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가족, 친구가 아닌 명확한 타인 말이다. 관음증이나 호기심이 아닌 타인의 삶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닌 것이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는 사이라면 삶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삶을 질투하고 동경하며 그 영역에 침투하고자 하는 건 잘못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몸부림, 그것은 무엇이라 불러야만 할까.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내게도 잠재되었을 그것.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레일라 슬리마니의 장편소설『달콤한 노래』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루이즈에게 나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안개 같은 그것.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9쪽) 이토록 잔인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누가 무엇 때문에 아이를 죽였단 말인가.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보모였던 루이즈가 아기를 죽였고 자신도 죽으려 했음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루이즈는 누구인가? 자신 있게 루이즈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존재하는가? 

 

소설은 보모 루이즈와 그를 고용한 부부 미리암과 폴 부부의 관계에 대해 들려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과 부모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가장 완벽한 보모 루이즈에 대해서 말이다. 첫 문장 때문일까. 소설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까탈스러운 딸 밀라와 갓난쟁이 아들 아당, 두 아이를 낳고 변호사로 복귀를 위해 계획을 세우던 미리암은 지인의 추천으로 보모 루이즈를 만났다. 그 뒤 미리암과 폴 부부는 타고난 모성으로 아이뿐 아니라 살림까지 걱정 없이 해결해주는 루이즈에게 많은 것을 의지한다. 두 아이는 점점 루이즈에게 빠져들고 그녀에게 길들여진다. 엄마나 아빠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고 자신을 사랑해주고 원하는 것들을 모두 들어주는 루이즈를 누가 싫어하겠는가. 원하든 원한지 않든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가 주는 기쁨과 함께 아이에게 얽매였다는 생각을 갖는다. 내가 아닌 아이가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리암과 폴이 루이즈 덕분에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미리암은 루이즈와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머리에 스쳐가는 어떤 생각, 잔인하지는 않지만 부끄러운 그런 생각을 엠마에게 절대 털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우리 자신만의 삶, 우리 자신에게 속한 삶, 다른 이들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가 자유로울 때에만.” (53쪽) 

 “그가 원하는 건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게 전부였다. 자유롭고 싶은 것, 좀 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었다. 조금밖에 살아보지 못했는데 너무 늦게야 그걸 깨달은 것이었다. 아버지라는 옷은 그에게 너무 크고도 침침해 보였다.” (154쪽)

 

 소설에서는 세 인물의 내면 묘사가 탁월하다. 가정과 일, 엄마와 변호사 사이에서 갈등하고 루이즈를 두고 남편과 의견 차이를 두는 미리암, 뮤지션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욕망을 채우는 폴의 솔직함 심리가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둘에 비해 루이즈는 모호한 인물로 설정한다. 물론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남편은 죽었고 딸은 가출을 했으며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미리암의 아파트 주변 사람들이나 놀이터에서 만나는 보모들과는 거리는 두며 가면을 쓴 것처럼 사람들을 대하며 속내를 감춘다. 마치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듯하다. 

 “고독 속에서 그녀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진짜로 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와, 진동이 느껴지고 손에 만져졌다.” (128쪽)

 철저하게 혼자였던 루이즈에게 미리암과 폴의 가족은 마지막 비상구처럼 여겨졌던 것일까. 그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다녀온 후 루이즈는 자신과 그들의 삶을 동일하게 여긴다. 미리암과 폴의 세계로 점점 파고든다는 것을 느낀 미리암과 폴는 부담스럽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파고드는 루이즈의 집착이 두렵다. 침해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루이즈는 그들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의 삶 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이제 밖으로 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이 그녀를 밀어내도 그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작별 인사를 해도 그녀는 문을 두드려대고 안으로 들어올 것이며, 상처받은 연인처럼 위험할 것이다.” (228쪽) 

 “루이즈는 늘 똑같은 그 둥근 칼라에 너무 긴 치마를 입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착각하고 낯선 세상에 와 있는, 영원히 떠돌아야 할 운명을 선고받은 인물 같아 보인다.” (279쪽)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은 루이즈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루이즈를 발견하지만 모르는 척 외면한다.  그녀의 눈에 비친 루이즈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니, 그 모습이 루이즈의 진짜였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루이즈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미리암의 아파트 주민도 과거 그녀를 안다고 믿었던 이들도, 아이를 맡겼던 부모도. 

