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절반이 지났고 알라딘에서는 16주년 기록으로 흥미로운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여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인 듯 맛있는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며칠 전에는 자두와 체리 한 팩을 혼자서 다 먹어버렸다. 고운 빛깔의 과일을 입속으로 넣으면서 여름이 참 좋구나, 생각했다.

 

 늘 그랬듯 장마를 기다리는데 장마는 아직 내게로 오지 않았다. 습기 가득한 어제와 오늘, 분명 장마가 오고 있다고 말하는데 비는 내리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든 쑥쑥 몸피가 자라는 게 여름일 텐데. 멈춰버린 마음은 자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속상한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던 6월을 보내고 나니 나를 자라게 할 무언가가 간절하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책이 필요한 때다.

 

 표지만으로도 초록의 기운을 안겨줄 것만 같은 <작가들의 정원>,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 요리에 대한 도전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 첫 번째 대화로 두 번째 대화에 대한 기대가 큰 <불가능한 대화들2>, 여름을 위한 책 <야경>까지.

 

 여름, 여름, 여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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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위는 던질 때마다 다른 숫자를 보여준다. 그것이 주사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숫자 1, 숫자 5로 기억될 수도 있다. 숫자1에서 숫자6까지 여섯 가지를 가진 물건, 소설가는 주사위를 닮았다. 매번 던질 때마다 같은 수가 나오는 주사위처럼 어떤 소설가는 소설에서 특정 서사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어떤 소설가의 소설은 매번 다른 수를 보여준다. 고유성과 다양성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좋고 나쁨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김유진의 장편소설 『숨은 밤』을 읽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늑대의 문장』으로 만난 김유진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웠지만 매혹적이었다. 잔혹스러운 동화 그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장편소설 『숨은 밤』은 단편의 확장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성장하는 아이들과 비주류로 살아가는 주변인과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의 이야기.

 

 여관에서 보호자 없이 장기 투숙하는 화자 ‘나’와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 기(基)는 고아 아닌 고아다. 트럭을 몰며 장사를 하는 나의 아버지는 안(雁)에게 소녀를 부탁한다. 주변의 강으로 낚시를 하러 오는 이들과 여름 축제에 모여드는 곳이다. 안이 있다는 이유로 소녀는 이 마을에 온 것이다.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어탁을 하는 안과 ‘나’가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한 번씩 안의 집에 방문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다. 소년 기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마을에서 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보호자도 없다. 군청 직원만이 쌀과 도시락을 챙겨주며 작은 진심을 보였다. 기가 잠깐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직원의 배려였다. ‘나’는 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재활용 교복을 입고 자신보다 작은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엄격하게 구별할 수 있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전자에서 후자로 흐르는 삶,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자족하는 삶, 안은 그런 삶을 꾸릴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따르면, 기는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기는 자기 자신조차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기에게서 뒤늦게 발견한 놀라울 정도의 유치함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의 말은 늘 옳았다.’ (95쪽)

 

 김유진은 여전히 불편하고 불투명하다. 걷어낼 수 없는 얇은 막으로 인물을 설명한다. 물론 기, 안, 장은 독특하다. ‘나’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장(薔)도 기와 안과 마찬가지다. ‘나’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이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김유진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기가 어떤 이유로 분노와 함께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돌봄을 받지 않았다는 포괄적인 범위가 아닌 마을에 불을 지른 직접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너는 누굴 싫어해?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
 그럼 누굴 좋아해?
 나는 너를 좋아해.’ (203쪽)

 

