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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콘 근크리트 - 전3권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빛과 어둠,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진보와 보수. 좋은 것과 싫은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우리 편과 나쁜 편... 세상은 그렇게 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그 시기를 ‘청춘’이라고 부른다. ‘사춘기’라고도, ‘십대'라고도 하지만 왠지 ’청춘‘이란 말이 가장 어울린다.
아이와 어른의 모호한 경계인 그 시기엔 인식만은 늘 분명한 잣대를 갖고 있어서 그 잣대로 세상을 둘로 나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자신은 늘 빛과, 선, 진실과 진보의 편이었다. 진중한 사고는 모호한 회색주의로 배척당하고 유연한 사고는 야비한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히는 때. ‘철콘 근크리트’의 두 주인공은 그런 청춘의 한 때를 영원히 살고 있는 피터팬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내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없어져야 할 적들이고, 나와의 영원한 우군은 가족이 아니라 바로 친구이다. 왜 그 친구가 내 전부인가는 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숙명이다. 그것은 이유가 없고, 결과만으로 각인된다.
그러나 그 친구는 늘 나를 힘들게 한다. 절대적 우정으로 맺어진 사이지만 그는 늘 내 시기의 대상이고, 미움의 대상이다.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은 늘 나를 괴롭힌다. 친구를 미워하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청춘이 아니다. 친구는 정의이고 고, 진실이며 세상 모든 것이다. 왜냐하면 청춘에게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시로와 쿠로. 이 두 악동들은 어른들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얼마나 당혹스러운 꼬맹이들인가. 아마 이 만화를 처음 드는 순간 대다수의 어른들은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만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난감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에게 마츠모토 타이요는 ‘정말 당혹스럽니? 넌 한 번도 이런 시절이 없었니? 어른들은 전부 구질구질하고 값싼 인생을 살아가는 쓰레기들이라고 느낀 때가 없었어? 네가 세상의 중심이고, 정의라고 생각한 시절이 없었냐고? 아닐 걸...’하며 비웃고 있는 듯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현명하고 냉철한 어른이었다는 듯, 과거를 말끔히 지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냥 청춘의 한 때를 툭 던져놓고 가는 것이다. 그는 아무 것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그냥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한 때, 나의 한 때를. 그리하여 그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지우고 마치 그 시절을 건너 뛰어온 척하는 우리에게.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나는 제목을 ‘철근 콘크리트’로 읽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이 아니고 내 책꽂이에서 이 책을 본 삼십대 후반의 친구들은 모두 나처럼 제목을 잘못 읽어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갑자기 작가에게 허를 찔린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구나. 우리는 지금 합리적 언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잘 못 발음한 ‘철콘 근크리트’를 그대로 눈 앞에 들이밀었을 땐 그것을 더 이상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구나. 나의 이 합리적 언어는 과연 청춘의 시절과 재회할 때 얼마나 진실할 수 있나, 회의스러워진다.
그러고 보니, 나도 글자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언니의 책꽂이에서 ‘막심 고리끼’를 ‘맥심 코끼리’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러시아 최고의 작가를 ‘맥심 커피’와 ‘코끼리’로 재조합해낸 나의 인식은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다. 그것이 그 시절 내 세상이었으므로.
솔직히 나도 이 만화가 불편하다. 삼십대 후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소시민들이 자기의 청춘을 떠올리는 게 뭐가 그리 달가울 건가. 그러나, 내 합리와 이성을 가볍게 비웃으며 나를 불편하게 만든 마츠모토 타이요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만나는 작품마다 늘 껄끄럽고 속 시끄럽게 만드는 작가, 그의 작품을 오래 오래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