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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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리는 이런 복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이들이 왜 그토록 많은가? 78쪽

 

너무 참담하다. 책을 읽는 내내 참담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계속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내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질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면을 지배했던 물질에 대한 욕심, 내 안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불평들이 부끄럽다 못해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어쩌면 며칠이 지나고 이 마음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 허리와 목의 통증도 잊은 채 꼼짝 앉고 이 책을 덮고 나니 세 시간이 지나 있었고, 새벽 세시 반이었다. 내 안에 맴도는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 잠들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이 마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무기력한 나로 돌아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도망쳤던 일을 모두 용서해 주십시오! 92쪽

 

나는 여전히 이들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하나님이 수많은 이들 중에서 나를 자녀 삼아 주시고, 안락한 생활 속에서 살게 해 주신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들,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은 다른 임무를 띤 누군가가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얄팍한 헌금으로 어느 정도는 일조하고 있다는 자만감이 너무 창피했다. 분명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아니, 어떻게든 외면하고 있던 영혼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한 충격이 더 참담했다. 왜 그럴까? 내가 받은 복음은 왜 모두에게 닿지 않았으며, 복음의 뜻을 제대로 알았다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나는 왜 가난한 이들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쳤을까?

 

다시 말해, 육체적 필요도 중요하지만 이 장례 현장은 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때가 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 후의 상황이야말로 진정으로 중요하다. (…) 그리고 이것은 지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중요하다. 108쪽

 

약이 없어 눈을 잃고, 가족과 이웃의 떼죽음을 목격하고, 돈 때문에 인신매매로 팔려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어린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가 지금껏 외면한 사람들만 같았다. 사람이 죽으면 승려가 사지를 잘라 몸을 조각내면 독수리가 와서 시신을 먹는다. 이런 장례의식 천장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영혼 구원이 중요함을 느낀다. 또한 히말라야 등반을 하면서 끊임없이 육체적 필요와 영적인 필요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두 필요는 적절히 이뤄져야 하고 그럼에도 영혼의 구원 없이 육체적 필요만을 추구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옥 같은 현실을 보며 ‘일시적인 육체적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영원한 고통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말이 그저 잔인하지 않게 들리지 않길 바랐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이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와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136쪽

 

그럼에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건 저자나 나나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인신매매범을 쫓아가 아이들을 구해내고 싶었고, 큰 병이 아닌데도 약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이건 순간적으로 드는 일회성 생각이 아닐까? 내일이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래놓고 생색내고 나의 안락함으로 젖어드는 건 아닐까? 내면이 너무 어지러웠고, 혼란스러웠고 엄청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 안의 이런 상태를 바꾸어야만 한다.’고 했다. ‘눈앞의 절박한 상황을 보고’ 지나치지 않게 나의 상태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이다.

 

저자를 히말라야 트레킹에 초대한 애런은 우연히 친구들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게 된 첫 날 휴게소에서 인신매매범을 마주치고 그대로 산을 내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특별한 역사를 경험하고 20여 년 동안 그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런처럼 뜻을 품고 히말라야로 들어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곳 주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담함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감사만 하고 내 목숨과 재산을 나 자신만을 위해 움켜쥔다면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과연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가?’ 229쪽

 

하나님께 드렸던 내 기도들이 너무 부끄러웠다. 오로지 내 안위, 내 가족, 평안함만을 위해 기도하고 던지듯 나머지 것들에 대한 기도를 드렸던 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히말라야로 갈 수 없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깊은 고민 끝에 내게 가장 큰 어려움과 고민과 번뇌를 안겨주는 ‘물질’의 쓰임을 다시 생각해보는 게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임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곳에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당신의 삶을 계획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원제 ‘Something Needs to Change'의 의미를 부디 잊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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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축복 -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복이 무엇인가?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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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크리스천이 무기력해진 것은 성경적인 복을 구하지 않고 세상이 추구하는 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14쪽

 

요즘의 나도 그렇다. 무기력하고 성경적인 복을 구하지 않았으며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을 바라보다 보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 물질을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느라 진정 내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았다. 그야말로 세상의 유혹에 이리저리 휘둘린 셈인데, 그래서 이 책을 읽기가 살짝 두려웠다. ‘뜻밖의 축복’을 거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까봐, 축복 속으로 들어오지 못할까봐 망설여졌다.

