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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뜬금없지만 작은 문제부터 하나 내본다. 다음 단어들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딸기, 초양, 가인, 앵두, 향록, 강변, 호수, 묘향, 용궁, 인어, 장미 ……. 단어만 본다면 쉽게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눈치는 챘을 것이다. 이 어여쁜 단어들은 『다방기행문』에서 만날 수 있는 다방들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방(茶房)’이라…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면서도 낯설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다방이라는 공간보다는 커피전문점이 더 친숙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세상에서는 나만의 개인적인 친숙함만은 아닌듯하다.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수많은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방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과 비슷하게 수많은 커피전문점들도 사라지지만, 또 다른 수많은 거피전문점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요즘이다. 그런 세상에서 왜 뜬금없이 다방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분명 전국의 다방을 다니면서 이 다방은 상호부터 비롯해 인테리어가 어쩌고, 맛이 어쩌고, 또 저 다방은 가격이 어쩌고저쩌고 등을 이야기하는, 요즘 많은 블로거들이 하는 그런 탐방은 같은 것이 목적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나의 이런 의문에 이 책의 저자는 ‘다방이 사라져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고 하는데… 사라져가는 것들, 버려진 것들, 그 풍경들은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추억과 의미를 안겨줄까?!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 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P91
『다방기행문』은 ‘여행생활자’라고 불리는 저자가 2007년 10월부터 2010년 2월까지 28개월간 떠났던 전국 다방 기행이다. 전국 여기저기 다방이 있어서 다방을 가는 것이라며 떠난 여행이다. 작은 스쿠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다방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이사람 저 사람과 함께,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보는 시간들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다방의 수많은 ‘~양’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아주 작지만 소중한 일의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사라져만 가는 공간에서, 버려지는 기억들 속에서, 그 사라짐과 버려짐을 아쉬워하며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듯 한 모습. 잊고만 지냈던, 아니 아직도 이런 모습들이 남아있을까, 싶은 우리네 모습들도 만나게 된다. 흔히 여행의 순간에서 만날 수 있는 흥분과 설렘과는 다르게, 차분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히, 정말 사람의 냄새가 제대로 느껴진다고 표현해야만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어느 곳이든 스쿠터가 이끄는 대로 떠나는 여행은 참 자유로울 것이라며, 그런 외향적인 모습만 부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신체의 자유보다도 다양한 생각의 자유를 훨씬 더 부러워해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라면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지나가는 많은 것들에 저자는 많은 의미를 불어넣는다. 확실한 목표가 있어서 뭔가를 찾아 나서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 것들 속에서 그 순간순간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다방이나 여관, 이발소의 간판이나 사람들의 어렴풋한 모습을 통해서 더 큰 세상을 만나고, 길을 잘못 들어서 만난 거대한 자연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이쯤 되면 이건 그냥 단순한 다방기행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저자도 스스로 다방은 구실이라고 말하니까….
다방이라니까, 커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커피는 분위기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제아무리 비싸고 좋은 커피든, 저렴한 자판기 커피든, 혹은 다방의 커피든,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어느 샌가 사라지고 지워지는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그것들을 이어주는 것은 역시 사소한 기억들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다방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소중한 추억으로, 그리고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오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그 추억, 옛 기억을 찾아서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을 한 번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순간을 함께하는 커피라면, 그 어떤 커피라도 맛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