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식탁 - 조동범 산문집
조동범 지음 / 알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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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여느 때처럼 정리하고 돌아와 당신은 저녁 식탁을 차린다. 어제 꺼냈다가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 놓은 반찬은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저께 부친 계란말이의 냄새를 한 번 맡아보는 당신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힌다. 계란말이는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그 빈자리는 지난 주말 당신의 어머니가 볶아 보낸 멸치 반찬으로 메운다. 밥은 새로 지었다.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며 당신은 오늘을 생각하고 어제를 생각하고 이내 내일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닮아 있었다. 어제를 오늘에 붙여 넣는 삶이 그저 깜깜하게만 느껴졌던 시기가 당신에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 당신은 가끔 생각한다. 오늘 같은 내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고, 그렇게 느끼는 것을 보면 나도 행복이라는 정체 모를 존재의 그림자쯤은 밟고 선 것이 아닐까 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산다는 것은 가령,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람은 식탁을 차린다는 그 거대한 일상성에, 어제의 계란말이가 오늘의 멸치볶음으로 바뀌는 정도의 소소한 변화가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한 끼 식사 같은 것은 아닐까 하고.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삶의 진실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거나 홀로 식탁에 앉아 텅 빈 벽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짜 모습이다우리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깨달음은 바로 그런 순간 느끼는 사소한 것들로부터 비롯된다삶이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를 만든다. _ 189 

 

그래서 당신은 늘 타인의 식탁이 궁금하다. 당신의 오늘이 당신의 내일과 닮았듯이, 당신의 오늘이 타인의 오늘과 닮았는지를 당신은 늘 알고 싶다. 이 저녁 식탁에 면한 거대한 벽을 넘어가면 건너편 가정에도 누군가의 식탁이 있을 것이다. 그 위에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미소를 생각하며 끓여낸 미역국이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슬픈 마음을 위로하려 사 들고 온 치킨이나 족발 같은 것들이 놓여 있을 수 있다. 당신의 입에 젓가락이 물려 있는 지금 이 순간 벽 너머의 누군가는 숟가락을 물고 있을 것을 생각하는 당신은 타인의 식탁이 몹시 궁금하다. 그 식탁을 둘러싼 사연을, 식탁 위에 올라와 반찬과 함께 체내 흡수되는 말들과, 차마 말해지지 못하고 냉장 보관되어 다음 식탁까지 유예되고 마는 말들을 당신은 알고 싶다. 식탁을 차린 이의 마음과 식탁을 받는 이의 마음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되어 만났는지 당신은 알아야겠다. 설령 그 식탁에 앉은 이가 단 한사람뿐일지라도, 꼭 지금의 당신처럼.

 

당신의 식사 시간은 길어야 십오 분을 넘기지 않았다숟가락을 들고 묵묵히 음식을 먹는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서관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은 언제나 고요하고 쓸쓸하다어느 밤창밖으로 비가 왔는지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여전히 혼자 밥을 먹을 것이다당신 앞에 놓인 빈 그릇이 서늘하게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당신의 저녁이 쓸쓸하게 저문다그때 창밖으로 비가 왔는지아니면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_ 28-29

 

이웃의 문을 두드려 당신의 식탁은 어떻습니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라서 당신은 결심한다. 타인의 식탁을 당신의 손으로 만들어보기로. 당신의 손은 밥보다 글을 잘 짓는 손이라서 당신은 결정한다. 식재료 대신 단어를 손질해보기로. 당신은 깨끗이 치운 식탁 위에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식탁의 주인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혼자다. 4인용 식탁을 혼자 쓰는 남자를 만든다. 그는 오래전 헤어진 애인을 잊었는지 잊지 못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다. 당신은 지난여름, 노르웨이 여행에서 계획 없이 들렀던 현지 식당에서 받았던 감동을 떠올린다. 여행지의 현지 식당을 들르는 데서 여행의 의미를 찾는 익명의 여행자를 만든다. 그는 할 말이 많다. 당신이 그 식당에 들어갔을 때,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신은 고국을 기억하는 일이 힘인지 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이주노동자를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한다. 일찍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 어쩐지 씁쓸했던 서른 살의 생일 케이크, 한국에도 실제로 있을 거라 믿고 찾아다녔던 일본 드라마 속의 심야식당, 선임병의 괴롭힘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어느 군인에 대한 뉴스 같은 것들을 계속 생각한다. 생각의 꼬리를 무는 생각을 따라 백지 위로 볼펜을 휘갈겼고, 마침내 40번째 이름을 적으며 당신은 펜을 내려놓는다. 밤이 깊었다. 그러나 당신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당신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지만 다음을 위해 아쉬움을 담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차창 밖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휴일 밤이 펼쳐진다나는 문득 내일쯤 세차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세탁소에 들러 맡겨놓은 세탁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어느덧 밤은 완벽하게 어둠을 풀어놓고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노인 지구본을 돌리며 리투아니아아이슬란드비엔나아른험 등의 낯선 이름을 불러본다그러나 그곳들은 너무 멀리 있다닿을 수 없는 세계처럼 낯설게그러나 그 어떤 그리움처럼 있구나아주 먼 그곳에. _ 45

 

당신은 종이 위 40개의 자아를 내려다보며 그 안에 당신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생각한다. 40명의 주인공들은 당신의 조각인가? 그렇다. 40개의 조각을 모두 합치면 온전한 당신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은 이 40개의 자아를 모두 사랑하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온전한 당신도 아니고 온전한 사랑도 아니라면 당신이 만든 40개 자아의 현실감이나 생동감은 그만큼 부족한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당신이 낳은 인물들이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확신하는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당신의 전략은 무엇인가?

 

나는 문득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당신들의 어깨라는 것을 깨닫는다당신들의 어깨는 움츠린 듯 힘없이 나를 등지고 있다당신들의 어깨는 고단한 이민자의 삶을 이야기하면 흐느끼고 있는 것 같다저물녘 해변과 퇴근길의 적막함을고요하게 잠든 아이들을돌아갈 수 없는 그 어떤 날들을 말하려는 것만 같다당신들의 어깨는 다른 듯 삶았다이제 곧 당신들의 어깨는 식당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겠지현관문을 열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는 당신들은 이제 마지막 술잔을 끝으로 오늘 밤을 마무리하려 한다술자리의 왁자함이 잦아들고 적막함이 밀려든다당신들은 저편의 테이블에서나는 이편의 테이블에서... 그렇게 오늘 밤이 침몰하기 시작한다. _ 55

 

당신은 당신이 만든 40개의 자아를 당신이라고 혹은 라고 부르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읽는 이의 마음을 직접 두드려 여는 좋은 전술이라고 당신은 믿는다. 일리가 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이라 호명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당신이라 호명됨으로써 당신이 건넨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한다. 당신이 40개의 자아를 만들어 낸 것 역시 신통한 작전이다. 우리가 당신의 호명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40배로 늘림으로써 당신은 우리에게 40배 촘촘한 그물을 던진 셈이다. 이 중 최소한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생각을 당신은 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합리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겉보기엔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삶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40개의 올가미만 던지면 그 안에 우리 모두를 잡아넣을 수 있을 만큼 톤다운 된 삶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당신의 삶이고, 당신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는 뻔하고 뻔뻔하지만 울 뻔한 말을.

 

보름과 그믐을 반복하며 시간이 지나간다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십 대가 지나가고 서른이 펼쳐진다그러나 이십 대의 마지막 날인 어제와 서른의 시작인 오늘은 아무 차이도 없는 어제와 오늘일 뿐이라고 당신은 생각한다오늘 밤이 지나가면 당신은 이십 대 때보다 조금 더 멀리 나아가겠지탁자 위에 놓인 생일 케이크가 물끄러미 엄마와 당신을 바라본다텔레비전 불빛에 드러난 엄마의 얼굴이 왠지 더 친숙하다당신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한 엄마의 얼굴이 텔레비전의 희미한 불빛을 따라 서글프게 일렁인다오늘은 당신의 서른 번째 생일이다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상현인지 하현인지 알 수 없는 오늘 밤 달빛이 서른이 된 당신과 삼십 년 전 엄마의 얼굴을 희미하게 내려다본다. _ 83

 

당신이 만든 40개의 자아를 내가 끝까지 40명의 주인공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사과할 일인지 아닌지를 나는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쓴 40개의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실망 없이 실감한다. 우리로확장시키는 것은 당연히 섣부른 이야기겠으나, 그래도 무리하여 말해 본다면, 우리는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다. 단지 주인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도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다. 단지 우리 식탁의 주인일 뿐이다. 우리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인생이나 행복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그 위로 달려가기 위해 깔아놓은 철길이 아니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일은 투여하는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항상 던져주지는 않는다. 행복은 때론 행복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품에 안기거나, 더 행복할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 쓸데없이 한 스푼 더해지느라 올바른 자리로 찾아드는데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행복의 도움 없이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차리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식탁을 차린다. 가끔 마지막 달걀로 만든 달걀찜을 홀랑 태워먹기도 하고, 김치와 물김치와 김치찌개를 한 상에 올려야만 하는 희한한 날도 있으며, 또 아주 가끔은 무슨 조홧속인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갈비를 뜯었는데도 냉장고에는 여전히 양념갈비가 잔뜩 절여져 있는 복된 날이 오기도 한다. 우리는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을 한다. 이 식탁을 차리기 위해 통과해왔던 사건과 감정의 고리들이 반찬으로 차려져 있고, 우리는 그걸 집어 오늘을 배불리고 내일을 준비한다. 어디를 어떻게 무엇이 되어 지나왔든, 일단 식탁이 차려지면 우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는 그 식탁의 주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식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식탁 앞에서 행복을 생각하는 일이 식탁을 서운하게 하지 않도록, 식탁 앞에서만큼은 행복을 식탁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불러도 좋겠다.


여기식탁이 있다수많은 식탁 위에는 분주했던 월요일 저녁이 웅성거리기도 하고주말 오후에 한가롭게 내리쬐는 햇살이 서성이기도 한다식탁 앞에서 당신들은 사랑이나 슬픔 혹은 고단한 저녁에 깃든 쓸쓸함과 마주하며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기도 한다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다그것이 설령 슬프고 서러운 기억일지라도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극만을 풀어놓는 법이 없다슬픔조차 추억이 되게 하는 시간그것이 바로 식탁이 주는 힘과 감동이다. _ 10

 

당신이 만든 이야기로 저녁상을 차렸다. 새벽까지 먹었다. 나쁘지 않은 식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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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1-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읽고나니까 오늘 저녁 밥상에는 계란말이와 멸치볶음을 같이 올려놓고 싶어졌어요.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저녁 밥상을 차려 혼자여도 맛있게 먹고 싶어졌어요. ^^
늘 그렇듯 밥상 맞은편 티비에서 나를 마주한 고로 아저씨와 각자의 식사를 즐기면서요.~

syo 2019-01-11 16:10   좋아요 1 | URL
우리 모두의 밥 친구지만 누구의 밥 친구도 아닌 고로 아저씨.....

설해목님의 오늘 저녁 행복한 식탁을 기원할게요 ㅎㅎㅎ

2019-01-11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1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9-01-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syo님, 올해 목표하신다던 ‘한 권을 깊게 읽기‘를 실천하신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syo 2019-01-11 17: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닙니다. 깊게 읽지 않고 평소처럼 읽었어요^-^ 그냥 리뷰를 하나 써 본 것 뿐이지요.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 님의 인기는 굉장히 두루뭉실하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라는 마인드‘죠.
이 마인드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조금 비열하기는 하죠. 이런 식으로 표를 모으는 게 정치인이듯이
쇼 님도 그런 것을 향한다는 게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
그냥 좆같은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세요...
너무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이 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평소 느낀 생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08   좋아요 0 | URL
아마. 이 댓글에 대해서도 쇼 님은 굉장히 달콤한 덧글을 작성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 댓글 읽고 당황하셨죠 ? ㅎㅎㅎㅎ 알리딘의 재롱둥이가 되지는 마세요.

syo 2019-01-11 17:18   좋아요 6 | URL
어제도 다른 데서 비슷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나쁜 말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인데 후지다고 해서 놀랐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오프라인에서는 호불호가 되게 쎈 인간이면서, 온라인 공간에서는 말씀하신대로 두루뭉수리하게 지나가는 일이 잦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까지는 아니고 ‘분란 만들면 귀찮잖아‘ 정돈데 사실 그 두개는 별로 큰 차이가 없긴 하지요.

