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배수아가 보고 온 몽골 알타이에서의 일화를 들으면서 그 어떤 감정으로부터도 휩싸이지 않는 기묘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작가의 아우라에서 연상되는 당연히 압도당할 마음가짐에서 완연히 벗어나는 의외의 구석이었다.

그곳이 실제로 단조롭고 고요한 일상뿐인 풍경이 다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모든 걸 말할 때 그의 눈은 고스란히 그대로일 수 있게 움직였고 바람에 쓰인 기록처럼 남겼다.

단 한번 강렬한 감정이 들었을 때라곤 갈잔이라는 작가를 비롯, 함께 떠나온 각국의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일 때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천천히 걸으며 배회하는 말 탄자의 유유함만이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작가는 다만 잃어버린 나침반의 바늘 위에서 서성이는 나날이었노라고 말한다 





만약 작가가 느낀 정체만이라도 좀 더 구체적이면서 열렬히 열거되는 식이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그곳의 일일이 다름을 인식하느라 흥미를 끌고 말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흥미를 끄는게 물론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시선이 비판적으로 그려지는 데 힘이 실렸을 것이고, 어느새 문명인의 눈으로 보는 알타이이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누가 뭐래도 일반 관광기와 다를 바가 없지 않았을지

우리가 보는 그곳이 단지 명맥이 언제 끊길지를 염려하며 보는 오지이길 바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기에 작가는 이러한 염려로 지킨게 있고, 우리는 그걸 존중하면 되었다.





이곳의 사람들을 보다보면 누구나 자연과 시간 사이에서 벌이는 예술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배수아 작가는 도착하자마자 묘사할 수조차 없는 무한한 대지 위의 광활함에 압도당하고, 이방인임을 자각하게 됐지만 기어코 요란스러운 여행자이길 거부했다. 오히려 최대한 몸을 낮추거나 숨기는 한 마리의 말과 같은 예민한 신세였다. 책의 안과 밖으로 흐르는 가장 훌륭한 태도로써 그곳을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이 책의 의외인 면은 생활이 좀 재미있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알타이 미인대회 출전에 대한 일화를 비롯해 피식댈만한 이야기들이 더러 나온다. 문화차이로 정색을 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작가는 그보다 존중하고 싶은 한 충분히 그곳에 녹아들려고 노력한 것 같다. 정작 자신은 똥줍기 말고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게으름을 피웠다고 하지만, 알타이와 만나는 가교의 의식으로서 그것들을 먼저 이해했다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노력을 엿보게 된다.






근 한 달간의 여정은 이런 식으로 시간의 무한함을 발견하는 선물이지 않았나 싶다. 알타이에서는 욕망의 시간은 없으나, 그렇기 때문에 도드라지거나 반추되는 타자의 현실의 욕망을 더러 들춘다. 이는 떠나면서 목도한 작가의 가난에 대한 자각, 텅 빈 공간의 존재로부터 밀려나온 감정의 실체는 아니었을까

도시의 삶, 문명의 도그마가 형성해 놓은 구멍이라는 작가의 말 속으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들어가긴 했는데 삶의 비루함과 가난이 주는 불편은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으므로, 이 침묵의 정체는 암묵적으로 알아가는 발견이게 된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처연함을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 없는데도 스스로 이름붙일 수 있는 나만의 구멍임은 알 것 같다마치 알 수 없이 찾아와 홀연히 떠나버린 그녀가 앓던 병처럼 말이다. 덧씌워 이름 지어지기 보다는 단 한사람 즉 각자의 알타이 속에 내재된 병명의 운명처럼 고유해진 일과 같다.






이 책의 원고는 절대로 출판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존재가 거의 잊혀진 2009년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정을 보지 않은 날것의 느낌들이 정제되지 않은 7월의 눈처럼 순수하기만 하다. 알타이와 울란바토르에서의 일들은 그의 요란스럽지 않은 문체와 닮아서 참 좋다. 그 이후에도 두 번이나 더 다녀온 경험으로 다시는 이 땅을 알려고 떠나는 일은 없겠노라고 선언하는데 이 말은 어딘가 슬픈 유언처럼 들렸다. 운명의 이끌림으로 생긴 물음들에 대한 답을 그녀는 그간의 여행으로 얼추 찾게 된 모양이다.





'도저히 저항하지 못할 운명의 힘'으로 떠난 계기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거대하고 무한한 감정, 너무 순수해서 정적인 과격함'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말의 의미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눈으로 보고 냄새의 흔적을 온몸으로 휘감아본 사람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일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깊이를 모르고 내려가는 원융한 통로의 한 가운데서, 있는 힘을 다해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게으른 한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부여된 일이라는 것에 덩달아 감사하게 된다.

자연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차별 없는 일상과 하루를 연장하게 해주었고, 그 자비로 우리는 배수아 작가를 무사히 만나 몽골 그 가운데서도 알타이라는 곳의 민낯을 최초로 만났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시작과 끝이 없는 넓은 대지의 모래 바람을 선물 받게 되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