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왕
소포클레스 / 강대진 / 민음사 / 387쪽

(2013. 04. 26.)


 

<오이디푸스 왕>

 

오이디푸스     그가 전에 가졌던 왕권도,
                   그의 참상과 씨 뿌릴 아내도 이어받았으니,
                   - 지금은 그의 머리 위에 불운이 들이닥쳤지만,
                   그가 자식 얻기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어머니에게 난 자녀들로 인해 함께 묶어
                   주는 끈도 생겨나 있었을 것이요.-
                   그러니 나는 이것을 위해, 마치 내 아버지의 일인 양
                   싸워 나갈 것이고, 그 살인을 저지른 자를
                   잡고자 찾으며 모든 곳을 뒤질 것이오
(p. 36)

 


테이레시아스     내 선언하건대, 그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가장 수치스럽게 어울리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어떤 악에 처해 있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소.
오이디푸스        그대는 그런 말을 계속 지껄이고도 정말 대가가
                      없으리라 생각하는 게요?
테이레시아스     진리에 힘이 있는 한 그렇소.
오이디푸스        진리에 힘이 있긴 하지. 그러나 당신을 위해서는
                      아니오. 당신에겐 힘이 없소, 당신은
                      귀도, 정신도, 눈도 멀었기 때문이오.
테이레시아스     그대는 불쌍하게도, 곧 이 모든 사람들이
                      그대를 꾸짖을 그런 말로 날 꾸짖고 있구려.
오이디푸스        그대는 영원히 이어지는 밤 속을 헤매고 있구려,
                      그러니 나든 다른 사람이든
                      빛을 보는 사람은 결코 해칠 수 없으리다.
테이레시아스     그대가 나에 의해 쓰러질 운명은 아니기 때문이오.
(p. 43)

 

 

코로스               오만은 폭군을 낳는 법. 오만함이
                       공연히 많은 것으로, 시기도 적절치 않고
                       득도 되지 안는 것으로 지나치게 채워지면,
                       그것은 지붕 꼭대기로 기어올라,
                       깎아지른 필연을 향해 치닫는 법.
                       거기서는 유용한 발도
                       쓸데없도다. 하지만 도시에
                       유익한 경쟁은 결코 업애지 마시길
                       나는 신께 기원하노라.
(p. 75)

 

 

코로스               아아, 필멸의 인간 종족이여,
                       그대들이 살아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아님을
                       내 얼마나 헤아렸던가!
                       대체 누가, 어떤 인간이
                       겉으로만 행복해 보이고, 그러다가
                       기울어 저무는 것 이상의
                       행복을 얻고 있는가?
                       오, 가여운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그대의, 그대의 운명을
                       거울로 삼아, 그 어떤 인간도
                       행복하다 여기지 않으리.
(p. 96)

 

 

코로스          오, 조국 테바이의 거주자들이여, 보라, 이 사람이
                  오이디푸스로다.
                  그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를 알았고, 가장 강한 자였으니
                  시민들 중 그의 행운을 부러움으로 바라보지 않은자
                  누구였던가?
                  하지만 보리, 그가 무서운 재난의 얼마나 큰 파도 속으로
                  쓸려 들어갔는지.
                  그런 필멸의 인간은 저 마지막 날을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할 수 없도다.
                  아무 고통도 겪지 않고서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에는.

(p. 116)
=====================================
<안티고네>

 


안티고네               나는 네게 명령하지 않을 거고, 앞으로 네가 하고 싶다
                         해도, 함께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거다
                         좋을 대로 하렴, 하지만 나는 오빠의 시신을
                         묻겠어,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아.
                         누이로서 그의 곁에 누울 거야, 오빠의 곁에,
                         경건한 일을 하고도 범죄자가 된 채, 이곳에 있는
                         자들보다
                         아래 계신 분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시간이 더 기니까.
                         나는 거기 영원히 누워 있어야 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너는, 그 쪽이 더 좋아 보인다면,
                         신들께 바칠 명예는 무시하고 지내렴.
(p. 124-125)

 

 

 

크레온               한 인간 전체의 품성과 기백과
                         판단력은 알기 힘든 것이오, 그가 지배와
                         통치로써 검증되어 드러나기까지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온 도시의 방향을 인도하는 이가
                         최선의 정책을 추구하지 않고,
                         뭔가가 두렵다고 혀를 잠그고 있다면,
                         내게는 그런 자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비겁한 자로
                         보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누가 자기 조국보다 친구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나는 이 사람을 아무 가치
                         없는 자로 여기오.
(p. 132)

