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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한글떼기 ㅣ 엄마 글방 12
김효정.김미랑 지음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1997년 8월
평점 :
우리 아이가 한글을 시작할 때쯤 되었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보다가 이 책 리뷰를 읽고 사게 되었다. 읽다가 첫장에서부터 질렸고, 내팽개쳤다가 틈틈히 화장실서 다 읽었다.
음. 첫째.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결함은 기본적으로 이론적 뒷받침이 허구,라는 점이다.앞 부분에 보면 조기 문자 학습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유명 석학들의 글들을 인용해 놓았는데, 여기에는 너무나도 큰 loophole이 있다. 인용한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석학들은 유아 '언어'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단, 이들은 절대로 '문자언어'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저자는 문자언어, 한글의 교육에 이들의 인용을 끌어다 쓰며 한글 교육의 이론적 기반으로 '오용'하고 있다.
실제 Young Learners 를 위한 영어교육 수업을 듣다보면, 문자 교육에 적합한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만 3세반이라고 나온다. 그 이전의 유아를 대상으로 한 언어교육은 문자언어가 아니라 총체적인 언어교육을 말하는 거다. 저자가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자'라면, research를 하는 기본 자세는 알고 있을 것이다 - 남의 이론을 문맥도 도외시 하고 내 주장을 뒷반침하기 위해 어거지로 끌어 맞추면 안된다는 점 말이다. 그럴싸한 석학들의 이론을 인용해서 교육 신화를 맹신하는 일반 어머니들을 오도(misleading)해서는 안된다.
이책의 결말은, 저자 중 한명의 구태의연한 자식 자랑으로 끝나고 있다. 뭐 '자랑'이라고 까지 말할 필요는 없겟지만, 이러한 에피소드식 결말은 단 한가지 사례의 성공(?)을 일반화하게끔 오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간에 언어 영재라며 영어를 어린 나이에도 잘하는 아이들도 꽤 되지만, 그 아이들 중에는 유사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도 있다는 정신과 의사 출신 저술가의 지적도 놓쳐서는 안될 듯 싶다.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자음 모음 결합 식의 한글 접근법이 아니라 통문자 중심의 학습법을 (섹니에서 많이는 들어봤지만) 아이의 인지 구조를 설명해가며 짚어준 점이다.
한 마디만 더하고 리뷰는 끌내련다. 사실 조기 문자 교육에 대한 비판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경험, 인식들이 수없이 많다. 문자 언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이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하게 되면서 말을 넘어서는 경험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 즉, 삳부른 문자 교육은 창의력을 말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가 논리이다.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직관으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껴안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 문자의 세계에 너무 아이들을 일찍 들여보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