그게 비열한 마인드라는 말씀에 공감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합니다. 말로는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해놓고 막상 행동은 흐지부지하게 하니까요. 곰발님이 그렇게 읽으셨다면 제대로 읽으신 거고, 제대로 읽으신 거라면 관심있게 읽어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대응하는 것도 불편하시겠지만, 좆같은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곰발님 말씀이 좆같지 않아서 욕하지 않는 거니까 이해하세요 ㅎㅎ

소심하게 태어났고 소심하게 자라나서 미움받는 일을 굉장히 겁냅니다. 인기까지는 욕심내지는 않지만 미움받는 일에는 상처를 크게 입을만큼 멘탈이 두부라서,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게 본심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좋은 것에 칭찬하고 싫은 것에 욕을 날리는 곰발님이 항상 부럽고 멋있습니다.

좆같은 것에 대해 욕하는 제게 맞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 볼게요. 저한테 그게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34   좋아요 1 | URL
언제부터인가 쇼 님은 알리딘의 재롱둥이가 되었어요.
의성어와 의태어 남발하면서 누님들 사랑 받는 것에 굉장한 희열을 느끼는 듯합니다만...
아니, 왜 그러세요 ? 저는 그냥 쇼 님이 좋아요 클릭 얻기 위해 희노애락 중에 희‘를 남발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게 굉장히 추합니다... 물론 인기쟁이 쇼 님을 공격해서 가뜩이나 알라딘 밉상인 제가 받을 타격이 더 심하긴 하겠지만... ㅎㅎㅎㅎ 뭐. 초심을 찾으세요.. 내 지적질이 존나 역겹겠지만...

syo 2019-01-11 17:55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완전히 틀린 말씀 아니시구요.
평소 느낀 생각이시라니 많이 참다 참다 꺼내신 말씀일텐데요.

저는 곰발님 많이 좋아합니다. 제가 미움받기 싫은 대상에는 당연히 곰발님도 포함되어 있구요.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서 하신 말씀이 각별히 의미가 있습니다. 표현하신 것처럼 보였다면, 추하다는 표현도 별로 부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구요.

해주신 말씀이 ‘공격‘이라 할 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곰발님께 무슨 타격이 있겠어요. 그럴 만한 일도 아니고요. 그리고 그런 거 1도 신경 안 쓰시잖아요. 하셔야 될 말씀이라 생각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하시는 거 다 압니다ㅎㅎㅎ. 일러 주신 대로 초심 생각 많이 하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1-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포일러를 되게 싫어해서 발췌 부분은 안 읽고 리뷰어의 코멘트만 봐요. (그러면서 저는 정작 따옴표로 스포일러 남발ㅋㅋ내로남불) 결국 안 볼 책들도 그래요. 이 리뷰도 늘 그러듯 syo님 목소리만 골라 읽고 난 소감은...짝짝짝 내 맘대로 이 달의 우수 리뷰로 선정하였습니다. 누구는 그 많은 책을 집어 먹고 나서 집요하게 파고 드는, 그러면서도 깨끗하고 정리된 문장들을 쏟아 놓는구나 했어요(syo님 얘깁니다). 반면에 그만큼 집어 먹고도 그저 그런 식상한 말들을 풀어 놓거나 (저처럼) 개똥 같이 마구 갈겨 놓았네 하는 글도 많이 보네요. 지적하고 비판하고 친밀한 척 걱정하는 척 하는 것은 쉽지만 그런 것들 안 하면서 남에게 리액션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책깨나 읽었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더 한 것 같습니다. 그 어려운 걸 하고 계시니 저는 그저 리스펙트...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위해 계속 (개똥같이) 이 모냥으로 살겠습니다. (말은 이래 놓고 감화되어서 점점 착하게 읽고 쓰려고 애쓰는 중인 듯...)

syo 2019-01-11 2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칭찬해 주신 만큼의 대단한 글도 아니고, 역시 칭찬해 주신 만큼의 대단한 인간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읽던 대로 읽고 쓰던 대로 쓴다고는 하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방향으로 자기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열반인님의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는 사실로 이 글은 크게 만족합니다. 제게도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썩 흡족한 글이었거든요. 짧은 이야기들을 40개 모은 책이고, 제가 옮겨 적은 문장이 크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제가 적은 것보다는 훌륭한 글들이 실려 있는 책이니, 일독하실 만한지 발췌 부분을 통해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열반인님이 제가 쓰는 것들을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성의있게 댓글을 달아주시는 것을 압니다. 항상 힘이 납니다. ㅎㅎㅎㅎ 저도 열반인님께 그런 서재친구가 되면 좋겠어요. 감화 같은 건 넣어두시구요. 지금 열반인님의 글이 얼마나 맛깔나게요 ^-^

북다이제스터 2019-01-1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제겐 이렇게 솔직한 글 쓰기가 참 어렵더라구요. ^^ 부럽고 항상 응원합니다. ^^ 화이팅^^

syo 2019-01-11 21:04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북다님의 글이야말로 항상 제겐 부러운 글입니다. 잘 읽고는 댓글도 하나 없이 훌쩍 가버려서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이렇게 저한텐 응원 말씀도 해주시는데 ㅎㅎㅎ

원더북 2019-01-1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자주 안 달지만 오늘은 꼭 보태고 싶네요. syo님의 글은 쎈 척 안 해서 좋습니다. syo님만의 방식이 있는걸요^^

syo 2019-01-11 23:12   좋아요 1 | URL
syo의 글이 이렇다 말씀해 주실 수 있을만큼 읽어주신 것 자체가 저는 감사합니다. 그게 힘이 됩니다^-^

원더북 2019-01-11 23:34   좋아요 1 | URL
syo님과 다른 몇몇 이웃님들의 좋은 글들 읽으며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읽기만 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저도 뭔가 읽을 만한 글로 보답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자주 글을 못 써서요^^; (아~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비루한 인생;;;) 저도 syo님 글 읽으면서 힘내고 있습니다. 제가 감사해요^^

카알벨루치 2019-01-1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자요 Syo님! 이불 걷어차지 말고, 바지 벗지 말고 굿밤!^^

syo 2019-01-12 00:13   좋아요 0 | URL
어제도 벗었더라구요... 벗어서 던지진 않고 발목에 걸치고 있던데ㅎㅎㅎㅎ

카알님도 좋은 꿈 꾸세요^-^

카알벨루치 2019-01-12 00:33   좋아요 0 | URL
난 쇼님의 이전모습 보다 지금 모습이 더 익숙해서 그런데...다양한 얼굴을 가진 분이시구만요 포커페이스의 달인 이시네! ㅋㅋ

syo 2019-01-12 00: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전 모습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모습만 있는 건데, 단지 이전부터 되고 싶어했던 모습이랑 지금 모습이랑 사이의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죠 뭐ㅎㅎㅎ

아직 여러모로 미흡합니다, 제가요ㅠ

2019-01-12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3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3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쓰러울 정도로 줄어든 통장 잔고를 제외하고 2017syo2018syo로 바뀌면서 변한 것은 다음과 같다. 숫자는 변하지 않았으나 부위별 집적도가 달라져 기묘하게 뵈기 싫어진 육신. 이제는 전기방석을 풀 파워로 가동해야 추위를 버틸 수 있게 된 육신. 조금만 잠을 잘못 자도 다음날 목이 뻐근한 육신. 육신. 육신. 야 이 비루한 육신 놈아...... 이런 저런 것들을 죄다 상실의 범주에 밀어 넣고 나니,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이 있기나 한가를 따져보게 되는데, 책이..... 그 와중에 책꽂이에 꽂힌 책의 수가 쬐끔 늘었다..... 하지만 세상의 보편적인 시선은 그것을 상실로 친다. 돈도 없는 놈이 또 책을 샀니. 책이 저렇게 많은데 또 샀니. 그래야만 했던 거니. 왜 대답이 없니......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2018syo2017syo보다 더 많은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아야만 했던 것일까?

 

울어봐야 글만 길고 축축해진다. 어차피 답 없다. 답 없는 인생이다. 인생은 짧다. 긴 말 않겠다.

 

 

201812 : 42

 


1. 아침의 피아노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에 대해 설명하시던 김진영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오른다. 5년쯤 된 것 같다.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는’, ‘천사는 머물고 싶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결합하고 싶지만,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는파울 클레의 바로 그 천사가김진영 선생님의 부고를 들은 날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선생님은 벤야민을 보듯이 그 천사 그림을 보시는 듯했다그리고 나는 이제 벤야민을 보시는 선생님을 보듯이역사의 천사를 본다이제 폭풍을 피하여 날개를 편히 쉬이시기를.


2. 시민의 물리학

: 시민의 물리학이라는 말은 시민을 위한물리학이라는 뜻이겠으나, 솔직히 말해서 시민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할물리학이라는 뜻이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래서 시민들이 다들 이만큼의 물리학 지식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진 않다. 과학에 대해 아는 것은 과학 바깥을 보는 눈을 크게 바꾼다. 물론 지나치게 나이브한 생각이겠지만, 어쨌든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굉장히 기초적인 개념만 가져도 타인을 보는 방법, 타인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객관적인 관찰이 불가능하고 모든 판단이 근본적으로 개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에 따라 해서는 안 될 짓과 해서는 안 될 말들이 늘어나며, 결과적으로 뭐라도 더 나아진다. 과학 알아서 나빠질 일은 없다.

 

3. 슌킨 이야기

: 혹자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꼽는다고 하지만, 대저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그리는 사랑은 늘 지극하면서도 어딘가 기묘하게 뒤틀린 모양새인데, 그 뒤틀림 속에 뒤틀린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이 사랑이 굽고, 꺾이고, 왜곡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네가 소중히 품고 있는 사랑의 이데아가 그야말로 이데아라서 그런 것일 뿐이지. 눈을 크게 뜨고 네 육체를 둘러친 사랑을 세밀히 보라. 많이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 사랑이 기괴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건 그저 너 자신이 기괴하다고 인정하는 일에 그칠 것이다. 이런 설득력 있는 윽박지름에 쫓겨 인정하게 되는 그런 아름다움 같은 것.......

 

4.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 이런 책은 실력만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곤충이라는 희귀하고 널리 인정받지 못하는 장르에 자신의 역량과 애정을 쾌척할 수 있는 참인재가 태어나야 하는 것인데 고맙습니다. 재미있었어요.

 



5.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철학 수업

: 과연 그렇게 자신 있단 말이지? 하는 마음으로 굳이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만 읽은 syo의 삐딱함도 삐딱함이지만, 정말 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시리즈의 어느 책도 읽다가 잠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으니, 너희도 참 너희다.

 

6. 단어의 발견

: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아마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그게 뭔지 알아채지 못하겠다. 이것이 하나의 그림이라면 아마도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었을 텐데 그게 뭔지 알아채지 못하겠다. 그저 말하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마음만을 감지하였다. 그건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의 글은 아름답고 당신의 말은 훌륭하네요. 결국 당신이 전하고 싶은 말, 당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 제가 알아 챈 딱 그것이었으면 참 다행이겠네요.

