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인화는 귀신이 하는 짓!


2011/06/08



김명환 / 서울대 영문과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기 피곤하다고들 말한다. 걸핏하면 큰 사건이 터져 주권자인 민주시민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전문가에게 맡겨도 될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부정사건으로 배아줄기세포 등 생명과학에 대해 집중적인 공부를 강요당했고, 2007년 한미FTA 추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사업을 둘러싼 공방 때도 국민은 거의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공부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소위 ‘전문가’들에 맞서서 상식과 이성을 지키기 위해서, 몰라도 인생에 별 지장 없을 공부를 억지로 했다. 얼마전에는 한미 FTA, 한-EU FTA 협정문의 번역오류 파문으로 영어공부도 다시 해야 했고, 1997년 IMF 구제금융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 등 걸핏하면 터지는 대형 금융사고를 이해하기 위해 관치금융의 실태, 금산분리를 둘러싼 경제학의 이론과 실제에도 정통해야 할 판이다.

서울대 법인화 논란, 또다른 공부거리?

이런 판국에 서울대 법인화 논란에도 민주시민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이건 정신적 고문에 가깝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서울대의 체제개편 문제라면 똑똑한 대학 구성원들과 정부 당국자가 알아서 처리할 일 아닌가. 더구나 서울대 체제를 개혁하겠다는데 노동조합이나 일부 교수들이 반대를 한다? 이건 보나마나 지나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세력의 '철밥통 지키기' 내지 무사안일주의가 분명하겠지. 대학서열구조의 정점에서 갖가지 특혜를 누리는 국립 서울대가 연구와 교육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충실히 봉사하기는커녕 자기 문제 하나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배아줄기세포 공부를 강요할 때부터 다 알아봤다며 혀를 찰 국민이 더 많을 것이다.


접어넣기

그런데 지난 5월 30일 밤에 이상한 일이 터졌다. 서울대 학생들이 법인화 중단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포함한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기말시험도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왜 이럴까? 학생들을 기득권세력이라 하기도 곤란하고, 일부 극렬 사회혼란세력이라고 말하기도 좀 어렵지 않은가? 

사태는 심상치 않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몇주에 걸친 준비를 거쳐 5월 30일 2000명을 훌쩍 넘는 학생이 모인 비상총회를 성사시켰고, 장장 5시간이 넘는 진지한 토론과 민주적 의사절차를 통해 서울대 법인설립준비위의 즉시 해체를 요구하는 안이 95%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되었다. 또 학생의 총의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총장실을 포함한 본부 건물 점거농성이 84%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십수년 만의 서울대생 대규모 집단행동

학생들의 행동을 언론이 말하듯이 '기습점거'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비상총회 당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위해 출입구를 만들어 일일이 참석자를 확인하느라 줄이 길게 늘어섰고, 약속이 바쁜 어떤 학생들은 기다리기 힘들어 돌아가는 모습마저 눈에 띄었다.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자리를 지키며 의사를 결집한 것은 지난 십수년 동안 없었던 일이다.

왜 학생들이 느닷없이 이렇게 많이 모여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수년간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학교당국은 법인화에 이견을 가진 교수진, 총학생회, 노조 등과 대화하고 민주적 절차를 이행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작년 12월 8일 국회에서 서울대 법인화법이 예산안 등에 몰래 끼워넣기로 한꺼번에 날치기 통과된 이후로는 대화가 완전히 단절되었다.

민교협, 노조, 총학이 구성한 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가 만들어져 지독히 추웠던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천막농성, 일인시위 등을 하며 줄기차게 대화를 요구했으며, 지난 5월 12일에는 법인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151명(1명은 성명서 발표 후 서명)의 서울대 교수가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성명서에 대한 반응은 법인설립준비위 부단장이 이메일로 공대위 위원장에게 이해를 구한다는 사신을 보낸 것이 고작이었다. 한마디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는 묵살되었고, 성실한 대화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 속기록에 드러난 기막힌 날치기 풍경

기막힌 것은 날치기도 불사하면서 서울대 법인화법을 밀어붙인 주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3월 4일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 속기록(바로가기)을 보면 이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그동안 여당 의원들도 이 법은 숙성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으니 날치기 통과의 주체가 여당이 아니라 이주호 교과부 장관임을 세상이 다 안다고 지적하지만, 정작 이주호 장관은 국회의 의안 처리과정에 대해 자신이 언급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발뺌한다(12~13면). 또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날치기 바로 전날인 12월 7일 변재일 교과위 상임위원장이 장관과 법안 수정 문제를 협의한 사실을 지적할 때 이장관은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신도 TV를 보고 서울대 법인화법 통과를 알았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고수한다.

