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 수업에서 처음 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읽고나서 한참을 먹먹해했고,

그 감정이 아직도 선명한 시가 있다. 문태준 작가님 의 <가재미>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김연수 작가님이 소설은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라고 생각한다니까

시는 쓴다, 떠난다 라며 받아치시던 문태준 작가님.

김천시 3인방 김연수, 김중혁 둘은 세련된 학생이었고 여전히 다양한 관심사를 가졌다며,

자신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걷고 시 쓰는 것 밖에 없다며 부럽다고 하셨지만

작가님의 시를 읽고 있으면 부러움은 내 몫이 된다.

이렇게 좋은 시를 쓰다니... 하면서 그저 말이 없어진다. 그냥 읽고 또 읽으면 된다.

 

2014년은 활자로서의 문태준 작가님을 떠나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람 문태준 작가님을 만난 것 같아서 참 좋았다.

 

p.s. 내게 '김훈-김연수 북토크 행사'의 최대 수확은 '사회 문태준'이었다는 게 함정...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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