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페어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비오는 어느 날 밤, 신주쿠 구 도야마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두 사람으로 42세의 회사원과 17세의 여고생이다. 유요한 단서나 목격자도 찾기 힘든 상태에서 수사진에 단 하나의 단서-인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가 남겨진다. 그것은 밋밋한 하얀 종이에, 간소한 인쇄로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책갈피이다. 범인의 메시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 너무나도 적은 단서로, 심지어 두 피해자 간의 접점도 찾지 못해 그 어떤 추리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사키 출판 주최의 ‘문학신인상’수상 파티에서 한 남자가 죽게 되고, 파티 참가자 중 한 사람의 양복 주머니에서 책갈피가 발견된 것이다. 역시나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같은 문구가 있는… 그런데 이 사건, 소설로도 그대로 재현된다. 소설 속에 소설이 있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출판사와 경찰에 도착한 《추리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 앞서 발생한 살인 사건들과 똑같으며, 심지어 경찰관계자나 범인이 아니면 절대 모를 상세한 정보가 들어가 있는 소설이다. 범인인지도 모를 이 《추리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거액의 돈을 주고 낙찰을 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살인을 하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두뇌 게임은 시작된다.



“불공정한 것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
“…….”
“……자기 자신을, 정의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이겠죠.”
유키히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불공정한 행위는 항상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P101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남겨진 몇 개의 단서, 게다가 범인은 자신의 소설을 낙찰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살인을 하겠다고 예고까지 한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투입된 형사‘유키히라 나츠미’와 ‘안도 가즈유키’. 『언페어』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유키히라가 눈에 띈다. 경시청 수사 1과에서 검거율 넘버원에 ‘쓸데없이’미인이라는 말을 듣는 캐릭터이면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린 딸에게 살인자로 낙인찍혀 원만하지 못한 가족관계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도 수사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인 바,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주어진 단서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범인을 추적해 간다. 불공정한 것은 무엇이며, 또 누구인가?!

 

‘추리소설’처럼 따분한 소설은 없다./ 왜냐고? 읽기 전부터 결말이 드러나 있으니까.

사건은 반드시 해결된다. / 범인은 반드시 밝혀진다.
게다가 진범은 반드시 초반부터 등장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반드시 맡고 있다.
복선은 항상 그럴듯하게 적혀 있고, 조금이나마 소설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때부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할 수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수상한 인물은 항상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호거나, 제2, 제3의 피살자로 이미 정해져 있다.
독자들은 보수적이라, 작가에게 항상 공정할 것을 요구한다. 공정하게 웃겨라. 공정하게 놀라게 하라.
예컨대 ‘밴 다인의 20법칙.’ / 예컨대 ‘로널드 녹스의 10계’
요구되는 것은 항상 예정 조화적 ‘대반전’.
그러면서 그것들은 동시에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독자는 말한다.
혹은 독자와 대리인인 편집자는 말한다. -P89~90 

 


 범인은-혹은 작가는?!- 《추리소설》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추리소설’처럼 따분한 소설은 없다고 말이다. 사건은 반드시 해결되고, 범인은 반드시 밝혀지며, 진범은 반드시 초반부터 등장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도 반드시 맡고 있다는 식의 추리소설의 여러 가지 공식과도 같은 이유들을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리얼리티가 있고, 독창성이 있는 소설에 도전한다고 한다. 복선이 뭔가를 암시해주지 않고, 결말에 반드시 사건이 해결되지도, 범인이 밝혀지지도 않는 소설을. 비록 그것이 더 현실적이라서 독자들이 읽지 않고, 팔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언페어』는 그런 작가의 생각, 범인의 생각-둘 모두 같은 것일지도…-을 그대로 따라가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비판하면서도 공식의 틀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또다시 그 틀을 깨버리는 형태를 취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작가는 다양한 이들에게 칼을 겨눈다. 낙찰을 통해 돈으로 살인을 막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숨보다 자신들이 낙찰 받은 소설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가하는 계산을 하기에 바쁜 출판사들. 그저 이슈 만들기에만 급급한 언론들. 제대로 수사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경찰. 작가는 그들을 조롱하며 그들에게 큰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와 더불어 출판사와 언론, 경찰,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불공정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언페어』는 소설 속에 소설이 들어있고, 거기에 더해 소설 속의 살인사건이 실제로도 똑같이 발생한다는 설정이 아주 흥미롭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더군다나 이를 통한 추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이들을 향한 비판까지 더해져 자칫 가볍게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에 어떤 무게감을 더해준다. 공정과 리얼, 리얼과 재미, 재미와 불공정 등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게끔한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들에 대한 결론-혹은 아직 진행 중인지도…-으로 『언페어』는 가볍지 않은 재미로 향하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책이 아닌 다른 모습을 통해 만나는 『언페어』는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