나아가 김의원이 작년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현 오연천 서울대 총장이 국회에 출석하여 아직 학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이 충분하지 않다고 밝힌 사실을 지적하자(22~25면), 이장관은 전혀 반론을 펴지 못한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여당도 국회의장도 서울대 법인화법 통과를 요청받았다고 말했으니 요청의 주체를 밝히라고 꼬집는다(47면). 심지어 현재 한나라당 원내대표 황우여 의원도 서울대 법인화 과정이 지나치게 졸속이며 재론이 필요함을 명확히 지적했다(55~57면). 실제로 서울대 법인화법은 서울대 외의 국공립대학, 교육단체, 시민사회 등 이해당사자가 폭넓게 참여하는 공청회다운 공청회 한번 없이 날치기 통과되었던 것이다. 

어이없다. 교과부 장관, 교과위 상임위원을 포함한 여당 국회의원 모두 하나같이 서울대 법인화법은 내가 나서서 밀어붙인 건 아니라고 변명하며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다. 권영길 의원 말대로 법안 통과를 대통령이 요청하지 않았으면 장관이 책임져야 마땅하다(47면). 설마 서울대 법인화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대통령이 국회에 직접 주문했을 리 없고, 설령 그렇다 한들 이제 레임덕을 코앞에 둔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장관이나 여당 의원의 도리가 아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논의 시작해야

또 이주호 장관은 "서울대 측에서는 나름대로 또 여론수렴을 충분히 해서 그걸 저희들이 반영"(24면)했을 뿐이라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오연천 총장은 (작년 10월의 국정감사에서 학내 여론수렴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법이 통과된 이상 자신은 법인화를 추진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로 일관하며 점점 더 커져가는 학내 구성원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대학, 최상위 국립대학의 체제가 전면적으로 바뀌는 중차대한 사업을 추진한 책임있는 주체가 이처럼 온데간데없는 것이다.  

그러니 답은 하나다. 서울대 법인화는 귀신이 한 것이다. 이처럼 졸속 추진된 서울대 법인화가 낳을 모든 문제는 앞으로 귀신이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온국민이 드디어 서울대 법인화 귀신에 대해서까지 공부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똑똑하고 혈기 넘치는 학생들이 귀신을 잡기 위해 일이백명씩 집에도 못가고 매일 본부 건물의 찬 바닥에서 밤을 새우는 21세기판 '귀신 잡기'가 벌어진 것은 당연하다.

갈 길은 분명하다. 국회 양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약속하든 아니면 교과위 양당 간사의 합의 형식을 취하든, 서울대 법인화를 재고해야 한다. 더불어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학교 전반의 발전 방향에 대해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적 논의를 차분하게 개시해야 한다. 그리고 서울대 총장은 더이상 졸속으로 서울대 법인화를 추진하지 못하겠다고 안팎에 당당하게 선언해야 한다. 곧 기말시험이다. 학생들은 시험을 잘 치르고 방학계획을 세우기에도 바쁘다. 


사족 1: 농성학생들은 왜 내가 이 글에서 법인화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지 않았는지 항의하지 말기 바란다.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자율성이라는 원칙만 입에 올려도 벌써 피로에 찌든 국민들은 손사래를 칠 터이다. 또 학내의 법인화 논란과정에서 드러난 내부의 문제는 캠퍼스 안에서 토론하도록 하자. 남 보기 창피하다.

사족 2: 농성학생들은 제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지 말기 바란다. 왜냐고? 이장관은 서울대 법인화 귀신과 춤을 춘 넋나간 사람이니까. 정신 나간 사람에게 무슨 책임을 묻겠는가? 만약 제정신이라면 가장 먼저 이 사태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할 것이다.

