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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망설여지는 정도라면 좋겠지만 어떨 때 우리는 주저앉는 것 외에 다른 도리를 찾을 길 없어 완연히 망연해질 때가 있다. 명징한 답을 구원처럼 기대하는 상상마저도 떠올려지지 않는 그야말로 어딘가의 미세한 빛조차 사그라든 무명의 상태와 같달까. 어지간하면 아주 미세한 구멍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살아온 식으로 어떻게든 봉합하고 희망을 쥐게 마련이지만, 정말 가끔은 방향을 잃고 멈춰질 때가 있는 것이다

도저히 내 상태를 가늠할 수 없을 지경으로 뜻밖의 상태에 이르면 과거의 좌절로부터 얻게 되는 지혜와 방어벽들도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진다. 극단의 양각에 설만한 생각들도 보루로 남지 못해 판단이 마비되고 달리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자책의 데미지는 참으로 크다.

이 시기를 보내고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일어나 회복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지는 거라서 자신만의 시간들이 지나가는걸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인간의 슬픈 숙명 같아 숙연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과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거나 인생의 한 자락이겠거니 하고 버티는 게 인생인건지.

 

 

 

이럴 때 나는 어떤 구체적 혜안이나 자조적 상태를 떠올리기보다 아주 작고 초라한 생각 하나를 마음으로 떠올리곤 한다. 안에 머무는 몇몇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 식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내 인생의 어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에게 이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묻고 듣거나 말한다. 물론 이 우스운 광경은 그 어떤 생각이건 사실은 나라는 사람을 관통해간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초라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기 때문에 이게 작은 불씨가 되어주기도 하는데, 이만한 고요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위안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대의 시간이 낳은 파장이 되돌아와 분명한 상처를 남기기는 하지만 그만큼 냉정하게 돌아보고 이상한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중요하다. 정죄하거나 돌파해 나가라는 자극을 심어주기 보다 앞에 놓인 경사진 비탈길을 조금씩 내딛을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되는 일이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잘 쌓아온 것도 말아먹었다는 오늘의 고통을 인고하고 견뎌야 하는 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리라는 믿음, 그 뿐이면 될 때가 있기도 하다.

세상사의 괴로움과 즐거움에 어제보다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썩 나쁜 징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손미나의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는 작가가 갑작스럽게 맞이한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그림자처럼 드리운 스산한 바람이 부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와 정반대라는 페루의 계절처럼 현재의 고통을 쏟아낼 공기를 한참은 낯설게 되돌아보게 되는 식이다.

 

 

우리가 떠나는 일을 하는 행위의 자부심에는 이질성과 다양성이 상존하는 의미를 크게 두는 면이 있다. 기필코 이것을 목도하고 체화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여러 여행서에서 만나온 손미나 작가는 항상 성실하게 삶을 즐기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인상이었다. 그것이 일이든, 가끔 떠나는 여행이든 꾹꾹 눌러 담는 강박의 성실함에 중독된 듯이 보여 멋지구나 싶었는데, 물론 좋은 의미로서 느껴지는 건강한 중독과 강박은 언제라도 부러웠다.

 

 

이번 이 책에서 느낀 강렬함은 작가의 삶에 놓인 거대한 슬픔이라는 덩어리였는데, 그것이 페루와의 만남으로 어떤 풍화를 거쳐 소멸될 수 있을까란 의문으로 시작한다. 각자 놓인 시련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겨 나갈까하는 물음이 그녀에게는 여행’ 안에 있었다. 친화적인 성격 탓인지 언제고 우울보다는 한 층 성숙한 태도를 의연하게 보내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 또한 그녀만의 체득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어 응원하고 싶었다. 사람과의 교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게 작가의 매력인 만큼 보는 내내 그득한 사람 냄새로, 산다는 것의 보편적 핵심을 보는 것 같았다. 항상 그래왔지만 페루에서도 남다른 우정을 만들어낸 그녀의 아낌없는 사랑과 진심의 성정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도시든지 그 특징과 매력을 가지지만 페루는 특히 그들만의 오랜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는 나라라는 면에서 인상이 깊다. 미지와도 같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볼 때도 그렇지만 어디든 이 나라의 면면은 흥미롭다는 수준을 넘어서 진정한 위용을 가진 도시를 여럿가지고 있다는 점에 감탄하고 부러워 할 수밖에 없다.



페루가 수많은 도시와 비슷해지는 유혹에서 반드시 저항하고, 인간이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일 수 있는 소박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여전한 위용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여러 시대의 수많은 환란으로부터 잘도 버텨준 아주 깊고 단단한 뿌리와도 같은 나라가 페루의 민낯이고, 무엇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일일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좋았다

한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여정이 어떻게 진전되고 아물어 갔는지 차근히 지켜 볼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나 기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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