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충만 법정 스님 전집 4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개강한지 이제 이틀이 지났는데, 벌써 무슨 과제를 받은건지 아니면 하나같이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건지 모두 책을 쌓아놓고 무언가를 열심이다. 가까운 후배, 동기들도 토익에 공무원고시에 자격증에 눈에 불을 켜고 시작부터 난리다. 정말 난리다. 바로 그들이 나의 조바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이런 조바심들을 날려버렸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어쨌든 내게 이 책은 감히 ‘깨달음’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내게 독서욕을 불러일으켰다면, 법정 스님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들일지도 모르나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과 해답을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종교에 대한 금언, 잠언서들이 하나같이 좋은 말씀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막연한 미래나 후세를 동경하고 깨우치려는 것들이 아닌, 우리의 실 생활에서 매일매일 곱씹어도 하나도 질릴 것 같지 않은 말들이 담겨있다. 비록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닐지라도,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배우고, 삶을 든든히 여길 수 있는 말들. 법정 스님 역시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틀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지만, 좋은 말들은 몇 년, 몇 백 년이 지나도 읽혀지고 암송되어 남는 것 아닌가.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을 참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굳이 내세가 아니더라도 속세에서 황금같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아름다운 관계. 나아가 본연의 ‘내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들. 너무나도 빠르고 급박한 우리네 삶에 촉촉한 단비와 같은 여유로움을 책을 읽는 내내 느끼면서 도서관에서 열심히 자신의 몫을 해내려는 끊임없는 미래의 내 경쟁자들을 보면서 오히려 ‘교양’이라는 내 만족으로 읽고 있는 이 한 권의 책 때문에 내가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허황된 자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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