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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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편안함을 안겨주던 익숙한 풍경이 슬픔이 되어 숨통을 조이게 될 수도 있고, 어딜 가도 내 집 같던 동네가 더 이상 그런 느낌이 들진 않게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그 편안하고 익숙하던 공간이 아픔의 시작이 되는 공간으로 바뀐 탓이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삶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일 것이다.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사건 역시 한순간에 누군가의 삶 전부를 바꿔버리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였다. 전혀 흔하지 않은, 아니 흔할 수 없는… 그것도 아주 끔찍한 사고였다. 더군다나 어린 여자 아이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이혼을 하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는 ‘프레드리크’는 나름의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발생하게 된다. 어린이집에 딸 ‘마리’를 데려다주고 작업실을 찾은 그가 마주한 것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한 남자의 사진이었다. 그는 다수의 미성년 성폭행 및 강간 혐의로 수감되어 있던 ‘벤트 룬드’라는 인물로, 정신감정과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호송되던 도중 호송차량을 탈취해 어디론가 도주한 상태였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바로 마리가 다니는 어린이집 정문 앞 벤치에서 프레드리크와 두 번씩이나 인사를 주고받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찾아간 어린이집에서 마리나 벤트 룬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마리는 끔찍한 상태로 발견되게 된다.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정의는 꼭 실현되어야 하니까. -P287

 

 지금까지의 내용은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에서 이미 많이 접했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잔혹함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평범하던 일상에 예상치 못했던 사건 속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하지 못하리라 생각되는 사랑하는 사람, 나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게 된 상실감,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 자책 등의 감정과 여전히 어딘가에서 또 다른 어린 아이들을 노리며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범죄자에 대한 분노, 그것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사회를 향한 분노라는 감정들 사이에서의 혼란, 그리고 어떤 선택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 외에도 사고 이후의 상황들에 대한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이 더해지지만, 『비스트』는 독자들에게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민다. 나를 원망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만든 범죄자나 사회에 맞설 것인가,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비스트』는 친절하게도 그 어려운 문제에 대한 보기를 보다 자세하게 제시한다. 사회도 막지 못하는 범죄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그 상대에게 죽음을 남겨주는 ‘프레드리크’라는 보기와 아무리 짐승 같은 놈이더라도 법은 지켜야 하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감히 생사여탈권이 주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보기를 말이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쉬어가자. 보통 ‘비스트(The Beast)’라는 단어는 덩치가 크고 위험한 짐승이나 야수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비스트(The Beast)』는 범죄자 중 성폭행범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짐승만도 못한’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스웨덴에서도 이와 같은 표현을 쓴다고 한다. 그렇다. 『비스트(The Beast)』는 스웨덴 소설이다. 출간되자마자 14주간 베스트셀러를 차지했으며, 유럽에서만 26만 부가 팔렸고, 세계적으로는 20개국에 판권이 판매된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북유럽 최고의 장르문학에 수여하는 글래스키(Glass Key) 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스웨덴 공영방송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소설로 만나는 스웨덴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이 이미 스웨덴만의 작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면 그리 낯설게 느껴질 것만도 아닌 듯하다.

 

 쉬는 김에, 『비스트』의 작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의 작가는 , 10세가 되기 전 세 차례 성폭행을 당하고 범죄의 길로 빠져 전과자가 된 ‘버리에 헬스트럼’ 과 스웨덴 공영방송 사회부 기자로 활약하면서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안데슈 루슬룬드’로 모두 두 명이다. 그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찌되었든 범죄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나서 범죄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지 못할 세밀한 부분들을 담아서 이야기 한다. 혹시나 해서 미리 밝혀두는데, 이미 『비스트』외에 다른 작품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들이니만큼 오직 그들의 독특한 이력에만 눈길을 던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흠… 한 숨 돌렸으니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딸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그 살인범에게 복수를 감행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복수로 비쳤겠지만, 그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 살인범은 이미 또 다른 아이들을 노리고 있었다는 증거까지 발견되었다. 뭐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딸의 복수를 하고, 사회의 쓰레기인 짐승을 없앤 이 남자를 영웅으로 대접한다. 옳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상대가 누가 되었든 그 역시도 또 다른 살인을 한 것뿐이다. 법이 있는 사회에서 자의적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결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의되어야할 이야기들이다. 어린이집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생명과 교도소에서 탈옥한 뒤 어린아이를 강간하고 잔인하게 살해할 계획을 가진 변태의 목숨이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저들도 만약 스테판손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방아쇠를 당겼을까? 

누군가의 생명이 다른 누군가의 생명보다 값어치 있다고 여기고 있을까? -P399

 

 그 어느 것도 명확한 정답은 없는 듯 보인다. 결국 판단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다만, 그 판단에 다양한 보기와 생각들을 전해주는 『비스트』가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그 어떤 것보다 생생한 상황 속에서, ‘만약 당신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져주며 다양한 생각들을 스스로 해보게끔 하는 소설… 끔찍하고 역겹게만 느껴지는 사건에서 시작해 마찬가지일지 모르는 사회에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풀어야만 하는 어려운 숙제… 우리는 이제 이 문제는 어떻게 풀면서 이 세상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일까?! 뭔가 큰 돌덩이가 내 마음 속에 내려앉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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