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타이거스 - 2013년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최지운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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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과거에는 충분히 통하던 말이 더 이상은 통하지 않을 만큼 세상을 빠르게 변화되어왔고, 또 그렇게 심화되어 가는 것이다. 무조건 죽어라 노력하면 가능하던 것도, 이제는 죽어라하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깨달아 간다.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는, 용의 자식들만 다시 용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용은 절대 될 수 없음에도 ‘용(龍)공고’ 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매봉산에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옥수동은 둘로 갈라진다. 대한민국 하위 5퍼센트, 즉 가난과 빈곤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기존의 달동네 사람들의 옥수동과 대한민국 상위 5퍼센트의 사람들로 새롭게 꾸려진 서당동으로 나뉘는 것이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나눠진 구역만큼이나 명확하게 빈부와 학벌의 경계가 그어지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위 5퍼센트의 대표격인 용공고 ‘오호장군’과 상위 5퍼센트의 대표격인 중앙외고의 ‘캡틴파이브’의 패싸움이야기로 말이다. 복잡한 생각 때려치우고 그저 재미로 이들의 일인자 다툼을 지켜보는 재미도 꽤 괜찮지만,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생각들을 하나씩 만나고 곱씹다보면 그 재미는 질적으로 보다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도 이런 자신들의 현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아니, 부정 할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은 깡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싸움은 다르다. 적어도 싸움의 세계에서는 예금 빵빵한 체크카드가 없다고 낙오자가 되는 것 아니다. 마음만 맞고 싸움만 잘하면 아버지가 청소부든 의원님이든, 사는 집이 궁궐이든 판잣집이든 상관없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전교 등수는 물론 인문계, 실업계 같은 구분도 필요 없다. 오직 깡, 깡만이 중요할 뿐이다. 반드시 상대를 꺾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최강자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싸움의 세계였다. 이 세계로 말할 것 같으면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진리가 유일하게 통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P117~8

 

 사실, 이 책을 펴고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어야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조폭이 영화계를 휩쓸던 기이한 현상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그와 비슷한 고등학교 폭력서클이라는 소재의 이야기에 거부감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포장된들, 이런 폭력서클의 이야기가 성장소설(혹은 젊은 소설?!)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한 몫 했다. 그런데 웬걸. 이야기 자체의 속도와 내가 이야기에 빠져들어 가는 속도가 맞물려 들어가면서 언제 이렇게 되었나 싶을 만큼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와 동시에 내가 처음에 가졌던 편견이란 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언제나 한 쪽의 이야기만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폭력이라는 것 하나에 이미 내 마음이 기울어 졌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돈과 권력을 쥔 무리들에게 그 어느 것 하나 내밀지 못하고 오히려 정리대상으로 취급받는 이들에게 -내가 그토록 단순하게 부정적으로만 보아오던- 싸움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순간 뜨끔했다고 해야 할까?! 물론 폭력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폭력을 통해서라도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위험할지도 모를 생각마저 가능할 만큼의 지금 세상이 지닌 부조리에 -항상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만, 다시 한 번!- 울컥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그 놀라운 진리가 통하는 곳이 있기도 하니 다행이라고 즐거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진리가 통하는 곳이니 더더욱 그 세계에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고……. 훕!

 

 이 소설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독특하다. 소설이기에 독특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 일상-특히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책 속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아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 인터넷을 하면서 이창 저창을 마구 띄우고 내리며 바쁘게 이것저것을 읽어 내려가듯이 인터뷰 창이 툭 튀어나와서 뭔가 아쉽다싶은 부분을 채워주기도 하고, 채팅창이나 어느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직접 보여주면서 보다 이야기의 사실성을 보다 높여간다. 더군다나 허구인 듯 말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건들과 그런 형식들을 얽히게 만들어 단순한 재미와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의 ‘당선 소감’을 보게 되면-아, 이 작품은 ‘제1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비슷하게 생긴-평범한 학생들이 자신에게 닥친 여러 사건들을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이며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보통의 청소년 소설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예전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회 전반에 산재해 있는 부조리나 불평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여야 한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보듯이 그러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부모·지역·학교에 따라 오늘이 결정되는 기이하고 부조리한 상황……. 부모·지역·학교에 따라 내일도 결정되는 무섭고 잔인한 세상! 이건, 많은 성장소설에서 하나같이 말하는 ‘개인의 내면적 성숙’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당선 소감 中에서…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역시 이것이 아니었을까.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그래서 그런 것쯤은 개인적 차원에서 견뎌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라는 세상 속에서, 그런 아픔은 너희들만의 탓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성장이 무조건 참고 견뎌야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나의 짐작이 맞다면, 나 역시 그런 생각에 한없이 지지를 보내주고 싶다.

 

 가볍게 생각하고 읽어나갔던 소설인데, 그리고 실제로 가볍고 즐겁게 읽어나갔던 소설인데, 그 끝맛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그래서 더 놀라운 소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재미와 깊이를 다룰 줄 알고 문무를 두루 겸비한 메이저급 신인의 출현”이라는 심사평을 보며, 뭐 이렇게 과대 포장을 하나 싶었는데, 직접 읽고 나니 결코 입에 발린 소리만은 아니다 싶다. 다음에는 또 어떤 즐거움과 아픔을 묘하게 섞어놓을지, 이 신인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메이저급’이라는 수식이 아닌 진짜 ‘메이저’의 모습으로 보다 업그레이드된 놀라움을 던져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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