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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흠 찌질남이라 해야되나. 좀 읽는 내내 뭔가 자신 없어하고 수동적이고 그저 흐르는대로 흘러간다 희망내지는 의욕같은걸 찾을 수 없어서 대체 이 소설이 뭘 이야기 하자는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런 될대로 되라라든지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밖에 없는 인생의 탄생부터 서른일곱이 될때까지의 과정을 보고 듣는것이 막 즐겁고 너무너무 궁금하고 그러진 않았다. 읽을수록 대체 어쩔려고, 어쩌자는건가 하는 갑갑함이 시시때때로 밀려왔었다.
어릴때부터 갖가지 기행을 일삼는 누나가 있고 그 누나를 어쩌지 못해 방관하는 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자라났다(로 말하고 싶었던건가) 아 그치만 그런 이유들때문이라면 삶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대하는 관계들이 좀 너무 쩨쩨하지않나. 힘들면 도망가고, 숨고.
아유무에게 진심으로 힘들었겠다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뭔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얼굴이 아니었던것이다. 그래서 힘들었다. 아 이런 비루함을 책에서 이리도 절절하게 느끼게할 줄이야. 그럴수밖에 없다는걸 알겠는데 그런걸 이렇게 소설에까지 읽어야함이 좀 답답했던거다. 난 뭘 원했던걸까? 막 죽죽 잘나가는 이야기ㅡ 아유무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 조차도 뭔가 아쉬웠다. 그저 자신을 흘려보내는 느낌. 자신의 머리카락이 빠져나가는거처럼.
어릴적 이집트시절 만났던 야곱과 헤어질때 겪은 신비한 경험이 나중 그를 건져내줄 하나의 믿음을 만들어내는데 찌질남에서 자신만의 심지를 찾아내는 과정은 갑자기 드라마가 쓰여져 부모님의 난데없는 사실고백으로 이뤄진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고난뒤 그토록 싫어했던 누나, 어머니와의 관계도 회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내는 일로써 일정부문 자신의 단계를 올라서는걸로 끝을 맺는데,
시대가 그럴 수 밖에 없긴하지만 프리터, 알바등등으로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지나가는 요즘 88세대들도 비춰져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무언가 억눌리면서 지내고 있는 요즘 2-30대들의 일상을 그대로 돌려보는듯해서 답답했던 마음이 많이 들었던 소설이다.
과정과정에서 여유를 찾을수 있는 보석같은 작품들과 노래들이 그를 잘 감싸주길 바랄뿐. 또다른 글로 그는 또다른 사라바를 찾아낼꺼라 확신하지만 그 사라바를 찾아내는 과정이 난 좀 힘들었다.
그러면 내게 이 소설은 좋은건가 나쁜건가 ??
아마 스물 다섯살 나는 진짜 재밌어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
그저 아유무가 잘 걷고 걷기를 바라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