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용 책
신해욱 지음 / 봄날의책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십년은 예나 지금이나 십년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격은 좁아진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듯,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식 더 친구에 가까워지지만 나란해질 수는 없다. 여전히 할머니 등 뒤에 엄마가 있고 엄마의 등 뒤에 내가 있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의지의 극한값은 무엇일까. (39쪽, 제논의 역설)

일 초 후의 시간에 대한 불안과 무능력 속에 곡예의 숭고함이 있다면, 시간이 장악되었다는 안도감 속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79쪽, 점프)

고유함을 가장 깊이 간직해야 할 사람의 이름 마저 규격에 맞추어야 하는 현실이 축하의 뒤끝으로 씁쓸하게 지나가는 밤이었다. (156쪽, 이름의 규격)

그림 속에는 한 명의 훈장님과 아홉 명의 아이들, 총 열 명이 있다. 바닷속에는 아직도 열한 명의 실종자가 있고, 그 중 다수가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이다. 앞으로 단원의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단원고의 어떤 교실과 세월호가 함께 떠오를 것만 같다. 기억은 예기치 않은 자리에서 호출된다.
(301쪽, 단원 김홍도, 2014. 7 .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실제가 아니라고 알렸던 일을 돌이켜본다. 과학이 간질간질한 느낌, 무모해지고 안전해지는 느낌을 주는 호르몬과 화학물질을 알려줄 수 있지만, 잭과 함께 있을 때면 왜 간질간질해지는지, 무모해지고 안전해지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이 실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곧바로 무시했다. 특정한 두 사람이 왜 서로를 거부하지않고 자석처럼 이끌리게 되는지, 과학은 설명해주지 못한다. 사랑만이 설명해줄 수 있다. 그리고 동화나 솔메이트, 그 밖에 순전히 로맨틱한 개념을 믿어본 적이 없지만, 나는 잭을 믿었다. 잭과 나 사이에는 믿음이 있었다. (374쪽)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지금 내 옆 바닥에는 하얀 운동 양말이 열 켤레는 쌓여 있다. 치우기를 잊어서가 아니다. 너무 게을러서도 아니다. 그게 우리들만 이해하는 장난이기 때문에 거기 둔다. 내가 끊어낼 수 없는 데이지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

그리고 데이지가 어디에 있든, 웃고 있기를 바란다. (4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한번 쯤은 무심코 던지는 말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정환경이 좋다, 가정환경이 나쁘다

(…)

가정환경이 좋다는 말의 의미는 그럭저럭 이해가 된다. 부자라거나 뼈대 있는 가문이라거나…그런 뜻이겠지 싶은데, 자 그럼, 반대로 나쁘다는 건 대체 뭐지?

가정환경이 나쁘다. 부자가 아니고 뼈대 없는 가문의 사람이란 뜻인가? 우리집은 좁은 주택단지인데다 욕실도 없었다. 나는 나쁜 가정의 아이일까?

(…)

하지만 어른에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른이 이 말을 쓸 때 뿜어내는 숨막히는 공기가 왠지 싫었으니까. 엄마한테도 물어볼 수 없었다. 혹시 우리집이 가정환경이 나쁜 집이면 대답하기 곤란해할 것 같아서였다. (58~9쪽)

삼십대든 사십대든 모조리 뭉뚱그려서 `아줌마였던 젊은 날이 저 멀리 떠나버렸음을 절절히 실감했던 과일 디저트 전문점에서의 미팅. 찬찬히 살펴보니 바로 코앞에서 핫케이크에 포크를 찔러넣는 그녀들의 손끝은 무척이나 싱그럽고 윤기 넘쳤다! 버석버석 메마른 내 손을 바라보다 문득 나이는 끄트머리에서부터 드러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99쪽)

언제부터일까?

"저 사람은 쓸모없어."

인간을 이렇게 기계 취급하듯 말하게 된 게…. 나도 화가 날 때는 무심코 이 말을 끄집어내서 혼잣말처럼 투덜거린다.
전에는 `눈치 없는 사람`이나 `일이 서툰 사람` `요령 없는 사람` 정도로 끝났던 감정인대, 그것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둔갑하는 순간, 거기에는 싸늘한 어둠이 깃든다.
설령 홧김에 내뱉었을 분이라 하더라도 이런 말을 계속 쓰다보면 어느새 자기의 사고방식으로 침전되어버리지 않을까. 나는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
쓸모 있다.
쓸모없다.

이런 말을 계속 쓰다보면 결국에는 스슬가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된 기분이 들 것 같으니 안 쓰는 게 신상에 이롭지 않을까 한다. (14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소년의 모험담, 신비로운 존재와의 만남.

'성장'을 현실과 환상을 잘 버무려 표현했다.

나는 그 나이때 자주 궁금해했던 것처럼, `나`는 누구인지, 거울 속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내가 보고 있는 얼굴이 내가 아니라면, 그리고 내 얼굴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여전히 나일 테니까, 내가 보는 얼굴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안다면, 그러면 나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켜보고 있는 건 무엇일까? (86쪽)

"…… 각각의 사람들은 사건을 모두 다르게 기억해.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았어도 그것을 똑같이 기억하지는 않을 거다. 그 사람들이 같은 곳에 있었든 아니든 말이야. 서로 바로 옆에 서 있는 두 사람도,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대륙만큼 떨어져 있을 수 있지." (79쪽)

어른들은 길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탐험한다. 어른들은 같은 길을 수백 수천 번 걸어가도 만족한다. 아마 어른들에게는 길에서 벗어나고, 진달래 덤불 아래를 기어가고, 울타리 사이의 공간을 찾아낸다는 생각이 아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95쪽)

노부인은 마치 내가 우주에서 가장 우스운 말을 했다는 듯이 낄낄 웃었다. "아무것도 늘 똑같진 않아. 1초 후건 백년 후건. 모든 건 언제나 휙휙 휘저어지지. 그리고 사람들은 대양만큼이나 변화해."
(265쪽)

"사람으로 사는 일에 합격이나 불합격은 없단다." (28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지음, 허봉금 옮김 / 민음인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상실에 따른 애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찰

상실에 관한 각자의 애도방식

우리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상처를 직면하는 자세는 또 얼마나 중요한가

 

 

"모든 괴로운 감정을 샅샅이 뒤져서 강렬하게 겪고 난 후에야 이 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꼭꼭 숨기면 애도를 회피하기에 이르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전보다 중요성이 덜한 죽음을 맞아서 틈새를 보일 수 있다" -나딘 보테악, [애도,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이겨낼까?] (20쪽)

인생은 중대한 사건이나 커다란 행복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느끼는 단순하고 작은 기쁨들과 행복이 모여 이루어진다. (56쪽)

고통스러운 경험은 정서적으로 성숙해지고 개인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일부 예술가, 작가, 스타일리스트 들은 상중에 있을 때 더욱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157쪽)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부터 인생은 이별과 상실의 연속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