 

하나님의 신인류 프로젝트의 핵심은 바로 ‘내가 복이다’라는 이 한 가지 사실입니다. 내가 복이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서나 어디에서나 복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출발 지점입니다. 21쪽

 

분명 하나님께서는 내게 넘치도록 복을 주셨는데, 그새 망각하고 또 다른 복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내 자신이 복이었다니, 하나님은 나를 복 자체로 놓고 나의 삶을 축복해 주고 계셨는데 나는 엉뚱한 곳에서 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이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까지, 들쭉날쭉한 나의 믿음이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도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내 믿음이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냥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도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태도도 살아내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오늘날 그런 삶은 없고 입만 무성하니 크리스천이 비난받거나 조롱받는 것이지요. 39쪽

 

현재의 내 모습이 꼭 그랬다. 무기력함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반대로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쉽게 훌훌 털고 일어서지 못했다. 최근에도 그랬고 여전히 내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 같다. 그래서 이 문장을 보면서 살짝 눈물이 났다.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면 된다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불안과 의문과 부족함을 모두 아울러 하나님께서 내게 해주시는 말씀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면서도 나약한 나는 늘 하나님을 가장 먼저 떠난다. 그리고 한참을 헤매다 다시 돌아와서 위로받고, 잘못했다 회개하고 다시 또 살아간다. 이런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 기준에서는 나 같은 이도 ‘복’이 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어찌 이 믿음을 져버릴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알아 그분의 뜻과 계획을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곧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삶입니다. 193쪽

 

나는 신앙에서도 시기 질투를 했나보다. 믿음이 좋아 보이려고, 그럴싸해 보이려고 겉치레를 열심히 했지만 곧 들통 난 것도 모르고 혼자서 연극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기심은 나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기심이 이는 것이고,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여전히 하나님과의 원활한 관계에 서툴기에 자주 이탈하고, 돌아오기를 번복하느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기준으로 살아가지 못하지만 그것들을 이행하는 날이 곧 오기를 소망한다.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씻어내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미 나에게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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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호수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정용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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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고 싶었어. 누군가가 나를 원하고 있다는 그 생생한 느낌을. 그 시절 남편은 나를 원했어. 나는 그를 원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그가 나를 원하는 것처럼 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땐 그게 필요했어. 120쪽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는 아니었을 텐데…….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의 초청으로 간 주인공 윤기는 7년 만에 스위스 장크트갈렌에서 만난 옛 연인 무주를 만나서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7년 만에 옛 연인을 만난다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온갖 상념들을 끌어내는 일은 더 흔치 않을 것이다. 거기다 어긋났던 시간과 그때의 상황들을 마주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듯이 헤어질 때의 어긋남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윤기와 무주를 보면서 느꼈고, 그들이 7년 전을 다시 떠올리며 되짚는 대화들로 이미 충분했다.

여행지에서 뭔가를 결정하는 용기는 항상 옳아요. 하지만 그 용기는 한 번만 내세요. 그곳에선 뭔가를 결정하면 안 돼요. 그건 용기가 아니에요. 어리석은 거지. 42쪽


