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귀찜을 무지 좋아한다.
언젠가 동네 어물전에서 깨끗하게 손질 된 아귀를 싸게 팔길래 한 마리 사와서
무 넣고 탕을 끓여 먹었다.
소금 간에 대파만 쑹덩쑹덩 썰어넣었는데도 시원하고 참 맛있었다.
(지난 여름 묵호에서 사먹은 곰국(아귀탕)과 비슷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다음엔 뻘겋게 아귀찜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얼마 전 마트 앞을 지나는데 소쿠리에 담은 아귀 두 마리를 5000원에 파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덥석 그것을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집에 오는 내내 뭔가 찜찜했다.
조금 전에 지나온 마트 앞으로 기억을 되돌렸더니 맙소사!
손질이 되지 않은 통아귀가 등장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겠지 하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아귀찜 맛있게 해줄테니 집으로 빨리 와서 아귀 손질해줘!"
공교롭게도 남편은 그날부터 꼬박 사흘을 밤늦게 돌아왔고,
아귀는 봉지째 그대로 조그만 김치냉장고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얼 하든 아귀가 머리속을 맴도는 것이다.
'저 아귀를 네 손으로 직접 손질하지 않으면 너는 결코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거야!'
하는 밑도끝도 없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또,
"두려움이 많으면 세상 살기가 힘들어지는 거야!" 하는
채플린의 영화 '라임라이트'의 대사도.
그 다음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그걸 도마 위에 올려놓고 봉지를 풀었다.
흐물흐물하고 퀘퀘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흐린 그 눈.
나는 마음속으로 "으악!" 소리를 지르고 서둘러 다시 봉지를 묶었다.
그리고 그대로 밖에 가지고 나가 음식물찌꺼기 통 속에 풀어넣었다.
결국 아귀를 손질하지 못했으니 나는 진정한 어른이 못 되는 것인가?
두려움이 이렇게 많으니 겁장이로 비겁하게 살다 죽을 건가?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