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7월 4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소재로만 봤을 때, 그다지 참신한 영화는 아닙니다. 꿈과 현실, 기억과 망상이란 이야기는 이미 영화사 100년간 숱하게 써먹은 이야기 중 하나니까요. 그리고 이런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장쾌한 액션에 풀은 영화는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에서 한 번 겪었습니다. <인셉션>은 21세기의 <매트릭스>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영화를 가지고 굉장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저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할리우드 영화가 관객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게 만든다는 점은 놀라운 현상임이 확실합니다.  

<인셉션>이 놀라운 점은, 영화의 문법을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 접목시켰다는 점입니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동료인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와 의뢰 대상인 로버트 피셔(킬리언 머피)에게 꿈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명확해집니다. "지금 앉아있는 이 카페에 어떻게 왔죠? 과정이 생각나나요? 꿈이란 게 그렇죠. 항상 중간부터 생각이 나지, 명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아요." 영화는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매체입니다. 상영시간이 20시간이건, 1분이건, 컷이 일만 컷이건, 단 한 컷이건 간에,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 붙인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영화에서는 편집이라는 유용한 방법으로 잘라 붙여지는 것이죠. 이런 영화만의 문법을 놀란 감독은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즉,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코브의 꿈일 수도 있고, 놀란 감독 자신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로 놀란 감독이 우리에게 '인셉션'을 한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거의 다 끝나갈 때 갑자기 들리는 에디뜨 피아프의 노랫소리에 흠칫 놀란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셉션>은 꿈의 미로를 빠져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놀란 감독은 친절하게도 꿈에 각각의 단계를 구분하여 설명해줍니다. 각 단계로 진입할수록 빠져나오는 방법은 쉽지 않으며, 자칫 림보에 빠져 영원히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꿈을 설계한 아리아드네는 미로를 만들었지만, 코브를 데리고 나오는 역할도 합니다(미노타우로스 왕궁에서 테세우스를 구출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 영화는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중요해보입니다. 놀란 감독은 이야기를 비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꿈의 미로를 탐사하는 영화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디서부터가 꿈인지 현실인지, 그리고 누가 꾸는 꿈인지 도통 알 수 없게 찍었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영화의 내러티브와는 별 상관없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문제는 이 상관없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 장면들로 인해서 이 영화는 베티 엘름스(나오미 왓츠)의 꿈일 수도, 다이엔 셀윈(또다시 나오미 왓츠!)의 꿈일 수도 있으며, 또는 리타 해이워드(로라 해링)의 혹은 카밀라 로즈(또다시 로라 해링!)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 둘 혹은 넷이 꾼 꿈을 한데 뒤섞은 것일 수도 있지요. 놀라운 점은 영화를 보는 이가 아무리 애를 쓰고 영화를 풀어도 정확히 갈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의도적으로 꼬아놓아, 영화를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길을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꿈속의 미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끔찍한 악몽! 어쩌면 꿈이란 기억해내고 이해하려하며 해석하려는 순간부터 길을 잃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꿈에 들어가는 이야기 중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는 곤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입니다. 정신의학 연구소에서 개발한 'DC미니'는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아직 불안정한 관계로 상용화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의 치바 아츠코 박사는 '파프리카'란 이름으로 몰래 이 기계를 이용해 의뢰인들의 정신 치료를 하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개발 중인 DC미니 3개가 사라지고, 연구원들이 하나 둘씩 공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DC미니를 이용해 꿈속으로 들어가 정신적으로 가둬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건은 갈수록 오리무중이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현실이 꿈과 뒤섞이는 일이 발생합니다.

치바 아츠코는 꿈을 통해 인간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트라우마를 치료합니다. 인간 무의식에 깊숙이 박혀있는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기 위해 꿈속에 들어가 종횡무진 하는 파프리카의 모습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우리의 꿈이 논리가 없고 이리저리 헤매는 것처럼, 파프리카가 탐사하는 꿈 역시 정신없습니다. 영화로 치자면, 매 컷마다 장르가 바뀌는 것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꿈이 일상과 관계가 있듯이, 그 계통 없는 꿈도 하나의 흐름을 꿸 수 있습니다. 그렇게 꿈을 통한 치료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됩니다.