2011.6.8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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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연이와 종화형이 '인사이드 잡'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같이 보러 간다길래 마침 시간이 괜찮아 급히 합류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2011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했단다. 그런데 서울에서 단 3곳에서만 상영한다고 해, 그 중 하나인 이대의 아트하우스에서 관람했다. 

 2009년 1학기에 대학신문 학술부 기자 신분으로 금융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재 기사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꽤 깊이 공부했었는데, 영화에서 다룬 내용은 사실 거의 전부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땐 잘 몰랐지만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AIG가 주로 판매한 신용부도스와프, 즉 파생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보험을 파생상품을 판매한 투자은행이 구매했다는 사실, 즉 자신들이 판매한 상품이 부실하면 부실할 수록 오히려 이득을 누릴 수 있는 모럴 헤저드의 끝을 보였단 사실이었다. 모기지 회사-투자은행-보험회사-신용등급평가기관의 4각카르텔은 막강했다.

 그러나 글로 보던 것과 실제 사태를 일으킨 인물들이 직접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그들의 뻔뻔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 말도 안되는 책임 회피를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인, 경제 관료, 은행가, 경제학자들이 하고 있었다. 나는 특히 경제학자들의 뻔뻔함과 부도덕함에 치를 떨었다. 하버드대, 콜럼비아대 등 명문대에서 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교수들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던 금융시장에 경고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이 가능하도록 해괴한 논리와 명분을 제공해줬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학계의 자본유착은 상상이상이었다. 금융위기 사태로 국가가 완전히 부도가 난 아이슬란드의 상공회의소로부터 한 교수는 무료 125,000 달러를 받고 아이슬란드 경제의 안정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주었다. 제목하야 'The stability of Island Economy'. 그런데 지금 그의 cv에 이 논문은 'The 'instability' of Island Economy'라고 '오타'가 들어가 있다. 허허. 참 절묘한 오타다.  

 그리고 사태를 일으킨 주범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수천억의 성과급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단지 몇몇 미국인의 돈을 수탈한 것이 아니었다. 금융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핀란드 시골 농민에게까지 사기 파생상품을 팔았다. 이들이 일으킨 금융위기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찾아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았다.  

 한국인이며 한국인의 운명을 따르는 나는 인사이드 잡을 한국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거의 완벽히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저축은행 사태를 보자. 저축은행 사태는 부동산 거품에 편승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은행이 몸집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부실과 부패가 축적되었으나 그것을 감독,규제해야할 금융당국은 그들과 유착하여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 와중에 저축은행은 검은 돈을 통해 정치권을 움직여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저지했다. 주택시장 거품을 촉진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엄청난 파생상품을 만들고, 엄청난 금액의 로비를 펼쳐 금융규제를 풀고 감독을 무력화시킨 금융위기 사태와 매우 흡사하다. 

 미국에서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여전히 추진하는 정책들도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됐다. 강만수 산은회장이 강력히 추진하는 메가뱅크의 탄생은 미국 금융이 한꺼번에 무너졌던 것이 90년대에 활발히 진행된 금융권 통폐합에 따른 위기부담 증가라는 사실에 비춰볼 수 있다. 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합에 나서는 것은 은행의 규모가 커질수록 정부가 은행이 망하는 것을 놔둘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정부가 씨티은행에 엄청난 구제금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씨티그룹이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기 때문이었다. 

 금융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각종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외국 자본에 대한 벽도 낮추려 했다. 한국 경제가 미국의 한 투자회사가 부도가 나자 곧바로 주가가 반에 반토막이 나고 환율이 급등했던 것은 IMF 이후 진행된 금융 규제 완화의 결과였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처럼 빠르게 경제를 지표상으로나마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많은 규제들이 남아있고, 우리의 경제가 아이슬란드처럼 과잉금융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얼마 안 남은 보호막마저도 이 정부는 없애왔고, 또 없애려 한다. 

