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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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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나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언론에서 그만큼 떠들고, 주변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한 권씩 들고 있는 것을 종종 봐왔지만, 나는 청개구리 심보인지 너무 대중적으로 흐르는 작품이라 생각해서인지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일부러 외면해 왔다. 그러던 중에 화차라는 작품이 영화화되어 상영되었고,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면서 이 작가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3월 신간추천페이퍼를 작성하게 되었고, <눈의 아이>를 보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추천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역시 이 작품을 추천하여서 3월 신간으로 받아 보게 되었다.

 

기다리던 작품이 도착하였지만, <눈의 아이>의 빨간 표지가 으스스해서인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책을 펼쳐 들기가 왠지 모르게 두렵다. 공포영화를 보기 전 느낌으로 슬쩍슬쩍 책을 펼쳐보다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공포가 아닌 슬픔이 밀려오는 것에 당황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눈의 아이>는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이다. 다섯 편 모두 일상을 배경으로 하고,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배경이 아닌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즉 주인공이 혹은 가해자가 비정상적인 인물이 아닌 주변인 혹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섬뜩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사소한 적대감, 열등감 같은 일상적인 감정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 더욱 작품의 집중도를 높였고,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깨달음에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모호하다. 작품성으로 보자면, 눈에 띌 만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참신함이라던지 구성이라던지 하는 점에서만 보더라도, 뛰어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작품 자체가 치밀한 느낌은 아니고, 왠지 모르게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미가 없지는 않다. 아니, 적어도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지속적으로 작품이 머릿속에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독자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 꽉 짜여져 있지 않는 느낌에 설렁설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하면서도, 마음 속에 작은 돌을 던진 듯 잔잔한 파장을 일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읽은 <눈의 아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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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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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혼 직전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왕년에 잘나갔지만, 지금은 한 물 간 배우인 토비 플러드. 어떻게든 전(?)부인인 제니를 잡고 싶다. 그러나 지금 제니의 곁에는 매너좋은 재력가 로저 콜본이 있다. 그러나 우연인지 제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토비의 팬인 듯 하니, 잘 해결해 달라는 것. 토비는 제니에게 점수를 따고자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하고자 하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토커(데릭 오스윈)는 토비와의 만남을 이루기 위해 계획적으로 제니의 곁을 서성댔던 것. 데릭 오스윈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토비를 마치 자신의 아바타처럼 이용해 로저를 자극한다. 토비는 점차 로저의 실체를 알게 되고, 이제는 제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로저와 맞설 수 밖에 없다.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은 저자인 로버트 고다드가 영국에서 인기있는 범죄소설작가이기 때문이었다. 책에 대한 홍보도 로버트 고다드가 이번에는 어떤 반전을 그려낼 것인가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글쎄,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것일까, 책의 홍보가 잘못되었던 것일까.

작품을 추리소설로 보고 말하자면, 이야기는 한 마디로 싱거웠다.

추리소설은 끼워맞춘 듯한 딱 떨어지는 논리적 설정이 재미를 이끌어내는 가장 큰 요소이다. 독자는 그 기가 막힌 논리성에 감탄하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많은 부분에서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주인공인 토비가 처음 본 데릭과의 약속을 자신의 일보다 더 중시여겨 연극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 토비가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데릭이 장치해 놓은 무언가가 실마리가 되어서 사건이 진행된다는 점, 엉뚱하게도 영매가 등장하여 증거를 남겨놓았다는 점 등 이해할 수 없는 우연적인 요소가 많았다.

게다가 주인공 토비는 ‘될 대로 되라’식의 인물로, 추리소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치밀하고 이지적인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악인으로 나오는 로저가 토비보다는 교활하게 연기를 더 잘했다고 할까.

또 하나, 그토록 완강하던 제니가 그렇게 쉽게 토비에게로 돌아가는 것도 참 허탈하고 김빠지는 결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끝까지 연기하라. 많이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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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2]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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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어둑어둑하고,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검은 새들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그 앞으로 검은 망토를 입은 남자가 망토자락을 나부끼며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는 긴 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 모자의 그림자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로 인해 더욱 음침한 분위기다.

소설 『프라하의 묘지』를 읽기 전 표지에 대한 첫 인상이다. 표지를 그토록 유심히 본 것은, 오랜만에 만나는 저자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아니면 궁금증을 더욱 유발하여 더욱 즐겁게 읽고자 한 나의 무의식이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자의 그림자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 얼굴이 너무도 궁금해졌고, 얼른 책을 펼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은 아마도 시모니니, 혹은 피콜라 신부.