 사랑의 전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김유진의 말은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뜻으로 들린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나’와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기가 서로의 바라보고 있으니까. 단 한 사람의 이해와 인정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서툴고 퉁명스러운 기의 고백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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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시절은 영원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어른이 되는 순간 보호는 사라진다. 육체적인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인정하는 나이가 아니더라도 결혼을 하게 되면 어른으로 대우한다.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서로에게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빠른 결혼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나는 봄에 없었다』, 『딸은 딸이다』를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 애거사 크리스티의 『두번째은 여자에게 두번째 생이라 할 수 있는 결혼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소설은 초상화가 래러비가 만난 서른아홉 살의 여자 셀리아의 인생이다. 절망의 순간과 맞닿은 셀리아가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연보라색 아이리스가 기둥을 휘감은 것 같은 아기방의 벽지. 유모가 있었고 셀리아의 전부가 되었던 엄마 미리엄과 다정한 아빠, 유쾌하고 친절한 할머니. 아름다운 정원이 있던 집에서 셀리아의 삶은 모든 게 완벽했다. 때문에 친구란 존재는 필요하지 않았다. 셀리아에겐 엄마라는 가장 든든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셀리아는 읽기의 매력을 알게 됐다. 책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요정과 마녀, 도깨비, 유령의 세계. 그녀는 요정 이야기에 홀딱 빠졌다. 현실 세계의 아이들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었다.’ (50~51쪽)

 

 동화 속 행복한 공주였던 셀리아의 책 속엔 불행은 없었다.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셀리아는 두려움을 상대하지 않았다. 피아노와 성악을 배운 셀리아의 외모는 뛰어났고 만찬과 파티에서 만난 남자들의 청혼으로 이어졌으니까. 미리엄은 모든 엄마가 그렇듯 셀리아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바랐다. 셀리아를 이해하고 감싸줄 남자를 찾았다. 하지만 셀리아는 결혼이라는 현실을 알지 못했고 박력 넘치는 군인 더멋을 선택했다.

 

 더멋에게는 영원한 소년 같은 기질이 있었다. 그 소년이 셀리아 안의 아이를 만났다. 그들은 인생의 목표, 내면세계, 성격이 전혀 달랐지만 놀이 친구를 원했고 서로에게서 그것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결혼생활은 놀이였고, 그들은 열심히 놀았다.’ (247쪽)

 

 평생 돌봄을 받았던 셀리아에게 결혼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더멋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굳게 믿은 것이다. 모두가 그랬듯 더멋도 자신만을 바라보며 가족을 사랑하는 멋진 남편이 될 거라 기대했다. 딸 주디에게 최고의 아빠로. 그냥 보통의 삶을 원했고 나쁜 일은 타인의 몫이라 여기며 산다. 점점 가정에 소홀하는 더멋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그랬듯 셀리아는 그녀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 시간에 만족한다. 사실 누가 불행을 예비하고 살겠는가. 때문에 미리엄의 죽음으로 힘겨운 상황에 마주한 더멋의 외도에도 기다림으로 응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셀리아가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선택한 결혼이기에 맏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감당할 수 없던 것이다. 셀리아는 소설 곳곳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것으로 성장이 아닌 도피를 선택한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추억과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려움을 상대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사람이 자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운 일인가. 사람에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특별한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앞으로…… 앞으로 셀리아는 어디로 가게 될까……’ (354쪽)

 

 우리네 인생엔 목적지를 입력하면 소요 시간을 알려주는 길 찾기 앱이 없다. 다양한 길을 발견하고 걸어봐야 한다. 변화가 주는 놀라운 힘을 경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셀리아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두번째 봄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악재라 말하는 아홉 수를 견디고 다시 성장을 위해 돌아간 그녀. 셀리아를 통해 애거사 크리스티를 본다. 그랬다. 이 소설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자전적 소설이다. 초상화가 래러비가 그림이 아닌 글로 셀리아를 묘사하듯 추리소설가가 아닌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한 여자의 생을 읽는 것이다. 

 

 ‘그녀는 서른아홉 살에 돌아갔다…… 성장하기 위해……’ (412쪽)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상처와 좌절을 견디고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두번째 봄을 맞은 그녀의 황홀한 비상은 우리에게 내면의 성장을 선물한다. 상실과 성장의 계절인 봄에 만난 애거사 크리스티는 다른 얼굴로 평온한 미소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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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9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좋은 단어이지요.

자목련 2015-04-30 06:59   좋아요 0 | URL
^^*

뒷북소녀 2015-05-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 2015-05-12 06: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도 비도 잠잠한 아침이네요. 그곳도 그럴까요?
 