 


크레온               지나치게 강한 의지는 쉽사리
                         꺾인다는 걸 알기 바라오. 굳디굳은
                         쇠라도 불 속에서 지나치게 단단하게 달궈지면
                         부스러지고 깨지는 것을 아주 흔히 볼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기세 높은 말들이 작은 재갈로
                         다스려진다는 걸 아오.
(p. 148)

 

 

하이몬               마음속에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품지 마십시오.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저 혼자만 현명하다고,
                         혹은 자신이 다른 누구도 갖지 않은 혀나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어 보면 빈 껍데기로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현명한 사람이라 해도, 많이 배우려 하고
                         자기를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선 겨울철 격루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몸을 굽혀 가지들을 구하는지 보시지요.
                         반면에 저항하는 것들은 뿌리째 뽑히고 맙니다.
                         또 마찬가지로 배의 돛 아래 줄을 계속 당기며
                         바람에 전혀 굴복치 않는 사람은 결국 배가
                         뒤집혀, 남은 여정을 뒤집힌 의자에 앉아 항해하게
                         되지요.
(p. 161)


 

코로스               현명함은 행복의 으뜸가는
                         바탕이로다. 그리고 신들에 관해서는
                         아무것에도 불경스럽지 말 것이로다. 지나치게 오만
                         한 자들의
                         방자한 말을 큰 타격을
                         희생을 치르고서
                         노경에야 현명함을 가르치는 법이니.
(p. 200)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에서 딴 말로서 S.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쓴 용어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에피카스테)의 아들인데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왕이 되었다.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한 그들은 그 사실을 알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뺀다.

  프로이트는 유아는 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成人)의 정상적인 성애가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를 이상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일반적으로 신경증환자는 이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콤플렉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신프로이트파의 학자들은 이 콤플렉스가 사회적 원인과 가족 내의 대인관계로부터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학자 중에서 E.프롬은 부친의 권위(權威)가 강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콤플렉스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K.호르나이는 양친(兩親)에 대한 의존 욕구와 적의(敵意)의 갈등에서 생긴 불안이 원인이 되어 이 콤플렉스가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여자 아이가 부친에 대하여 성적 애착을 가지며 모친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는 성향을 엘렉트라콤플렉스(Electra complex)라고 한다.

[출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 두산백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외 (소포클레스 / 천병희 / 문예출판사)

 

 

 

 

 

 

 

 

 

 

 

 

 

* 그리스 비극 걸작선 (소포클레스 외 / 천병희 / 숲)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 천병희 /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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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김의기 / 다른세상 / 360쪽

(2013.04.19.)

 

 

* 나의 고전읽기의 시작이 되어 준 책

* 저자가 읽은 대표적인 고전 30권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가 추천하는 서양고전 100권의 목록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나는 독서광이다. 평생 책을 읽고 살아왔다. 아니, 책만 읽고 살아왔다. 한평생 내 뒤통수만 보고 살아온 아내는 그런 나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언젠가 그놈의 책들을 마당에 쌓아놓고 불을 지를 날이 오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새 책을 읽으면 새 애인을 만나는 것 같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옛 애인을 만나는 것 같다.
  이는 내가 항상 주장하는 지론인데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30년간 기술한 나의 독서 노트다. 업무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진한 커피 향처럼 은은하고 깊은 맛이 나는 책들,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들을 선정하여 내 느낌을 가볍고 경쾌하게 서술하였다.
(p. 9)

 

 

  작가는 자신이 받은 감동을 독자와 나누기 위해 책을 쓴다. 감동을 가슴에 묻어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감동을 독자와 나누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문장 한 줄 한 줄에는 작가가 발견한 놀라운 세계가, 단어 하나하나에는 그것을 표현하는 데 성공한 작가의 환희가 숨어 있다. 작가는 가능하면 보다 큰 감동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작가들은 모두 큰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p. 10)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들이다. 모두가 잘난 책들이다. 밤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잔칫상을 차려놓고 내가 제일 예쁘다. 내가 제일 밝다, 내가 제일 별빛이 곱다고 소리치며 싸우는 것 같다. 저마다 내가 역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양보 없이 사우고 있다. 내가 제일 재미있다, 내가 제일 감동을 준다, 날 좀 보세요
(p. 11)

 

 