윤기를 일정을 조율하고 안내했던 가이드 민영은 그가 장크트갈렌에 간다고 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적어도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건 옳다고 말했던 그녀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말했을 때는 뭔가 경험이 묻어났다. 마치 윤기의 결정이 불안하다는 듯이 혹은 그런 결정 뒤에는 후회만 남는다는 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나중엔 오히려 윤기의 그런 결정 때문에 자신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말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마음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릎에 놓인 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주의 책이었고 나중엔 내 책이었다가 어느 날부터 우리의 책이 되어 우리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 (…)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무주에게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01쪽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물건을 7년 전에 헤어진,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키우고 있는 옛 연인의 집에서 만나는 기분은 어떨까? 설렘과는 동떨어진,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확인 정도라고 해야 할까? 윤기와 무주가 마주하고 있는 시간들이 분명 이상하고,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지만 편하게 마주하며 헤어질 때의 이야기, 그때의 습관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모습에서 느꼈다. '다시’가 아닌 그저 각자의 기억 속에 와해되었던 시간을 되짚어 보는 것이라고, 모습은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오랫동안의 응어리를 푸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남편을 따라 장크트갈렌에 간 무주의 기억이 남아 있었고, 일 때문에 빈에 갔을 때 와해되었던 기억과 응어리를 덜어내고 싶다는 바람이 무의식중에 윤기에게 남아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훨씬 가까워진 거리에 용기를 냈을 것이고, 용기의 방향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지만 어찌 되었건 후회와 미련, 오해, 불안함 등등 무주를 향한 여러 감정이 많이 해소되었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니까 헤어진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작은 책상에 앉아 혼자만 펼칠 수 있는 책 한 권을 갖는 일이다. _작가 노트

윤기와 무주는 혼자만 펼칠 수 있는 책을 잠시나마 함께 펼친 셈이다. 그게 다행인지, 후회가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결혼한 지 7년이 넘은 나에게도 그렇게 함께 책을 펼쳐보고 싶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전혀 허무하지 않았다. 과거는 이미 충분히 곱씹을 대로 곱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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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너머의 꿈을 꾸다 - 정조와 정약용 꿈 너머의 꿈을 꾸다 1
김해등 지음, 고정순 그림 / 스푼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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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규장각’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선왕들의 책과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새로운 인재를 뽑아 길러 내기 위해서였다. 21쪽


만약 시간여행을 통해 조선에 갈 수 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조 때라고 말한다. 18세기 국문학의 꽃을 피웠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덕무가 살았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만들고 새로 임명된 관리들을 발표했는데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서이수’였다. 그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실력이 있으면 신분도 개의치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 있었지만, 왕은 철저히 백성을 위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정조와 실학자 정약용이 어떻게 조선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얼마나 개혁을 꿈꿨는지를 보여준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돌아가시던 해에 태어난 정약용과의 만남이 정조의 뜻과 잘 맞아 떨어졌기에 조선이 잠시나마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정조 승하 이후에 정약용은 긴 유배를 가고 다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분명 정조와 정약용은 함께였기 때문에 그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뜻이 맞는 왕과 신하가 만났을 때 어떠한 시너지를 내는지 정조와 정약용을 보면서 느꼈다.


정조가 세우는 계획에는 항상 백성이 중심에 있었다. 백성이 잘 살려면 농업과 상업이 발전해야 했고,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곳이어야 했다. 성을 건설하여 농업과 상업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했다. 31쪽

정조가 바라는 조선을 그리면 정약용은 뚝딱뚝딱 실현시켜 주었다. 현륭원에 자주 가고 싶어 하는 정조를 위해 배다리를 만들고, 정조가 준 <북학의>를 보며 조선 상업의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금난전권이라고 말한다. 도성 안에서 허가를 받은 시전 상인들만 장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제약도 많았고 물건 값도 들쑥날쑥했다. 그렇게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그렇게 조선을 바꾸어 나갔다.

화성은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튼튼하면서도 백성들이 살기에 편리해야 했다. 또한 상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다른 도시와 잘 연결되어 있어야 했다. 화성이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76쪽