시모니니로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피콜라 신부의 의식은 없다(그는 아마도 다중인격인 듯 하다). 시모니니는 1830년에 이탈리아 피에몬테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얼마나 불만투성이의 인물이었는지, 정말이지 그의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는 듯 했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은 부정적 사고로 똘똘 뭉쳐 있는 그런 인물 말이다.(아, 그런 그에게도 음식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큼은 충분해 보였다)

 

시모니니는 할아버지 시모니니 대위 밑에서 자랐다. 그는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공증인사무실에서 위조 관련 일을 하다가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일을 맡게 된다. 그 이후 그는 여러 신분으로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살게 된다. 그는 정보원이었다가 신문특파원이 되기도 하고, 공증인이 되었다가 피콜라의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 삶을 사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게 해를 가하게 되는데,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별다른 죄책감 없이 저지르게 된다. 그는 진실을 묻어버리기 위해 허구를 생산해내고, 또 그 허구를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진실을 끌어들인다. 그 또 다른 진실은 다른 허구에 의해서 지워져버린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고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어야 했다. 하나의 큰 맥락으로 이어져있지만, 각 장으로 나뉘어진 부분의 흐름을 연결하여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화자가 시모니니, 피콜라 신부로 나뉘어져 있고, 전체 이야기를 매만져주는 화자가 한 명 더 있는 형식이 더욱 독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자를 배치한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시모니니의 일기, 피콜라 신부의 일기가 번갈아 가며 이어지는 형식이 단순하지 않아 더욱 흥미를 유발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시모니니를 제외한 모든 배경사건들이 역사 속 사실이라는 것들이다. 마치 작가가 시모니니라는 인물을 빚어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집어넣은 것 같았다. 아! 이 작가는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란 말인가. 과연 움베르토 에코!

 

작품의 형식과 내용의 설정에 앞서, 작가의 해박한 배경지식에 너무나 감탄하며 읽었고, 역사에 대해(더군다나 유럽의 역사는 아...) 무지한 나로써는 참으로 어려웠지만, 책을 덮으면서 다시 한 번 정독을 떠올렸다.

긴 말이 필요없는 작품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대작을 만났다. 역시 움베르토 에코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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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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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모든 걸 덮어두고 마냥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답답한 듯 싱숭생숭 우울할 때, 내 마음이 이렇소 하며 구구절절 말하기도 귀찮고, 조금 있으면 자연히 가라앉을 수도 있는데 호들갑 떨기 싫을 때, 마음을 데워주는 책 한 권을 펼쳐든다. 쇼파에 몸을 내던지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덧 마음이 진정되고 평온해진다. 백 마디의 위로보다, 쓰디쓴 술 몇 잔 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과연 책의 힘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의 위력을 실감하게 해 줄 ‘마음을 데워주는 책’은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훈훈한 책을 만났다. 아직도 마음속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남긴 온기가 가득하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원숭이와 게의 전쟁』에 적잖이 실망한 터라, 기대 없이 집어든 작품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나미야 잡화점’에 빠져들기 시작해서 완독하였다.

 

어리숙한 삼인조 도둑 아쓰야, 쇼타, 고헤이는 물건을 훔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숨게 된 나미야 잡화점에서 이상한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편지를 읽은 그들은 답장을 기다린다는 보낸이의 간절한 부탁에 차마 모른척 하지 못하고 답장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보내자 마자 또 다시 편지가 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답신에 대한 답신을 하게 되면서 얼떨결에 고민상담을 하게 된다.

 

 

 이 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도둑들의 고민상담 태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한다. 보낸 이의 고민에 벌컥 화를 내는가 하면,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도움되는 말을 해줘야 한다며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그렇다, 그들은 도둑들이다. 남 걱정 할 때가 아닌 도둑들이, 그것도 도둑질하다가 우연히 들어온 가게에서, 여유롭게 남의 고민상담 편지에 답장이나 하고 있다니, 참으로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정이 가는 건, 자신보다도 남의 고민에 귀기울이고, ‘진심’으로 들어주고 ‘진심’으로 말한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진심’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 아닌가.