  필자가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눈은 부드럽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눈을 가졌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그 사람의 내부로 들어가서 한 바퀴 회전하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는 이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고,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오래도록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
(p. 11)

 

 

  사르트르는 ‘인간은 미래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의 운명은 미리 정해진 게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미래를 계획하고 창조해야 한다. 미래는 도달하기 어려운 먼 곳이 아니다.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져라. 그리고 도달하라.
(p. 14)

 

 

  이 서른 권의 책과 문장들은 나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이 책과 문장들은 나를 만들었고, 나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나는 이 책들과 끝없이 논쟁하며 나를 키워갔다. 이 책들을 다시 읽을 때마다 작가가 만든 비밀의 세계를 하나씩 새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들은 원래 작가의 것이지만 내 안에서 살고 내안에서 춤추며 나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을 지탱해 온 힘이었다.
(p. 343)

 

 

<추가로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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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 이레 / 397쪽

(2013. 03. 31.)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높은 지위를 얻기가 어려우며, 그것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어디서 어떤 피를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지위가 날 때부터 고정되는 사회가 아니라면, 지위는 우리의 성취에 달려 있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p. 9)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p. 21)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세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p. 22)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 38)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p. 66)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p. 80)

 

 

  서양이 2,000년간 물질적으로 진보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왜 사람이 가난하고, 무엇이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결정하느냐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응보의 관점이 강력하게 개입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지위에 처한 사람은 점차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얻는 데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될 수 있다.
(p. 85)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끔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
(p. 136)

 

 

  농담은 비판의 한 방법이다. 이것은 오만, 잔혹, 허세에 대하여, 미덕과 양식으로부터 이탈한 것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머는 불만을 제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화는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설교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만화를 보면서 낄낄거리다가 권위에 대한 불만 토로가 적절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p. 222)

 

 

  웃음은 최고의 익살꾼의 손에 쥐어지면 도덕적 목적을 획득하며, 농담은 다른 사람들이 성격과 습관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된다.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새뮤얼 존슨이 말했듯이 풍자는 “악이나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존 드라이든의 말을 빌리면, “풍자의 진정한 목적은 악의 교정”이다.
(p. 224)

 

 

  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진리로 여기는 견해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식이 깨어난다. 그런 견해들은 자신 만만하게 주창될 수도 잇고, 나무나 하늘처럼 존재의 기본 구조에 속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 어떤 정치적 관점에 따르면 –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현실적 또는 심리적 이해관계를 옹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p. 277)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다.
(p.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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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 와이즈베리 / 336쪽

(2013. 03. 21.)

 

 

  이 책은 독자에게 돈과 시장을 둘러싸고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딜레마를 숙고할 것을 요청한다. 지난 세대에 한국은 인상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국가 반열에 올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은 시장 경제를 수용해서 엄청난 부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경제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근래 들어서면서 경제의 성공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난제로 고민하고 있다. 따라서 증가하는 각종 불만들을 어떻게 완화할지,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지, 시장가치가 가족․ 지역사회 ․공공선을 훼손하거나 잠식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바로 이러한 난제들을 다루고 있다.
(p. 8)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시장이 과연 위험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대해 의심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시장이 도덕에서 분리되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시장과 도덕을 다시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과 주장이 무슨 의미인지, 이에 관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지상주의의 핵심에 담긴 도덕적 결점은 탐욕이고, 이 때문에 무책임하게 위험을 무릅쓰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대로라면 해결책은 탐욕을 억제하고, 은행가와 월가의 중역들에게 더욱 품위있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고 촉구하고, 합리적인 규제안을 마련해 유사한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p. 23)

 

 

  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불평등과 부패다. 우선 불평등에 관해 생각해보자.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인 사회에서 생활하기란 재산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욱 힘들다. 따라서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유리가 부유한지 가난한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거래 대상으로 삼기를 주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설명하기가 더욱 어렵다. 두 번째 이유는 불평등과 공정성이 아니라 시장의 부패 성향에 관한 것이다.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 시장이 단순히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교환되는 재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드러내면서 부추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 책을 읽게 하는 행위는, 아이들을 독서에 힘쓰게 만들지는 모르나 독서를 내재적 만족의 원천이 아니라 일종의 노동으로 여기도록 한다.
(p. 26)

 

 