 누군가를 안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두려운 생각이 밀려온다. 전부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내가 안다고 믿는 것만큼의 확신이 사라질 것 같다. 반대로 누군가는 나를 얼마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할까. 자신할 수 없는 문제다. 내가 당신을 안다는 것과 당신이 나를 안다는 것, 그 사이의 괴리감이 얼마나 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11-16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쿠르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이 책도 프랑스작가의 책인 모양이네요.
자목련님, 요즘 날씨가 무척 차갑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7-11-20 18:50   좋아요 2 | URL
네, 대단히 파격적이라 무척 강한 인상을 주었어요. 다음에는 어떤 소설을 쓸까, 궁금해졌어요.
첫눈이 내렸으니 더욱 추워지겠지요. 감기 조심하고 포근한 저녁 보내세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산다고 생각했었다. 큰 변화 없이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아고 그저 산다는 게 중요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쉴 새없이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나에게 시작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불현듯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세히 돌아보니 친구, 가족, 그리고 나를 아는 이들도 역시나 저마다 상처의 우물이 있다는 걸 알았다. 꺼내지 않아야 할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작 후련하게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숨어버린다. 나만을 위한 기록이나 고백으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글은 그런 성질을 지녔다.


 좋아하는 시인이라 말할 수 있는 박준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무척 기대했다. 내 것을 사면서 지인에게도 선물을 했고 그가 SNS 계정에 올려놓은 문장들로 먼저 만났다. 나는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책을 읽었다. 공들여 읽지는 않았다. 그저 천천히 조용하고 담담한 그의 문장을 가만가만 읽었다. 작정하면 빨리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그렇게 읽지는 않았다. 어느 문장은 꽤 오래 바라보았고 어느 문장은 그의 시집에서 만났다는 걸 기억하고 읽고 또 읽었다. 문학을 업으로 삼은 이, 시인의 산문은 영롱한 빛을 뿜거나 화려하게 반짝이지는 않았다. 보통의 노동으로 채워진 삶이 있었고 보통의 사랑과 이별이 있었다. 곳곳에 애틋함이 있었고 진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것은 떠난 누군가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지난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 사라져간 장소나 숨이거나 울음이기도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흐르다가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울음」, 70쪽)


 어떤 글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연장선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어떤 글은 다음 시집에서 만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어디든 한번 가본 곳을 다시 찾게 된다는 그가 글을 쓰기 위해 작은 소읍에서 머문 시간들과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보지 못한 일출과 일몰을 혼자 보았다는 그 바다를 상상한다.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를 음식과 비유한 점은 인상적이었고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그곳에 가면 그 음식을 꼭 먹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트럭을 운전하며 일을 하신 아버지와 그 트럭을 타고 함께 보고 느꼈던 것들을 담은 글은 다정한 아버지를 상상하고 나의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대화에서 한 문장 정도 기억하려고 애쓴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떠나간 이들, 혹은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가 떠오르면서 우리는 무슨 대화를 나눴던가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말은 모두 사랑한다는 말이었다는 게 생각나 가슴이 아려왔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눈으로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말들, 때로 분노와 미움을 전달하는 말, 따뜻하고 예쁘고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는 시인처럼 나도 그래야겠다. 쉽지 않겠지만 이런 문장을 잊지 않는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19쪽)

 

 최근에 이 책을 선물한 지인과 서로의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시간의 힘을 믿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덜 울게 되고 조금 더 괜찮아진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녀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걸 그녀는 내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시간의 힘을 믿는다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런 위로가 되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이 산문집도 그런 존재다.

 

 아무리 무겁고 날 선 마음이라해도 시간에게만큼은 흔쾌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 여긴다. 오래 삶은 옷처럼 흐릿해지기도 하며. 나는 이 사살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 (「내 마음의 나이」, 186쪽)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은 힘이 되고 그러겠습니다. (「고아」, 157쪽)

 

 때로 말은 숨어버린다. 해야 할 말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답답할 때 정작 말은 사라진다. 그럴 때 글은 말을 대신한다. 목소리가 아닌 숨결을 전달한다.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같이 울고 있는 당신이 있어 힘이 난다고. 운다고 슬픔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진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진 이에게 매력을 느낀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날씬한 사람,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 ……. 끝이 없다. 그건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가 부단한 노력 끝에 얻은 것일 줄 모르고 천성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상대를 전부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없으니까. 조금씩 알아가면서 전부를 향해 가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어쩌면 사랑의 시작이 그러할까, 사랑이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믿는 것일지도. 어떤 수정도 없이 작가의 말도 없는 정미경의 소설 『가수는 입을 다무네』를 읽으면서 정미경의 소설을 더 이상 읽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놀라운 문장을, 섬세한 묘사를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글의 감정을 간직한 그녀의 소설을 말이다.

