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세실 > 만화 어떻게 읽게 할까

주부생활 9월호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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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어떻게 읽게 할까
강 백 향

아이들이 만화를 왜 좋아할까

대형서점이나 할인마트 서점에 가보면 꼭 벌어지는 풍경중 하나. 어린이 코너에 진을 치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다. 머리를 묻고 심취하여 아이들이 책장을 넘긴다. 어느 외국인이 그 현장을 보고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독서열기에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닐 때가 있다.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의 98%는 만화로 된 책이다. 여기에서 만화로 된 책이라 함은 엄밀하게 말하여 만화책과는 조금 차원을 달리한다. 만화가의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단지 이야기나 정보를 전하는 도구로 만화가 쓰여진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이 만화라는 것을 보면 실망을 감출 수 없다. 부모와 어떤 책을 살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도 사주고,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워주기 위해 서점에 데리고 가지만 새로 나온 만화에 관심을 돌리는 바람에 낭패를 보기 일쑤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그렇게 만화를 좋아할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말이 쉽고 재미있어 이해가 쉽다는 것이 대답이다. 물론 웃음을 주기위해 과장된 유머나 코믹한 부분이 있는 것도 큰 이유다. 그 덕분에 만화라는 장르는 이미 요즘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러 매체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만화를 아예 금지하거나 접근을 막기는 어려운 일이다.   

만화의 두 가지 얼굴

만화도 엄연히 예술성을 띠는 작품의 범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만화는 “악”, “읔”, “퍽”과 같은 감탄사로 하나의 장면이 설명되는 단순한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만화가 가지는 두 가지 얼굴 중에 단점으로 꼽히는 점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만화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어휘의 한계다. 한 페이지 안에 사용되는 낱말의 수가 지극히 적다. 그림이 대신 표현하기 때문이다. 묘사해야 할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꼭 전달해야 할 부분만 대사로 처리된다. 그것도 최소한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만화는 짧은 문장과 그림으로 상황을 설명하기 때문에 어휘력이 향상되기는 어렵다. 더구나 낮은 수준의 낱말이 자주 반복되면서 일정 수준의 어휘에만 머물게 된다.
따라서 만화를 많이 보는 아이들이 글자만 있는 책을 읽을 때 어휘력 부족으로 내용 이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책 읽는 일이 자꾸만 어려워지게 된다. 그래서 쉬운 만화에만 머물게 되고 독서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더구나 만화가의 경험과 지식 속에서 나온 그림을 계속 보게 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책을 읽는 일에 방해가 되기 마련이다.  또한 풍부한 어휘로 묘사가 된 문학작품을 만화로 바꾸어서 나오거나 저급한 소재를 시류에 맞게 흥미위주로 처리한 경우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만화가 반드시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만화가 가지는 유용함의 얼굴도 있다. 만화에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대할 수 있는 접근의 용이성이 있다. 그래서 역사나 과학, 위인이야기의 같은 지식을 주는 학습의 경우 만화로 접했을 때 전체적인 흐름속에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이 독서의 흥미유발 단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린시절 동생들과 함께 너무 읽어서 낡아 버렸던 <한국의 역사>라는 12권 만화책은 역사공부에 지금까지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삼국지>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99%도 만화 덕분이다.
또한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표현기법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멧세지를 만화로 표현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리고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유머와 위트로 각박한 현실을 이겨내게 하는 해학성을 담고 있다. 책에서 얻기 어려운 또 다른 매력이다. 그렇다면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좋은 만화책의 조건은 좋은 책의 조건과 그리 다르지 않다.
만화의 두 얼굴을 따져보니 결론이 잡힌다. 좋은 만화책을 읽게 하면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만화책과 좋지 않은 만화책을 구별하는 안목을 키우는 일이 우선이다.   

좋은 만화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자

아침 독서시간에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와 읽는 책을 보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의 경향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만화책의 경우 수업시간 틈틈이 선생님 눈을 피해 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 요즘 유행하는 만화종류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감춘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차라리 만화를 함께 보면서 그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야기로 나누어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한 페이지에 몇 칸의 그림이 들어있을까. 말은 몇 마디의 문장으로 이루어 졌나?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운가? 재미와 감동이 있는가? 배울 점이 있는가? 새롭고 정확한 지식을 주는가? 등의 물음을 던지면서 객관적인 눈으로 만화를 비평해 보도록 해보자. 아이들 스스로 내용이 시시하다, 말이 너무 단순하다, 같은 그림이 반복된다, 캐릭터가 특징이 없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만화를 읽은 후에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함께 지적해 보고 이야기를 나누게 하면 좋은 만화를 고르는 안목이 생겨나게 된다. 안목이 생기면 다음에 만화를 고를 때 그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만화에 대한 무조건 부정적 의식을 벗어나 이제는 아이들이 선호하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부모의 포용적 자세도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만화를 읽을 기회를 주자. 어릴 때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으며 민중과 이반된 삶을 살았던 왕비의 삶을 안타까워하면서 한편으로는 프랑스혁명을 이해하고, <독고 탁>을 읽으며 야구경기 방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만화만 읽는 아이 어떻게 지도할까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독서지도 강의를 할 때 부모님들로부터 “만화만 보는 아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게 된다. 다 읽은 만화를 또 읽으면서 만화만 사달라고 하고 동화책이나 그 밖의 책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걱정하는 문제다. 더구나 예전처럼 만화방에 가야만 만화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점에서도 쉽게 만화를 구할 수 있으며, 일시적인 유행을 쫓아 급조된 상업적 만화가 전방위적으로 서점의 주요한 곳을 차지하고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만화에만 매달려 다른 책으로 관심을 돌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

ꋯ만화책만 많은 대형마트 서점에는 가지 마세요.
  -대형할인마트서점에 가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곳에 만화만 잔뜩 진열해 놓은 곳이 많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상품이다. 현란한 색깔과 디자인, 자극적인 제목으로 아이들을 끌어당기기 마련이다. 그런 곳은 아예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서점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 좋은 책을 진열한 서점으로 찾아 가는 것이 당당한 소비자의 권리다.

