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자신의 전성기에 멈춰 있다고 굳게 믿는 남자들의 낡아빠진 감성은 철저한 자기 착각을 만든다. 과거를 무기 삼아 휘두르는 왕 감독의 수법에 황청은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흔적만 남은 권력으로 ‘과거시제‘를 조종하고 위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 P387

"숨 참아요." 왕레이가 말했다. 그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등 뒤의 지퍼를 올리자 황청의 가슴 사이로 은근한 골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여성의 몸에 새기는 인위적인 주름이었다. 타인의 욕망과 자신과의 타협 사이에서 무심한 듯 연출된. - P404

황청은 이렇게 선명한 빨간색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빨간색은 언제나 황첸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그 커다란 결혼사진 속 황첸은 온통 빨간색이었으니까. 거울 속의 자신은 공격성이 없는 기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가시가 뽑힌 붉은 장미처럼, 변형된 붉은 꽃처럼. - P404

정상에 선 등산가가 된 자신이 살면서 지나온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를 돌아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가슴 한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끊임없는 실패를 겪어야만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고 동시에 얻었다. 두 가지를 비교할 수는 없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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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그것은 여성의 서사를 가두는 울타리이다. - P304

넘어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이제 알았다. 넘어지는 순간에 가장 선명히 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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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말랑한 청춘의 토양 위에서 쉽게 밀리고 섞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단단하게 굳어진 흙처럼 쉽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 P239

그렇다. 일개 무명 배우가 무슨 자격으로 기회를 걷어차겠는가? 제 발로 찾아온 배역을 거절하고 또다시 기약 없이 기다리겠다고? 황청은 사실 이 작품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화가 자신을 설득해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아니면 회사가 강압적으로 그녀에게 배역을 맡게 해서 자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연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배역을 거절하고 싶어한다는 걸 누가 믿을 것인가. 사실 그녀 자신도 믿지 않았다. - P244

삶이란 어쩌면 즐거운 기억 위에 또 다른 기억을 쌓아 올리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생명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맞이하고 그 희망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 P247

황청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중심‘을 찾고 있었다. 모든 움직임의 중심축이 되고, 결국에는 돌아갈 수 있는 그 지점을. 자신을 지탱해줄 ‘중심점‘이 나타났다고 느낄 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흔들리거나 심지어 그녀를 등지고 사라졌다. 앞으로 나아가 붙잡으려 하고, 소유하려 하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뒤에 의심이 피어났다. 그 ‘중심점‘에 대해서든,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든 그것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으면서도 그녀를 끊임없이 전진하게 만드는 ‘이상‘이었다. 때로는 사람이었고, 따로는 삶과 일이었으며, 때로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체였다. - P260

인간의 내면은 외부로 표줄되는 것보다 항상 크기 마련이다. 그녀는 감정은 ‘연기‘할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유일한 방법은 캐릭터가 지금의 그녀처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건 겉으로 보여주는 연기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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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원래 끊임없이 다시 돌아온다. 전에는 왜 그걸 믿지 않았을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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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는 중요하다. 등장 순서가 달라지면 이야기도 완전히 달라진다. - P228

한때는 나이가 들면 사랑도 천천히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라지는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 P228

비극은 사람을 웃게 한다. 사람을 울게 하는 건 희극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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