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기

[ ] [바흐친의 목소리들] 부버에 대해서는 ˝내 생각으로는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특히 대화라는 생각에 대하여˝라고 말한 바 있다. (1969-1971년 사이) 103 바흐친의 철학적 사유의 기본은 그리스도의 패러다임이다. 그리스도는 신성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인간 조건을 수락했으며, 인간의 자의식을 심화시켰다. 그는 차디찬 인간의 자의식이 아니라,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자의식을 심화시켜, 이상적인 인간 조건의 전범이 되었다. 자아와 타자는 연결되어 있으며, 그 매개는 언어이다. 자아와 타자의 관계는 자아와 신의 관계를 반영한다. ...바흐친의 다성악적 소설 이론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소설 내의 인물의 절대적 자유가 어떻게 예술 작품의 통일성과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04

[ ]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05도스토옙스키의 재능 중의 하나는 인간이란 두껍고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혼합물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데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인간은 단순하고 명료하지가 않다. 108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집의 기록] 96

[ ] 원초적 경험의 흔적은 책읽기의 흔적으로 전이되어, 해석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 개인적 흔적들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면 객관적인 책읽기가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거의 무망한 바람이다. 그것은 육체에서 삶을 지우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9

[ ] 천일야화나 불경은 현실은 환영이며 감각은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 거기에 비해 노장은 욕심을 줄이고 자연의 움직임에 맞춰 살라고 권한다. 그 자연으 움직임이 노장에서는 세계의 움직임임에 비해, 논어에서는 인간의 움직임으로 변형되어 있다. ....날으는 양탄자와 달리 표주박 속에 갇힌 마신은 대개 세 가지 소원만을 들어준다. 소원은 한없이 많은데 셋뿐이라니! 그러나 그 셋은 만물을 낳은 모태로서의 삶이다. 도는 일을 낳고, 일은 이를 낳고, 이는 만물을 낳는다. 다시 말해 삶을 낳는다. 113

[ ] 정명환의 학문의 본질은 합리주의이다. 그가 비합리주의적인 모든 것에 날카로운 비난을 퍼붓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때로 그의 생활은 비합리주의적인 것으로 채색된다. 그의 폭음, 폭설...은 그런 면의 표현이다. 인간은 무의식중에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114

[ ] 난 감잡고 있지/ 이 삶에 대해, 감잡고 있지,/뭔가 삐걱거리는 것을,// 잘 안 맞아 돌아가는 것을..... 김정란 114

[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나는 책읽기가 단순한 활자 읽기가 아니라 그 책이 던져져 있는 상황 읽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책읽기 역시 전술적이다. 118

[ ]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내가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내 육체가 사유의 주체라는 생각에 더 깊이 사로잡힌다...이제는 내가 추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유했다는 것을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내 사유의 주체는 내 육체이다. 126

[ ] 김훈 - 아버지에 대한 그의 애정/증오가 그의 글쓰기의 밑바닥에 있음을 알겠다. 그는 깊게 사랑하거나 짙게 미워한다...그의 글은 거침이 없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 같으나, 그 생각난 대로 씌어진 것들을 훌륭하게 이음새 없이 붙어 있다. 127

[ ] 가난한 사람들은 눈에 금방 띄는 환부이지만, 진짜 아픈 부분은 몸의 다른 곳이다. 그곳을 보지 못하는 한 총체성은 얻어지지 않는다. 사회라는 거대한 몸속의 가장 아픈 부분은 정치와 돈이 만나는 자리이다. 86

[ ]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74

[ ] 낭만적 지식인은 조직력의 결여를 그 약점으로 갖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조직력이 없기 때문에 그는 싸움의 변두리로 밀려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드러낼 수가 있다. 42

[ ] 원이 사변 철학의, 즉 자기 자신에만 집착하는 사고의 상징이자 문양이라면, 타원은 감성적 철학, 즉 직관에 입각하는 사고의 상징이다 거기에는 머리와 가슴이라는 두 개의 중심점이 있으므로...28

볕뉘.

0 . 어젠 바람이 요란스럽게 불었다. 유독 대나무가 약한 듯 몸전체를 부르르 떨고, 제 몸의 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이른 잠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책을 집어들었다. 1987년 봄이다.

1. 어김없이 어제 읽던 책들이 저자가 고스란히 뒤를 이어간다. 내가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육체가 사유의 주체라는 말이 박힌다. 1987년의 관통하는 그의 책읽기는 어김없이 날카롭고 전율스럽기도 하다.

2. 어제는 감정 있습니까?의 수치심편을 읽었다. 그리고 현남오빠에게의 김이설작가의 갱년이 아니라 경년을 읽었고, 프레이야님의 고마워 영화의 유리정원, 아가씨, 캐롤, 시인의 의무를 읽어내려갔다.

3. 김수영 전집 시편을 읽고 있다. 삼분의 이정도를 읽고, 절반쯤은 같이 읽는 이들과 소회를 나누었다. 설움이라는 그의 시의 전편에 흐르는 정서와, 불쑥 불쑥 시간이란 결을 쓰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다시 만나는 김수영은 김일성만세를 외치기 이전이었지만, 작금의 풋풋한 시인들의 목소리를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김수영시라고 밝히지 않으면 신인의 시라고 착각할 만한 시들도 여러 편이었다.

4. 글을 쓰는 일은 고독을 달래는 일이기도 하고, 보지못하는 나의 이미지를 어루만지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외롭다. 나누고 공유하는 찰라의 만남이 없다면, 이렇게 30년, 50년의 시차를 두고 만나는 일은 내밀한 기록이지만 전혀 내밀하지 않다. 그 아둔하고 부끄럽기만 하던 1987년이 더 부끄럽게 여겨진다. 서러움을 더 깊게 새기지 못하고 버둥거린다. 수치심은 어쩌면 과거를 다시 품에 안고 미래로 다시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힘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을 읽고, 그 사이 그 거울에 비친 나를 읽고...그들의 마음 사이를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 그 틈이 고맙다. 그간 그 어려움을 표현하느라 애쓴 작가의 흔적들을 아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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