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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속의 뱀 ㅣ 리세
온다 리쿠 지음, 양윤옥 옮김 / 반타 / 2025년 9월
평점 :
#도서협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장미 속의 뱀
📗 온다 리쿠
📙 반타

좋은 사람 같지만 어딘가 수상한 누군가와 마주한 적이 있는가? 우아하고 조용한 태도 속에 감춰진 칼날 같은 날카로움. 그걸 느꼈던 적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당신의 촉은 과열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일은 불편하지만, 의심하지 않으면 위험해지는 순간이 있다. 《장미 속의 뱀》은 바로 그런 순간의 연속이다.

리세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저 미스터리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묘하게 불안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전부 진실일 것 같다가도, 어쩐지 속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서처럼 나 역시 끌리면서도 의심하게 되는 기묘한 감정에 휘말렸다.

영국의 한 시골 귀족 저택에서 열린 성대한 파티, 그리고 그날 밤 벌어진 연쇄살인. 머리와 손이 잘려나간 시체, 어디론가 사라진 성배, 잇따른 독극물 사건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존재하는 리세라는 여인. 이 소설은 정통 고딕 미스터리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심리적인 불안과 상징으로 가득 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주인공 리세를 ‘나’가 아닌,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아서라는 남성 화자의 시선은 리세를 향한 매혹과 경계, 호기심과 불신을 오가며 독자를 리세라는 존재의 본질로부터 끊임없이 밀어낸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진다.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온다 리쿠는 단순히 트릭을 풀어내는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가 아니다. 《장미 속의 뱀》에서도 역시, 진짜 무서운 건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누군가의 오래된 비밀, 가문에 내려오는 저주, 계급의 허위성과 인간의 잔혹성까지—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선명하게 다가온다.

책 속 블랙로즈하우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하나의 살아있는 공간처럼 등장인물들을 감싸고, 얽고, 시험한다. 유럽풍 대저택, 짙은 안개, 종소리, 독이 든 술, 성배, 유적지에서의 살인… 각각의 요소들이 촘촘하게 얽히며 긴장과 불안을 쌓아간다. 밤에 혼자 읽기엔 조금 무서울 정도다.

저자는 고딕 장르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거대한 저택, 사라진 성배, 비밀 문서, 독살, 그리고 가족의 어두운 역사. 익숙한 소재들임에도 그것들을 낡은 틀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아주 현대적인 심리와 의심, 관계의 균열을 집어넣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서와 리세의 미묘한 신경전은 마치 체스 한 판을 보는 듯하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흥미진진한 사건의 연속으로, 문학적인 문장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정교하고 우아한 묘사로, 고딕풍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무대가 된다.

‘정말로 리세는 무고했을까?’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점이, 너무 좋았다.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인물.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이야기. 고딕 미스터리의 정수는 바로 이런 잔상 아닐까?

완전한 진실은 없다. 사람의 마음, 가족의 역사, 기억 속의 진실은 모두 안개처럼 흩날리기 마련이다. 《장미 속의 뱀》은 그 안개 속을 걷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보다, 진실을 의심할 수 있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읽는 내내 누군가의 속마음을 엿보는 듯한 묘한 쾌감과, 끝까지 남는 불안함. 이 책은 오랜만에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소설’을 찾고 있던 내게 딱 맞는 선물이 되었다. 고딕 미스터리의 진짜 맛을 느껴보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조심스레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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