 

배려의 아이콘 나미야 할아버지 역시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가게를 유지하고자 했다. 오로지 ‘고민상담’ 때문이었다. 그냥 장난처럼 보낸 고민상담편지에도 일일이 진심으로 정성스레 답장을 써주었던 할아버지. 백지에도 답장을 보냈던 할아버지. 손글씨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며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답장을 쓰는 할아버지.

그냥 그런 할아버지가 고맙고 좋다. 정말이지 보기 드문 캐릭터가 아닌가. 그래서 반갑고 또 반갑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겹고 따뜻하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고, 추리소설적 요소가 아주 쬐금 - 그저 인물들의 관계가 유기적이라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 이지만, 가슴 깊이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인물들이 보여주는 진심으로 말하고, 진심으로 들어주는 태도와 나보다 남 먼저 생각하는 배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덮고서 생각해 보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나미야 잡화점 같은 곳이 있을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그야말로 판타지다. 그래도 생각해 본다. 만약 나미야 잡화점이 있다면 나는 어떤 고민을 써서 보냈을까?

음, 고민이 하도 많아서 어떤 고민을 보낼지 고민이다.

오랜만에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며 웃을 수 있는 밤이다.

고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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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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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극은 통쾌하고 재미있다. 보는 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수극은 강자와 약자가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복수극의 패턴은 대부분 일정한 편으로, 강자의 터무니없는 이기심으로 인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로 인해 평범하게 살던 약자가 희생양이 되고, 약자는 악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삶이 송두리째 뽑히는 듯한 아픔을 겪으며 죽음을 맞게 되거나 혹은 그에 맞먹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독자는 강자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횡포에 부당함을 느끼지만 맞서지 못하는 약자(혹은 약자의 가족)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약자를 응원의 눈길로 지켜보게 된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도 꿋꿋이 버텨나가는 약자를 보며 눈물짓기도 하고, 시련에 꺾일 것 같은 약자를 보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한다고 응원하면서 독자는 점점 약자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어느덧 발전을 이룬 약자가 마침내 강자와 다시 한번 대적하는 기회가 생겼을 때, 독자는 긴장하게 된다. 마침내 약자가 강자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이고 돌아섰을 때, 독자는 마치 폭포수를 맞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 시원한 감정이 바로 복수극이 인기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복수극에 대해 늘어놓은 것은,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과연 복수극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바가 큰 소설이다. 그 의미를 찾아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교활한 원숭이가 착한 게를 속여서 재산을 갈취한 다음 게를 죽여버린다.

이에 증오심에 가득 찬 게의 새끼들이 계략을 꾸며 원숭이를 죽여 복수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교활한 원숭이는 누구일까?

미나토의 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든 에노모토 요스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의 새끼들은 히로시와 미나토로 볼 수 있다. 그들이 계략(?)을 꾸몄다고는 볼 수 없지만, 뭐 어쨌건 미나토가 고의로 에노모토 요스케를 차로 치었고, 그 살인혐의를 그대로 형인 히로시가 덮어 썼던 걸로 형제가 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나토와 히로시의 이야기는 소설의 초반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소노 요토와 준페이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게 된다.

준페이의 이야기에서는 교활한 원숭이를 누구로 볼 수 있을까? 국회의원 자리를 두고 준페이와 대결하는 도쿠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는? 준페이는 운이 좋은 자이다. 바텐더로 활동했다는 것도 크게 장애로 작용하지 않는다. 호남형에 성격좋고, 운 좋은 준페이가 약자라는 것이 공감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준페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소노는 그야말로 슈퍼우먼 최강 능력자 이다. 준페이를 도와주려고 하는 마담이나 마담의 새신랑 역시 그 업계(?)에서 알아주는 보스이다. 이런 자들을 ‘게’로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이미 원숭이 도쿠다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더군다나 준페이는 미나토를 협박하여 돈이나 뜯으려 했던 잡범이었는데, 운 좋게 소노의 눈에 들어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한발한발 나아가는 기특한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런 준페이의 성공에 긴장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없다. 준페이라는 인물에 공감과 응원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심하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복수극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원한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인물들간의 어설픈 연결은 읽으면 읽을수록 부자연스러움이 더해져서 아쉬운 점이었다.

 

오랜만에 읽었던 일본소설이었다. 예전에 가네시로 카즈키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어서 일본소설에 대한 흥미가 없지 않았는데 아쉽다.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이어서는 안돼' 라는 문구에 기대가 컸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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