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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평점 :
예전에 한 친구가 오스트리아에 다녀오면서 사다 준 기념품에는 모차르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이 나란히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두 사람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 그림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이 음악가는 신이 주신 재능에는 ‘뼈를 깎는’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지만, 이 왕비는 신이 주신 지위에는 고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결코 몰랐던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은, 모차르트와 마리를 한 자리에 놓고 추억하는 일도 그리 ‘잘못’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늦던 빠르던 결국 모두 역사가 자신에게 맡긴(두 사람 모두 이러한 재능과 이러한 지위를 욕망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주어져 있었습니다.) 막중한 역할을 이해하였고 영웅적인 노력으로 훌륭하게 감당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은 늘 조금씩 변화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순하며 호불호가 분명했고, 마음이 여리고 악의 없는 장난을 좋아하고 쾌활했으며, 본능적인 이해와 판단에 입각하여 빨리 결정하고 행동했습니다. 평생 읽은 책이라곤 조금씩 들춰본 소설책이 전부이고, 승마 오페라 연극 가면무도회 춤 도박을 마음껏 즐겼으며,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계산 없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주었지만, 싫은 사람에게는 그가 아무리 애원한다 해도, 심지어는 정치적으로 필요한 일이어도, 결단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꾸밈 없는 친절과 애정, 그리고 어이가 없을 정도의 비타협성은 이렇게 서로 통했던 것이지요. 이런 사람에게 왕비라는 직업이 어울렸을까요? 네, 그녀가 35세가 될 때까지 그녀는 왕비답지 못한 왕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생의 마지막 3년 동안 잠재되어 있던 왕비의 기질이 불꽃처럼 분출하면서 그녀의 생명은 단축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불멸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 기질이란 선천적으로 비굴함과 가식을 증오하고 최악의 코너에 몰렸을 때라도 당당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저 내적 위엄을 말하죠. 폭력과 살인을 통하여 새 시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은 성난 민중들과 그들을 뒤에서 조정하며 난장판 세상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돈과 지위를 움켜쥐려 한 귀족들 모두(이 책의 탁월함의 하나는 사람 홀리기 딱 좋은 ‘혁명’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마리의 ‘정직한’ 눈에는 믿을 수 없는 협잡꾼과 건달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혁명의 숭고한 대의가 조각난 형태로라도 반짝였다면, 그래서 루이와 마리를 감금하고 심판하는 과정에서 이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좀더 발휘되었더라면, 마리는 좀더 적극적이고 유순한 태도로 혁명파들과 프랑스의 미래를 논의했을 것이고, 단두대는 그녀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혁명은 원래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잖아요. 혁명은 가장 고귀한 이름 아래 가장 잔인하고 모순적인 행동들이 이루어지는 한 바탕 피의 축제입니다. 이 축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초심을 잃었고, 제 죽음이 두려워 친구를 무고하여 기요틴으로 몰아넣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마리는 가장 불리한 피고의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생명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종일관 위엄 있는 모습으로 끝까지 수행했습니다.
루이 16세를 처형한 것은 혁명의 피할 수 없는 결과라 할 수 있지만(하지만 루이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원 판사들까지도 이 선량하고 둔한 인간을 반드시 처형할 필요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리를 처형한 것은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그녀가 자기 아들을 범하였다는 말도 안 되는 죄로 감옥으로 호송되었을 때 혁명은 이미 구시대(왕정)의 오욕이 아니라 그 자신의 부패로 질식해 가고 있었습니다. 즉 마리의 처형은 혁명이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라, 자기 몸에서 나오는 독기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저지른 불필요한 희생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프랑스혁명은 ‘문란하고 사치스러운 빈 출신 요부’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역사가 수 세기 동안 뱃속에 품어온 (단명할 운명의) 아기—혁명—가 태어날 때가 되어 태어났는데, 그 때 아기를 눕혀야 할 자리에 루이가 있었고, 굴종이 몸에 벤 이 루이(참으로 왕 같지 않은 왕이라 죽여도 죽이는 사람이 오히려 미안해지는...) 옆에는 하필이면 아름답고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외국인 여자, 마리가 앉아 있었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리고 어쩌면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마리 자신이 이 점을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독서로 다져진 지성은 없었지만 정치와 역사에 대한 타고난 직관만은 탁월했습니다. 베르사유에서 기요틴에 이르는 삼 년 동안 드물게 찾아왔던 탈출의 기회에 그녀가 내린 판단을 루이가 따랐더라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루이는 언제나처럼 결정을 미루었고 결국 사람들이 그의 생명에 대한 결정을 대신 내려주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하늘을 우러러 통곡할 일이지만 마리는 울부짖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왜 남편이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도 그 뒤를 따라야 하는지를 이미 스스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이들의 미래와 가까운 사람들의 안전, 그리고 멀리 있는 단 하나의 그리운 친구(가 누구인지는 책으로 보시길...)의 여생을 배려하면서 담담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무덤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퀴즈: 마리가 처형당할 때까지 그녀의 친정, 즉 빈에 있는 황제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친지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답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입니다. 마리를 구하기 위한 친구들의 노력을 오스트리아 왕가는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이제 와서 마리를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기념인물로 내세우는 건 아마도, 자신이 팽개친 희생자를 죽음 뒤에 성스러운 자로 등극시키며 죄책감 어린 기억을 멋진 스토리로 재창조하려는 지라르적 심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