<인셉션>에서 거대 재벌 사이토(와타나베 켄)는 자신의 경쟁사인 회사를 해체하기 위해 코브에게 인셉션을 부탁합니다. 상속자인 로버트 피셔의 마음에 "아버지의 회사를 쪼개라"는 생각을 심는 것이죠. 피셔의 아버지가 로버트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들 부자관계는 냉랭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자신에게 했던 말은 "실망했다"는 말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로버트는 자신의 무의식에서 아버지의 유언을 듣습니다. "(나처럼 되지 못해서 실망한 게 아니라) 네가 나를 닮으려고 하는 것에 실망했다." 분명 로버트가 자신의 무의식에서 본 것은 코브가 심은 것일 겁니다. 코브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이토의 의뢰를 성공시켜야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됐든, 이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로버트 피셔는 자신의 깊은 무의식 안에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인셉션>의 결말이 어쨌든 간에, 로버트 피셔에게는 분명 해피엔딩일 것입니다.  

하지만 로버트 피셔의 경우가 과연 긍정적인 결과인지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파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무의식의 의식을 넘어설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꿈을 지배하게 되고 꿈이 현실이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단번에 지옥이 됩니다. 꿈에서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이죠. 피셔는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코브가 심어놓은 것에 반응하고 움직였죠. 만약 "나 같은 건 죽어도 싸"라는 문장을 심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무의식을 조종한다는 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입니다. <파프리카>는 그 지옥도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인셉션>에는 꿈의 단계가 있습니다. 꿈속에서 죽으면 바로 현실로 돌아오지만(잠에서 깨어나지만), 만약 약물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 꿈은 림보로 진입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 무의식의 가장 밑바닥이죠. 이 무의식의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 현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죠. 코브의 아내 맬(마리안 꼬띠아르)도 그래서 자살했습니다.  

이토 준지는 단편 「기나긴 꿈(長夢)」에서 이 문제를 그렸습니다. 무코다 데츠로는 2개월 전 뇌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꾸는 꿈의 기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꿈의 내용이라도 즐거우면 좋을 텐데, 불행히도 그가 꾸는 꿈은 악몽입니다. 그의 꿈은 현실을 압도할 정도로 생생하고, 고독하고, 추잡하며, 두렵습니다. 일례로 그는 전쟁에서 적을 피해 10년간 정글에 숨어 있는 꿈을 꿨습니다. 대학 입시로 9년간 밤을 새며 공부를 하는 꿈을 꾸고, 화장실을 8년간이나 찾아다니는 꿈을 꿉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웃기는 일이지만, 본인에게는 정작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꿈을 꾸는 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지면서, 그는 마치 인간이 긴 시간에 걸쳐 진화를 한 것처럼, 겉모습이 변해가며, 현실을 꿈으로 생각하고, 꿈을 현실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를 진찰하는 의사는 생각합니다. 만약, 이 환자가 영원한 꿈을 꾸게 된다면, 이 사람의 육체는 어떻게 될까?  

이토 준지는 질문합니다. "인간이 꿈속에서 영원을 살게 된다면, 인간은 꿈을 선택할까 아니면 현실을 선택할까?" 놀란 감독은 이 질문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당신이라면, 행복한 꿈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비참한 현실에서 살 것인가?" 마침내 그토록 꿈에서 그리던 아이들과 해후한 코브는 이 상황이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코브의 토템(팽이)이 돌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팽이가 계속 돌면 꿈이고, 쓰러지면 현실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돌고 있는 팽이를 보여주다 갑자기 끝납니다. 놀란 감독은 우리에게 대답을 미뤘습니다. 어떤 대답을 하건, 영화를 본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셉션>은 놀란 감독이, 꿈꾸는 우리를 깨게 만드는 '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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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7-27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캡쳐 이벤트>를 합니다.
참여해 주세요~ ^^

Tomek 2010-07-27 09:06   좋아요 0 | URL
저도 참여해도 되나요?
와~ 고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