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은 명사여야 하는가? 어째서 가장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동사가 아니란 말인가? (24)
왜 우리는 창조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창조력만큼 사람들을 관대하고 즐겁고 활기차고 대담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재물이나 다툼에 무관심하게 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38)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모른 채 살아가는 아티스트, 그림자 아티스트는 드러나는 재능을 감춘다. 그림자 아티스트는 그토록 경외하는 창조성을 자신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남몰래 갈망해왔던 아티스트의 길을 열정적으로 걷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 아티스트는 다른 아티스트를 사랑한다. 그림자 아티스트는 같은 동족인 아티스트에게 끌리지만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느냐 혹은 그늘에 숨어 꿈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그림자 아티스트가 되느냐는, 재능이 아니라 용기에 달려 있다. (73)
창조성이 막힌 친구들은 당신의 회복을 두려워한다. 당신이 창조성을 회복할수록 그들도 창조성을 회복하고 안이한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는 위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 창조성이 막혀 있는 사람들은 죄책감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 우리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싶으면서도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창조성이 막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에 관심을 쏟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행동은 자신을 좌절시킬 뿐이다. (98)
기도에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겁나는 일이다. 내가 바란 것을 얻었으니 이젠 어떻게 할 것이냐는 식으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엇에 대해 기도하는지 항상 조심하라. 자칫 그 기도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라는 경고문이 왜 있겠는가?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책임은 이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124)
질투란 그런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버젓이 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다. 질투심의 뿌리는 편협한 감정이다. 질투는 풍성함과 다양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질투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자리밖에 없다고 말한다. 단 한 사람의 시인, 단 한 사람의 화가..... 당신이 무엇이 되기를 꿈꾸든 그 일에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밖에 없다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행동하는 순간, 비로소 거기에는 단 한 자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219)
"생각해 봐. 중요한 출장을 막 떠날 참인데, 네 남편이 갑자기 네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야.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야. 또 이런 경우도 있지. 직장이 너무 형편없어서 때려치우려고 하니까, 못돼먹은 사장이 별안간 5년 만에 처음으로 월급을 올려주는 거지. 그럴 때 속지 말라고. 정말 속으면 안 돼."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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