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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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 - Three Bad Men In A Hidden Fortr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은 무시무시한 활극의 쾌감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 액션의 쾌감의 잔상만이 가슴에 가득 남았었는데, 이번에 감상했을 때는 다른 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여전히) 미친 세상에 살아남은 인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두 농부 마타시치(후지와라 카마타리)와 타혜(치아키 미노루)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라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금붙이가 들어간 나뭇가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들은 금을 찾는데 혈안이 됩니다. 그 와중에 마카베 로쿠로타(미후네 도시로)라는 이상한 사내를 만나 같이 하야카와까지 금을 옮기게 됩니다. 마카베는 이번 전쟁에서 망한 아키즈키의 장군이었으며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왕족 유키 공주(우에하라 미사)를 동맹을 맺은 하야카와로 안전하게 데려가려는 목적으로 이들 두 농부를 이용합니다. 이로써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목숨을 건 여행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두 계급의 생태를 이분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타시치와 타혜로 대변되는 농민 계급은 탐욕스럽고 천박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살아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반면, 마카베 로쿠로타로 대변되는 지배 계급은 고결하고 명예롭습니다. 이들은 개인의 삶 보다는 더 높은 이상(국가나 왕족 같은)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피붙이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합니다. 이처럼 정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국가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공주를 호위할리 만무하지요. 가는 곳마다 사건이 벌어지고 위기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들 계급이 서로를 보완해주면서 위기를 탈출해가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입니다. 농부들의 탐욕은 이들을 위기에 빠뜨렸지만, 마카베는 농부들의 탐욕스러움을 이용해서 적진을 빠져나가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후에 이들을 잡기 위해 병사들을 파견했을 때, 마카베는 자신의 무공을 이용해 공주를 보호하지요.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서로 보충해나가는 모습. 이것은 전형적인 유교의 시스템입니다. 군말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는 모습.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국가관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인간'이니까요.
이 여행에서 인간을 경험하는 것은 유키 공주입니다. 그녀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갇힌 성 안에서 백성, 인간들을 개념으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그녀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봅니다. 인간의 추함, 천박함, 탐욕, 그리고 삶의 의지와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녀 머릿속에서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인간의 실체를 느꼈습니다. 긍정적인 모습의 인간의 모습 뿐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추함까지도 인간의 한 모습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인간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영화의 절정, 불놀이 축제에서 그녀가 보았던, 모든 것을 태우고 새로 시작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고 그녀는 재건할 국가의 상을 그렸습니다.
이렇게만 글을 쓰니 영화가 심각해 보이는 것 같지만,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놀라운 활극의 연속으로 가득합니다. 우선 화면비.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최초 시네마스코프 비율입니다. 2.35:1의 기나긴 횡비를 구로사와 감독은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합니다. 특히나 수평과 수직을 이용한 대각선식 액션은 영화의 너비를 깊게 만드는 황홀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액션! 마카베가 말을 타고 결투를 벌이는 모습은 정말로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스크린에서 경험해야하는 영화입니다. 작은 화면에서, 그리고 양 옆이 다 잘린 화면으로 본다면, 그저 줄거리 정도는, 그리고 조지 루카스가 이 영화에서 <스타워즈>의 영감을 받았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압도적인 중량감은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 덧붙임:
한국 시네마데크에서는 상영이 끝났지만, 부산 시네마데크와 필름포럼에서 상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