 

7. 인류세

: 인류세를 맞이하여 우리가 무엇을 하자- 이런 걸 기대하고 읽었으나, ‘인류세라는 단어의 정체성을 지정하고, 그 단어의 참된 저작권을 주장하며, 인간이라는 특별한 종의 위대함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9/10의 분량을 할애한다. 나머지 1/10은 참고문헌 목록이다. 전혀 설득되지 않았고, 틀린 생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필요한 생각이라고도 느껴지지 않았다.

: , 은근히 잘 안 읽힌다.

: , 저자는 되게 아는 게 많은 것 같다.

 

8. 하나만의 선택

: 박이문 선생님의 인생 행로를 세밀하게 따라가 볼 수 있는 자서전이다.

: 사실 이건 자서전의 정의를 중언부언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왜 이렇게 써야 했을까? 엇흠. 엇흠.

 


9. 나는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 첫째, 인간은 무엇이며,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 둘째, 그렇다면 나는 결국 인간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 dcdc! dcdc!

 

11.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1

12.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

: ‘현대 문학을 좋아라 읽고 역사도 좋아라 읽는데 한국’ ‘현대 문학’ ‘에 대해서는 무지몽매에 가깝다. 그것은 아무래도 현대 문학에 대한 애정이 한국에 대한 감정과 상쇄되면서.....

 


13. 같이 걸어도 나 혼자

: 꼭 두 여주인공의 우정에 관한 소설로 독해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는 수준을 넘어서서, 사실 여성의 우정에 대해 유쾌하고 치밀하게 포착해 낸 근사한 소설이라는 정세랑 소설가의 추천사가 붙어있지 않았다면, ‘우정이라는 제재는 syo에게 포착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 없이 봐도 여러 모로 읽을 만한 소설이다. 읽어야 할 소설까지는 결코 아니겠으나.

 

14. 10년 동안의 빈 의자

: 오랜만에 시집이나 한 번 읽어볼까, 이러면서 서가에서 뽑아서는 음음 새롭군 새롭도다 그러면서 읽었는데, 다 읽고 북플에 읽은 책으로 등록하려고 보니까 5월에 읽은 책이었음. 5월은 올해 5월이었음...... 과연 이런 것도 한줄평으로 기능할는지......

 

15. 어린 당나귀 곁에서

: 팟캐스트를 진행하시던 시절 들었던 김사인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정갈하며 물이 깊고 물살이 급하지 않은 시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지, 그 호수 같은 소리와 말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밟아온 길들에 대해서. 어떤 시인은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시 뒤로 숨어드는데, 또 어떤 시인은 시를 읽고 나서야 진짜 이 사람을 알겠구나 하는 외람된 생각을 들도록 하며 시 앞으로 나선다. 다시 한 번 외람되지만, 그렇다면 그 시인은, 혹은 시는 외설적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16.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잘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언젠데? 3년 뒤? 6달 뒤? 다음 주?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 요런 마음으로 사람들은 쓰기 책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일단 나보다 잘 쓰는 것이 분명한 이가 쓴 쓰기 책은 뭐라도 건질 게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위장하였지만 실은 노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실력을 얻고 싶은 도둑놈 마음)으로 syo는 이런 책을 자꾸자꾸 열어본다. 그리고 별 게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아쉬운 동시에 안심한다. 휴우, 최소한 나만 빼놓고 다들 몰래 보고 있는 글쓰기 비급 따위는 없겠구만.

 


17. 전공이 보이는 미분적분학

: 미분적분으로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려 보려는 이를 보통 변태라고 부를 것이다. 그래도 이과 출신에다 한때 공대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10년도 더 전에 만났던 어떤 난관들을 돌이켜 다시 한 번 젊음을 소환하려는 시도를 한 것인데, 변태라고 손가락질하기 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시길.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추억을 되살리는 데 쓸 만한, 그 정도의 미분적분학 책이라 하겠다.

 

18.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평생을 바친다면 한두 가지, 진짜 천재들은 많이 쳐줘서 다섯 가지 정도의 주제에 관해 전공자가 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5721582051020개의 분야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문외한만 면할 수 있는 운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다. 강의자. 그들을 축복해야 한다. 개론서 저자. 경외하자. 입문서 저자. 그 축복의 만신전에는 과연 만 개의 이름이 올라가겠지만, 그 가운데는 더욱 신심을 다해 감사해야 할 이가 있으니, 빌자, syo. 고병권 선생님의 불로장생을.

 

19 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 한때 같은 도시에 살았던 두 사람이, 역사의 바퀴에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충격을 안겨준 걸로 치면 TOP 5 안에 너끈히 들어갈 두 혁명쟁이가 전혀 교류 없이 저마다 살다 저마다 죽은 이유는 다윈의 무지나 오만(혹은 오판) 때문이라고, 마르크스 평전은 말한다(다윈 쪽에서는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다.) 만나지 못한 그들을 픽션의 저녁 식탁에 둘러앉혀 보았는데, 결국 그들의 만남은 안 만남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아쉬울 건 없지만 뿌듯할 것도 없는 만남이어서, 아쉬울 것도 없지만 뿌듯할 것도 없는 책이 태어났다.

 

20. 백석 평전

: 최고의 시인이 아니고서야 시로 기억되지 못하겠지만, 시로 기억될 수 있는 최고의 시인들 역시 완전한 한 명의 시인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와, 평전, 평전이 필요하다.

 


21. i에게

: 누구에게나 나와 맞춘 듯 잘 맞는 시인이라는 축복의 존재가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충분히 찾아보지 않아서 발견하지 못했을 뿐, 세상에 별처럼 넉넉히 뿌려진 저 많은 시인들 가운데 반드시 하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시를 읽었다. 그런데 막상 읽다보니 하나쯤 있을 거라는 생각은 틀렸고, 되게 많았고, 많은데 그들은 저마다 다 달랐고, 그들의 시가 제각각인 것으로 미루어보면 어쩐지 그들 저마다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을 것도 같았고, 희한했지만 하여간 기뻤고, 기쁜 마음으로 그 시인들의 이름을 마음에다 적어놓았다. 시를 읽으면 마음에 적어놓은 그 이름에 불이 들어온다. 그 불이 이름을 더 깊고 선명하게 새긴다. 더 깊고 선명하게 시를 좋아하게 된다.

 

22. 밥벌이의 미래

: 는 어둡습니다. 어두워요, 여러분. 제가 이런 책을 꽤나 열심히 읽었는데요, 무슨 책을 읽어도 어둡고 어둡고 또 어둡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 어두워질 거예요. 밝은 미래는 오로지 부동산에만 있습니다. 오직 부동산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 이 책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도 다른 책들에 비하면 밝은 면을 선명하게 그려주는 좋은 책이다. 예를 들어, 이 책 이전까지의 syo는 읽으면서도 그냥 도로를 싱싱 달리는 자율주행차의 모습만 추상적으로 상상하고 말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노래 연습도 하고, 요리도 하고, 섹스도 하는 구체적인 그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보세요 여러분,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면 이제 숙박업도 멸망하는 겁니다......

 

23. 나는 이름이 있었다

: 12년 교육과정이 가르쳐준 시인이라는 놈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오은이란 사람은 정말 시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고, 오은의 시는 이게 이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바로 그 알 수 없음과 의심스러움이야말로 오은이 시인이고 오은의 시가 시인 이유를 증명한다.

: 라고 믿으며 넘어가기로 했다. 원래 오래 박힌 생각은 고쳐먹는 데 오래 걸린다.

 

24. 아마추어

: 프로라는 새끼들이 나를 속이고 내 지갑을 털어가고 있으니 마땅히 분개하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오히려, 프로가 되면 남을 속여 그의 지갑을 털어먹게 되는 것이 순리이므로 마땅히 경계하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이러나 저러나 아마 입장에선 참 드러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25. 웃기는 과학책

: 부족하다! 웃기는 것도 부족하고 과학도 부족하다!

 

26.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 그럼에도 이렇게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잘 알겠다. 어떤 시는 작품이 아니라 교보재가 되기도 한다. 시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제일 참신한 시집인가 하면 그건 모르겠다. 이 시집 밖에서는 구할 수 없는 표현들인가 하면 그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이 시들의 말맛을 조금이라도 배워야 할 바로 그 때라는 것은 알겠다.

 

27.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

: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별을 관측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인지, 별을 관측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별은 아름답다. 사진으로 봐도 아름답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엄마에게 이 책을 펼쳐 마우나케아의 밤하늘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엄마가 TV를 껐다. 집은 조용해졌고, 엄마는 별을 헤는 속도로 조용히 조용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마우나케아의 밤하늘에 뜬 별이 채 다 들어있지도 않을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28. 공격성, 인간의 재능

: 1968년에, ‘공격성이라는 물건의 이로운 기능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나보다. ‘공격성이라는 어휘의 외연을 과하게 키우는 느낌이 없진 않아도, 전체적으로 논조에 설득력이 있다. 그래, 공격성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좋은 점도 있지, 그건 건질 수 있으면 건져야지.

: 그렇지만 2018년에, 공격성의 나쁜 점이 온 세상에 만연한 2018년에도 공격성의 좋은 점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니까 저자는 똑같은 주장을 계속 하겠고, 계속 해도 되겠지만, 그 주장을 하는 목소리의 크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본다.

 


29. 운동 미니멀리즘 : 짐마일로 클래식

: 운동에 꽂혀서 읽은 게 아닙니다. 미니멀리즘 때문이에요. 안할 수 있을 최대한도로 안한다는 말이잖아요, 미니멀리즘이. 그런데 제가,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최소지향이지 소멸지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네요......

: 생각보다 집요하게, 그러니까 이게 미니멈이라는 압박을 팍팍 가해오고 있다. 양심을 건드리는 전략을 사용하다니. 똑똑하다.

 

30. 유령

: 이 이야기만이 가지는 대체 불가능한(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체비용이 막대한) 한 방, 그건 뭘까? 어디 있을까?

 

31. 교양인을 위한 화학사 강의

: 여기서 말하는 화학사는 화학의 정사正史가 아니라 야사野史. 모름지기 정사보다 갑절은 재미있다는 점이 야사의 장점이겠다.

: 단점이라면, 야사만 가지고 행세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야사의 재미를 오롯이 누리려면 정사를 알아야 한다는 점 등등. 화학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간의 화학 지식을 갖추고 읽으면 훨씬 더 매력적일 책.

 

32.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으며 제일 먼저 한 일 = 이슬아 수필집 검색 및 주문결제. 눈 한번 깜짝하기도 전에 이슬아가 2만원을 털어갔다. . 루팡.

 


33. 민트의 세계

: 듀나의 발꿈치라도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열정이 다 사라져 추억으로만 듀나를 기억하는 오늘이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변한 것은 듀나가 아니라 syo일 것이고, 어쨌든 이제 syo는 듀나의 책에 크게 요동하진 않는다. 늙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syo가 그러거나 말거나 듀나는 듀나의 일을 한다.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를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들고 또 부순다. 이 땅에서 듀나만큼 많이 세계를 짓고 부순 사람이 또 있을까? 열정이 가신 눈으로 보아야 더 경이로운 작가가 있다. 공정한 찬사를 바치고 싶다.

: 뭐야, 나 뭔데 이렇게 진지해.....

 

34.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어질 때

: 어떻든 당신의 시는 시가 될 수 없겠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당신의 시는 나의 시가 될 수 없겠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당신의 시는 당신의 시로서 가치 있고 그 가치를 나는 나로서 잘 알 것 같습니다만, 어쩐지 함부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35. 작별

: 의외로 심심했던 한강과, 역시나 불안해 미치게 만드는 강화길과, 분명 누워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면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권여선과, ? 하는 사이에 끝나버린 김혜진과, 인문에세이로 문학상을 타 버린 이승우와, 언제나처럼 오늘도 도저히 못 읽겠는 정지돈과, 뭐지? 일곱 명인데 누가 빠졌지? 하고 살펴보니 바로 정이현이었던 정이현과.

