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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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을 내가 교과서 밖에서 처음 만난 곳은 좀 색다른 곳이었다. 우리 학교 문과대 화장실 소변기 앞...

'물이 있는데도 물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 연암 박지원

고등학교 때, 조선시대 열하일기라는 중국 기행문을 쓴 사람은? 연암 박지원이라고 외웠던 그 한 두 줄의 구절보다, 연암은 오히려 우리 학교 화장실에 걸려진, 상황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위트-물론 이건 학생회에 어는 학생이 연암의 한 구절을 찾아서, 또는 다른 구절에서 그대로 가져왔을테지만-가 조선시대 미지의 사람인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나름대로의 첫 계기였다.

우선 열하일기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연암은 청나라 황제의 70수 생일을 맞아 축하하기 위해 사신들과 동행한, 그것도 공식루트가 아닌 흔히들 이야기하는 '꼽사리'껴서 그 사절단에 투입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당시 선진문물이었던 중국에 관한 많은 새롭고 경이로운 것들을 보고, 그리고, 적으면서 중국 유람을 했던 것이었다.

책을 읽고 와우북에서 매체서평 해 놓은 것처럼, '살아서 펄펄뛰는 문장들'이 느껴졌다. 아니, 나는 연암이라는 인물자체에 대한 지은이의 동경어린 호기심 보다는, 고문(古文)을 현대의 사람이 이렇게 즐겁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른 매체의 서평과 마찬가지로, 평생 가야 한번 읽을까 말까한 고전, 그것도 우리나라의 고전을, 인물에 대한 감상적 느낌과 당시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찰 그리고 넘치는 유쾌함을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딴지걸께 생각났는데, 난 느낌표표 책을 정말 싫어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싫다. 매체가 나서서 책을 읽자고 독려하는 취지는 십분 이해하고 또 공감하는 바이지만, 인터넷에서나 서점에서나 책을 고를 때는 그런 추천은 절대 사양이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남들이 다 보는 영화나, 베스트셀러라는 책은 거들떠도 안보는 부류. 예전에 나는 그 부류를 시덥지 않은 멋이라고 치부해버렸지만, 지금은 반대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미처 찾아내지 못한 감춰진 책, 글, 작가를 찾아내는 즐거움을 느껴본 사람은 내 심정을 조금 이해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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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
하워드 슐츠 외 지음, 홍순명 옮김 / 김영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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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들 주변에서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회사를 다니던 2002년도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의 ‘원칙중심의 리더십’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그때 그 책을 사던 마음과 지금은 무척이나 많이 달라졌지만, 리더십이 어떠한 것인가를 적어도 개념정립과 기업이라는 조직 내부에서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소양에 대한 또한 역할에 대한 너무도 자세하고 실제 지침과도 같은 글을 읽으며 감탄을 마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원칙중심의 리더십’이 올바른 리더십에 대한 개념 정립이었다면, 이 책은 그러한 리더십을 통해 이루어진 기업이 얼마나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하여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지적 차원에서가 아닌 감동을 자아내는 그만의 리더십을 통해서 기업경영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수 있는 책을 만났던 것 같다.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몇 번 찾았던 스타벅스. 워낙 아는게 없는지라 커피에 대해 무식하고, 그런 트랜드에도 무관심했던 나는, 그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 고급스런 프렌차이즈 커피하우스가 하나 생겼구나 하며 넘겼다. 그리고, 다른 곳과 달리 유난히 부드럽고 유한 미소를 짓는, 그런 친절이 때론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했는데, 그곳에 점원(저자는 점원, 종업원이 아니라 그들을 파트너라고 한다)들은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물론, 스타벅스 인터내셔날이 해외 사업부문에 대한 영업이나 운영 방침을 바꾸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프렌차이즈로 사업을 확장해 왔던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한 동네에 두, 세 개나 이미 자리잡고 있는 스타벅스 스토어는 모두가 스타벅스의 직영 스토어라는 사실! 직영이 뭐 어떻냐고, 다른 대기업들도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프렌차이즈와 직영사업에 대한 부분의 명확한 메리트를 구분 짓지 못하는 것일 테다.

