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류시화’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보통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같은 시집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앞서서, 그것도 강렬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은 《지구별 여행자》《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다. 그 이야기들이 나를 인도로 이끌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온 몸의 감각마저 인도를 떠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 물론, 시(時)로 먼저 알게 된 이름이었지만, 여행 에세이로 더 큰 기억에 남아서인지 그가 시집을 들고 나왔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것도 15년의 침묵을 깨고 나온 것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하지만 그런 낯섦도 잠시. 시집이든 여행 에세이든, 그저 좋은 기억을 남겨줬던 그이기에, 낯설어 하기 보다는 친근함으로, 또 이번에는 어떤 느낌으로 오랫동안 전해질까 하는 기대까지 더해서 다가설 수 있었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라는 이름의 시집으로….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강박관념이 책을 볼 때 놓치지 않고 전체 페이지를 반드시 보게 만든다. 이 책은 이정도 페이지니까 금방 보겠네, 혹은 이 책은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라는 식으로…. 페이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전혀 필요 없는 생각을 또다시 하고 말았다. 특히나 그런 분량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시집을 들고서 말이다. 아직은 내가 시를 읽을 상태가 아닌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에 쫓기고 있고, 무엇을 보고 있기에 이렇게 서두르기만 하고 가만히 앉아 오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복잡함은 나를 온전히 시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게 했다.

 

 새로운 기대감이라는 설렘이 있었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뭔지 모를 복잡함.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읽는 것뿐이었다. 그저 글자를 따라가는 것으로… 그게 전부였다. 차라리 글자만을 따라가면서 그 자체에만 집중했으면 좋았으련만, 자꾸만 뭔가를 발견하려고 했고 자꾸만 뭔가를 이해하려고만 했다. 시는 그렇게 다가가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시인이 들려주는 언어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머릿속이 가벼워지면서 뭔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냉정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고, 신비함 깃들어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때로는 마냥 행복해지기도, 때로는 기분 좋은 웃음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슨 신화 속에 있듯이 몽롱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 느껴졌다. 아직은 배울 것이 많다는 어떤 절실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기대했던 설렘이 그대로 느껴지고, 예상하지 못했던 낯섦에 묘하게 흥분되기도 했다. 때로는 내가 먼저 발견하지 못한 새로움에 아쉬움도 느끼고, 약간의 관심도 없어서 스쳐지나갔던 낯섦에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수백 페이지로 표현해내는 이야기를 몇 개의 단어,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 하면서도 다양한 맛과 다양한 멋이 있는 시에 새삼 감탄스러워하게 되는 순간의 연속들이었다.

 

 

오늘 나는 달개비에 대해 쓴다

묶인 곳 없는 영혼에 대해

사물들은 저마다 시인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한다

나비가 태어나는 곳이나 생각의 틈새에서 자라는

이 마디풀에게서 배울 점은 다름 아닌

신비에 무릎 꿇을 필요

신비에 고개 숙일 필요

 

- 달개비가 별의 귀에 대고 한 말 中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린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싶어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물들은 저마다 시인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만나면서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신비에 고개 숙일 필요’를 말하는 시인의 낯선 언어는 어느 샌가 가슴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짧은 순간들이지만 나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면서, 시험을 위해서만 시를 읽어왔다. 내가 느끼는 그대로의 시를 만난 것이 아니라, 자꾸만 시인의 의도만을, 출제자의 의도만을 따라가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물론 시인이 하고자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시를 읽게 된다면 지금 나의 모습들에 나의 상황에 맞는 세상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시를 통해서 나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을 만들어준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 고마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뭔가에 쫓기고 있고, 서두르기만 하게 되는 순간에 오히려 더 찾아야 하는 것이 삶의 여유가 아닐까?!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나의 삶을 찾아가는 또 다른 길, 혹은 안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혼란스러운 많은 생각들 속에서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 어떤 힘을 안겨줄지…. 역시, 직접 만나보라는 말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