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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의 내용에 평하기 보단 책 자체를 평가하고 싶은 책들이 있다.
솔직히, 우리가 뭐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봉은 더 더욱 아닐진데, 왜 만날 책을 읽었단 이유만으로 서평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건데? 책이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좋은 건 아니지 않는가? 읽는 독자도 책에 대해 할 말은 많다. 책을 안 읽는 사람 보다 읽는 사람이 몇배 더 멋있지만, 그 고상함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말만 해대는 사람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수강생들의 워크샵 작품을 읽고 평가를 해야하는 숙제가 사명처럼 주어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 유독히 좋은 말만 하는 수강생이 있었다. 내가 볼 땐 그게 그 사람의 성향이고, 성격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좋은 가정 분위기에서 반듯하게 자라, 천성적으로 싫은 말 못하는 사람이다. 뭐 나름 젠틀해서 난 그런 사람 좋은데, 공부할 때 그런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된다. 어떻게 이 덜 떨어진 작품에 좋은 말만 해 댈 수 있느냐? 비록, 들을 땐 아파도 좋은 말 보다, 필요한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영화판에서 진정한 전우다. 이것은, 그 시절 나의 사부님이 누누히 강조했던 말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 시절 수강생들의 한참 덜 떨어진 작품에 비견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확실히 아쉽고, 안타깝고, 쫌만 더 잘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말을 속시원히 까발리고 싶어서다. 그리고 이책은 그 이름도 자랑스런, '알라딘 평가단'에서 받은 책이 아니던가? 서평은 서평이고, 평가는 평가다. 폐일언하고, 나는 이 책에 대해 평가만 하련다.
사람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을 때, 어떤 말을 먼저 듣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까? 나쁜 말 먼저 듣고, 좋은 말 듣는 게 그래도 좀 낫지 않나?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난, 이 책 받아 들었을 때 짜증부터 확 밀려왔다. 만화면 다 용서된다는 건가? 나도 지금 보다 10년, 아니 5년만 더 젊었어도 찌증 같은 건 내색도 않고 열심히 읽고, 어떻게든 느낀점을 말해야지(이게 우리식의 서평 아닌가?), 했을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예전 같으면 만화가 하급 문화 행위쯤으로 비하됐지만, 지금은 제9의 예술이라 하여, 누가 만화 본다고 해서 결코 비난하면 안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볼 때 솔직히 자위하는 소리 같다. 만화의 길은 아직도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짜증이 밀려왔다는 건 공교롭게도, 글씨가 너무 작고, 촘촘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초두에 말하지 않았던가? 난 용가리 통뼈가 아니라고. 아직 안경은 안 썼다지만, 나도 적지 않은 나이이고 보면, 이런 책은 읽기가 참 난감하다. 만화면 다 용서되냐고 좀 전에 물었는데, 사실 용서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만화는 아이들이나, 청소년, 젊은이들만 읽어야 하는데? 그 보다 더 나이든 세대. 할머니, 할아버지도 읽으면 안 되는 건가? 가끔, 만화 생산자들, 만화는 매니아들을 위한 것이라는 구태 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만화가의 길은 외롭고, 고독하다고 온갖 똥폼은 다 잡는다. 자기네들 바운더리를 스스로 정해놓고, 누구한테 덤태기를 씌우려 하는 건가?
이현세 만화를 보고 자랐던 세대가 이제 50을 바라보고, 60이 머지 않았다. 그들 중엔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하여 이미 오래 전에 만화 졸업한 사람이 부지기수겠지만, 왜 만화가 젊을 때 한때의 향수로 취급 받아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누가 봐도 판형의 면에서, 나이많은 사람에겐 그다지 어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소개된 화가의 그림을 실사로 집어넣는데, 그게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엄지 손톱만 하거나, 그 보다 좀 크거나 했다. 뭐 안 보는 것 보다야 낫긴 하겠지만, 그 보단 그렇게 작은 사이즈 인쇄가 가능하다는 게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그림은 모름지기 문화재급으로 보는 것이 제일 좋다. 예를들어, 루브루 박물관전을 우리나라에서 했다 하면,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어도 솔깃하다. 왜 그런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될 수 있으면 큰 화면에서 또렷히 보는 것이 좋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보는 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모독하는 것인줄도 모른다. 다행히 책에 실렸던 화가들이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망정이지, 알았더라면, "당신 내 그림 가지고 뭐하는 거야?"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2page를 더 추가해 그 화가의 주요작품을 좀 크게 볼 수만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부제가, '2page로 보는 화가 이야기'라고 해서 하는 말이다.
또한, 화가에 관한 책은 이 책 말고도 많이 나온 줄 알고 있다. 과연 이 책이 경쟁력 있게 만들었다고 자부하는지 묻고 싶다.
그래도 이 책, 나름 특이할만한 것은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화가가 101명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모르는 화가가 이렇게 많았나? 우리가 아는 화가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만든다. 마치 이 책을 보고나면, 미술계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있는 건가?(없으라는 법 없겠지만) 몇 명 밖에 알지 못했다는 것에서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이렇게 많은 화가를 알필요가 있을까? 양극단을 오가게 만든다. 또한 이책의 장점이라면, 한 화가에 대해서 그 인생의 시작과 함께 20대, 30대, 4,50대 뭘 했는지를 만화적 상상력과 함께 간략하게 알아 볼 수 있게 해놨다는 점, 그리고 화가 연표와, 그 화가가 지향했던 작품 경향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아 볼 수 있게 했다 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설명이나, 해석 같은 것은 기대하면 안 된다. 그냥 백과사전 식이다. 일부러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 같이 미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책 같다(물론 내용면이 그렇다는 것. 도판이나 판형을 생각하면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순전히 서양화가를 중심으로 다뤘다는 것이다.
책의 도판이나 판형을 생각하면 나로선 그리 높은 평점은 줄 수가 없지만, 왠지 저자의 공력은 좀 높이 사 주고 싶긴 하다. 별점을 준다면, 3개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도 꿀꿀한데 미술관이나 나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