좀 더 복잡하게 말하면(?), 직영사업에는 경영자의 모든 가치관과 이념 그리고 리더십이 최 하부에 있는 스토어에까지 그대로 전달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책에도 나와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스타벅스가 가지고 있는 경영원칙과 가치관이 소규모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 손에서 그리고, 그들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들로 인해서 겹겹이 희석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 맹점을 간파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가장 가까운 점에서 가장 질이 좋은 커피를 아늑하고 편안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스타벅스라는 커피하우스에서 제공하겠다는 그의 원칙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스타벅스에서 그나마 내가 알고 즐겨 마시는 모카커피가 더욱 마시고 싶어졌다. 바로 이런 효과가 아닐까? 스타벅스가 뿜어내고 있는 위대한 가치는 기업의 다국적화, 거대화가 아니다. 콜라 하면 코카콜라와 소형가전 하면 소니가 떠오르듯이, 그저 스타벅스라는 이름만으로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고급의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그 커피가 바로 스타벅스 커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바로 그들이 만들어 낸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어느 사이트에서인가 어떤 책에 대해서 한 네티즌이 쓴 리뷰가 생각난다. 자기가 읽은 그 책이 빨리 절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기를 바란다고. 훌륭한, 자신에게 무기가 될 수 있는 그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읽혀질 까봐 두렵다는. 이 책이 서둘러 절판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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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세트 - 전10권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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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 시절. 나는 유난히 ‘국사’와 ‘세계사’를 싫어했다. 당연히 시험 점수도 좋게 나올리가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과거 선생님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너무도 재미가 없게 들렸었다. 물론, 공부라는 것이 선생님을 통해 다 받는게 아니라, 심연으로 들어가 스스로 그 내막을 풀어나가는 자발적인 흥미가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그런 흥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 덕분으로 이미 남들이 다 알고 있고, 당연히 한 두 번쯤은 고민해 봤을 내용들을 나이 먹고, 이제야 허덕이듯 뒤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강>을 읽는 동안 참으로 많이도 웃었다. 하지만, 오히려 화를 내고, 가슴을 쓸어 내렸던 적이 훨씬 많았다. ‘감동’이라는 두 글자로만 그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우선, 아득한 중, 고등학교 시절 외웠던 4.19니 5.16이니 하던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직접 겪으셨던 그 숱한 이야기들. 비단 정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경제의 밑바탕을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피와 땀으로 일구셨다는 숭고한 사실. <한강>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듯이 그렇게 잔인하고, 눈물겹고, 설움에 복받치도록 소근거려 주었다. 어째서 나는 우리나라가 이토록 슬픈 역사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국사’책에 쓰여진 단 몇 줄 밖에 되지 않는 그런 ‘사실’들의 나열이 아닌, 살아 숨쉬는 아픔들에 무지했단 말인가? 후반부에 80년대 초반의, 즉 내가 어렸을 때 들었거나 겪었던 반공이나, 흑백TV, 사우디아라비아, 대학 데모들이 내 유년기에 일어났었음에도 말이다. 4.19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당시 대학생들의 데모장면을 읽으며,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마치 내가 그 현장에서 목청 돋우며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던 대학생처럼 비장했었는지. 그러면서도, 제 3자의 위치에서, 나라면 그랬을까. 유일표처럼 내가 가진 꿈이나, 당장 살아가야 할 이유들을 다 버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며 가슴이 터지도록 그 말들을 외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유일민처럼 어쩔 수 없는 자신과 가족들의 상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위장만 맴돌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비춰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이루어 놓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땀 한 방울,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렇게 너무 가벼운 소사들에만 목을 메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서른을 바라보면서 개인의 안위가 아닌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등의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철 모를 때 깊은 고민 없이 민중가요 노래패에 들어가 ‘사상 없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부끄러움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눈물과 피를 흘리며 부르던 그 노래를 나는 악보에 적혀있는 하나 하나의 음과 선 이외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 때에는 그저 노래가 좋았을 뿐이라는 자기 위안만 등에 업고서 말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의 정권 틈에서, 아니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정치권의 협잡꾼들의 이야기들 읽으면서-물론 어느 정도 사료를 바탕으로 한 허구일테지만-또 엉망을 넘어 개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의원나리님들의 작금의 행태를 읽고, 보고, 느끼며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4.19로 금방 이어질 것만 같았던 민주화는 너무나 오랜 기간을 거치고 헤메이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 여전히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비방과 흑색선전들. 잠잠하면 터지는, 우리네 부모님들을 가슴 쓸어내리게 하는 억대의 미친 짓들은 꾸준히 터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래도 그래도 지금은 쥐도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그런 일들은 덜 해졌다는 점. (아닐 수도….) 어렸을 적에 통행금지가 기억나고, 학교마다 반공포스터, 반공글짓기, 반공독서회 등등이 기억나고, 선거 때면 사람들손에 들었던 수건이며 비누며 돈 봉투가 기억난다. 거대 권력의 통제 속에서 그게 통제인지 모르며 자랐던 무지의 세월이 기억이 난다. 왜 그래야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몰랐으면서 알려고 하지 않았던 때. 부모님들의 세대가 겪었던 아픔을 들춰보려 하지 않고, 현재의 풍요로움이 당연한 행복으로만 알았던.

농민으로 살다, 서울로 상경해 평생을 반 거지로 살았던 천두만, 봉재공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폐병으로 죽은 여공, 버스 여 차장, 독일로 떠난 탄광공들, 여간호사, 사우디로 날아간 근로자들, 월남으로 달려간 젊은 청년들, 온몸에 기름을 붇고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던 전태일, 그리고 아무런 힘도 없이 그저 묵묵히 땅을 지키며 살던 수 많은 농민들. 그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2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을 만드는데 공헌한 분들이라는 사실 또한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GNP 1000불도 안되던 우리나라를 이제 1만불 시대로 만드는데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먼지를 마시고, 깊은 탄광에서 탄가루를 마시고, 먼 타국에서 24시간 365일을 뙤약볕을 마시고, 남의 나라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우리는 그렇게 그들의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또다시 깨닫게 해주던 구절들.

<한강>은 ‘역사’책이다. 학창시절 암기를 위해 두 세줄 외웠던 구절이 아니라, 한이 담겨있고 슬픔이 담겨있고, 아픔이 새겨진 우리의 살아 숨쉬는 역사책이다. 지하철에서, 독서실에서, 도서관에서, 집에서 이토록 하나의 책에 빠져 지내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강>은 역사에 대한 내 무지를 깨우쳐주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내 구석 어딘가에 슬픔을 불러주었다. 읽는 내내, 하염없이 작은 내 존재와 내 일상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한편으로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힘을 주었다. 써 내려가고 싶은 여흥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하찮은 내 글귀가 오히려 <한강>이라는 작품에 누가될까 더는 못 쓸 것 같다. 읽기만 했던 나도 마지막 권을 덮으며 이토록 허전한데, 작가는 어떤 허망함과 쓸쓸함을 안고 살고 있을까. 너무 아픈 과거가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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