  시장지상주의 시대에는 이러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하지도 않은 채, 우리는 시장경제를 가진(having a market economy) 시대에서 시장사회를 이룬(being a market society) 시대로 휩쓸려왔다.
  두 개념의 차이는 이렇다. 시장경제는 생산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다. 이에 반해서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시장사회에서는 시장의 이미지에 따라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p. 29)

 

 

  현대 정치는 도덕적 논쟁이 지나치게 많아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적어서 문제다. 오늘날 정치판은 도덕적·정신적 내용이 거의 비어 있기 때문에 과열되어 있다. 또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중대한 질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p. 32)

 

 

  재화에 대한 가치판단이 배제된 태도가 시장논리의 핵심이며, 시장이 지닌 매력을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하지만 시장을 포용하면서 도덕적·정신적 논쟁을 꺼리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공적 담론에서 도덕적 에너지와 시민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오늘날 많은 사회를 괴롭히는 기술관료 지향의 경영정치가 발달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p. 33)

 

 

  ‘선착순’의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약간의 돈만 더 내면 공항 보안검색대든 놀이공원의 인기 놀이기구든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빨리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불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재화를 분배하는 시장논리가 ‘선착순’이라는 전통적 관행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차례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미덕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이며 이것이 시장논리에 지배당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p. 35)

 

 

  부패라고 하면 흔히들 부정 이득을 연상한다. 하지만 부패는 뇌물이나 불법 거래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 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
(p. 59)

 

  어떤 행위는 불쾌하게 여겨지지 않는데, 돈을 지불하고 얻는 새치기 권리, 대리 줄서기, 암표 거래 등과 같은 사례를 불쾌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장적 가치는 어떤 재화는 손상시키기도 하지만 어떤 재화에는 적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정 재화를 시장논리로 분배할지 줄서기로 분배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분배할지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재화인지, 어떻게 가치를 매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p. 60)

 

  최근 수십 년 동안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이 지배했던 삶의 영역에까지 시장과 시장 지향적 사고가 확대되고 있다. 비경제적 재화에 가격을 매기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더욱 추상적이면서도 야심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저축과 투자, 금리와 해외 무역처럼 명백히 경제적인 주제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요즘 경제학자들은 더욱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들은 경제학이 단순히 물적 재화의 생산과 소비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은 눈앞에 놓인 선택사항에 대해 비용과 이익을 저울질하고 자신에게 최대의 행복이나 효용을 안겨주리라 생각되는 것을 선택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p. 77)

 

 

  과연 인간의 모든 행동을 시장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 정치학자, 법학자 등이 이러한 문제를 놓고 지속적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학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시장 개념이 매우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적 관계도 시장관계의 개념에 맞추어 놀라울 정도로 수정되었음을 목격해 왔다. 이러한 변화가 생겨난 한 가지 이유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금전적 인센티브의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p. 80)

 

 

  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이고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이다. 사람들은 벌금을 요금으로 대할 때 벌금이 나타내는 규범을 무시한다.
(p. 99)

 

 

  경제학자들은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장논리의 관점에서 보면 선물보다 현금을 주는 편이 낫다. 그러나 선물 대신 돈을 주면 선물의 의미가 퇴색된다. 돈으로 친구를 살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우정을 유지하는 사회적 관행을 상품화하면 공감·관용·배려 같은 규범의 자리에 시장가치가 들어선다.
(p. 143)

 

 

  사회적·경제적 삶에서 이타주의를 무모하게 사용하면 다른 공공의 목적을 위해 써야할 공급량이 고갈되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를 위해 남겨두고 있는 이타주의까지 감소시킨다.
  미덕에 대한 경제주의의 견해는 시장에 대한 신념을 불타게 하고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시킨다. 하지만 비유가 잘못되었다.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p. 179)

 

 

  기업의 명명권과 더불어 호사스러운 스카이박스(경기장 높이 위치한 고급 관람석) 거래가 확산되면서 스포츠 경기에 담겼던 시민정신은 훨씬 더 심하게 잠식당하고 있다. 내가 1960년대 중반 미네소타 트윈스의 경기를 관람하러 갔을 때만 해도 가장 비싼 좌석과 가장 싼 좌석의 가격 차이는 2달러에 불과했다. 사실상 20세기에도 야구경기장은 기업 임원과 블루칼라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핫도그나 맥주를 사기 위해 모두 똑같이 줄을 서며, 비가 오면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젖는 곳이었다. 하지만 경기장 높은곳에 자리한 스카이박스가 등장하면서 부자와 특권계층은 아래의 일반 관람석에 앉는 보통사람들과 분리되었다.
(p. 238)