ꋯ만화책 1권을 사줄 때 좋은 책도 같이 1권 사주세요.
  -아이들이 만화를 사달라고 조르는 경우 무조건 막지 말고 사주되, 부모와 함께 책도 한권 골라서 같이 사주자. 만화에만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되면서 아이의 의사가 존중받는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존중받은 아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몇 번 반복하게 되면 책을 고를 때 훨씬 더 신중하게 된다.

ꋯ만화를 다 읽은 후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이야기로 나누어 보세요.
  -만화를 읽은 후에 느낀 점을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나누어 보자. 밥을 먹을 때나 함께 길을 걸을 때도 좋다. 만화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게 되면서 만화를 고르는 안목도 생기게 되고, 사고력도 키워질 수 있다. 좋지 않은 만화의 문제점을 스스로 파악하는 경험도 얻게 되어 다음에 구입할 때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ꋯ좋은 만화책을 골라 주세요.
  -좋은 책을 읽으면 재미와 감동을 얻듯이, 좋은 만화책에서도 그와 같은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만화가 좋은지 모르겠다면 먼저 훑어 읽어보거나,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추천된 좋은 만화책을 골라주자. 차원 높은 감동을 경험을 해 본 아이들은 만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갖게 될 것이다. 

ꋯ만화에 빠진 경우 그와 관련된 책으로 연결시켜 주세요.
  -<그리스로마 신화>나 <마법의 천자문> 같은 시리즈가 유행을 타고 아이들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그대로 두면 만화만을 선호하여 다음에도 자신이 알고 싶은 지식을 만화로만 읽으려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발을 담그고 호기심을 갖게 하는데 만화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면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도록 유도해 보자. 예를 들면 <그리스신화/에드거 파린 돌레르>, <오디세우스와 방랑과 모험/로즈마리셧클리프> 같은 책을 읽게 하면 아이들이 만화에서 알게 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책 내용을 즐겁게 읽어낼 수가 있다. 또한 그리스신화라는 경계를 넘어 중국신화, 북유럽 신화, 우리나라 신화등으로 범위의 폭을 넓혀 책을 읽도록 해주는 것도 좋다. 단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니라 만화의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 쉬운 책부터 읽도록 해서 호기심을 계속 충전해 가도록 해보자. 

ꋯ너무 만화만 좋아할 때는 조금 기다려 주세요.
  -아이들이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아예 만화라는 장르에 집중하는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조금 기다려 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만화만 읽는다고 제지를 하게 되면 오히려 만화에 대한 호기심만 더 커지고 책에 대한 반감만 생길 수도 있다. 문방구 오락기 앞에서 게임하는데 매달려 사는 아이에게 만원짜리 한 장 주고 하루 종일 하도록 하면 오히려 질려서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만화만 집중하는 아이도 시간이 좀 지나면 오히려 흥미를 잃게 되는 때가 오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ꋯ만화도 보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는 아이로 키워주세요.
  -책의 가치만 우선시 하여 다른 문화활동은 하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에게 통용되는 가치관은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유연하게 자란 토양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책만 읽는 아이를 우선시 할 것이 아니라 좀더 폭넓게 만화도 보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볼 줄 아는 아이로 키우자. 그래야 자기만의 독창적인 생각과 세상을 보는 보편적인 시각,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배우게 된다.   
ꋯ만화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소개해 주세요.
  -만화로 쏠린 관심을 책으로 돌리려면 만화보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된다. 딱딱하고 지루한 책은 만화와의 경쟁에서 떨어지기 마련이다. 만화처럼 재미있는 책을 고른다면 굳이 책을 멀리하지는 않게 된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로알드 달’이나 ‘미하엘 엔데’의 책을 권해보자. 만화가 가지는 상상력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만화책 읽어 보세요.
『맹꽁이 서당』, 윤승운 지음, 웅진닷컴
『깨복이』, 오세영, 게나소나
『떠돌이 검둥이1,2 』이향원, 산하
『짱뚱이의 나의 살던 고향은 1-6』, 오진희․신진식,파랑새어린이
『나 어릴적에』, 이희재, 게나소나
『골족의 영웅 아스테릭스 』,알베르루데르조. 문학과 지성사
『땡땡의 모험 1-16』, 에르제, 솔출판사
『못말리는 종이괴물』, 루이 트롱댕, 아이세움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미셸플레시스, 아이세움
『뒤코비는 너무해 1-5』, 고디, 오유아이
『앙리에트의 못말리는 일기장 1,2』, 샤를베르베리앙, 문학동네
『도토리의 집 1-7』, 야마모토 오사무, 한울림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 이원복, 두산동아
『겨레의 인걸 100인 1-4』윤승운, 산하
『역사속의 거인들』, 박재동, 웅진닷컴
『만화삼국지』, 이희재, 아이세움
『만화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1,2 』, 이은홍, 휴머니스트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만화 한국사 이야기1-7 』, 원병조, 삼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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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안 2005-09-0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툼한 포트리스 만화책을 가지고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달라고 조을 때면 정말 난감했는데... 이글을 읽고 나니.. 좋은 만화책을 사서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삼국지가 땡기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