 

36.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 크리스마스 직전의 어느 저녁, 오래 안 친구 몇을 만나 커피 한잔 때렸는데 걔들은 제 앞가림을 그럭저럭 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척, 물욕 없는 척, 이렇게 사는 게 반쯤은 내 의도인 척, 도서관 사서나 돼서 큰 돈 못 벌어도 책이나 실컷 읽으며 살다가고 싶구나- 라는 식의 말을 했다. 그리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상상했다.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 유유히 책장을 넘기며 머그에 든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을. 충만하였다.

: 며칠 후 이 책을 읽었다. 쌈싸다구를 얻어맞는 마음으로 그저 조아리며 읽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장래희망을 포기당했다. 박탈감이 조금은 있었지만, 주변의 매서운 질타를 받으며 장래 희망 장동건을 포기당했던 초1 시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것보다 제발 그날 그 카페 그 공간에 사서 노동자가 없었기를 빌 뿐이다...... ‘사서나라니, 명실상부 2018 망언 대상.



37. 차별의 언어

: 따뜻하고 다정한 책이지만 어쩐지 분량에 비해 얻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훌훌 넘어갔지만 어쩐지 훌훌 사라져버릴 것 같은...... 뒤통수를 뽜악 때리고 스스로의 인간성을 반성하게 하는 크리티컬 히트가 없었다. 훌훌.

 

38. 글쓰기가 뭐라고

: 겨냥하는 독자가 명확한 책인데 그게 나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방법들을 동원해야 할 글쓰기는 내가 하지 않고 하지 않을 논증과 설득의 글쓰기. 그러면 이 책은 내게 무슨 쓸모인가 생각하다가, 그냥 인생살이 지침서로 받아들이며 읽기 시작했는데, , 의외로 도움이 되었다. 글쓰기는 인생이라더니, 글 잘 쓰는 방법을 살짝 꺾으면 그대로 삶 잘 사는 방법이 되는 것인가.

 

39. 시사IN 588

 

40. 그림으로 설명하는 개념 쏙쏙 통계학

: 평하고 싶은 말이 없으니 평하지 않기로 한다.

 


41.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 앉았다. 읽었다. 끝났다. 일어났다. 우와?

: 망원동은 알지도 가보지도 못하는 곳인데도 작가의 맛 묘사가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른다. 방금 저녁 먹은 인간을 배고프게 만들어버린다. 하루키조차 나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체포하고 싶은 솜씨가 아닐 수 없다.

: 귀엽고 다정한 "하수구가 막혔다" 꼭지를 널리 알리고 싶다. 통째로 긁어다 올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되는 건지 몰라서 포기.

 

42. 이토록 두려운 사랑

: 사랑에 관해서라면 시작도 과정도 끝도, 머리도 몸통도 꼬리도, 두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거니까. 사랑은 조금 불안하긴 해도 두려운 것은 아니고, 조금 겁나는 때가 있어도 역시 두려운 것은 아니고, 조금 아프긴 해도 두려울 만큼 아픈 것은 또 아니니까. 사랑은 그냥, 좋은 거잖아.

: 라고 믿고 살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실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 특권은 때로는 무지에서, 때로는 무심함에서, 때로는 무분별함이나 무턱대고 밀어 붙일 수 있는 입장에서 나왔던 것인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이쪽의 입장일 뿐이었다. 사랑으로 사랑에 역경과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나는 사랑을 알지만 사랑을 잘 모르는 이상한 인간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두려움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형태의 사랑을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내가 하는 사랑을 알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사랑을 모르는 반편이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디 가서 한 사람 10년 만났다고, 사랑과 연애에 대해 아는 척은 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랑, 내 사랑과 엮여 있는 사랑조차 해보지 못했다는(해보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직 신에게는 이틀이 남아있사옵니다만 여기서 일찌감치 12월의 독서를, 그리고 2018년의 독서를 접는 데는 사실 하찮은 이유가 있는데, 그 하찮은 이유는 다음 이 시간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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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쟝 2018-12-29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율주행차............. 미국에서는 택배도 드론이 나른다던데.. (물론 한국은 인건비가 더싸니까.. 한동안은 그럴리 없겠지만..)... 그 생각만 하면 아득해져요. 퇴직하고 택시기사한다는 제가 만난 그 많은 분들의, 노년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또르르... 정말 부동산만이 답인건가요? // 이슬아 수필집은 제가 먼저 읽고 있습니다만! ㅋㅋ 2만원 안아깝사옵니다 // 줄어든 잔고 만큼 차오른 책장, (그리고 아마도 책 땜에 좁아졌을 집까지) 저와 같은 syo님 연말 소식에 어쩐지 동류으식을 느껴버리며..// 저 페미사이드 읽으러갈게여.. 쿨럭!

syo 2018-12-30 11:16   좋아요 0 | URL
1. 그런 옛 말씀이 있잖아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인걸 다 필요없어요. 4차건 40차건 부동산만 의구하다......
2. 보물이지요, 이슬아. 그거 곧 인터넷 서점에도 풀린다는 이야기가 돌던데요
3. 이 짠한 동류의식..... 아, 쟝쟝님과 syo의 2019는 어떻게 될 것인가!!
4. 힘내세요!! 여성주의 책읽기 동아리 항상 응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8-12-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찮은 이유가 하찮지 않을 것 같은 이 기분은...뭐지요. 올 한해도 정말 열심히 읽으셨네요. 리스펙트!

syo 2018-12-30 11:17   좋아요 1 | URL
정말 하찮게 하찮은 이유라ㅎㅎㅎㅎ

전 그냥 읽어‘제끼는‘ 수준이지만, 알라딘에는 1년에 1500권을 읽고 하나 하나 리뷰를 남기는 무서운 분들도 많으니 리스펙트는 그분들을 위해 아껴두심이^-^

bookholic 2018-12-3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엄청나십니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syo 2018-12-30 15:30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제겐 북홀릭님의 다정하고 따뜻한 독서편지들이야말로 엄청나 보입니다 ㅎㅎㅎㅎ
내년에도 북홀릭님 글 꾸준하게 읽고 배우겠습니다^-^

설해목 2018-12-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찮은 이유 빨리 알고 싶어요! ㅎㅎ
올 하해 syo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여러모로 제겐 기쁨이었어요. ^^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많이 써주셔요. ^--^

syo 2018-12-30 15:33   좋아요 1 | URL
말씀 덕분에 올 한해 완전 헛짓거리만 하고 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 좋아라 ㅎㅎㅎㅎㅎㅎ

모쪼록 내년에도 뚜벅뚜벅 읽고 쓰시는 설해목님 되시어, syo의 하찮은 독서생활에도 지금처럼 영향력을 미쳐주소서^-^

독서괭 2018-12-3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syo님! 올해의 댓글왕 축하드려요. 둘째 임신으로 인한 입덧과 졸음으로 좀비같이 회사와 집- 그러니까 업무와 육아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동안 댓글도 못 달았네요 ㅜㅠ 그래도 syo님 글은 최대한 챙겨 읽고 있었답니다.
새해에도 맛깔나는 글 많이 부탁드려요~^^

syo 2018-12-30 18:07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이 뜸하셔서 뭔가 일이 생긴 것은 아닐지 염려했었는데, 일은 일인데 경사가 있으셨던 것이로군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그렇다면 독서괭님과 복중아기씨의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은 글들만 썼어야 하는 건데, 돌이켜보니 그랬다는 자신이 없네요......

syo에게나 독서괭님과 독서괭님 패밀리에게나 신명나는 2019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12-3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어마어마한 독서량이란 당최...

게다가 올해의 댓글왕까지 !!!

새해에도 멋진 모습 기대해 보겠삽니다.

syo 2018-12-30 20:35   좋아요 0 | URL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ㅎㅎㅎ 레삭매냐님께서 앞서서 훨훨 달려나가주세요^-^

transient-guest 2018-12-31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세상이 참 신기해요. 제가 매년 꽤 많은 양의 책을 삽니다. 당장 12월에만 해도 다섯 건이나 주문을 넣었어요. 근데 님께서 주문하신 위의 책과 겹치는 것이 한 권도 없습니다. 정말 많은 책이 매년 나오고, 쌓이니 그런 것이겠지만, 참 신기합니다.ㅎㅎ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책을 둘 곳은 점점 없어지니 이 고민은 책을 사들이는 걸 즐기는 한 계속될 것 같습니다. ㅎ

syo 2018-12-31 09:05   좋아요 1 | URL
신기하면서도 바람직하기도 하고 일견 아름답기조차 한 일인 것 같아요. transient-guest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전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ㅎ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제 주머니는 더 많이 가벼워지고 공간은 더 협소해졌겠지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8-12-3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길다 길어...ㅋㅋ
좋은 책 많이 소개받은 한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님 덕분입니다.
좋은 글도 재밌는 글도 많이 봤습니다.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며 읽었죠.

물론 새해에도 좋은 이웃으로 왕래하겠습니다. 굿데이...

syo 2018-12-31 15:4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칭찬 말씀에 스스로도 고개가 끄덕여질만큼 만족스러운 한 해였다면 좋았겠지만,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페크님과의 왕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2019를 기대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1-0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나도 페이퍼 많이 썼는데 요즘은 내가 보지 못한 글이 막 있군요 허참!!!!

syo 2019-01-07 09:23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카알님의 시야를 벗어났다!! 모든 글을 다 발견하고 읽기란 어렵잖아요. 알라딘에 좋은 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오는데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1-07 10:26   좋아요 0 | URL
다 찾아낼꺼임!!!! 오홋!!!
 

 

투명한 유리잔에 끓인 물을 따라 부으면 금세 사라지는 물방울 만들며 천천히 잔은 차오르고, 수면의 키가 자라면 잔은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내고, 아쉽게도 물은 금방 가득 차고, 잔 너머 쌓아놓은 책들과 그 등에 박힌 이국 작가의 이름들이 굴절되어 일렁이고, 잔의 꼭대기에 올라선 물은 하염없이 머리칼을 풀며 흩날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면 그 따뜻하고 진 머리칼들 안경알에 칭칭 휘감겨 사물이 온통 희부옇게 번지고, 고개를 들면 성에는 새처럼 얼른 날아가 세상은 다시 자기 자리를 잡고, 손잡이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손바닥으로 잔을 감싸 쥐고, 뜨겁고,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의 옆구리를 손톱으로 두드려 보고, 한 모금을 더 마시고, 잔의 옆구리를 다시 두드려 소리가 옷을 갈아입었는지 확인하고, 또다시 한 모금, 이번에는 더 큰 한 모금을 마시고, 그러는 사이 뜨거움은 눅어 견딜만한 따뜻함이 되고, 나도 모르게 뜨거웠던 이름과 견딜 만큼 따뜻했던 이름들을 떠올리는 사이 조금씩 잔은 제 몸을 비우고, 잔의 안쪽으로부터 밖을 내다보며 눌린 손가락, 눌린 손바닥의 지문이나 손금 같은 것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무언가 오래 뒤로 밀어 놓았던 이야기들이 슬쩍 보이는 것도 같고, 이제 도리어 내 손이 온기를 빌려주어야 할 정도로 잔은 식어버리고, 내려놓고, 그 너머로 여전히 굴절중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눈에 마음에 힘을 빼고도 읽을 수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보여, 나는 다시 그 책을 펼치어 읽었습니다.

