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말랑한 청춘의 토양 위에서 쉽게 밀리고 섞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단단하게 굳어진 흙처럼 쉽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 P239
그렇다. 일개 무명 배우가 무슨 자격으로 기회를 걷어차겠는가? 제 발로 찾아온 배역을 거절하고 또다시 기약 없이 기다리겠다고? 황청은 사실 이 작품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화가 자신을 설득해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아니면 회사가 강압적으로 그녀에게 배역을 맡게 해서 자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연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배역을 거절하고 싶어한다는 걸 누가 믿을 것인가. 사실 그녀 자신도 믿지 않았다. - P244
삶이란 어쩌면 즐거운 기억 위에 또 다른 기억을 쌓아 올리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생명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맞이하고 그 희망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 P247
황청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중심‘을 찾고 있었다. 모든 움직임의 중심축이 되고, 결국에는 돌아갈 수 있는 그 지점을. 자신을 지탱해줄 ‘중심점‘이 나타났다고 느낄 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흔들리거나 심지어 그녀를 등지고 사라졌다. 앞으로 나아가 붙잡으려 하고, 소유하려 하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뒤에 의심이 피어났다. 그 ‘중심점‘에 대해서든,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든 그것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으면서도 그녀를 끊임없이 전진하게 만드는 ‘이상‘이었다. 때로는 사람이었고, 따로는 삶과 일이었으며, 때로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체였다. - P260
인간의 내면은 외부로 표줄되는 것보다 항상 크기 마련이다. 그녀는 감정은 ‘연기‘할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유일한 방법은 캐릭터가 지금의 그녀처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건 겉으로 보여주는 연기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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