 무엇보다 긴장되는 것은 학자들의 타락이다. 뉴욕대의 루비니 교수처럼 일찍이 금융위기를 경고해온 교수들도 있지만 미국 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월스트리트의 도둑질에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그들 다수가 이런 파국적인 금융 체제를 비판했었더라면 사태는 일어나지 않거나 조기에 수습되었을 것이나, 그들은 그 대신 바로 그 도둑들에게서 돈을 받고 이사직과 고문직을 맡았다. 사외이사로 기업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는 교수들이 점점 나는 한국 사회에도 학계와 자본의 유착이 매우 우려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서울대 법인화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확장시킬 수 있을 듯 하다. 현행 국립대 체제에서도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김수행 교수님 퇴임 이후에 단 한 명도 없는데, 법인화가 되면 얼마나 더 심해질 것인가? 기업이 원하는 이야기만을 하는 경제학자가 서울대를 가득 메우게 된다면, 그들의 권위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정부 정책은 단순히 친기업적일뿐 아니라 미국에서 파국적 결과를 보여준 금융자본주의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여러모로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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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이냐 교육이냐- 법인화 전선(戰線)에서 국민들께 부치는 편지

 

서울대에선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화 시대 선배들이 너무 얌전하다고 하시던 학생들이 6년 만에 비상총회를 열어 서울대의 광장 아크로폴리스에 2,000명이나 집결했고, 본부 점거를 의결했습니다. 본부는 학생들이 사과하고 불법점거를 풀 때까지 대화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비상총회의 열기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관악에 맴돌고 있습니다. 이 전투는 왜 벌어진 것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요?

 

엄밀히 말해 대학원생인 저는 비상총회 의결권은 없는 후방지원군 정도의 신분으로 지금 여기, 법인화 전선에서 이 편지를 부칩니다. 이것은 단지 학부생들만의 싸움이 아닐뿐더러, 서울대 학생들의 싸움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싸움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여기가 한국 사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론 현실을 볼 때 저희의 저항은 불법과 구태로 매도되거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가 얼마나 많은 국민들에게 가 닿을 진 모르지만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저희의 투쟁을 알아주시길 바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편지를 부칩니다.

 

저희들이 비상총회를 열고 의결한 것은 현재 강행 중인 서울대 법인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법인화는 현재 교과부 산하 국가기관인 국립 서울대를 독립적인 법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서울대의 조직에 대한 문제가 아니냐구요? 저는 서울대 법인화가 단순히 서울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에 대한 상징적·실질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립대는 국가의 고등교육 철학이 직접적으로 구현되는 장소이며, 서울대는 큰 상징성을 띤 곳이기 때문입니다.

 

법인화의 명목상 목적은 지난해 12월 날치기 통과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1조에도 잘 드러나 있듯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통한 교육 및 연구 역량의 향상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교육 및 연구 역량의 향상은 대학 평가 순위 상승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법인화를 해야 세계 대학 순위 20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영미권 대학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순위들을 결정하는 주요 지표는 재정상황, 연구실적, 국제화지표, 졸업생 평판도 등입니다. 심지어 기업CEO들에게 평판을 묻는 고용주 평가가 들어간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익사업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고, 우수한 연구인력을 공무원법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임용하고, 외국인 학생·교수를 유치하기 위해선 현행 국립대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의 목표가 일개 기관이 편향된 기준으로 정한 순위를 올리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대학이 기업의 직업훈련소가 되는 것에는 더더욱 찬성할 수 없습니다. 대학은 기업연구소나 고시학원이 아니라, 바로 그곳들이 제공할 수 없는 교육과 연구를 제공해야 하는 곳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서울대는 자율성 확보라는 미명하에 바로 그 의무를 져버리려 합니다. 유명한 연구자를 스카우트하고, 그래서 더 많은 연구비를 유치하거나 기술을 팔며, 다국적 기업 등 소위 잘나가는 곳에서 활동하는 졸업자를 늘리려는 것, 그것이 서울대 법인화의 지향점입니다. 대학의 기업화로 요약되는 이 지향점에 저는 분명히 반대합니다. 대학은 기업화가 아니라 대학화돼야 합니다. 직업교육뿐 아니라 기초학문 육성, 비판적 담론 형성, 인성·감성 교육 역시 대학의 중요한 의무입니다. 현재 추진되는 법인화는 이러한 의무를 다하는 데엔 효과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법인화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는 사실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법인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난 수년간 양심적인 교수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제기해온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땐 별 반향이 없다가 사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총회가 열렸고 본부가 점거됐습니다. 오히려 지금보다는 법인화안이 평의원회를 통과했을 때, 학생 총투표 결과 반대가 80%로 나타났음에도 법인화안이 그대로 정부에 제출됐을 때, 본부안에서 개악돼 독소조항이 포함된 법안이 연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됐을 때, 학생사회는 침묵했습니다. 그랬던 학생들이 2,000명이나 광장에 모였고 본부에 진입했습니다. 점점 보수화되고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서울대생들이 2,000명이 모이는 것은 총회 개최 직전까지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많은 이들이 총회 성사를 비관적으로 바라봤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침묵을 행동으로 이끈 어떤 거대한 흐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년 지방선거 때부터 시작해 지난 4.27 재보선 때 그 힘을 다시 한번 드러낸 거대한 강줄기입니다. 그 강줄기는 경제와 성장만을 말하는 보수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입니다. 불통(不通)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 정권은 인간을 빵만으로 사는 존재로 규정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집권했습니다. 그러나 집권 내내 양극화는 심화됐고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산층도 등을 돌렸습니다. 애초에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입니다. 물질적 욕구는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 욕구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또한 욕망합니다. 그 인간적 요구를 정권은 묵살했고 국민은 분노한 것입니다.