 

 

그때나는 묻는다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그때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발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허수경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181116 181130 : 28 권



1. 아무튼, 트위터

: syo같은 애정결핍범은 SNS의 압력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더라. 일찌감치 포기하고 살았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하는 이들의 삶 역시 하는 이유가 있는 삶이었고, 그에 따라 조금은 불안해졌다. 나만 멍충멍충 사는 건 아닐까. SNS를 해서 생기는 이해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하는 이들의 생활, 문화, 사고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2.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 시인의 산문은 얕보기 어렵다. 벌컥벌컥 읽다가도 덜컥덜컥 멈추고, 되짚고, 뒤늦게 탄식을 하기도 한다. 손미 시인의 이 산문집을 휘감은 제일 큰 정조는 아무래도 외로움이겠고, 외로운 이야기는 종종 외로운 이들을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하므로 우리는 아무쪼록 이 책을 조심해야 하겠다.

 

3. 심야의 철학도서관

: 인물들의 대화가 일어나는 장소가 도서관의 철학서가라서 이런 제목이 붙었지만, 철학책은 아님.

: 톨렌스와 포넨스라는 두 인물이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데, 마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는 것 같다. 끝까지 읽었지만 고도는 오지 않았고, ‘의식역시 끝내 오지 않았다......

 

4.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

: 마르크스를 다룬 부분보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나 엥겔스에게 할애한 데가 더 의미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뭐 되게 상세하지는 않지만. 마르크스 파트는 되레 부실한 데가 있고, 한형식 선생님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가볍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외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

 


5. 혼자를 위한 미술사

: 혼자가 되어 그린 그림 앞에 선 인간은 혼자가 된다. 사적인 그림일수록 그린 사람 이외의 그 무엇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런 그림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우게 되기도 한다. 미술사의 시기시기를 작풍이나 기술로 구분하지 않고 개인에 깊이 침잠해들어가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의외로 유익하다.

 

6. 오늘도, 무사

: 책방 하는 모든 이들의 무사를 기원한다. 이들은 존재 자체가 사회를 위한 헌신인 고귀한 사람들이다. 책방 많은 사회가 모든 면에서 나은 사회다. 그보다 더 나은 사회는 딱 하나다. 그 많은 책방이 잘 살아남는 사회.

 

7. 지구 온난화 이야기

: 균형 있는 입문서라는 것은 이런 것이로구나. 단지 10년 된 책이라는 것, 작금에 심화되고 있는 환경 문제에서는 10년이 말도 못하게 긴 기간이라는 것이 좀 아쉽다.

 

8. 위대한 사상들

: 뻔뻔하다. 뻔뻔할 만도 하달 만큼 좋은 글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집어던졌을 것이다.

: 위대한 사상가 10, 위대한 시인 10, 최고의 책 100,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초에 인류라는 개념을 보는 틀이 좁다. 동양의 사상가나 동양의 시인도 들먹여는 놓았지만, 정말 들먹인다는 느낌, 자신이 개방적이고 동양까지 아우르는 시야를 가진 인물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들러리로 세워놓았다는 느낌, . 그러니까, 틀렸다는 게 아니라 틀렸으면 좋겠다 싶다.

: 읽고 있으면 같은 사피엔스의 1인으로서 뿌듯함이나 벅차오름 같은 걸 느끼기도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광대한 우주를 맞닥뜨려 스스로의 먼지스러움을 자각하게 만들려고 했나 싶은 느낌인데, 그렇지, 우주 앞에 선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근데 당신이 우주는 아니잖아요. 글은 정말 잘 쓰시네요. 정말 글 잘 쓰는 먼지시네요. 부러워요.

 


9. 애덤 스미스 국부론

: 이상하지. 국부론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읽어봐야 될 건 국부론 아니라 도덕감정론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상하지, 참 이상하지.

 

10.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 엔도 슈사쿠의 책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를 되게 재밌게 읽었던지라 되게 기대하고 되게 빨리 빌려서 되게 빨리 읽기 시작했는데 되게 빨리 실망하고 엔도 슈사쿠에 대한 흥미를 되게 잃었다.

 

11. 그들은 왜 더 행복할까

: 다 읽었는데 그들처럼 행복하기 위해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민 말고는. 그 사실 자체가 그들이 행복한 제일 큰 이유 같다.

 

12.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 syo는 오늘날 우리 지구가 이 모양 이 꼴인 게 우리가 한계를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수백 수천의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현재 보유한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한도로 정밀하게 고안해 낸 지구 한계치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른 척 하거나 우물쭈물 하다가 망하는 것이다.

 


13. 이명헌의 과학책방

: 한 권을 읽으면 수십 권을 읽은 꼴이 되는 무거운(무서운) 책이다. 진도를 쭉쭉 빼지 못하는 까닭도 같다. 소개된 책들 가운데 너무 옛날 책이 많은 것도 이유겠지만, 어쩐지 이것만으로도 너무 배가 부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원전들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건 장점인가 단점인가.

 

14. 고인돌, 역사가 되다

: 갑자기 왜 고인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알고 싶었던 만큼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아버렸다. 까먹겠지만. 그래도 어느 날 또 갑자기 고인돌에 대해 알고 싶어지면, 망설이지 않고 손에 들 책을 알았으니 그걸로 된 거지.

 

15.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 해야 할 이야기가 명확하고 그 말을 뒷받침하는 명분이 충분하면 글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뻗어나갈 밖에. 환경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의외로 선명하다. 단지 먹고사니즘에 치여 그 길을 가지 못할 뿐. 진단과 처방이 잘 버무려진 글들이지만 문제는 진단을 받으러 찾아오는 사람조차 없다는 점이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너무 적다.

 

16.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 역사책을 읽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영화를 기대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스틸사진이다. 장면은 더없이 선명하고 세밀하게 포착되었지만, 그만큼 서사가 빈곤하다. 남는다면 지식으로 남겠으나 남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겠다.

 


17. 왼손은 마음이 아파

: 퇴보일까, 건성일까? syo는 마음이 아파.

 

18. 문명의 그물

: 유럽의 역사를 씨실로 꿰었다. 질이 좋은 씨실이다. 최고의 씨실이 갖추어졌으니 이제 날실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아름다운 직물이 될 것이다. 그래야 아름다운 직물이 될 것이다. 더 읽어야 한다.

 

19. 과학 같은 소리 하네

: 생각해보면, ‘4차산업혁명시대라는 굉장히 공학적이고 과학적인 단어를 공학자나 과학자보다 입에 더 많이 올렸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거나 대충 아는데도 모르는 게 없거나 완전히 아는 것처럼 말했고, 우리 사는 모양새는 이 모양 이 꼴이다. 과학과 공학이 정치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전에, 혹은 그러기 시작할 때, 우리가 그것들을 다 알고 있으면 참 좋겠으나 녹록치 않다. 모르니까 우리는 잘 속을까?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속이는 놈들도 잘 모르는 건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실을 검증하는 법, 믿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스, 통계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을만한 기초적 안목, 뭐 이런 간단한 지식들 아닐까? 이 도구들은 생각보다는 얻기가 쉽다. 성의의 문제에 가깝다.

 

20. 에디톨로지

: 표지에는 창조는 편집이다라고 쓰여 있지만, 실은 편집은 창조다정도를 겨우 증명한 책이 아닐까? 다양한 지식들로 편집된 이 책이 창조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 그리고 그게 끝인 것 같다. 읽는 내내 아, 결국 저 말인데 뭘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21. 마흔에게

: 뭐 그다지 눈에 띄는 이야기도, 마음에 확 들어오는 이야기도 없는 단순한 에세이집. 주제는 늙는 법이고 원제 역시 마흔이라는 똑 떨어지는 숫자와 상관이 없는데도 번역하면서 제목에다 굳이 마흔을 타겟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이렇게까지 드러내는 이유를 알고 싶다.

 

22.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 늦게야 정이현에 눈뜬 것 같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랄지,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작품으로 명성 떠르르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의 건조한 문장이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언제든 추락할 것 같은데 추락하지 않고 가늘게 떨리기만 하는 문장 위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다가 불시에 뚝, 하고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23. 비상문

: 인간은 언제나 다른 인간에게 하나의 질문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죽음은, 또한 그 죽음이 스스로에게 선사한 죽음이라면, 그건 정말 거대한 질문이 된다. 그 질문을 마주하여 결국은 통속적이거나 자조적인, 혹은 자기계발적인 대답만 내놓고 다시 바쁘게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syo처럼 별 볼일 없는 인간의 한계겠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겠다.

 

24. 이성의 운명에 대한 고백 순수 이성 비판

: <순수이성비판>을 읽은 다음 <실천이성비판>을 읽고 <판단력 비판>을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실제로 그래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얼추 알기로 실천은 순수를 깔고 앉았다고는 하던데. 근데 이놈의 순수는 정말 순수하게 어려워서 잘 따라가는 것 같다가도 자꾸 허방을 짚게 만든다. 원전 번역본은 사놓았지만 읽는 것은 다음 생의 과업으로 미루어 놓은 상태고, 결국은 이런저런 입문서나 개론서를 전전하다가 슬그머니 헤겔로 넘어갈 생각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 좋은 책인지 아닌지 선명하게 판단하려 다른 책을 몇 권 더 읽어 봐야하겠다. 일단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는 제일 좋았다. 지금까지 읽은 책은 무려 두 권. 한 권이 아닙니다.

 


25.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빅 히스토리는 정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따로 과학적 기본지식을 갖추고 와서 읽어야 하는 건지, 읽고 나서 과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건지 항상 헷갈리게 한다. 사실 이건 독자의 딜레마인 동시에 저자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빅 히스토리의 가장 큰 변별점은 과학과 역사의 오묘한 배합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인데, 과학 독자와 역사 독자의 간격은 기실 유대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 사이의 간격과 유사하여 서로를 꽤나 알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잘 섞이지는 않는다. 결국 과학에 힘을 주면 역사 독자가 성화고 역사에 힘을 주면 과학 독자가 아우성을 칠 테니, 저자는 야훼와 알라 사이에서 망설이고 독자는 타나크와 꾸란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26.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 에피소드식 역사 지식은 잘난 척 할 때나 쓰는 거라는 인식을 오래 쥐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쓰곤 했다. , 그런 건 어떻게 알아? , 어쩌다 보니(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시크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놓고 막상 책을 평가할 때는 에피소드식 역사책을 하급으로 취급하는 요 양면성, 이중 잣대. 하지만 알고 보니 그저 syo가 멍청한 것이었을 뿐, 에피소드의 이면이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 역사책은 언제나 옳다!(짝퉁 역사만 아니라면) 심지어, 재미난 이야기로서의 역사책이라면? 옳고도 옳은 거지.

 

27. 우리가 꿈꾸는 나라

: 그가 없는 세상에 우리에게 부족한 세상이듯, 그가 남긴 말만으로 우리는 부족하다. 다시 살아 돌아오실 게 아니라면, 그의 평전이라도 만나고 싶다. 1주기쯤 이와 관련된 어떤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8. 침묵의 봄

: 고전이 얼추 다 그런 면이 있지만, 과학의 고전은 유독 더 읽어 볼 명분이 적다. 왜냐하면 책 속에 든 주장과 증명들이, 책이 나왔던 시점에는 놀랍도록 혁신적이고 심지어 급진적이었던 그 이야기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식이 되어 대중지식 속에 자리를 잡고, 같은 분야를 다루는 후발 주자들이 그 지식들을 당연한 전제로 깔고 뒷이야기를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더는 천체학에 대해 알기 위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를 읽지 않고, 물체의 운동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뉴턴을 읽지 않는다. 독서의 왕국에서 그 책들은 기념비처럼 존재하며 유독 부산스런 독서가들의 순례지가 될 뿐이다.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수많은 일을 하고 수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 데에 채 반 세기의 시간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곧장 기념비가 되었다. 뒤는 다른 책들이 맡았다. 50년 전에 나온 이 책을 오늘날 다시 읽는 것에 가치가 없지 않겠으나, 오늘은 오늘의 문제를 다룬 오늘의 책을 읽어야 한다.