 

 시를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나쁜 일일까. 하나의 사건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소설 속 인물을 따라 능동적으로 감정이 변화하는 것과 달리 시는 어떤 상황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내게 시는 조금 더 복합적인 이미지를 안겨준다. 나희덕의 시를 많이 읽지 않았기에 섣불리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한데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읽으면서 나는 이 시집 좋아서, 지인에게 좋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런 시를 읽으면서 내가 견디는 시간을 누군가도 견디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들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 들어 살지 않는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려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인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끓고 있는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을 수 없는 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 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져질 수 없는, 쓰다 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고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

 ―「다시, 다시는」전문, 46~47쪽

 

 이곳에서 나는 남아돈다

 너의 시간 속에 더 이상 내가 살지 않기에

 

 오후 네 시의 빛이

 무너진 집터에 한 살림 차리고 있듯

 빛이 남아돌고 날아다니는 민들레 씨앗이 남아돌고

 여기저기 돋아나는 풀이 남아돈다

 

 벽 대신 벽이 있던 자리에

 천장 대신 천장이 있던 자리에

 바닥 대신 바닥이 있던 자리에

 지붕 대신 지붕이 있던 자리에

 알 수 없는 감정의 살림살이가 늘어간다

 

 잉여의 시간 속으로

 예고 없이 흘러드는 기억의 강물 또한 남아돈다

 

 기억으로도 한 채의 집을 이룰 수 있음을

 가뭇없이 물 위에 떠다니는 물새 둥지가 말해준다

 

 너무도 많은 내가 강물 위로 떠오르고

 두고온 집이 떠오르고

 너의 시간 속에 있던 내가 떠오르는데

 

 이 남아도는 나를 어찌해야 할까

 더 이상 너의 시간 속에 살지 않게 된 나를

 

 마흔일곱, 오후 네 시,

 주문하지 않았으나 오늘 내게로 배달된 이 시간을

 ―「잉여의 시간」전문, 101~102쪽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마주하는 일은 온몸의 피가 모두 증발해버릴 것만 같은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다시 만질 수 없는 사람, 나의 부름에 다시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는 사람,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얼굴을 가진 사람을 생각한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가 느끼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어쩌면 ‘너’는 의미 없는 대상이며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저 잠시라도 슬픔의 조각을 잘라버릴 수 있으면 된다.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을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다더나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전문, 18~19쪽

 

 과연 소멸하지 않는 존재가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로 인해 아파한다. 때로 그로 인한 슬픔은 말을 잃게 만든다. 싸매두었던 말들이 터져 나올 때 힘차게 달리는 말(馬)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파도 속으로 사라진 말(言)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말들일 것이다. 다시 말이 되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을 잃은 슬픔을 곁에서 지켜보기란 힘들다. 시인은 눈물로 흐르는 말들, 몸짓으로 전해지는 말들이 돌아는 시간을 간절히 바랐던 건 아닐까. 그래서 고마운 것이다.

 

 너는 혀가 아프구나,

 어디선가 아득히 정신을 놓을 때

 자기도 모르게 깨문 것이 혀였다니

 아, 너의 말이 많이 아프구나

 

 무의식중에라도 하고 싶었던,

 그러나 강물처럼 흐르고 또 흘러가버린,

 그 말을 이제야 듣게 되는구나

 고단한 날이면 내 혀에도 혓바늘처럼 돋던 그 말이

 오늘은 화살로 돌아와 박히는구나

 

 얼마나 수많은 어리석음을 지나야

 얼마나 뼈저린 비참을 지나야

 우리는 서로의 혀에 대해 이해하게 될까

 

 혀의 뿌리와 맞닿은 목젖에서는

 작고 검고 둥글고 고요한 목구멍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말이 말이 아니다

 

 독백도 대화도 될 수 없는 것

 비명이나 신음, 또는 주문이나 기도에 가까운 것

 

 혀와 입술 대신

 눈이 젖은 말을 흘려 보내는 밤

 손이 마른 말을 만지며 부스럭거리는 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아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이생에서 우리가 주고받을 말은 이미 끝났으니까

 

 그러니 네 혀가 돌아오더라도

 끝내 아픈 말은 들려주지 말기를

 

 그래도 슬퍼하지 말기를,

 끝내 하지 못한 말은 별처럼 박혀 있을 테니까

 ―「상처 입은 혀」전문, 52~53쪽

 

 이 시집에서 누군가는 죽음을 보고 누군가는 슬픔을 보고 누군가는 삶의 뿌리를 볼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나는 죽음을 보았다. 그것은 곧 삶이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게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걸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이런 시가 눈에 밟힌다. 어떤 기대도 절망도 없이 살아지는 수많은 삶이 떠오른다.‘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동작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춤을 낳고 춤은 허공을 낳고’를 따라 읊으며 지속되는 삶의 고단함에 숙여해진다.

