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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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간절한 본인 노력과 마음 맞는 짝궁의 협력 있다면 출발 늦었어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사람은 끼리끼리의 동물이라 내와 내 가정 바로 서면 비슷한 사람들 사는 동네도 찾아진다. 4년에 한 번 하는 투표보다 매일의 소비가 미래를 좌우하니 인간이라는 가치에 더더 많은 돈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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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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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의 경영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6)

언젠가는 지금 있는 세계의 밖으로 나가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고 싶었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고, 그것을 생활의 양식으로 삼아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몰랐다. 그래서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21)

이 세계에, 과연 시스템의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34)

음식은 싸면 쌀수록 좋다는 풍조가 있지만 마르크스의 말대로라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일(노동력)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다. (69)

`균도 산 생명이고, 나도 목숨이 붙은 생명이다. 생명에 위험한지 여부는 먹어보면 알겠지. 몇 백 년 전 옛날 사람들도 자신의 감각을 믿고 직접 먹어서 확인했음에 틀림없다. 그래, 도전할 수밖에 없어. 게다가 공방 직원은 나 혼자야. 현미경이고 뭐고 제 몸 하나로 구분했을 옛날 사람이 된 셈 치자.` (118)

아버지의 지인 댁에 초대받았을 때는 정원에서 기르던 토끼와 닭을 직접 잡아 조리한 음식을 먹을 기회도 있었고, 사냥해온 영양고기를 대접받은 일도 있었다. 야산을 돌아다니던 영양고기는 씹을 때마다 생명의 힘이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은 생명이라는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164)

언데는 돈을 `사람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교환을 위한 돈=빵집에서 쓰는 돈`과 `자본이 사업을 통해 불리려 하는 돈=자본으로서의 돈`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 두 종류의 돈에 동일한 `법정통화`(엔, 달러 등)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와 삶이 혼란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돈을 나누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빵집에서 쓰는 돈으로는 도시를 목적으로 한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 `지역통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바로 이 지역통화라는 조금 특이한 돈의 가능성에 당시의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177)

그래서 둘째 히카루는 집에서 낳았다. 8개월쯤 되었을 때 기저귀 안 쓰는 육아법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안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응가를 할 기미가 보이면 마당으로 데리고 가 변을 보게 했다. 그랬더니, 전에는 항상 설사 기가 있어서 자주 기저귀를 갈던 아이의 변이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기저귀 안 쓰는 육아법을 몰랐다면 지진 때문에 기저귀 구하기가 힘들었던 시기에 더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생리에 맞춘 육아법은 결과적으로 자연에도 좋고 비상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204)

저희들이 눈을 떴을 때 아빠는 이미 일터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고, 집안에는 온통 향긋한 빵 굽는 냄새가 퍼졌다는 것, 손님들로 가계가 북적이면 엄마와 아빠는 힘들어하면서도 무척 기뻐했다는 것,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한 뒤에는 `한 잔의 술`과 함께 이 세상 최고의 행복을 나눴다는 것....... 부모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모습을 기억 속에 깊이 새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226)

매일 돈을 쓰는 법을 바꿔보는 것도 경제를 부패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부패하지 않는 돈도 쓰기에 따라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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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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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에서 소개받은 작품들:

  • <발도로프 학교와 그 정신>, 루돌프 슈타이너
  • 영상/ 발도로프라는 제목의 ebs 영상물도 있음
  • 영화/ Das Boot ist voll, 마르쿠스 임호프
  • 영화/ More than Honey, 같은 감독
  • 그런데 책도 있음: More than Honey
  • <말리나>, 잉에보르크 바흐만
  •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막스 프리쉬
  • 영화/ 호모 파버, 한국어 제목은 사랑과 슬픔의 여로라고 함. 엥? 두 제목이 너무 차이가 나는데! 
  • <슈틸러>, 역시 막스 프리쉬
  • <학교용 빌헬름 텔Wulhelm Tell fur die Schule>, 막스 프리쉬 
  • <솔페리노의 기억>, 앙리 뒤낭 --> 번역 무
  • 영화/ 보이체크
  • <노부인의 방문>, 뒤렌마트 --> 영화는 실패작, 볼 필요 없음
  • <맹세>, 뒤렌바트 --> 영화/ 플레지 (한국에선 "써스펙트"로 개봉)
  •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How we die>, 셔윈 눌랜드
  • 영화/ A short stay in Switzerland, 사이먼 커티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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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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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멋집이 아니라 '가치의 변화'를 중심으로 잡은 인물과 장소들, 차분한 문장, 각주식 사진 처리. 모두 훌륭하다. 원주민과 이방인들이 융화하여 만든 강소중립국이므로 "방명록"이란 이름 붙었다. 감명 깊게 읽은 콜린 더브린 식의 우연성(오가다 만난 행인과의 대화 등)이 곁들여지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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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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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감동을 준 사람들은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는 조국이 두세 개여서 내면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17)

그는 세계 경제공황의 여파 속에서 삶의 지표를 잃은 스위스 젊은이들이 나치즘이 이끌리는 경향을 단호히 비판했고, 외무장관이 나치 독일과의 동맹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사민당과 연대해 맹렬히 힐난했다. 다가오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식량 비축과 식량 자급률 개선을 주장하면서 여유 부지를 이용한 곡식 재배를 장려하고 학교와 교회 등의 공간을 곡식 보관 창고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한편, 세계 최대 규모의 식량보관함을 직접 제작해 툰... 호수 속에 넣어 보관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1939년 전쟁이 일어나자 예상대로 식량난이 발생했지만 미그로는 설탕, 식용유 등 기본 식량을 충분히 비축해놓은 유일한 소매업체로서 준비성을 과시했다. (64)

