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 읽기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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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 경제 환란이었다던 IMF. 나는 당시 열심히 ‘짬밥’을 먹으며 오로지 전역의 그날만을 기다라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2년이 조금 넘는 ‘끌려간’ 기간 동안 난 세상을 너무도 모르고 살았다고 보인다. 물론 그건 현재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해는 잘 못하더라도 신문은 꾸역꾸역 보고는 있으니까.

여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이토록 무지했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해 준 책이다. 특히 정치, 경제,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소사(小史)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간신히 다 넘기고 – 솔직히 한 20페이지는 훑어보기만 했다. 분명 한글이었음에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내 자신에 한심해하며.. – 덮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누군가가 인생은 그 물음표에 해당하는 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물음표들을 끝없이 만들어가며 찾으려고 애를 쓰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아예 생소한 주제부터, 단어는 들어봤으나 그 속뜻은 전혀 모르는 또한,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도저히 평은 할 수 없고, 후에 다시 한번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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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충만 법정 스님 전집 4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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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개강한지 이제 이틀이 지났는데, 벌써 무슨 과제를 받은건지 아니면 하나같이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건지 모두 책을 쌓아놓고 무언가를 열심이다. 가까운 후배, 동기들도 토익에 공무원고시에 자격증에 눈에 불을 켜고 시작부터 난리다. 정말 난리다. 바로 그들이 나의 조바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이런 조바심들을 날려버렸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어쨌든 내게 이 책은 감히 ‘깨달음’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내게 독서욕을 불러일으켰다면, 법정 스님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들일지도 모르나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과 해답을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종교에 대한 금언, 잠언서들이 하나같이 좋은 말씀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막연한 미래나 후세를 동경하고 깨우치려는 것들이 아닌, 우리의 실 생활에서 매일매일 곱씹어도 하나도 질릴 것 같지 않은 말들이 담겨있다. 비록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닐지라도,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배우고, 삶을 든든히 여길 수 있는 말들. 법정 스님 역시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틀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지만, 좋은 말들은 몇 년, 몇 백 년이 지나도 읽혀지고 암송되어 남는 것 아닌가.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을 참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굳이 내세가 아니더라도 속세에서 황금같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아름다운 관계. 나아가 본연의 ‘내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들. 너무나도 빠르고 급박한 우리네 삶에 촉촉한 단비와 같은 여유로움을 책을 읽는 내내 느끼면서 도서관에서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해내려는 끊임없는 미래의 내 경쟁자들을 보면서 오히려 ‘교양’이라는 내 만족으로 읽고 있는 이 한 권의 책 때문에 내가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허황된 자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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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뭉치 아인슈타인, 빛을 뒤쫓다 - 사고실험으로 따라가 보는 상대성이론
송은영 지음 / 에피소드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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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과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다. 이미 수 많은 SF영화들로 인해서 제기된 다양한 가설과 학설들은 이미 과학계에 정설 또는 가설들로 남아있는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와 유전자 형질이 100% 똑같은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내는 유전공학, 빛의 속도보다 훨씬 빨리 이동하여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는 낭설 아닌 가설의 물리학, 지구상의 모든 물질을 쪼개고 쪼개어 아주 작은 입자로 분해하여 우주의 입자까지도 내다 볼 수 있다는 양자역학 등, 이미 과거에 믿었던, 하지만 입증되지 않았던 또는, 과거에 생각지도 못했던, 하지만 입증되었던 수 많은 다양한 이론들은 그저 일반 사람들과는 너무 먼 이야기로 치부되기는 이제 어려운 실정이다.

여전히 TV, 신문지 상에는 인간의 DNA가 98%까지 분석이 되었다는 이야기, 같은 유전자를 지닌 양을 복제하였다는 이야기, 혜성의 움직임으로 우주의 나이를 헤아려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정말 흥미진진한 호기심거리가 아닌가.

가까운 친구 중에 한때 과학에 몸을 담았던 친구가 있어, 중학교 때부터 그에게 어깨너머로 들었던 아인슈타인, 그리고 상대성 이론. 거의 3~4시간 만에 훌쩍 읽어버린 이 책은 ‘E=mc²’의 내용보다는 조금은 덜 무겁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쭈욱쭈욱 읽어내려만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아니 너무 가슴 벅차다! 카메론 디아즈가 어느 잡지 인터뷰에선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E=mc²이 뭐냐고… 카메론 디아즈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다. 아니, 상대성이론에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추천해 주고픈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 얄팍한 지적 호기심이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고, 과학이라는 그것도 물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너무도 미비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즐겁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하여 빛, 타임머신, 시간, 4차원 등등의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유쾌한 지적 만족감으로 채웠다는 것 말이다. (사실 이 리뷰를 자세히, 길게 써내려 가고 싶었으나 – 실제로 이 거대한 이론들을 내 리뷰에 포함시키고 싶어서 요약까지 했었다! – 단순한 이해의 차원에서, 다시 말해 호기심의 충족 정도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만 같다. 왜냐. 더 깊게 알고 싶다는 또 다른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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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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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든, TV에서든 E=mc²과 같이 어디에선가 들어는 봤지만, 딱히 물어볼 만한 사람도, 찾아볼 만한 기회도 갖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우리 주위 특히 내게는 많았다. 그런 것들의 대부분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뤄두어 끝내 못 펼치게 될지도 모르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산물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역시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하나의 주제였을 뿐이었다. 웹사이트에서 아주 우연히 누군가의 추천 글을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도서관으로 향한 나는 ‘역사상 사상 최대의 수학 난제’를 해결한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책을 쥐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나온 시간이 대략 5시니까 잡다한 시간들을 제외하면 꼬박 6시간에 걸쳐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숱한 천재 과학자들이 350년간이나 풀지 못했던 난제의 이야기를, 앤드루 와일즈가 오로지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보냈던 20년의 세월을, 난 단지 6시간 만에 해결을 보았다!