 

 

 물방울들은 얼마나 멀리 가는가

 새들은 어떻게 점호도 없이 날아오르는가

 

 그러나 그녀의 발은 알고 있다

 삶은 도약이 아니라 회전이라는 것을

 구멍을 만들며 도는 팽이처럼

 결국 돌아오고 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의 손은 알고 있다

 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

 가슴에 손을 얹고 몇 시간째 서 있으면

 어떤 움직임이 문득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작은 그렇게 발견된다는 것을

 

 동작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춤을 낳고 춤은 허공을 낳고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아는가

 돌면서 쓰러지는 팽이의 낙법을

 동작의 발견은 그때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동작의 발견」전문, 118~119쪽

 

 

 상실과 부재는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러니 슬픔이 지속되는 삶도 존재할 것이다. 문장의 마침표(.)처럼 슬픔을 끝낼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쉼표(,)처럼 슬픔과 고통에도 쉼표는 필요하다. 나희덕의 시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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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장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그게 좋은 문장이냐고 묻는다면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훔치고 싶고 빠져드는 문장이다.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 수록된 단편은 정말 최고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인물의 심리 묘사뿐 아니라 상황을 비유한 문장들은 단연 최고다. 밥을 먹을 때마다 혹은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고를 때에도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린다. 화분이라는 말에 숨겨진 어떤 의도를 생각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찻잔이나 술잔, 밥공기 같은 것이 결코 화분이 될 수 없던 시절에도, 한쪽 모서리가 기운 사다리꼴의 그 방은 내게 충분히 훌륭한 화분이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과 에세이 『바다의 기별』도 빛나는 문장이 많다.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내 젊은 날의 숲』은 청랑한 기운이 가득하다. 정제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라고 할까. 아무 곳이나 펼쳐도 숲의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조만간 두 번째 책으로 다시 만날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도 그렇다. 특별한 일상이 아닌 평범한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지만 시인이라 그런지 선택된 단어가 황홀 그 자체다. 겨울이 지난 자리지만 이런 문장을 되새기게 된다. 새벽 5시에 하늘을 본 적이 있던가. 내가 마주하는 공기는 어떤 빛을 보여줄까.

 

 ‘겨울 아침, 나는 5시나 그 전에 계단을 내려온다. 하늘은 검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나는 커피를 끓이고 창문마다 다니며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분홍, 귤색, 라벤더색 빛이 동쪽 수평선을 따라 돌진하다가 안개처럼 하늘로 기어올라 어둠의 안쪽 모퉁이에서 바르르 몸을 떤다. 우주의 은밀한 곳! 색깔들이 물 속으로 흘러들고 모든 것이 푸르게 변한다.’

 

 좋은 문장, 아름다운 문장의 첫 시작은 어디서 왔을까.  수없이 많은 퇴고로 탄생된 문장일 것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니 하나의 문장이 끝났다는 걸 알리는 마침표를 찍을 때 느끼는 희열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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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3-07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권여선의 문장도 좋고, 메리 올리버의 문장도 말씀대로 황홀하네요. 우리 소설이 아닌 외국 서적의 번역본을 읽으며 문장에 감탄하는예는 흔치 않은데 아마 번역자의 능력도 크게 작용하리라 싶어요.
자목련님의 이 글도 좋습니다 새삼스럽지만 ^^ 제가 감상을 쓴다면 이렇게 못 쓸 것 같으니까요.

자목련 2015-03-15 19:18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권여선의 문장은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과한 칭찬 고맙습니다. hnine 님, 포근한 저녁 보내세요^^

2015-03-08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5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