 

 마지막이라서 그랬을까. 내게는 이 소설이 이전에 만났던 정미경의 소설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천재 뮤지션으로 최고의 가수였던 율과 그의 현재를 다큐로 촬영하는 이경, 그리고 율의 아내 여혜의 이야기가 교차로 이어진다. 예술가 율의 삶과 그의 아내,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고통을 천천히 그리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아직 모르지? 어딘가가 곪아 터지는데, 감각이 사그라져 버리는 때가 오거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고통에마저 무감해지는. 그 깨달음이란 얼마나 쓸쓸한 낙하의 느낌인지. (81쪽, 여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그를 전부 다 아는 건 아니다.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면 그것이 사랑이라 해도 견디기 힘든 날들이 온다.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율을 보면서 여혜는 점차 지쳐간다. 그런 그들에게 젊고 생기 넘치는 이경의 등장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자신에게 닫았던 어떤 감정을 이경에서 열어 보이는 율, 변화하는 율을 보면서 묘한 슬픔을 느끼는 여혜. 단순히 학교 과제로 학점과 장학금을 위해 시작한 다큐를 찍으면서 이경은 카메라 안과 밖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정미경은 어떤 틈도 허락하지 않은 듯 촘촘하게 세 사람의 거리를 완벽하게 조율한다.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면서 생계와 학업을 지탱하는 대학생 이경과 전설적인 록밴드의 보컬 율은 다른 듯 보이지만 지독하게 닮았다. 모든 걸 내주는 남자친구 현수에게 마음을 내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이경과 자신의 음악적 성공보다 율의 재기를 위해 그를 돕는 젊은 뮤지션 호영에게 차갑게 대하는 모습이 말이다. 좌절하면서도 삶을 살아내는 것, 간절하게 무언가 바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견디는 그들의 삶이 애처롭다.

 

 이경은 무슨 일이든 멀리 내다보지 않으려 했다. 닥쳐오는 대부분의 일들은 멀리 보면 볼수록 거의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는 태도로 삶을 대했다. 부닥치다 보면 뭐가 되든 만들어지겠지. 삶이란 내던져진 미로에서 살아 나가는 일이고 무작정 걸어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세상일이란 원래 데이터나 기댓값으로 비웃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거지.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옆길로 가면 된다. (111쪽)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율, 다시 세상으로 나오고 싶었던 그였다. 그러나 노래를 만들수록 세상에 다가갈수록 그의 고통은 커지고 그런 율을 카메라로 담는 이경은 그가 얼마나 외롭고 지독한 날들을 경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 없이 홀로 살아야 했고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돌아온 엄마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을, 전부를 내 걸고서야 간신히 지탱할 수 있던 삶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호영의 도움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실수를 한 율은 생을 포기하고 남겨진 영상을 보는 이경은 진짜 삶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뜨거운 열정과 재능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삶, 율처럼 예술가가 아니어도 삶을 그러했다.

 

 이갱, 좋은 생은 나쁜 노래를 만들어. 나쁜 생은 좋은 노래를 만들고. 그 둘을 다 겪은 사람만이 위대한 노래를 만들 수 있지. (310쪽)

 

