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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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번 쯤은 무심코 던지는 말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정환경이 좋다, 가정환경이 나쁘다

(…)

가정환경이 좋다는 말의 의미는 그럭저럭 이해가 된다. 부자라거나 뼈대 있는 가문이라거나…그런 뜻이겠지 싶은데, 자 그럼, 반대로 나쁘다는 건 대체 뭐지?

가정환경이 나쁘다. 부자가 아니고 뼈대 없는 가문의 사람이란 뜻인가? 우리집은 좁은 주택단지인데다 욕실도 없었다. 나는 나쁜 가정의 아이일까?

(…)

하지만 어른에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른이 이 말을 쓸 때 뿜어내는 숨막히는 공기가 왠지 싫었으니까. 엄마한테도 물어볼 수 없었다. 혹시 우리집이 가정환경이 나쁜 집이면 대답하기 곤란해할 것 같아서였다. (58~9쪽)

삼십대든 사십대든 모조리 뭉뚱그려서 `아줌마였던 젊은 날이 저 멀리 떠나버렸음을 절절히 실감했던 과일 디저트 전문점에서의 미팅. 찬찬히 살펴보니 바로 코앞에서 핫케이크에 포크를 찔러넣는 그녀들의 손끝은 무척이나 싱그럽고 윤기 넘쳤다! 버석버석 메마른 내 손을 바라보다 문득 나이는 끄트머리에서부터 드러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99쪽)

언제부터일까?

"저 사람은 쓸모없어."

인간을 이렇게 기계 취급하듯 말하게 된 게…. 나도 화가 날 때는 무심코 이 말을 끄집어내서 혼잣말처럼 투덜거린다.
전에는 `눈치 없는 사람`이나 `일이 서툰 사람` `요령 없는 사람` 정도로 끝났던 감정인대, 그것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둔갑하는 순간, 거기에는 싸늘한 어둠이 깃든다.
설령 홧김에 내뱉었을 분이라 하더라도 이런 말을 계속 쓰다보면 어느새 자기의 사고방식으로 침전되어버리지 않을까. 나는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
쓸모 있다.
쓸모없다.

이런 말을 계속 쓰다보면 결국에는 스슬가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된 기분이 들 것 같으니 안 쓰는 게 신상에 이롭지 않을까 한다. (1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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