고백하고 싶은 그리스도는 본문의 마지막 장인 긍정적 그리스도론 집중되어 있다

 

  *본회퍼는 본문 여러 곳에서 루터와 루터파 교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극복한다. 루터파 교의에 대해 모르는 나는 본회퍼가 거론한 논쟁의 초점과 내용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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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타락 - 창세기 1-3장의 신학적 주석 디트리히 본회퍼 대표작 5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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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를 처음 접한 것은 일전에 도서관에서 그의 <창조와 타락>을 빌려보고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판됐던 창조와 타락이었는데 본회퍼가 서두애서 창조에 관해 말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성경이 처음에 이 태초를 말함으로 독자를 화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는 것이다. 거센 물결이 인간을 덮치듯이 말이다. 


그 때 다 읽지 못한 <창조와 타락>을 복있는 사람 출판사의 역간을 통해 다시 접해본다. 둘 다 양장이지만 이번에 출판된 것이 더 아담하고 디자인도 세련됐다. 


창조와 타락이라는 주제는 늘 나를 사로잡는다.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성경에 대해 말해준다고 할 때도 나는 늘 창세기 1장에서 4장을 반복했던 것 같고 그 안에서 헤맸다.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고 또 혹자에게는 다 아는 이야기일텐데, 막상 창조와 타락의 심층에 접근하면 스스로의 무지를 토로할 수 밖에 없다. 쉬운 이야기같지만 실은 어렵다. 


본회퍼의 책을 일별하면서 이전부터 스스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점검해볼 수 있었다. 그의 생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의 사색과 통찰에 감복한다.


선악, 토브와 라, 즐거운 것과 괴로운 것. 본회퍼는 선악의 개념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볼 것을 말해준다. 다만 악의 기원문제나 이유 등에 대한 사고를 지양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대목에서 본회퍼가 좋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같지만 한편에선 독자의 상상이나 이해를 제한한다는 느낌도 든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분열된 세계 속에 산다는 것, 인간 존재의 분열이나 불화를 내포한다는 그의 해석이 좋다. 범죄함으로 인간은 분열된 세계에서 독존하며 그 이후의 인간 행위란 것이 결국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인데 그것은 괴로움을 동반한다. 인간이 즐거움을 추구하고 생명을 추구하는 행위도 결국 이런 분열 극복의 결과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형적이고 불완전하다. 


부끄러움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분열, 세계 일반의 분열, 인간 자신의 분열을 알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타자를 더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타자를 병적으로 갈망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127쪽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하나님 및 하나님처럼sicut deus 된 인간과 격돌한다.........

sicut deus는 선과 악의 분열에 기대어 살아가는 창조주 인간을 가리킨다. 146쪽
이처럼 토브와 라로 분열된 상태는 아담과 하와의 관계 속에서 맨 먼저 나타난다. ..........그는 타자를 더는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에게 맞서는 존재로 대한다. 159-160쪽

아담과 그의 타락을 줄곧 예수라는 제2아담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본회퍼에게 창세기 1-3장은 창조론이면서 기독론이다. 


어떤 논의는 더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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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둘기
권정생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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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시 곁에 색종이로 오려넣은 다정한 삽화, 이번 동시집은 작가가 손수 꾸려만든 원본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여 더 뜻깊다. 시집을 펼쳐 읽노라니 시인의 그리움이 한마리 산비둘기처럼 날갯짓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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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바울 - 바울의 역사와 유산에 관한 소고
존 M. G. 바클레이 지음, 김도현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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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매할 때 바클레이가 그 유명한 윌리엄 바클레이인 줄 알고 구매했다. 다시 보니 존 바클레이다. 


일전에 톰 라이트의 <바울 논쟁>이라는 얇은 책을 읽고는 '바울에 대한 새 관점'에 관심을 가졌다. 이 책 또한 후반부에 바울에 대한 여러가지 논쟁들을 소개하며 샌더스나 톰라이트 등을 소략하게 언급한다.  


전체적으로 바울이라는 사람과 그의 사상에 대해 개관할 수 있게 돕는 입문용 책이다. 1부에선 바울에 관한 역사적 소개로 구성되어 있다.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중후반기를 거치며 바울이라는 인물이 여타의 '위명서'와 함께 어떻게 인식되고 형상화됐는지 또한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어 좋다. 예컨대, <바울과 테클라 행전>이랄지 <바울의 순교> 같은 문서들. 2부에서는 바울이 남긴 유산에 대해 말한다. 


유대인이면서도 비유대인의 사도로 불리운 사나이. 바울이라는 인물을 정위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출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편지들에서 보이는 체계화되지 않은 사상들 또한 바울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한국기독교가 루터나 칼빈의 사상에 근간을 두었다면, 그들이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바울을 읽고 이해했는지 고민해야할 것이다. 나아가 이신칭의나 예정론을 단순히 암기하듯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울읽기로 재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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