 




이만하면 올해도 할 만큼 했으니, 12월부터는 적게, 오래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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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11-3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같게 읽어 본 책 딱 한 권이 있으며, 소감도 같게 공감합니다. ^^

syo 2018-11-30 21:02   좋아요 1 | URL
4, 8, 20, 28 중에 그 한 권이 있나요?? ㅎㅎㅎㅎ 찍기

북다이제스터 2018-11-30 21:07   좋아요 0 | URL
역시 무서운 분 ㅎㅎ
신기도 있으세요. 20번요~~~~^^

syo 2018-11-30 21:15   좋아요 1 | URL
북다님이 읽으실 만한 것들, 딱히 읽으실 것 같진 않지만 읽으셨다면 저랑 같은 반응이실 것 같은 책 위주로 한 번 골라봤습니다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1-30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5일동안 30권의 책을 읽는 사람! ㅜㅜ 계속 읽어주세요 도전 늘 팍팍 받고 있으니~ㅎㅎ

syo 2018-11-30 21:03   좋아요 1 | URL
이제 30일동안 15권 읽는 사람으로 거듭날 겁니다. 맨날 다 날라가고 없어ㅠㅠ

카알벨루치 2018-11-30 21:26   좋아요 1 | URL
난 16번, 20번 읽는중인데 두권다 용두사미 되는거 아닌가 싶네요 ㅎ

syo 2018-11-30 22:55   좋아요 2 | URL
카알님의 용두용미를 기원합니다.

북프리쿠키 2018-12-0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8번 딱 한권 겹칩니다..흐흐;; 전 카알벨루치님과는 다르게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을 껍니다~!!! ㅠ.ㅠ

syo 2018-12-01 14:40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누구든 오르려는 사람은 오를 수 있는 나무로 거듭나는 12월의 syo가 되겠습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8-12-02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침묵의 봄, 마저 다 읽어야 하는데...
사실 사서 서문 정도만 읽은 것 같네요.

읽을 책들이 주변에 너무 많은데도
우선 순위에서 밀려 나는 통에 ㅇㅇ

이제 한 달 남았네요,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syo 2018-12-02 15:10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의 꾸준한 독서와 기록이 항상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2월도 2018년도 알찬 독서로 마무리하시기를 ^-^

페크(pek0501) 2018-12-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게 오래 읽기. 저도 동참합니다.

syo 2018-12-02 15:10   좋아요 0 | URL
동지! 2018년을 천천히 오래 마무리하자구요^^

cobomi 2018-12-0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독서량에는 못 미치지만, 저도 최근 ˝좀 적게 읽자. 거듭 읽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침묵의 봄>에 대한 의견에는 공감해요. 고전이지만, 따분하기도 하고 낡은 인상을 받기도 하고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제목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고 했음에도 가장 인기 없는 책이기도 해서 살짝 심란했는데 syo님도 읽으셨다니 반갑네요 ㅎㅎ

syo 2018-12-09 11:30   좋아요 0 | URL
많이 그리고 빠르게 읽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적게 거듭 깊이 읽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에너지 소모도 크구요.

사실 <침묵의 봄>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한 권을 고르라면 오늘날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골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플은 이 책을 읽은 이가 저밖에 없다고 알려주네요. cobomi님처럼 읽으셨지만 표시하지 않은 분들이 실제로는 더 계시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씁쓸하네요^-^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필로테라피 1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이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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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은 반은 오빠고 반은 아빠인, ‘와빠같은 오빠 때문에 제 방을 가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난을 탓할 수도 있겠으나, 작은방은 syo겐 늘 내 방이었고, 그 안에 자기 책상도 놓여있지만 동생에겐 늘 오빠 방이었다. 제 오빠가 대학을 다니러 서울로 올라갔을 때, 동생은 얼마나 좋았을까. 공식적으로 방의 점유권을 양도하는 절차는 없었지만, ‘실효적 점유를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실효적 점유는 굉장히 실용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니, 방학을 맞아 돌아왔더니 이미 우리 집엔 내 방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건 누가 봐도 동생의 방이었다. 여전히 내 방이겠거니 하고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방을 둘러친 포스터 속, 도합 서른두 개의 눈동자가 거란족 오랑캐를 바라보는 고려군마냥 기세가 등등하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데, 당혹스러운 마음에 , 저것들 다 뭐야.” 소리를 질렀더니 덤벼들 듯 대답하는 동생. “여봐요, 저것들이라니. 우리 동방신기 오빠들한테!” ..... 니 오빠는 동방신기가 아니라 syo잖아.....

 

syo는 동방신기의 다섯 멤버를 정확히 구분하고 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포스터 속 인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0.5초 안으로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앉지도 못하고 서서 치열하게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네들의 이름은, 보수의 심장이라는 도시에서 남중 남고 생활을 포함, 가부장가부장 스무 해를 살아온 남자가 입에 올리기에는 뭔가 낯부끄러운 구성이라서 교육시간은 자꾸만 길어졌다. “봐봐, 이 분은 누구셔.” “준수....” “무슨 준수셔.” “.....시아준수.” “그럼 저기 저 분은 누구시라고?” “.....키 유천” “?” “.....미키.....” “, 진짜! 미키 아니라 믹키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오빤 왜 이렇게 배우는 게 느려?” ..... 그러니까 이건 모르고 느린 게 아니잖아.....

 

어느 날인가는 물었다. “, 너는 나랑 동방신기랑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건질 건데?” 동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무슨 수로 건져. 내가 죽는다.” 역시 syo의 동생. “그럼, 나랑 동방신기랑 물에 빠졌어. 그래서 니가 기도를 한 거야. 하느님이 바다를 갈라준다네? 그럼, 내가 빠진 데를 가를 거야, 동방신기가 빠진 데를 가를 거야?” 동생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몇 명 빠졌어?” “?” “동방신기 오빠들, 몇 명 빠졌냐고. 다섯 명 다 빠졌어?” 세상에, 동생년 업어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잖아.....

 

그런 이유로 syo는 일찌감치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싫었다. 애기 땐 참 귀여운 아이였는데, 저런 되바라진 초6이 되고 말다니. 내 동생을 돌려주고 동방으로 꺼져버려, 이 한류스타들아...... 그러나 한류스타들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자꾸자꾸 태어나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돌이 아이돌 아닌 가수보다 많아졌고, 어어어 하는 사이에 이제 가수하면 기본적으로 아이돌(최소한 아이돌 출신)을 떠올리게 되는 시점에 도달했는데, 그런 내내 syo는 꾸준히 아이돌을 멀리했다. 다른 젊은이들이 아이돌에 열광과 환장을 바치는 동안 꿋꿋이 저항운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가장 잘 팔리고, 구하기도 쉬우며, 스스로를 취향 있는 인간으로 보이도록 도와주는 편견을 하나 주워 얼른 장착했다. 저게 노래냐, 저게 가수냐, 하는 스타일의,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보수적인 관념이지만, 그땐 그걸로 충분했다. 사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싫음 그 자체일 때가 많다. 왜 싫으냐면 싫어서 싫은 것이므로, 벗겨놓고 봤을 때 중요한 건 그저 내가 쟤네를 싫어한다는 것, 그것뿐인 셈이다.

 

인간은 사물의 범주를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상당히 축약시킨 유사성의 함수를 이용해 경험을 분류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유사성이 사실 지나간 경험에서 결정적이었던 정서의 핵심에 거의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사람을 닮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의 정서를 이끌어냈던 바로 그 속성을 새로운 사람이 가졌을 때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움의 정서에도 또한 분명하게 이와 동일한 구조가 있다. 과거에 한 사람의 어떤 특별한 성격이 우리에게 미움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우리가 싫어했던 바로 그 특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가졌던 또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새로운 사람 역시 우리에게 미움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에 알았던 어떤 인물의 특성 중 우리가 싫어했던 바로 그 특정한 속성을 새로운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닌데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61쪽)


싫어하는 것도 역시 관심이 있어서일까. 나이를 먹다보니 세상에는 근거 없이 싫어할 아이돌 말고도, 정말 싫어할 이유가 명백해서 싫은 인간들도 천지였고, 싫은 것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와 시간이 듬뿍 낭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이돌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졌다. 허허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요.

 

최근 방탄소년단은 온 세계를 진동시키고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심지어는, 한국전쟁 통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거친 개발독재시대의 풍랑을 헤치고 이 나라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는데 이바지하였으며 이제는 하루 종일 종편 정치 시사 프로그램만 보는 배 모 할아버지(70, 대구 북구 거주)의 눈에도 그들이 UN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포착될 정도의 위상을 갖춘 것 같다. 방탄소년단 멤버들 가운데 오빠도 있지만 동생도 있을 정도로 나이를 먹어 버린 동생과 함께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쟤들은 왜 저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난 늙어서 그런가, 쟤네 좋은지를 모르겠던데.” “잘 하긴 잘 하는데, 쟤네만큼 하는 애들 되게 많은데, 왜 쟤네만 저렇게 잘 되는지, 난 그게 궁금해.” “난 쟤네 누가 누군지도 몰라. 누가 누군지는커녕, 쟤네 여섯 명 이름 자체를 다 몰라.” “......오빠, 쟤네 일곱 명이야.”

 

그러니까, 여기가 모순과 편견이 숨어있는(사실 대놓고 있는) 지점이었다. ‘쟤네 좋은지를 모르겠어쟤네가 몇 명인지도 몰라가 양립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좋은 가수인지 아닌지, 어떤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려면(그 판단이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판단 대상에 대해서 알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름도 멤버 수도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판단을 내려버리면 안 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스치듯 노래를 한 번만 들어봐도 답이 나올 정도로 내 식견이 탁월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이미 형성된 취향이나 관점에 매몰되어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면서도 스스로는 그걸 모르는 꼰대가 되고 있는 징후가 아닐까? 이런 비극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그건 아마도 싱글 포스터와 단체 포스터를 포함 도합 서른두 개의 눈알로 syo를 포위공격 했던 동방신기와, 그네들의 신기하고도 놀라운 이름들을 구구단 외듯 읊어야 했던 트라우마, 그리고 그 모든 공포를 조장했던 지옥에서 온 초6 내 동생의 탓도 있겠지만, 면역 없던 어린 시절 편견에 노출되어 열심히 그 편견에 복무했던 내 무지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2

 

사물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 즉 적합하게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 어떻게 다룰지, 대상의 자극에 어떻게 대응할지, 대상을 어떻게 포용할지를 안다는 말이다. 진정한 읾은 우리의 진정한 필요에 부적합하게 사물의 어떤 측면을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앎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해당 사물의 적합한 관계를 아는 것이다. (171-172쪽)

 

라는 말에 기대어 꽤 긴 시간 유튜브를 방랑하면서 방탄소년단의 뮤비며, 공연이며, 팬들이며, 팬들이 자지러지는 모습이며, 팬이 아닌 사람들이 입덕하는 모습이며를 열심히 찾아본 것이다. 저러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쩐지 그 이유를 모르고서는 21세기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하지만 syo는 춤을 모르고 음악을 몰라서, 저 잘생긴 소년들이 되게 잘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다른 다수의 잘생긴 소년 소녀들에 비해 유독잘하는 것인지를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그것은 곧 왜 수많은 소년 소녀들 가운데 바로 저 소년들만이 세계를 진동시키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물음의 큰 의미는 답에 도달하는 데 있다기보다 대체로 물음 자체에 숨어있기 마련이라, 나는 왜 이런 걸 묻고 있지? 하며 스리슬쩍 나란 놈은 대관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를 되새겨보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먼저 syo는 도대체가 춤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을 판단하는 데 예술적인 감각이 얼마만큼 필요한지와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무엇인가에 대해(특히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감정과 채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으리라 자연스레 가정하는 오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예술은 언제나 평가되어야 한다. ‘함부로 평가하지 마세요라는 실은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욕하지 말라는 말이고, 누구도 칭찬에 대한 대답으로 저 말을 하진 않는다.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평가한다. 땅바닥에 구르는 낙엽을 보고도 환경미화원의 근무 태도를 평가하는 평가의 동물이다. 예술이 무슨 용 빼는 재주 있다고 저 혼자 저울에서 달아날 수 있을까. 단지 평가 전에 우리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고, 어디까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지가 논의의 대상이 될 뿐이다. ‘니가 한 번 해 보세요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 평가대상보다 우월함을 갖춘 이후에야 평가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까?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소위 전문가소리를 들을 만한 경험, 실적, 혹은 학위 따위가 필요한 것일까? 어쩌면 그냥 아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소설을 평가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문해력, 알레고리를 읽어내는 눈치, 내가 캐 낸 주제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배경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음악에 대해서, 춤에 대해서는 뭘 얼마만큼 알고 있어야 판단할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에 대해, 칭찬이든 아니든 syo가 뭐라고 할 수나 있는 걸까?

