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센스 1 -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그와 그녀의 로맨스!
겨울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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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정지후


반듯한 겉모습도, 깔끔한 일처리도 무엇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사원 정지후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그의 성적 취향. 지후는 명령을 받거나 지배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매저키스트이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던 그가 처음으로 큰 맘 먹고 구입한 SM 도구, 사람에게 채울 수 있는 개목걸이. 그런데 집에서 받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회사로 주문한 택배가 택배기사의 사고로 동료인 정지우의 손에 들어가면서, 그는 처음으로 취향을 들켜버리고 만다.


S, 정지우


차갑고 도회적인 겉모습, 늘 무표정하고 시크한 태도. 정지우는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차도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언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늘 타이밍을 놓치고 마는 소심쟁이에 불과하다. 그런 그녀에게 같은 회사의 정지후는 우상이자 완벽한 이상형이고 가슴 속에만 담아둔 짝사랑이다. 그리고 어느 날, 택배 하나로 원치 않게 그 짝사랑의 치명적인 비밀을 알아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 접점이 없었던, 그래서 서로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각자 상대방에 대한 자기만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던 그들은 점차 서로를 알아가고, 진실한 모습의 서로에게 좀 더 다가서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그들 사이에 희미하게 존재하던 감정 역시 좀 더 진실되게 만든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지후의 모습은, 어쩌면 지우가 짝사랑 속에서 그려왔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지후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 지우의 감정 역시 올곧게 홀로 서게 된다. 그 이전에 존재했던, 혼자 삭이던 마음은 어쩌면 정지후라는 사람이 아닌 정지후라는 사람에 대한 환상을 바라보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지우를 보는 지후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의 지우는 지후가 꿈꿀 수 있는 완벽한 S였다. 그러나 정작 직접 만나 부딪히며 알게 된 정지우라는 여자는 한없이 소심하고 여리며 착하다. 차갑게 명령을 내리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지우 역시 지후의 이상형에서 벗어나고 말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제대로 설 수 있게 된다.


유쾌하고 편안한 SM 이야기


웹툰 원작의 이 만화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이고 오피스물이지만, 동시에 SM물이기도 하다. SM은 분명 마이너한 성적 취향이고, 어찌 보면 거부감을 줄 수도 있는 소재일 터. 그러나 작가는 주제를 지나치게 무겁지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야기에 녹여내며 이 'SM 만화'를 누구나 마음 편히 볼 수 있고 쉽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이는 단순히 지후와 지우의 관계가 생각보다 건전하게 그려져서만은 아니다. '모럴센스' 전반에는 SM 역시 하나의 취향일 뿐, 누군가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깔려있다. 그렇기에 작품의 제목인 '모럴센스'는 되려 누가 어떤 자격으로 다른 사람의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냐고 독자 스스로 자문하게 만든다. 지후는 지배받는 걸 좋아한다. 자기 목 사이즈에 맞는 개목걸이를 주문하고 그 목걸이가 도착하기를 설레며 기다린다. 그런데 그게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지후의 그 취향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SM이 생소할 수 있는 주제인 만큼 작품 곳곳에서 관련 용어에 대한 간단한 소개 역시 만나볼 수 있다. 이 역시 작가의 소소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SM을 그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자극적 형태로만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디테일하고 섬세한 누군가의 '취향'으로 내보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 만화를 보고 나서 SM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지도, 누군가에게 지배 당하고 싶지도 않다는 마음 역시 변함이 없다. 그러나 '모럴센스' 덕분에 SM을 멀고 낯선 것에서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친숙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몰래 택배를 시키며 자기 취향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당신의 취향은 무척 멋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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