 

인간을 빵만으로 사는 존재로 키워낸다면 그것은 사육에 다름 아닙니다. 인간을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기업이나 특정 조직의 잠재적 부품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고기를 얻으려 가축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은 사육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입니다. 대입을 위한 사육이 돼버린 중등교육도 모자라 고등교육까지 기업적 인간을 위한 사육의 장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사람 사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고등학생의 낭만이었던 대학생들은 이미 학점과 영어, 스펙의 포로로 고등학생보다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법인화는 이러한 교육의 사육화를 더욱 촉진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부와 정부여당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묵살했습니다. 그러자 마치 촛불의 침묵이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되살아났듯, 80% 반대 총투표의 침묵이 지금 비상총회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 사회를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의 인간 사회로 만들려면 교육과 사육 사이에 난 법인화 전선에서 절대 밀려선 안 됩니다. 서울대의 법인화는 국립대 전체의 법인화로 이어질 것이고, 국립대 법인화는 다른 대학들의 기업화를 더욱 촉진해 고등교육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것입니다. 제가 더욱 두려운 것은 서울대 법인화가 담고 있는 사육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기르는 것,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며 법인화 논의가 돌아가야 할 원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부 점거만으로는 법인화를 원점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하고 있지만 사실 법적으로 법인화를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은 본부가 아닌 국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4.27 재보선과 그 이후가 보여주었듯 국회를 움직일 힘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사육장으로 내몰릴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국립대의 주인인 국민에게 있습니다.

 

본부를 점거하고 있는 백 명 남짓한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미래를 떠맡길 것인가요, 그들과 함께 지킬 것인가요.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쉽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소식을 퍼뜨리시고, 시간 있거나 서울대에 오실 일이 있는 분들은 매일 밤 열리는 특강에 참석하시거나, 서울대 총장실 응원 관광이라도 오시면 됩니다. 훗날 본부와 총장실이 대한민국 교육사의 성지(聖地)가 될 지도 모르니까요. 국민께서 자신들이 주인인 국립대의 교육을 지켜내신다면 말입니다. 지금, 서울대 학생들은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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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빛 2011-06-0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기사를 읽고 감동받아서 댓글 남깁니다
국민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포인트와 적절한 비유까지.
가볍게 웹서핑 하고 자려다 정말 좋은 기사를 만났네요.
오늘 일어난 일 중 가장 행운입니다.
인터넷 기사를 읽고 직접 댓글까지 남기는 일은 처음인 것 같네요
저는 스펙에 시달리는 졸업반 학생입니다.
대학은 대학화되어야 한다는 기자님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하며
투쟁하는 서울대 학우분들 많이 알리고 또 응원할게요 ^^ 화이팅!