'x²+y²=z² 단, n이 3 이상일 때 조건을 만족하는 정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아무리 쉽게 풀어서 썼다고는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명제에 대한 ‘논리적 증명’은 끊이지 않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 책으로 ‘수’에 대한 호기심은 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지만, 깊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어쨌거나 수학이기 때문에! 하지만, 줄잡아 6시간 동안 이 책에 손을 놓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분명 흥미롭고 경이롭기까지 하여 내가 앤드루 와일즈가 된 것처럼 들떠서 중간에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수학은 순수과학이다. 다시 말해, 화학이나 물리와 같이 실 생활에 어떤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기초과학과는 다른, 말 그대로 순수하게 학문을 추구할 수 있는 학문인 것이다. 또 다른 말로 하자면, 그에 대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끊임 없는 애정과 열정이 없이는 누구도 찾아가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세계가 바로 수학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 후기에도 나와있지만, 순수과학 그리고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는 우리네 실정을 되돌아 볼 때, 또 간간히 등장하는 일본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의 한 순간에 조차 대한민국에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은 사람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이는 또, 근간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학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연관되어지는 것으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은 순수학문으로써의 자질을 포기해 버린지 오래다. 사농공상으로 과거 천한 직업으로 인식되어왔던 상대(경영학부)가 1000명을 육박하나, 내가 속한 영문과 역시 문학과 수필쪽에는 그야말로 파리가 날리는 실정이지만, skill을 배우는 토익이나, 영작문, 통역, 번역 등의 강의에는 경영대 수업만큼 바글바글하다. 물론 학문에 대한 성향 역시 시대가 바뀜에 따라 함께 변하므로, 다시 말해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경향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의 큰 줄기에서 보자면, 학문이 위주가 되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하나,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대학은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렸고 이는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해서 그 목적성이 두드러지게 퇴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고 나서, 근간 읽은 몇 몇 과학 서적을 읽고 나서 과학에 대한 개인의 지적 호기심은 다분히 잦게 유발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 이곳 저곳에서 떠들고 있는 바와 같이, 순수학문을 취급하면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 라는 루머(?)가 그저 루머로만 남을 수 있게 우리나라에서도 앤드루 와일즈와 같은 꿈을 먹을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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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3
최병권.이정옥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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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 동시에 TV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는 학생, 일반인, 지식인 등을 모아놓고 열띤 토론을 펼친다. 그리고 온 국민이 그 프로를 집, 술집, 까페, 연구실, 직장에서 보면서 함께 토론에 동참한다. 수학능력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각자의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며 말이다.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꿈은 필요한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예술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등과 같은 주제를 말이다!

위의 이야기는 바로 현재 프랑스의 이야기라고 한다.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타인의 영향이든, 자신의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생각이든, 알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따라서 앎에 대한 욕구가 없다면 호기심은 잘 유발된다고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매년 이러한 지식 형태의 ‘축제 아닌 축제’를 오랫동안 지속해 왔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또한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에서 투명한 논리를 전개하였거나, 논리의 완성도가 높은 학생들의 모범 답안이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읽는 내내 부끄러움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흔해 빠진 물음에 대한 고차원적인 해답을 나는 여전히 알고 있지 못한다. 물론, 정답이 아니더라도 그 답을 유추해 내기 위한 고민은 분명 많은 사람들이 해 보았으리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의 무지에 무릎을 꿇은 것은 이러한 글들이 바로 17~18세의 청소년(청년)이 썼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영어’ 이외에는 모든 것이 다 교양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교양과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교양은 실로 천지차이였다.

내가 20살 때에 ‘철학 의재 문제’ (띄어쓰기 맞음) 라는 교양 과목을 1학기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 수업은 교재가 없었고, 매 수업시간마다 한가지의 주제를 던져주고 참석한 학생들끼리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다. 출석은 단 두 번. 그것도 중간, 기말고사 때에만 출석을 했었다. 당연히 F. 당시 난 1학년이었고, 그 1학년은 ‘자유’가 보장된 특별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수업에 연연하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던 것이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수업은 정말 내게 교양이었다. 당시에도 나는 교양의 의미를 너무도 간단 명료하게 잘라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책의 표현을 빌려, 교양은 나이가 들어, 삶에 대한 여유를 부릴 수 있을만한 때에 찾게 되는 따위의 것으로 말이다.

우물 안에 있을 경우에는 그 우물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우물에서 나와 봐야 내가 있던 곳이 얼마나 협소한 공간인지 알 수가 있다. 교육도, 교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지는 교육자는 아니지만,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친 피교육자의 입장으로써 나는 16년 가까이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과연 어떤 교양을 받으며, 또 찾으며 살아왔는지 정말 재미없는(!) 물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머리가 커지고 삶에 대한 안정과 여유로움이 있어야만 그 흔해빠진 ‘교양’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윤택한 삶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 교양을 찾아야 하는 우리는 여유가 없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내내 들고 다녔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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