삼년상을 치르고 있는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길 만큼 정조는 수원 화성이야말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도 강화하고 백성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여겼다. 설계는 정약용이 맡고 공사는 채제공이 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시간과 인력이었다. 빠른 시간에 화성을 완성시켜 실학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정조의 마음을 알기에 정약용은 거중기와 같은 기계를 발명해 시간을 단축했고, 백성들에게 제대로 된 품삯을 주는 등 수원 화성에 열의를 쏟았다. 그랬기에 10년도 더 걸릴 거라는 기간을 3년도 안 되는 시간에 완성시킬 수 있었다.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천주교에 관심을 둔 정약용을 두고두고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정조 곁을 잠시 떠나 있는 사이 정조는 승하한다. 그리고 정약용은 조선은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정조는 그렇지 않다며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빛이 되어서 길을 밝혀야 한다.’고 한다. 그랬기에 정약용은 정조가 없는 세상에서도 그렇게 꿋꿋하게 스스로 빛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들이 만들어간 조선은 빛이 났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하나의 빛은 아니었지만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희미하게나마 그 빛이 이어지고 있다고 여긴다. 오로지 백성이 중심이었던 마음. 그 마음은 꼭 더 환한 빛을 발휘해 현대에도 이어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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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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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참 많은 책이다. 19년 전에 선물 받았었고, 이 책을 선물한 이와 이미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다. 책머리에 새겨진 날짜의 글씨체만 보고도 누가 주었는지를 알았고,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새삼 떠올라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미화된 기억일지라도 그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과거의 일일뿐이므로 이 책에 담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뜨뜻해졌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강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은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나는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11쪽

나 역시 강하지 않기에 지금껏 ‘무엇이든’이 아니라 주어진 것들을 겨우겨우 헤쳐 온 기분이 든다. 그렇게 헤쳐 온 과거를 돌아보면 그저 어리둥절하다. 내게 이런 일들도 있었구나,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들이 솟구치면서도 나는 절대 강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양한 범위에서의 선택보다는 주어진 것들 틈바구니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 선택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도 나의 오랜 기억 속에 자리하고 희미하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후에야 불쑥 꺼내들었을 땐 완전히 다른 소설로 다가왔다.

그 사람은, 나의 미카엘은 회색빛이고 자제심이 강했다. 49쪽

대학교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한나를 붙잡아 준 게 미카엘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지질학을 공부하고 있는 미카엘과 문학을 공부하는 한나의 만남은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세세하게 서로를 알고 난 뒤에 결혼을 한 게 아니라 결혼생활을 통해 서로를 알아갔고 한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 온 임신, 학업중단, 출산 그리고 망상과 상상들이 이어지는 날들 속에서 한나는 결코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마음이 쏠리는 인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미카엘의 자제심이 돋보일 정도로, 생활비를 몽땅 옷을 사는데 써버리거나 새 아파트로 갈 계획이 있음에도 준비하지 못하고 아들과 유대감을 쌓지 못하는 모습들이 불안해 보였다. 미카엘은 그런 한나를 묵묵히 지켜주며 공부하느라 피로에 감에 쌓여 있지만 가정과 학업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들은 마치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자리에 앉게 된 두 명의 여행자들 같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고, 예절이라는 관습을 지켜야 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아는 자신들의 사이를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예절바르고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고. 73쪽

그럼에도 한나를 비난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짜증과 우울, 후회 때문이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내 몸의 변화, 이 세상에 생명을 내 놓아야하는 두려움, 육아의 피로 가운데 나의 존재감은 점점 사라지고 이 모든 상황들이 그저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나처럼 내면의 망상으로 대부분 감정처리를 한 것이 아니라 온갖 짜증과 무기력감을 쏟아낸 것 정도일까? 한나의 들쑥날쑥한 감정변화를 보며 미카엘과 잘 맞는 배우자가 아니라는 사실 뒤에, 한나는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힘겨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 무례한 남자들의 뻔뻔한 시선에 답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간에 대처하고 있다. 눈을 돌리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차가운 경멸의 미소를 얼굴에 띤다. 겁먹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251쪽

한나의 감정들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무의미하고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망상과 현실이 얽혀있다. 미카엘에 대한 사랑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완전한 이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지만 다정하게 들리지 않는 ‘나의 미카엘’이 부디 다른 의미로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나의 남편, 나의 아이들 혹은 수많은 ‘나의’로 시작하는 것들에게 긍정적인 의미의 현재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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