졸업생 2011-06-02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마이뉴스에서 기사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저도 법인화 반대합니다. 힘내세요!!!

비니 2011-06-02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사 봤습니다.!! 힘내세요!!
정말 티비엔 잘 안나오는 것 같아요. 나와도 딱히 집중적으로 다가오지도 않고...;
청년들이 직접 나서 행동하는 모습에 오랜만에 속 시원하고 반가웠습니다.
꼭 성취 하시길 바랍니다. !!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알라딘 서재와 독서 리스트 선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9기 알라딘 신간평가단으로 선정된 것이다. 나는 신간평가단의 여러 부문 중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지원했는데 원래 8기까지는 인문/사회 분야만 있었던 듯 하다. 즉, 이번에 '과학'이 신간평가 부문에 새로 추가된 것으로 보이는데 서평 대상 도서 선정 시스템을 보니 실질적으로 '과학' 부문이 추가될 수 있을지 좀 미심쩍은 상태다. 왼쪽 카테고리에는 '인문/사회/과학 주목신간'이 아닌 '인문/사회 주목신간' 카테고리만 있고, 다른 평가단들의 4월 독서리스트에 포함된 과학서적은 시뮬님네 서재에 한권, 서향님네 한권, 귀를기울이며님네 한권,  drheaven 님네 한권, 그리고 내 서재의 한권이 전부였다. 20명의 평가단이 가장 많이 꼽은 두 권을 선정하는 시스템 하에서, 20명 중 5명만이 후보를 한 권씩 꼽는 과학 분야의 책이 선정되는 것이 가능할까? 왠지 느낌상 평가단분들 중 일부는 과학 분야도 이번에 새로 포함됐음을 모르시는 듯한 느낌도 든다. 아무튼 서설이 길었는데, 요지인즉 나는 과학부문 책도 받아서 서평을 써보고 싶고 또 평가단의 훌륭한 다른 리뷰어들의 과학 서평도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소망을 담아 이번에는 과학 분야에서 두 권의 책을 먼저 선정하고자 한다. '탄생'과 '진화'라는 키워드로 아주 잘 엮이는 『선의 탄생』과 『아버지의 탄생』이다. 한세기 전만해도 오로지 인문/사회학적 성찰대상이었던 '선'과 '부성'이 오늘날 과학적 탐구 대상이 되게 된 것은 오롯이 '진화론'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진화론은 역사학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 지구상에 없던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땅에 나타나게 됐으며, 그 후에 어떤 변천사를 거듭했는지를 추적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 땅 위의 모든 것들은 진화론의 잠재적 탐구 대상이다. 

  '선(good)'이라는 개념과 그 개념적 실체 역시 진화의 산물이다.  『선의 탄생』은 '성선설'의 진화론 버전이다. 지은이 대거 켈트너는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이며 인간의 선함은 행복과 진화적 성공의 열쇠라는 주장을 설파한다. 동양 철학의 '인(仁)' 사상과 진화론이 어떻게 만나 무슨 얘기를 풀어놓을지 자못 기대가 된다. 

 

 

 

 

 

 나에겐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아이를 직접 낳고 키우는 모성과 달리 부성은 사실 상당히 모호하며 또 다양하다.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아버지들은 각양각색이다. 자식과 나란히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한 아버지부터 딸과 시시콜콜한 수다를 떠는 아버지까지 별의별 아버지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가부장적인 종(種)에 속하는 인간이 점점 탈가부장화 되면서 부성의 역할이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는 오늘,『아버지의 탄생』은 아버지의 진화적 탄생을 추적해들어가며 오늘날의 아버지들의 초상을 이야기 한단다.  

  

다음으론 인문/사회 분야에서 세 편을 꼽아보겠다. 

