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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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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인이 잉태된 집안에서 들려주는 살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집안은 내가 자라난 곳이며, 또 어떤 면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길모어. 록 음악이 최고의 절정기에 달하던 1967년 말에 창간된 이래로 대중문화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잡지 <롤링 스톤>의 수석편집장이었으며, 로큰롤의 태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록 음악계의 빛나는 영웅들을 그린 Night Beat의 저자이자 뛰어난 음악평론가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의 동생이다. 그의 이름은 게리 길모어. 그는 현대 미국의 범죄자 중에 누구보다도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악명을 드높인 것은 그가 저지른 범죄19767, 연이틀 젊은 모르몬 교도 두 명을 살해한 그 죄때문이 아니었다. 게리가 유명해진 건, 바로 그가 자신의 처벌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던 시기는, 미국 대법원이 사형제도의 부활을 위한 조치를 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특히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유타 주는 앞장서서 사형제도의 부활법을 통과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법의 집행은 또 다른 문제였다. 1977년 가을, 게리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었다. 비록 법은 통과되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합법적인 살인행위에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게리 길모어로 인해서 바뀌었다. (p.18)

 

사실 게리 길모어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게리 길모어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에 처해지기까지의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노먼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해 퓰리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게리가 저지른 난폭한 죄악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들 속에 감춰져 있다고 마이클 길모어는 이 책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서문에서 덤덤히 고백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가족사라고. 우리 집안의 어두운 비밀과 좌절된 희망의 덫이, 어떤 식으로 나의 형 게리에게 전해져서 그의 살해 충동을 만들어냈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아무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말이다.

 

완전히 다른 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들과는 전혀 다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막내였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게리 길모어를 비롯한 형제들과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의 집안과 아버지의 과거와 할머니 이야기까지, 말 그대로 가족사를 깊이 파고든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3장에 나온다. 게리는 사형집행인의 노래에 실린 인터뷰를 진행했던 실러와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톰 라이든에게는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고. 그러나 그러기에는 자신이 선생님 말을 너무나 듣지 않았고 또 실망시켰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못했다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톰 라이든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1977년 당시, 그는 한 학교의 교장으로 있었고 그때 그 학교에는 심각한 문제아가 하나 있었다. 학교 측에서는 그 학생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지도할 선생을 두 명 배정했고,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은 어렵다고, 관계당국에 넘기는 게 좋겠다고 라이든에게 말했다.

게리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말을 너무나 듣지 않았고 또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실러에게 전해 듣던 그 날은, 그 아이에 대한 임원회의가 열린 날이었다. 라이든은 그 자리에서 선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제, 나는 게리 길모어와 관련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게리는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릴 적 8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있었는데, 자기는 그 선생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 선생님이 자기 손을 잡아줄 만큼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고. 그 선생님이 바로 저입니다. , 선생님들, 우리가 이 학생에게 해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후론, 그 선생들은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온몸을 던졌다고 한다.

 

나는 선생들에게도 항상 이렇게 말해왔지요.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세요.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세요. 이 아이가 만일 선생님의 아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실 테지요.” (p.248)

 

라이든의 이 말을 읽는데, 최근 재밌게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 된 캐릭터 변지식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 처음부터 내가 봤다고 말했잖아, 당신들한테! 내가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당신들이 내 말을 다 무시하고 윽박지르고! 전과 기록만 보고 나를... 살인자로, 방화범으로 몰았잖아 당신들이! 그런데, 저 사람... 저 변호사만 나를 믿어줬다고. 내가 아니라고. 내 말을 다 들어줬다고. 오직 저 변호사만 나를 믿어줬다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준 변호사 조들호 덕분에 변지식의 미래가 달라졌던 것처럼 게리가 라이든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라이든이 게리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게리의 미래는 조금 달라졌을까?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지만 나는 라이든의 이 말을 현직 교사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전해 들었으면 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내 아이가 문제아가 되었다면, 나도 분명히 내 아이에게 그렇게 대해줄 것이라 바랄테니까.

 

 

게리의 죽음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마이클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는 데 도움이 됐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다. 마이클 길모어 개인의 삶을 내려놓고, 그 순간부터 게리의 동생 마이클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는 나날의 삶. 그 삶 속에서 그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치고, 맞이하는 아침 햇살. 베개로 얼굴을 덮으며 몸을 웅크린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지 않아, 절대로. 괜찮아질 수 없어.” 자신을 향해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마침내 그 말 속에서 위안을 찾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688쪽에 이르러서야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마주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접했던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내와 출판사 편집자의 번역 권유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번역 의뢰는 절대 받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뜨리면서 이 책을 일본에 소개하였고, 이 책을 읽고 2년여에 걸쳐 번역하며 인간에 대한, 아니 어쩌면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라는 깊은 회한을 옮긴이 후기에 남겼다는 그 이야기를.

 

과장이지만, 하루키가 원칙을 열 번이라도 깨고 남을 책이었다. 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 길모어의 가족사에 빠져있는 동안 때때로 우울했다. 한없이 무겁고 어두운 가족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가족사를 마주하고, 글을 써내려갔을 마이클 길모어를 생각하면 먹먹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을 녹여냈다기 보다, 이 글 저 글을 인용하기 바빴고 그렇게 인용 투성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인용구를 덧붙이며 이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그곳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끝끝내 그곳을 거쳐 가서, 이 책을 탈고했을 마이클 길모어의 의지에 끝없는 박수를 보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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