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날 그녀는 버스로 읍내에 가서 주치의로부터 장기 처방전을 받았고 그걸로 백 정 가량의 수면제를 샀다. 거기에다 그녀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예쁘고, 손잡이가 약간 굽은 빨간 우산을 샀다.
늦은 오후에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거의 텅 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두 사람이 아직 그녀를 목격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딸이 살고 있는 옆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았다. <우린 농담도 주고 받았어.>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막내와 함께 텔레비젼을 보았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란 연속극을 보았다.
그녀는 막내를 자러 보내고 텔레비젼을 켜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 전날 그녀는 미장원에 갔었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했다. 그녀는 텔레비젼을 끄고 침실로 가서 갈색 투피스를 옷장 속에 걸었다. 그녀는 진통제를 몽땅 입안에 털어놓고 거기에다 갖고 있는 신경안정제도 모두 먹어치웠다. 그녀는 생리대까지 끼운 위생 팬티에 팬티 두 개를 더 껴 입고, 머릿수건으로 턱을 단단히 묶고는 전기 담요도 켜지 않은 채 무릎까지 내려오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몸을 주욱 뻗고 양손을 가슴 위에 포갰다. 장례식을 어떻게 지내달라는 것만 씌어 있는 편지의 마지막 대목에 가서야 그녀는 <드디어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