"나를 특히 매혹한 것은 니체의 독자가 니체에 `의존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는 자신의 영적 깨달음을 주저함 없이 기쁜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그 경험 속에서 온전한 자유를 느낀다." (80)

모든 예술의 최종적 내용과 위안은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 사랑은 증오보다 고귀하고, 이해는 분노보다 고귀하며, 평화는 전쟁보다 숭고하다는 것을 이 비참한 세계대전이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깊게 각인시킨다. 이 전쟁의 유일한 소용은 바로 그것뿐이다. (120)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스위스 민담을 독일식 이상주의로 치장한 작품을 역수입해 이를 진실이라 믿으며 자기 역사를 과잉 평가하는 스위스인들의 모습에 프리쉬는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가 보기에 빌헬름 텔은 오히려 스위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연방제와 합의제에 잘 들어맞지 않은 인물이었다. 텔의 암살행위는 동료들과의 협의 없이 이루어진 감정적인 단독 행위이며 보기에 따라 무정부주의적인 테러 행위일 수도 있었다. 1969년 취리히 공항에서 이스라엘 여객기를 공격했던 팔레스타인 저격수들이 자신을 빌헬름 텔에 비유해 스위스인들을 당황케 했던 일이 프리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팔을 걷어붙이고 다시 한 번 역사 고증을 통해 `실제로는 이런 버전에 더 가까웠을거야`하는 취지의 빌헬름 텔 패러디를 탄생시킨다. (157)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적십자 적신월사 요원들이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나 재해로 고통받는 부상자와 난민을 묵묵히 돌보며 `모든 사람은 형제`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진정한 영광이 돌아가야 할 곳은 현장에 있는 바로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다. (204)

뒤렌마트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뜨기 약 한 달 전인 1990년 11월, 당시 체코 대통령 바흘라프 하벨이 `고틀리푸 두트바일러 상` 수상자로 선정돼 스위스를 찾았다. 극작가이기도 해던 하벨을 위해 환영 연설을 할 사람으로 선택된 뒤렌마트는, 그 자리에서 "스위스 국민은 수감자이자 서로를 감시하는 간수"라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에게 그로테스크와 부조리는 연극무대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스위스가 자유와 독립의 신화 뒤에 숨어 변화와 진전을 방해하는 사회임을 비판하고자, 끝까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자기 둥지를 더럽히는` 말썽꾼 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둥지` 스위스에 대한 그 나름의 애정표현임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244)

[...]. 사람을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내면적으로 고립된 그의 본성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훗날 바로 이 사람이 가장 고독하고도 그 무엇과도 연관 맺고 있지 않은, 마치 운석처럼 우리 시대에 뚝 떨어져 내린 작품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260)

고타르트 철도와 터널을 탄생시키는 일에는 에셔 같은 인물의 비전이 필요했지만,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길을 닦고 굴을 뚫으며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준 노동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특히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대거 불러들인 노동자들은 공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타르트 철도 전 구간에서 일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1만5,000명에 달했고, 고타르트 터널을 뚫는 작업만 해도 참여한 노동자 3,000명 가운데 절대다수가 이탈리아인이었다. 이들 중에는 가족을 데리고 온 사람도 있었다. 오늘날 스위스 이민자 인구 가운데 가장 큰 집단을 형성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스위스 이민 역사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다. (278)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은 민족주의와 계급투쟁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사회민주노동당을 제외한 각국 사회주의 정당들은 결국 제2인터내셔널의 반전 원칙과 국제주의를 저버리고 제각기 자국 정부를 지지했다. 레닌은 이를 인터내셔널의 기본원칙을 거스르는 배신행위이며 사회주의 운동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사태로 보고 맹렬히 비난했다. 각국의 노동자 계급이 혁명 대신에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다니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290)

"생명체는 세상의 장애물에 지치면 스스로 목숨을 거둘 힘을 지닌다. 내가 알고 세상이 안다. 나를 괴롭히는 횡포 따위, 원하면 언제든 떨어낼 방법이 있다는 것을." (342)

이런 문화는 스위스에서도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개인이 원자화되면서 많이 옅어졌지만, 죽음을 직시하고 포용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는 지금도 스위스 사회에 남아 있는 독특한 측면이다. 이웃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도 명백하게 두드러진다. 20세기 말 스위스에서 확산된 이른바 조력자살 혹은 `조력자유사`라는 현상도 바로 이런 현실주의적 속성에 스위스 특유의 자유주의 기질이 합쳐져 발현된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는 나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고집, 거기에 국가나 교회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자유주의의 발로이며, 죽을 날을 정확히 알면 주변을 정리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이 쉬워진다는 것, 의학적으로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날 방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실용주의적 사고의 귀결이다. (345)

"누구나 죽음을 중요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죽음은 아직도 축제가 되지 못했다. 인간은 아직도 가장 아름다운 축제를 올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356)

변화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도시화 산업화에 대한 의심,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대한 환상, 전통과 관습의 현상 유지 속에서 얻는 위안과 치유.... 이런 면에서 알베르트 앙커의 그림과 요한나 슈피리가 그려낸 `하이디`의 맥락은 비슷한 데가 있다. 평생 엘리트 도시인으로 살았으면서 시골 생활을 개인의 치유법으로 미화해 제시했던 슈피리, 수십 년간 격동하던 대도시 파리에서 숱한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낭만화된 스위스 시골의 삶을 화폭에 담는 데 집중한 앙커, 그 창조물을 보수정치 선전의 수단으로 삼아버린 대기업가 블로허. 과거에 대한 이상화 도구화 상품화 작업은 시대의 변화로부터 편익을 누릴 만큼 누린 지극히 도시적인 인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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