 처음에는 불운한 예술가 율이 소설을 이끄는 듯 보였지만 결국엔 남겨진 자 이경이 주인공은 아닐까 생각한다. 율의 다큐를 찍으면서 이경은 진정한 삶은 실패를 견디는 것이며 그 과정 역시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듯 독자인 나 역시 그러하다. 어딘가에는 성공으로 이어진 삶도 존재하겠지만 보통의 삶은 실패와 고통의 반복이니까. 어떤 생을 살든 그 생을 견디고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리오 드립필터 - 1~2인용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피, 책, 그리고 여과지까지, 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범한 공간이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추억을 간직할 때 그러하다. 매일 지나치면서 마주하는 꽃집, 카페, 슈퍼가 이전과 다른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장미 한 송이를 사러 간 꽃집에서 주인과 나눈 작은 대화로 기분이 좋아졌을 때 세상의 모든 꽃집이 아닌 그 꽃집에서 나의 꽃 이야기는 시작된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업무상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며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카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한다면 그곳을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충만할까. 나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카페, 그리고 하나의 테이블만이 들을 수 있는 사연들. 김종관의 『더 테이블』을 읽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그 카페를 상상한다. 누군가는 영화로 만났을 이야기.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오롯이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같은 공간,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한 네 커플. 서로에 대한 감정을 서툴게 말하며 서로에게 대해 다가가는 예쁜 커플(경진, 민호), 유명 여배우와 예전 남자친구의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남녀(유진, 창석), 상견례 대행을 부탁하는 자리로 만난 가짜 모녀(은희, 숙자), 서로가 사랑하면서도 결혼을 선택할 수 없는 커플(혜경, 운철)의 사연을 차례로 들여주는 이야기. 순간순간 나는 테이블이 된다. 상대가 모르게 조금씩 마음을 다스리는 감정을 읽는다. 에피소드 중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알려주는 은희와 자신의 딸이 결혼했던 날짜와 같다며 웃는 숙자. 가짜 모녀 사이를 연기하는 이들이지만 어느덧 진짜처럼 마음을 전하고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는 먹먹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하면서 서로를 선택하지 못하는 혜경와 운절의 대화가 맴돈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아픈 이별인데도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한 컷 한 컷 찍었을 것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감각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출로 담아냈을 인물의 내면. 그리고 테이블에서 벗어난 그들의 다른 이야기는 어땠을까. 그런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어딘가에서 그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이미지와는 다른 감각의 글들이다. 영화 「더 테이블」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 감독 김종관의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김종관 감독의 팬이라면 이 책을 통해 더욱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 텅 빈 공간에 이야기들이 남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도, 창밖 거리에도, 내가 보았던 것들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203쪽)

 

 인생의 중요한 일은 그곳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어느 테이블 어느 의장에 앉은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206쪽)

 

 아주 짧게 머문 그 공간에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을 그들. 어쩌면 그 공간이었기에 가능했을 마음은 아니었을까.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순간을 담아두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단 하루 동안 그 테이블에서 벌어진 일들, 단 하루 동안 그 테이블이 듣고 느꼈을 감정들. 만남 혹은 헤어짐이 있는 공간, 더 테이블이다. 따뜻한 온도가 필요한 시기, 당신과 마주하고 싶은 공간, 더 테이블이다. 

 

 그런 공간을 생각하자니 저절로 추억에 빠져든다. 한 바퀴를 도는 게 정말 힘들었던 학교 운동장은 이제 너무 작은 놀이터로 변해버렸다. 시험 때마다 자리를 잡겠다고 줄을 섰던 대학 도서관에서 빈둥거리던 시절도 그립다. 그 도서관은 학교가 이전했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공간과 후배가 아는 공간은 다른 것이다. 봄이면 벚꽃이 예뻐서 사진 찍으러 오는 외부인이 정말 많았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언제나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소중하고 아름답다. 윤대녕의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속 공간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사라진 공간과 여전히 우리 곁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의 추억도 들려주고 싶다. 카페과 같은 역할을 했겠지만, 나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다방, 그리운 주황색 공중전화기, 한때 열심히 다녔던 노래방, 말만 들어도 괜히 설레는 공항과 말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아픈 병원. 김종관의 책에서 만난 이들과 달리 윤대녕의 책에서 마주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신과 친구와 연인, 그리고 가족이라서 그런지 공간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기억하고 묘사하는 공간은 왜 이리 멋지고 매력적이란 말인가.

 

 어둠이 내리면 도서관 내부는 조용히 웅성거리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만의 자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즈음이 바로 유령들이 깨어나는 시각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돌연 긴장한 상태가 되어 사위를 두리번거리거나 거역하기 힘든 호기심에 이끌려 어두운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말해 무엇하랴만 도서관은 죽은 말들의 세계였고 그러므로 밤마다 유령들이 출몰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사실상 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책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고 혹은 저자가 살아 있다고 해도 글쓰기를 마치는 순간 필연적으로 유물로 변하게 마련이었다. (205쪽)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를 기억할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 온기를 만들어 준 사람들도. 그냥 밥 한 끼가 아니었던 식당, 수많은 사람들의 들고나는 보통의 영화관이 아니었던 그 공간, 우리들의 약속 장소였던 그 카페.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 그곳에서 매만졌던 커피 잔.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 표정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만의 더 테이블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