 

 

  어린 시절에 소비 사회를 지향하는 기본 훈련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주변 세상에 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이들이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어 로고·라벨·라이센스 의류를 선전하며 등교하는 시대에, 학교가 소비지상주의 정신에 흠뻑 젖은 대중문화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p. 272)

 

 

  우리는 반대에 부딪힐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도덕적·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애 내보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맞서지 않고 뒷걸음질 친다고 해서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시장 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p. 274)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평등이 점차 심화하면서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현상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점차 분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사회적 위치·태도·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면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p.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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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 양철북 / 207쪽

(2013.02.19.)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
아이들을 위해 생각한다는 것....
아이들을 위해 삶을 바친다는 것...
짧지만 의미가 깊은 글들 속에서 그분의 아이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야누슈 코르착과 그의 작품을 좀 더 잘 알았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인용문은 코르착이 50여 년 전에 쓴 <어린이를 사랑하는 법>과 <어린이 존중>에서 따온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의 통찰려과 단순한 진실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참신하고 소중하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p. 9)

 

 

  육아에 관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론과 사상들 사이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부모가 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전문가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교육에 관한 주장과 관점들이 거의 매일 바뀌는 바람에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육아에 관한 책은 수백 권이자만, 그 책들은 실천적 방안에 중점을 두거나 아니면 그저 아동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등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영감과, 이렇게 말해 주고 확신을 주는 것 아닐까?

 나는 아직 모릅니다. 알아낼 방법도 없습니다.
 내가 모르는 부모들이 내가 모르는 아이들을
 역시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나는 모릅니다.
 어떤 책도 어떤 의사도
 부모들의 직관과 주의 깊은 관찰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당신만큼 당신의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p. 10)

 

 

어린이는 내일의 희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이미 존재합니다.

 

어린이는 미래를 살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를 대할 때는 진지하게, 부드러움과 존경을 담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장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건 가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미지의 사랑’은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p. 26)

 

 

  “잘못했어요”란 말을 들으려 애쓰는 대신 어른의 따뜻함을 보여주세요

  한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 예를 들어 창문 유리를 깨뜨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는 이미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아이를 나무라면, 설사 그 이유가 타당할지라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는 대신 반항하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사실 아이가 죄책감을 느낄 대, 그 때는 바로 어른들이 따뜻함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사실 깨진 유리는 아이들 편에서 보면 실패한 시도일 뿐입니다. 비록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은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때 깨진 유리분 아니라 실패해 비치고 화가 난 그 마음가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p. 27)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어른들이 강요한 덕목에 반항하는 어린이가 많습니다.
지나치게 강조하고,
질릴 정도로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어린이 스스로,
천천히 발견할 수 있게 해 줍시다.
(p. 31)

 

 

어린이가 실수를 저지르고 즐겁게 그 실수를
넘어서려고 애쓰게 합시다.
어린이들은 웃기 좋아하고 돌아다니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삶이 당신에게는 무덤과 같은 곳이어도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그곳을 목장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p. 47)

 

어린이는 어른의 표정을 읽습니다

어린이는 우리 표정을 읽습니다.
마치 농부가 하늘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듯이.
어린이는 자기의 환경을 잘 압니다.
분위기, 습관, 결점 등을.
어린이는 그것을 능숙하게 이용할 줄 압니다.
친절함을 느끼고, 거짓을 알아차리고,
어떤 것이 엉터리인지 알아차립니다.
그것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그것을 관찰하고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p. 52)

 

 

아이들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바보는 아이보다 어른 중에 훨씬 더 많습니다.
(p. 55)

 

 

  아이들에게 행복의 잔을 들이마시고 어른을 신뢰할
  자유를 주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할 때나 공놀이를 하자고 할 때,
  그림을 같이 그리자고 할 때나 글씨를 쓰자고 할 때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시간을 내줍시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p. 64)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는 아랫사람 대하듯 하고
  동정하는 듯한 태도로 말합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어린 아이 역시 존경받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작고 약하며,
  모르는 것도 많고 못하는 것도 많지만,
  자라서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
  노인을 존경하듯 아이를 존경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p. 69)

 

 

  아이들은 생각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른과 다를 뿐입니다.

  아이 생각이 어른보다 좁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른과 다를 따름입니다.
  아이들은 지성으로 사고하지 않고,
  감성으로 사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입니다.
(p.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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