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1.  '시스템사고' -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사람은 죽는다는 것은 정상이다.  '정상사고'라는 표현이 다소 의아하겠지만 시스템은 사고를 일으킨다. 안타깝게도 원인은 한가지가 아니다. 원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복합적이라고 하는데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다.  저자는 기술의 발달이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보다 증가시키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기술을 구분할 수 있을까? '민주적인 기술'과 '권위적인 기술'을 말이다. 만약 구분할 수 있다고 하면 이야기를 좀더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최첨단 기술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최첨단기술을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데 동의한다. 반면 최첨단기술이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의 굶주림과 사람답게 살게하지 않는다는데도 동의한다. 

 

2. 기술은 가치중립적인가? 정말 그러한가?

 

3.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도 그러한가?  또 다른 기술이 이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조금 전에 '민주적인 기술'이 있다고 동의는 왜 하셨는가?

 

4. 관제장치, 항법장치, 조선기술은 모두 최첨단이다. 하지만 안전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의 근력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따로 따로 최첨단인 기술은 굶주림을 해결하지도, 국경을 달리하는 저기의 처참을 눈여겨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효율성과 생산성은 인간성과 별개인 것이 명확하다.  기술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렸을 뿐이다. 기술과 기술의 연결은  이윤을 낳고, 권력을 키우는데는 쏜살처럼 빠르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을 살리고, 사생활을 보호하고, 장애인과 노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별반 기술을 연결시키지도 않고 기술을 개발하지도 않는다.  인간을 위한 인간과 함께하는 기술이 없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5. 기술은 인간다울 수 있을까? 인간적인 기술이란 무엇일까? 기술과 기술사이 위험의 매듭을 줄이거나 안전의 고리로 연결할 수 있는 희망은 있는 것일까?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능력보다 위험이 더 가속화되는 현실은 사고를 목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바닥안에 놓고 보고 감지할 수 있을까? 외면에 외면을 거듭할 권력과 자본의 등돌림을 돌려세울 수 있을까? 어쩌면 그 피해는 싸둔 오염원과 그 근처에 사는 돈없고 빽없는 이들에게 닥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6. 과학과 기술의 검은 그림자를 살피려하지 않는다. 여전히 사고를 목도한 뒤에도... ... 파국에는 빈자와 부자의 차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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