 

  학부시절, 철학 관련 교양 수업을 두 개를 수강했었다. <철학 개론>과 <인식론의 이해>였는데, 두 수업 다 현대철학은 거의 다루지 않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서만 살짝 다루었다. 현대 철학이 궁금했던 나는 <현대 철학의 사조> 같은 강좌를 수강할까 했는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졸업을 하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서동욱 교수의 『철학 연습』은 못 다 이룬 목표를 달성시킬 검정고시 같은 책이다. 시간과 역량상 현대철학을 깊이있게까지는 접근하기 어려운 나에게 얉고 넓게 지난 세기 인간 의식 '진보'의 열매를 맛깔스러운 요리로 제공해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4.28 재보선에서 승전보를 올려 주가를 나날이 올리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보면 우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저 사람은 국가를 자신에게 맡겨달라 하는데, 그에게 맡기면 어떤 국가를 만들지 좀처럼 그려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재보선에서 손학규 대표와 운명을 달리한 유시민 대표는 국민참여당 대표는 정반대다. 전작 『후불제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대한민국 헌법에서 찾아 분명히 밝히기도 한 그는 이번에는 좀더 직설적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내놓았다. 현실정치인인 그의 '국가론'은 단순히 학문적 차원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고찰을 넘어서는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곧 자신은 유력 대권주자인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재보선 패배로 입지가 많이 위축됐다지만 여전히 그는 야권 연대의 주요 변수인 만큼 그의 국가관을 들어보는 건 정치의 해인 2012년을 충분히 즐기기 위한 준비이기도 할 것이다. 

 

 검사와 스폰서, PD 수첩을 보며 나는 얼마나 분노했던가. 죄인을 단죄해야할 검사가 일상적으로 죄에 물들어 있고, 그러한 위험성을 감찰해야할 감찰부장까지 범죄자인 현실은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끔찍했다. 그리고 그 후에 진행된 면죄부 수여과정은 우리 사회의 권력층에 대한 기대를 깔끔히 접게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일부에 불과하단다. 양심선언을 한 스폰서 정씨가 차마 못다한 이야기들을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에 담아 출간했단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견제할 힘은 오직 국민만이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우선 '앎'에서 시작된다. 구린내나는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우선 알아야겠다. 그래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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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에 있어 가장 거대한 도전은 '타자성의 극복'이다.
 
'나'는 나를 넘어선 어떤 것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오해는 시작된다. '나'는 '너'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너의 '느낌'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나에게 너는 오로지 '나의 너'일뿐이다. 나는 절대 '너'가 누구인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감각하는 세계는 오로지 '나의 세계'일뿐이며,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 그 자체는 나에게 완전한 남이다. 그것은 나의 완전한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는 진실과 거짓의 양면을 가진 뫼비우스의 띠이다. 진실의 끄나풀을 따라 나아가면 거짓에 서 있고, 거짓을 추적하다보면 진실이 나를 기다린다. 나는 세계를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나는 오로지 '나의 세계'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단절은 내 감각의 한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내 감각의 한계는 '나'라는 존재의 단절성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리하여 유일한 희망은 사랑이다. 사랑은 타자성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나'와 '너'의 단절을 넘어서기 위한 인류사적 기획이다.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가 '남남'임을 거부하고 타자성을 넘어설 수 있는 관계맺음을 추구한다.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의 운명을 엮으려 하며, 종종 상대를 위해 자신의 삶까지 희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랑은 가장 큰 절망이기도 하다. 그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도 도저히 좁힐 수 없는 타자성의 간극을 목도할 때, 아무리 엮으려 해도 서로의 운명은 각자의 것임을 확인할 때,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죽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라는 그 단절의 끝에서 나는 나와 너/세계를 갈라놓는 거대한 분리장벽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그래도 사랑의 길이다. 사랑마저도 타자성을 절대 극복할 수 없고, 그리하여 사랑이 날 가장 외롭게 한다 하더라도, 길은 사랑이다. 사랑은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먹고 사는 존재다. 사랑이 한낱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세계와 함께 시간의 종말을 맞는 꿈을 꾸겠다. 그 꿈의 길이 아닌 막다른 골목에는 오직 자살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길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어떤 길을 걷건 죽음이라는 똑같은 종착역을 향해 나아간다면 나는 기왕지사 환각을 즐기겠다. 행복을 누리겠다.
 

눈부신 5월의 하늘 아래, 대한, 사랑하기로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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