 

두 번째로, syo성공의 큰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실력을 지목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 그렇지 않더라는 사실을 무수히 경험하고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실력을 쌓기가 어렵긴 해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긴 해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고, 심지어 이놈의 세상은 이걸 오히려 가능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끌고 가는 중이다. 실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실존한다고 해도 그건 그야말로 추상이라 수치로 구체화하거나 깔끔하게 서열을 매기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틈새를 그냥 행운, 시대변화에 동반된 행운, 각양각색의 연과 맥들, 심지어 채점자나 면접관, 바이어의 그날 아침 밥상에 고기반찬이 올라왔는지 아닌지 따위의 돌발변수들이 개입하여 성공 방정식에 미묘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큰 성공일수록 그렇다. 작은 성공은 큰 노력으로 이루어지지만, 큰 성공은 큰 노력으로 부족하고 하늘의 뜻이 조금은 필요한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공사례를 보면서, 성공한 이가 노력으로 성공을 일구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자동추측의 밑바닥에 실은 그랬으면 좋겠네가 깔려있다. 노력이,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실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세상이 옳은 세상이고, 이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여기서 세 번째로, syo는 당위와 현실, 법학자들이 좋아하는 말로 SollenZein을 혼용 또는 혼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피 땀 눈물>이 흐르다 못해 말라버릴 정도로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돌 들이 과연 그들보다 피, , 눈물을 적게 흘렸는지를 비교해 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노력과 성공을 일차선 도로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방탄소년단은 노력했고 성공했다라는 명제는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를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의 사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무수한 피해자만을 양산할 뿐이다. 100만 명이 노력하던 세상에서 1000만 명이 노력해도, 왕좌는 하나에서 열 개로 늘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노력으로 성공했다에 살짝 손을 대어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로 치환하는 작은 무심함이,

노력하는 이가 성공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 은근슬쩍

노력하는 이가 성공하는 세상 이 좋은 세상으로 바뀌는 데 힘을 보탤 수도 있는데,

그 메커니즘에 복무하지 않도록 좀 더 꼼꼼하게 생각하고, 그 꼼꼼함을 위해 더 많이 찾아보고, 듣고, 느낄 여지가 syo에게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생존하기 위해 수다한 다른 것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스피노자가 욕망을 "그 자신 안에서 존속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정의내리는 코나투스로 언명한 까닭이다. 그 자신인 것으로 존재하려면 그 자신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정체성은 다소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 그것들과의 결합, 만남에 의존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으로 존재하기란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아 아니라 노력과 탐색, 욕망을 함축한다. (40-41쪽)


조금 더 메타적으로 바라보면, syo라는 놈은 저렇게 묻는 인간이라는 사실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달리는 의문의 꼬리를 잡고 몸통 위로 기어올라 그 얼굴을 확인하면, 언제나 저렇게 생긴 의문들을 따져 묻는 인간이라는 것. 똑 떨어지지는 않지만 언제나 비슷한 과녁을 노리고 있고, 그 과녁을 바라보며 화살을 거는 활줄이 마르크스였다가, 루쉰이었다가, 소로였다가, 때로는 방탄소년단이기도 한 셈이다. 날아가는 화살의 궤도가 활 쏘는 이의 몸과 마음에 달렸듯, 활 쏘는 이의 몸과 마음이 또 활에 달려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과녁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물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고, 진짜는 오로지 활을 들고, 화살을 메기고, 시위를 당기고, 숨을 멈추고, 보고, 놓고, 날아가고, 보고, 숨을 들이쉬는 과정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만나고, 그로 인해 생각을 하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몸가짐을 한 번 더 추스른다면 그 만남이 충분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4

 

그리고 그 와중에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피할 수가 없다. 난 저 아이들만큼 치열하게 살지도 못했고 못할 것이므로 이번 생은 안 되겠지. 우주가 생긴 그 날부터 계속, 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 나는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 영원히 안 되겠지.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DNA.



아무래도 전 <DNA>가 제일 좋더라구요.


그것은 또한 새로운 기쁨으로 열리는 것, 즉 우리에게 낯설어 보이는 대상과의 적합성을 찾아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신체에 더 많이 익숙해져야 하고 신체가 더 많이 민감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체가 다른 사물의 행위와 동일한 것을 더 많이 만들어낼수록 다른 사물의 본성과 공통된것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된다. 신체가 더 많이 민감해질수록 셀 수 없이 많은 정서를 구분하고 느낄 수 있게 되며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포츠 훈련, 여러 기예를 닦는 것, 악기를 다루는 일, 식당이나 양조장에서 그러하듯 미각이나 후각을 훈련하는 일, 감각적 즐거움의 경험, 사막을 횡단하는 일이나 만년설을접하는 등의 극단적 상황이나 전혀 낯선 상황에 처하는 일 등은 신체가 새로운 현실에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이는 그 신체에 새로운 역량을 부여한다. 경험하기 이전에 무서웠던 일, 사막의 건조함이나 만년설과 같은 것이 우리와 조화로운 공통된 접점을 가지게 되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리가 더 많은 사물에 익숙해질수록, 그것들을 더 편하게 느끼게 될수록 우리가 슬픔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는 줄어들고 경험한 것만큼의 기쁨을 얻게 된다. (187-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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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1-2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요컨대, 문단 너무 좋아요. 노력한 사람의 문장이예요.

2. 저도 방탄의 인기 요인이 궁금하기는 해요. 가사, 도전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가사나 프로듀싱 능력 등을 이유로 대기도 하던데요.
글쎄요. 제 생각엔.... 워낙 한류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그런 애들, 잘하는 애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다른 그룹에 비해 특별히 잘한다기 보다는 서로 경쟁하다가 잘하게 되었다는....
그리고 케미? 멤버간의 케미가 다른 그룹에 비해 좋은 것 같아요. 그리하여 시너지효과... 제가 보기엔요.

3. 전 <아이돌>이 좋아요.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아님 어떤 다른, 뭐라해도 I don‘t care!
그리고 RM (하트뿅뿅!) 스피노자는 안 보임. 방탄 땜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29 15:10   좋아요 0 | URL
단발님의 요런 댓글을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만, 왜 갑자기 RM인가요. 최애가 바뀌셨나요 ㅎ

소년 소녀들 전부 예쁘고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데 다들 잘 됐으면 좋겠지만요, 이 세상은 또 그런 게 아니니까요....

카알벨루치 2018-11-2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사람!!! 대형사고쳤네 ㅋㅋ

syo 2018-11-29 15:11   좋아요 1 | URL
방탄을 깐 것도 아닌데 무슨 대형사고씩이나.... 이러다 사람들 오해해요. 살려주세요 ㅎ

stella.K 2018-11-2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저도 방탄은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군요.
뭐 걔들 뿐이겠습니까?
대중 음악은 자기 시대에 들었던 음악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이문세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댄데
지금도 그 이상으로 좋은 가수를 못 찾겠더군요.
물론 성량이나 환경이 그때의 가수들 보다 월등이 좋아졌는데도
정서가 다르다고 보는 거죠.
지금 방탄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좋아할 겁니다.
그러면서 방탄 같은 가수들이 안 나온다고 아쉬워하며 꼰대가 되어가겠죠.
사람은 그런 것 같아요. ㅋ

syo 2018-11-29 16:29   좋아요 1 | URL
저는 방탄 좋던데요? 나는 살고 싶다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뭐 걔들 뿐이겠습니까?‘ 에서부터는 모든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특히 마지막 세 줄은 최고 ㅎ

stella.K 2018-11-29 16:33   좋아요 0 | URL
야하~! 제가 스요님께 칭찬도 들어보고
이거 앞으로 댓글 더 잘 써야겠는데요?ㅋㅋㅋ

syo 2018-11-29 16:35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이세요 ㅋㅋㅋ 제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요ㅎㅎ
스텔라님은 글도 댓글도 항상 잘 쓰시는데요.

설해목 2018-11-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을 기다리며 조금 여유가 있는 이런 날엔 syo!
오늘 글도 느므 좋습니다!
그나저나 귀여운 여동생은 요즘은 누굴 좋아하려나요? 설마 아직도 동방신기????

syo 2018-11-29 2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동생의 덕질족보는 제가 샤이니까지는 따라갔는데 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psyche 2018-11-2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락 싸면서 간만에 북플에 들어왔다가 방탄이라는 말에 눈이 확 떠졌습니다. ㅎㅎ

방탄의 인기가 워낙 폭발적이니 그 원인을 한두가지로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저와 제 주변의 의견은 무엇보다 가사의 힘!입니다. 가사가 예술이에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줘서 그런 가 구절구절이 가슴을 찌르고 희망과 위로를 주거든요. 사실 저는 아들뻘 청년들이 해주는 말에 위로받는 다는게 좀 민망하기도 했는데 뭐 어쩌겠어요. 그게 사실인걸. 요즘처럼 사는 게 참 힘들다 싶을 때, 마구마구 우울속으로 파고 들어갈 때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킬 힘을 주더라고요.

저는 좋아하는 방탄 곡이 너무 많아서 한개만 뽑는 것은 불가능하고 요즘 제 맘을 울리는 곡으로 RM 의 ‘지나가‘

syo 2018-11-30 10:14   좋아요 0 | URL
프님의 방탄사랑은 익히 알고 있던 부분이지요 ㅎㅎㅎㅎ

말씀하신대로 정말 가사가 좋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주로 사랑노래를 좋아하지만요 ^-^

입덕까지는 못 돼서 미친듯이 들어대지는 않겠으나 한 번 들을 때 흘리지 않고 집중해서 음미하게는 되었지요 ㅎ

쟝쟝 2018-12-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먹나봐요.. 저도 지난 명절때 유튭보면서 방탄 공부했는데.. 랩몬 빼고는 지금도 얼굴 구분을 잘 못하겠어요.. 하지만 역시 dna는 좋구.. 몇년 전에 동생분이 상심이 크셨겠네요.. 동방신기라니... 이젠 아련한 믹키...읍읍..😷😷

syo 2018-12-02 15: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그 전에 이미 털고 나와서 믹모 남성의 사건에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던 동생입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시아준수 팬이었더라구요.

