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 1 ] 저는 어떤 구간들에서는 근본적으로는 혼자서 달렸는데, 그것은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저와 동행했던 그 모든 것이 장애물을 뛰어넘도록 하기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저의 근본이나 젊은 시절의 추억에 매달리고자 했다면, 이러한 성과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자신에게 부과한 최고의 계명은 바로 모든 자기 고집을 단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43

[ 2 ] 제가 처음으로 배운 것은 악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악수란 것은 솔직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144

[ 2.1 ]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바지를 벗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다시 말해 흉터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감출 것이 없습니다. 정말 진실이 문제가 될 때는 고결한 심성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세련된 예의범절이라도 내던지는 법입니다. 147

[ 3 ] 제게는 출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출구를 하나 마련해야 했습니다 출구 없이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저는 이제 원숭이로 머무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분명하고 멋진 생각을 하나 해냈는데, 그 생각은 어쨌든 저의 배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원숭이는 배로 생각을 하는 동물이니까요. 149

[ ] 저는 일부러 자유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자유라는 위대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마 제가 원숭이 시절에나 알았던 감정일 것이며....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자유를 갈망하지 않습니다...곡예사가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이빨로 물면서 공중그네를 타는 ‘자기를 통제하는 움직임, 저런 것도 인간의 자유구나.‘ 그 자유라는 것은 성스러운 자연을 조롱하는 행위일 뿐인거죠. 150 제가 원한 건은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151

[ ] 오늘날 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저에게 엄청난 마음의 안정이 없었더라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은 모두 당시 배 안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나에게 찾아든 마음의 안정 덕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내가 찾았던 그 안정감은 당시 배에 탔던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151

[ 4 ] 저는 이런저런 계산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차분하게 관찰을 했습니다. .....153 제가 만약 자유의 신봉자라면, 흐리멍덩한 눈길 속에 보이는 출구보다는 차라리 망망대해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기 오래전부터 그들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정말이지 그렇게 쌓인 관찰들이 저를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넣었던 것입니다. 154

[ 5 ]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이 저를 유혹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흉내를 낸 것은 출구를 찾기 위해서였지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사람의 목소리는 금방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가 몇달이 지나서야 다시 가능해졌습니다. 독주 병에 대한 거부감은 더 심해졌지만 제게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단번에 확고하게 정해졌습니다. 158 그리고 저는 배웠습니다. 아, 사람이 꼭 배워야 한다면 배우게 됩니다.....저는 많은 선생들을 썼습니다. 심지어 몇몇 선생들을 한꺼번에 쓰기도 했습니다. ....미래가 찬란히 빛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직접 선생들을 받아들여 나란히 붙어 있는 다섯 개의 방에 앉게하고 계속 뛰어다니면서 그들 모두에게 동시에 배웠습니다....지금까지 지구상의 유례가 없었던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저는 유럽인의 평균 교양에 도달했습니다.....그것은 저를 우리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며 이 특별한 출구, 인간이 되는 이러한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159, 160

[ ] 저는 어떤 인간의 판단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저의 지식을 전파하고자 하며, 다만 보고하는 것뿐입니다....저는 다만 보고를 드릴 뿐입니다. 161

볕뉘

0. 재독하다가 밑줄을 그어보고 옮긴다. 다른 해석이 없을까 하다가 최은영교수의 [카프카, 유대인, 몸]이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대한 비평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희진의 글에 잠깐 언급이 되었는데 까뮈를 제국주의자라 단정하고 쓴 그 글이 지금 느끼는 것과 달라 좀더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1. 까뮈는 개인으로서 자유라는 것이 실체가 없으며 별반 현실을 반영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이 보고서 역시 자기를 통제하는 움직임이 자유이고, 그 자유를 선택했을 때 한계를 서술하고 있다.

2. 그를 바꾸기 위해 해낸 것들을 옮겨본다. 자기고집을 단념하다 1), 처음 배운 것 악수이며 그것은 솔직함을 바탕으로 하고, 진실이 문제가 될 때는 더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바지라도 벗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2) 출구없이 살 수 없어 출구를 생각했는데 그것은 머리로 배운 것이 아니라 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3) 그리고 그 배움이라는 것은 관찰이고 그것이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넣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4) 물론 제일 힘겹게 배운 것은 독주가를 선생으로 모셔 배운 것이고....배워야 한다면 배우게 된다고 하고 지구상 유례없는 평균 교양에 도달했고, 이것이 우리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5) 적고 있다.

3. 조금 다르게 읽어볼 수는 없을까. 텍스트라는 것은 늘 번역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변신이 인간이 벌레가 되는 과정이라면, 이는 동물이 인간이 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벌레이자 동물은 아닐까. 그것이 강요된 동물벌레라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그것을 허물어야 될까? 신은 죽었고 인간은 신을 죽였다. 인간은 신이 될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신이 되는 길은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이 되어야할 이유는 전혀없지만......까뮈와 카프카를 다시 섞어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저 멀리 등대 불빛은 연신 짙은 안개에도 껌벅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대지기는 없어도.....


[카프카 단편집],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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