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탓을 들먹이면 느닷없어 보이겠지만, 도무지 어떤 유형의 마음가짐’이라도 가져본 일이 있던가 싶다. 아예 없이는 생활에 추진을 가져오지 않겠지만 이루고자 하는 성취의 어떤 방편으로 남들만큼 잘 부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충 산다고 해도 그것이 마음가짐의 일부분이라 한다면 모르겠지만 일면 내게는 그냥 살아지는 면으로서의 마음만 크게 보인다. 인생의 중요한 목적어하나쯤 살아가는데 주요한 심지로 굳혀 보는 일도 근사한 일인걸 알지만, 여전히 의식으로 결의를 다져보자는 마음이 잘 안 드는 것을 보면 생겨먹은 탓을 들먹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때로 당장 주어진 일 앞에서 혹은 얼마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사건 앞에서 발휘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일상을 매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내겐 있다.

매우 게을러 보이는 태도의 변을 굳이 하자면,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연결될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갑니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고작 오늘을 잘 버티는 것쯤 이려나, 정말로 이 정도가 다다. 기왕이면 위트있는 삶이라면 더없이 족할 뿐이다. 거창하게 삶의 철학적 성찰을 내 식으로 풀어서 오늘을 위트 있게 살자라는 마음가짐을 돌려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온 내 태도를 반추해보면 대충 이런 식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을 해볼 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오늘을 버텨내 살 뿐이라는 것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담보로 불행하지 않겠다는 믿음의 반영이 전부이다. 나는 긍정 보다는 부정, 낙관 보다는 비관된 태도로 후일을 걱정하며 사는 어린이였고, 소녀로 자라 하루하루 친구들과 어울려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고 공상하며 남들이 웃어줄 때의 낙으로 살던 사람이었다. 우스워 보이기는 하지만 별 생각 없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오늘을 사는 삶은 나의 불안과 슬픔을 이겨내준 시간들이었다. 언제나 상처를 덜 받기 위한 나의 보호막이 이런 '태도'였고 이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어른이 된 지금에도 가동되는 중이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거나 하는 흔한 질문에 쉬이 답을 망설이게 되는 방만한 삶이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들이 오히려 소중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인생을 얼마나 살아서 달관한 현자 생각 흉내 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알 수 없는 언덕 앞에 자주 주저하게 되는 나의 타고난 기질을 고백하는 것이다. 망설이고 자주 쉬는 사람이 게을러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일 지라도 조금 더 들여다 봐준다면 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만 말하고 싶다. 하루의 무사함은 오히려 불가해한 낭만이며 축복인 것이다.

 

 

 

 

삶은 불안한 그림자가 언제 드리울지 몰라 허둥대는 사람에게 그 가르침을 혹독하게 치르게도 하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진 비관만큼 쌓아낸 장벽 위로 넘어가 해일로 덮치는 일은 쉽게 없는 것이다. 물론 그 막의 높이를 높이 쌓을수록 그 만큼의 안식을 위한 불안이 내 온몸을 잠식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고통도 따른다. 그러나 이를 무사히 넘겼을 때의 안도감에 비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일이다. 인생은 항상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일이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성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쌓아가는 일이리라. 

 

 

 

희망과 배려로 넘치는 일이 흔치 않은 세상에서 그 하루를 버티는 훌륭한 치유제는 또 각자가 강구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일의 처방전 혹은 도피처로 나는 위트를 삼고 싶다. 행복한 웃음이 만연한 재미로서 라기 보다 채플린이나 우디앨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위트에 가깝다. 세상의 위선과 자신이 부린 쩨쩨함의 혐오현실과 자주 대결해야만 하는 피로 속에서 사람들이 전하는 방식은 매우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롭다.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본연의 모습들, 화와 불안을 요란하게 호소하거나 비장하게 그려내는 법 없는 인생사가 있다. 그들의 위트에는 쓴맛이 나는 행복과 삶의 오만상이 다 있고, 그럼에도 웃을 수밖에 없는 어떤 강한 힘이 스며있다. 뭉클한 무엇, 갈 데 없는 마음을 안착시켜주는 무엇, 외면하지 않은 노고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무엇의 힘이 있다.

 

 

 

정철의 <인생의 목적어>를 읽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각오에는 참으로 다양한 위안들이 자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점에 작가 정철의 오랜 고심의 마음가짐이 보인다.

대체 나다운 게 뭔데!’라는 유행어를 본뜨자면 카피라이터다운 게 뭔데!’라는 말에 어떤 호응을 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 작가는 과연 말의 하나하나 예상될만한 그 이상을 생각해낸 시간의 성의와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혜안의 깊이를 가졌다. 카피라이터라면 역시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일상의 고찰을 충분히 공감해낸 사람들을 일컫겠지만, 작가 정철이 만들어낸 공감의 깊이를 따지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언어의 현명함에 깊이가 확장되게 하고, 잠시 쉴 틈을 주는 영원한 시간을 선사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참으로 오랜 시간 타자의 목적어를 이해하게 하고 또 그만큼 나를 돌아보게 하는 복기의 의미를 준다.

 

 

 

인생의 여러 의미들이 그들의 일상에 가뿐히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그것들로 무사한 보호의 하루일 수 있기를 바라는 선물을 이렇게 또 받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