백진호 2018-12-0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 전에 봄날이라는 노래를 듣고 꽂혔어요. 그런데 그 노래가 방탄소년단 것이더라고요. 유튜브에서 뮤비를 봤는데 그 안에 세월호, 젊은 세대가 겪는 아픔에 대한 공감 등이 담겨 있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방탄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 같아요. 물론 다른 연예인들이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지만요.

syo 2018-12-02 15:13   좋아요 0 | URL
많은 분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방탄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다 공감이 가더라구요. 백진호님의 말씀 역시 그렇구요.

입덕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 소년들이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네요.
 

 

도서관을 다녀왔다. 곰인간을 만났고 햄버거를 먹었다. 오는 길에 빵 두 개 사왔다. 지금 하나 뜯어먹으면서 쓴다. 빵부스러기가 책상에 떨어지고 키보드는 미끈거린다. 제길.

 

커피를 먹겠다고 작은 주전자에 든 물을 끓였는데 부어보니 제길, 숭늉이다. 우유 한 방울 없이 커피는 라떼 색, 맛은 그윽하다. 아메리카노에서 조상의 얼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조상은 과연 어느 대륙 누구의 조상인가. 상관 있나, 어차피 we are the world인 것을. 코리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면 될까.

 

책방에 대한 책을 읽다가 왠지 책방이 잘 어울리는 친구가 생각나 책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막상 그 친구는 책방도 좋지만 밤마다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갑작스럽지만 참새는 너무 귀엽게 생겼다. 참새. (귀엽게)(ㅇ긴동물). 머리도 둥글, 몸도 둥글. 배는 하얗다. 아침 담벼락에 떼로 앉아있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한 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파다닥 날아갔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열라 빨라. 쟤넨 비둘기 같지가 않다. 걔들은 만질 수 있어서 만지기 싫은데


그러고 보면 요즘은 비둘기들도 옛날처럼 쉽게 컨택트가 되는 것 같진 않다. 비둘기 나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한다. syo가 도련님 댕기머리 하고 학당 다니던 옛날에 비둘기는 새라기보다는 돼지였다. 사람들도 욕지거리 없이 걷기 힘든 그 학교 캠퍼스를 걔네들은 숨소리 하나 안 내고 잘만 걸어 다녔다. syo가 모자 쓰려고 머리 달고 다니듯, 얘네는 노트북 가방 메려고 날개 달아놓은 듯. 공학관 뒤쪽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이놈의 비둘기가 영장류 고귀한 줄 모르고 자꾸 알짱거리길래, 저리 안 꺼져? 하며 발길질을 했는데, 세상에, 제대로 맞았다. !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잘 감아 찬 손흥민의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잠깐 날아가더니 이내 착지하여 이쪽을 매섭게 노려본다. 굉장히 놀란 눈치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너는 안 찰 줄 알고 맞았겠지만, 나는 안 맞을 줄 알고 찬 것이다. 서로 간에 오해가 깊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이해일 수도 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니까 안 찰 거야. 새는 나니까 안 맞을 거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에 기대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였다. 그 결과는 공학관 옆 허공을 가르는 비둘기빛 좋은 궤도였다. 그리고 너에겐 날개가 있고, 나에겐 발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 서로 알려주었지. 좋은 추억이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다 식었네.

 

왜 이런 흐름의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의식이 가고 싶은 대로 가도록 두었을 뿐인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뻥 차준다면, 나도 예쁜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접힌 날개의 기동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될까? 모를 일이다. 코리아메리카노의 맛도 그렇다. 식어도 그윽하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 맛이 뭔지. 컵 바닥에 가라앉은 저 기이한 색깔의 물질이 콩인지 쌀인지.

 

, 코리아메리카노 이것은 커피계의 콩밥인가?

 

 

 

181101 181115 : 32

 

1. 페소아

: 페소아 전기의 도입이 시급하다. 한 줄에 별로 많은 활자가 들어가지 않는 판형의 300쪽 남짓한 책으로는 성에 안 찬다.

: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300쪽짜리 책이다. 아무리 주제 자체가 매력적이라 해도, 그것에 관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데는 저자의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페소아를 전파하는 활동으로 보자면 한국의 안토니오 타부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김한민 선생님은 실제로 안토니오 타부키가 입던 스웨터를 입어 본 적도 있다고. 허허, 그것 참.

 

2. 로봇수업

: 로봇의 약진을 둘러싸고, 인간이 생각해야 할 가장 큼지막한 질문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는 단단하고 의미 있는 책. 과연 MIT Press. 공학인의 성지.

: 표지에는 인공지능 시대의 필수 교양이라고 쓰여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을 로봇의 한 부분으로서만 서술하고 있을 뿐, ‘로봇자체에 대한 서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는데, 저자에게 걸리면 큰일 날 수 있겠다. 로봇은 로봇,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걔네는 완전히 떼어낼 수 없는 관계긴 하지만 뭉뚱그릴 만큼 한 몸도 아니다.

 

3. 회색 노트

: 2500페이지짜리 장편 대하소설의 반쯤 열린 포문 되시겠다. 이 작은 책 속에 들어 있는 인간들의 앞뒤 정황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하여, <티보 가의 사람들>을 나는 읽기로 했다. 영업을 당한 것이다. 깨끗하게.

 

4.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스케치로 그려진 공간은 친숙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게 저런 금손이 있다면, 나도 볼펜 한 자루 들고 친숙한 공간의 친숙하지 않음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니지 않았을까,

: 하고 생각하고 나니, 다 핑계 같다. 그림이 아니라 글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부족할 뿐이지.

 


5. 다시 자본을 읽자

: 제목이 다시를 포함하는 것은, 진짜 자본을 한 번 읽은 적 있는 사람들만 덤비라는 뜻이 아니다. 권위와 권위자가 내 눈에 가져다 댄 렌즈를 벗어던져 버리고, 우리의 시간과 입장에 맞춰, 우리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는 의미겠다.

: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미리 갖춘 것 없이 덤벙 덤벼들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다. 독자가 몇 가지 기본적인(?) 철학적 개념들(변증법이랄지, 유물론이랄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병권 선생님 해석의 탁월함을 인지하려면 통상적이고 전통적인 마르크스 해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수도꼭지가 달려 있는 집에 태어난 사람은 그 물건의 위대함을 모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물에 두레박을 한번 던져 봐야..... 정말 처음이 아니라 다시읽는 이들에게 좋은 책인 것 같다.

: 그래서 syo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책이 11권이 더 나온다니! 12권 다 꽂아놓고 매년 1회독씩 해야지. 1월에는 1. 2월에는 2......

 

6. 데이비드 흄

: 압축적이다.

: 압축을 풀어야 되는데, syo의 뇌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근력을 만들어서 흄을 읽으려는 syo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흄을 읽고 와서 이 책의 압축을 풀어볼까 한다.....

 

7. 인형

: 비겁한데, 분명 비겁한데 웃긴다. 문장은 굉장히 정교한데, 어느 정도냐 하면, 읽고 있자면 화자의 태도가 기분 나쁘고 후지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는데도 웃기긴 웃길 만큼 정교하다. 초반의 탐색전을 끝내고 나면, 어느 지점부터는 한 페이지에 한 두 번씩 피식 웃게 된다. 뭐 이런 희한한 작가가 다 있지?

: 싶었는데, 다 읽고 났더니 맨 뒤쪽 작가 소개에 이렇게 쓰여 있다.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을 담은 작품세계로 독특한 문학적 영토를 일궈온 세계문학의 거장. 세상에, 정말 더없이 적확하다.

 

8.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과연 포구의 제왕 곽재구 선생님. 이분이 쓰신 포구 기행문을 읽고 있으면 이것이 곽재구의 포구기행인지 곽포구의 재구기행인지 헷갈릴 정도니, 이미 포구 기행문에 관해서는 일가를 이루셨다 할만하다. 이름 장난 죄송합니다. 저질이네요......

 


9.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따분할 틈이 없다. 이걸 에세이로 봐야 하나, 사회학 책으로 봐야 하나 헷갈릴 정도다. 통계나 세금제도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여 아, 내 체력이 방전되고 있어, 싶을 때쯤 어떻게 알고 자기 인생 이야기가 똭! 수업듣기 싫어서 좀이 쑤실 때쯤 첫사랑 이야기가 똭!

: 실제로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10. 빨강 머리 여인

: 파묵은 파묵이다. 한결같이 파묵같다.

: 그럼에도 내 이름은 빨강같은 대작(얘는 정말이지 걸작이지요)을 바라고 읽으면 반드시 실망할 수밖에 없겠다. 사실 그 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평생 한 번 써낼 수 있는 인생작에 가까우니까...... 이 책은 노벨상급 작가의 범작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급의 작가가 컨디션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때, 그냥 기본 실력만 발휘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쓰면 나오는? 물론 실제로 그랬을 리야 있겠습니까마는......

 

11.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하냐고 물으신다면

: 자기계발서 같은데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우긴다. 문체는 파워풀하고 우격다짐의 기세로 몰아붙이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지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하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구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개인의 노력으로 뭘 하라는 단계는 넘어서서 구조를 함께 바꿔나가자는 것이 주제긴 하니, 완전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라고 인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래, 그렇다니까? 저자가 팔짱을 끼고 선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12. 대한민국 독서사

: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독서의 역사가 역사의 독서만큼이나 재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서의 역사의 독서인가? .....뭐래.

: 정치색이 있다. 정치색 없는 책도 있나? 싫어할 사람 있을 수 있다. 싫어할 사람 없는 책도 있나?

 


13. 게임의 심리학

: 게임과 관련해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적 사태들에 대한 지식의 나열. 내용이 알차고 말고는 syo같은 무지렁이가 판단하기 어렵겠으나, 저자는 딱히 글 잘 쓰는 사람도 그렇다고 글 못 쓰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14. 종횡무진 서양사 2

: , 이제 몸을 풀만큼 풀었으니, 10권짜리 프랑스 혁명사나, 홉스봄의 2000쪽짜리 시대’ 3부작이나, 하다못해 1200쪽짜리 미국 민중사나, 그것도 아니면 1000쪽짜리 러시아 혁명사나...... 꿀꺽.

 

15. 잘돼가? 무엇이든

: 이런 진부하면서 무책임한 단어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는데, 게 중에는 가끔, 그 슬픔을 잘 조리하여, 크게는 다른 슬픔을 위로하고 작게는 한 순간의 웃음이라도 전해주는 이들이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 그들의 인생에 저마다의 슬픔이 계속되기를 바라야 하는 건가 아닌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건가 미친 건가, 뭐 이런 죄책감을 들게 하는 참 고마운 사람들.

 

16. 선망국의 시간

: 기본소득, 직접민주제, 호혜적 경제 공동체,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 공동체..... 거의 모든 영역의 최전선에서 담론의 장을 형성하고 계신 조한혜정 선생님. 어느 하나 전 지구적 의제가 아닌 것이 없다. 나는 열심히 읽어야겠다. 그리고 힘닿는 대로 뛰어다니기도 해야겠다.

 


17. 나쓰메 소세키 평전

: 나쓰메 소세키에 환장한 syo는 스스로 이럴 줄 예상을 못했다. 열라 재미없는 평전이었다......

 

18. 마구로 센세의 본격 일본어 스터디

: 귀엽다. 초밥 같이 생긴 주인공이 일본 식당을 다니면서 일본어를 배우는 내용이다. 귀엽다.

 

19. 루쉰 :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 저자의 견해가 그다지 많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깔끔하고 담백한 루쉰 전기.

: 실은 루쉰이란 인물의 인생은 원체 공개적인지라, 어느 전기를 읽으나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다. 단지 전기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루쉰의 어느 글을 인용하여 어디에 포진하는가가 다르게 결정되거나, 혹은 저자의 당성에 따라 루쉰의 업적에 대한 평이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라고 하겠다. 써 놓고 보니, 원래 전기 문학이 다 그렇지...... 죄송합니다.

 

20. 녹색평론 통권 163

: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지는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